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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모모타로 (桃太郞)」에 보이는 문화관

        김효순 韓國比較文學會 2002 比較文學 Vol.28 No.-

        「桃太郞」に觀する作品論は中村靑史の「「桃太郞」論」だけであり, その他は作品集についての解說や童話の桃太郞論等として部分的に言及されている程度である. 作品に對する評慣も否定的な方であり, その重要性もあまり認められていない. 最近になっては反戰作品, 惑いは帝國主義の戱畵化として評價しようとする傾向が現れている. 本稿ではそのような最近の硏究の傾向と軌を同じくしながら, もう一步進んで「桃太郞」の桃太郞像を芥川の文化觀の反映として考察してみた. 今日一般的に知られている桃太郞は日淸戰爭の直前に書かれ, 鬼は皇國に對して敵對的な存在を表象することによって皇國主義の思想を見せている. そのなかで挑太郞は善として惡い鬼を懲罰する國民的英雄となる. 芥川の「桃太郞」はそのような桃太郞像に對する批判意識から出發したと見ちれる. 上記のような芥川の「桃太郞」の執筆の動機としては次のような二つの點があげられる. 第一, 1921年の3月の下旬から7月の中旬にかけての大阪每日新聞社の海外視察員としての中國の訪問である. 彼が訪問した時の中國は民主主義の革命の運動が終結に向かっていた時期とは言え, 相變わらず各地に軍閥が割據し, 勞動者のストライキが頻發する狀況におかれていた. その中でも「桃太郞」の執筆の契機に直接的な影響を及ぼしたのは, 「豫の最も嫌惡する日本人は鬼が島を征伐した桃太郞である. 桃太郞を愛する日本國民にも多少の反感を抱かざるを得ない」という章柄麟の言葉である. この言葉には侵略者としての日本人に對した嚴しい批判と日本帝國主義に對した糾彈が入っている. 第二に, 1923年9月1日の正午に勃發した關東大地震の體驗があげられる. 芥川はあの時, 朝鮮人や社曾主義者からの襲擊から身を保護するための自警團に參加するようになる. しかし, 後に菊池寬との封話を通じて朝鮮人や社曾主義者からの襲擊の恐れは, 政府から造られた流言蜚語であったことに氣づくようになる. このような二つの體驗は芥川の現實の認識に大きな變化をもたらし, 以後の作品に反映されるようになる. それから, それが一番直接的に反映された作品の一つが「桃太郞」なのである. 芥川の「桃太郞」では, 人間と鬼との善と惡との關係が逆轉されている. そのような逆轉は利己的な存在としての人間の矛盾に對した批判, 資本主義の矛盾に對した批判, 侵略的帝國主義に對する批判として讀める. しかし, 作家の意識はそこに止まらない. すなわち「世間」を「人間」と見なすと, 自然界における人間中心主義に對する批判で, 鬼の世界と鬼の文化の存在價値を主張することである. 又「世間」を「日本人」と見なすと, 日本中心のアジア人, アジア文化觀を批判し, それの存在慣値を問う作家の主張とも讀めるであろう. 作家の意圖を, このように周緣文化の存在價値を積極的に主張することとして讀める根據は, 同じ時期に發表した他の作品, すなわち「湘南の扇」,「俊寬」,「第4の夫から」を見ればわかる. 上記のような芥川の桃太郞像の再構築による日本の侵略的帝國主義に對する批判とアジアの諸國家と民族の文化に對する價値の主張が今日も意味がある理由は, 自己中心的侵略的帝國主義は過去の歷史的事件に終わるものではないことにある. 實際に歷史的に見ると, 日淸戰爭期の南京大虐殺の事件で, 天皇の軍隊として貧しい農村出身の若者たちが戰爭に直面していかに勇敢無雙な兵士として殘虐行爲を犯したかを考えてみるとき, 芥川の主張は豫言的だと言えるであろう. それから, そのような作家の主張は日本中心のアジア人, アジア文化觀である日本的オリエンタルリズムに對する批判であり, 西歌中心の東洋觀であるオリエンタルリズムに異議を提起したことのあった芥川であったことを考えてみれば, 當然な歸結だと言える. そして, そのような文化觀の主張は, 中心と周緣との境が薄れ, 全地球的にグロ-バライゼ-ションが加速化されている今日の讀者には示唆する所が多いと思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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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레종’ 전설의 일본어 번역과 식민지시기희곡의 정치성 -함세덕의 희곡 「어밀레종」을 중심으로-

        金孝順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2016 일본언어문화 Vol.36 No.-

        The goal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records of the legend of the Emile Bell, elucidating the influence of the colonial Japanese translations on the Korean records of the legend. The very first records of the legend are the English translations by missionaries. However, these poems or short introductory texts do not specify the temporal or spatial background of the story and focus only on the motif of sacrificing a child in the process of forging a bell. They lack explicit description of the characters and narrative structure, also not showing any relation to the Bell of Bongdeoksa. Only after the 1920’s, when the legend was documented by the Japanese, the records began to convey clear portrayal of the characters, structured narratives and the link to the Bell of Bongdeoksa. Hamaguchi’s “Play Daughter Sacrifice Story” was the first to establish the motifs of “the Emile Bell” legend by explicitly depicting the characters and showing a concrete narrative. Nakamura’s “The Bell of Bongdeoksa” represented the story in connection with the Bell of Bongdeoksa for the first time. Osaka’s record first mentions a woman who voluntarily gives her child as a temple offering. Those records by the Japanese influenced the records by Korean researchers after the 1930’s. The texts feature a range of representations of women, classified into slip-resistance, slip-conformity and voluntary-offering types. The representations of slip-resistance type later developed into the image of women criticizing the Japanese Empire for mobilizing the people of Korea by force. Voluntary-offering type, in combination with slip-conformity motif in artist novels, developed into the image of women used for the propagation of the war ideology. In the light of the images of women discussed above, “the Emile bell” by Ham-sedeok can be seen as a criticism of the “mother of military nation” ideology. Despite the apparent pro-Japanese framework, his work shows how Ihwanyeo resists to the unjust authority that demands sacrifice of a child and thus points out the violent nature of the ideology forcing mothers to send their children to the battle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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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도회 (舞踏會)」소론 - 백인남성 , 자국남성에 의해 이중으로 타자화되는 여성상 -

        김효순 한국일본학회 2000 日本學報 Vol.45 No.-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무도회」의 원전은 피에르 로티의「가을의 일본」의 한 장인「에도의 무도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피에르 로티라고 하는 작가는 일본에 관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스트 작가로서 평가받고 있으며, 아쿠타가와가 제재로 삼은「가을의 일본」은 그의 오리앤탈리즘이 전형적으로 표출된 담론이라 할 수 있다. 로티는「가을의 일본」에서 자신의 이국취향을 충족시키는 것들에 대해서는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본의 사물, 예술, 종교, 사람은 유럽의 그것들과 비교하며 낯설고, 기분 나쁜, 무질서한, 동물적 상태에 가까운 주연적 존재들로 전락시켜, 해석하고 타자화시키고 있다. 「무도회」는 그와 같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의 실천작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쿠타가와는 로티의「에도의 무도회」에 나타나는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무도회」에 등장하는 일본의 문물, 일본인, 일본 여성을 미의 극치로 조형해 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무도회」론에서는 그 중심인물 아키코에게서 일본개화의 완벽한 미의 상징을 보는 것이 통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성작가에 의한 글쓰기와 남성 비평가에 의한 글읽기의 결과로, 그 안에서조차 일본 여성 즉 아키코는 타자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 체험하고 판단할 수 있는 주체로서가 아니라, 미숙하고 지적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비이성적인 객체로서 조형되고 있으며, 비평가나 독자들은 그런 아키코에게서 일본개화의 완벽한 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즉, 백인 남성작가에 의해 주연적 존재로 타자화되었던 일본여성은 자국의 남성작가에 의해 다시 한번 타자화되고, 그러한 여성상에서 이상적인 여성상, 혹은 피상적 개화의 상징을 읽는 비평가, 독자들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타자화되고 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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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조선의 문화정치와 경성일보 현상문학 연구 ─ 「파도치는 반도」와 나카니시 이노스케 작 「동아를 둘러싼 사랑」을 중심으로 ─

        김효순 한국일본학회 2018 日本學報 Vol.0 No.115

        본 논문에서는 『경성일보』 현상소설 「파도치는 반도」와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동아를 둘러싼 사랑」을 중심으로, 식민주체로서의 총독부의 문화정책과 그에 대한 재조일본인들의 반응, 조선의 사람이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분석하여, 식민지 조선의 문화정치와 문학과의 관련 양상을 파악했다. 「파도치는 반도」는 현상사업 실시 주체의 의도에 부합하여, 1920년대 식민지 문화정책인 내선연애・결혼 모티프와 산업개발, 민중 교육・계몽이라는 정치적 모티프를 충실히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작자는 현실적으로는 민족 간에 존재하는 의문 때문에 그것이 파탄에 이를 것을 예상하고 그 어려움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33년 나카니시 이노스케에 의해 변화된 시대의 맥락에서 재해석되고 재창조되었다. 나카니시는 「동아를 둘러싼 사랑」에서 재조일본인 사업가를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부르주아로 표상하고, 일본과 중국, 조선 민족의 갈등에 대해서는 위정자와 대중의 입장으로 구별하는 방식으로 사회주의 작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당시의 국제 정세나 민족 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 식민지주의의 시각에서 중국 군벌과 조선인의 충돌로 파악하고 그 사이에서 일본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이 1920년대 현상소설로서 식민지 문화정치에 충실했던 현상소설에 내재된 식민지배 이데올로기는 1933년 사회주의자이자 프롤레타리아 작가였던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작품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할 수 있다. This study identifies the link between the Cultural Policies and literature in Korea under Japanese rule. The perspectives of the Japanese people in Korea on the Cultural Policies, Koreans, and their culture, as represented in prize novels such as Waves of the Peninsula in KeijoNippo and Love All Over East Asia by Inosuke Nakanishi are analyzed. The former is aligned with the goals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in that it reflects the motif of Korean-Japanese marriage and the political objectives of industrialization, public education, and enlightenment. Simultaneously, the author points to the realistic need for “sacrifice” and “courage” to resolve mistrust between the Japanese and Koreans. In 1933, Inosuke Nakanishi adapted and reinterpreted the work to reflect changes in the social context. His stance as a socialist writer manifests itself in his representation of the diverging viewpoints of politicians and the masses on the conflict among Japan, China, and Korea, portraying the Japanese in Korea as unethical bourgeois. Nonetheless, the international affairs of the time or conflicts between people of different nationalities were described as a clash between the Chinese military and the people of Chosen, thereby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the mediating role of the Japanese. This indicates that even the socialist writers in the 1930s who spoke for the proletariat were still bound to the colonialist ideology, as reflected in the prize novels of the 1920s, which served to propagate the slogans of the Cultural Poli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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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시기 재조일본인의 내선결혼 소설에 나타난 여성 표상

        김효순 한일군사문화학회 2017 한일군사문화연구 Vol.23 No.-

        본 논문에서는 식민지 시기 민족과 민족을 결합시킬 수단으로써 일제가 장려한 내선결혼 정책이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그에 따라 내선결혼이 증가하면서 등장한 내선결혼 소설을 검토해 보았다. 이상에서 식민지 시기 조선 남성의 병력과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민족과 민족을 결합시킬 수단으로써 일제가 장려한 내선결혼 정책이 제도적으로 정비되고 그에 따라 내선결혼이 증가하면서 등장한 내선결혼 소설을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한국 작가들의 내선결혼 소설들은 일본 가정과 조선 가정이 지켜왔던 각각의 윤리가 얼마나 폐쇄적인 상태로 서로 융합할 수 없는지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 내에서 내선결혼 장려 이전에 나타난 한국인에 의해 표상되는 내선결혼 부부는 언어나 관습의 차이 혹은 가난으로 절망하고, 후회함으로써 파탄에 이르게 되고, 내선결혼 장려 이후에 나타나는 내선결혼 부부는 계급이나 젠더, 민족의 문제가 착종하여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파탄에 이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인 작가에 의해 창작된, 식민지 조선에서 생활하는 내선결혼을 다룬 소설에서 조선 남성은 대부분 지식인이고 일본인 여성은 이혼경력이 있는 여성이거나 여급 등과 같은 신분상 결함이 있는 여성으로, 민족의 위계질서보다 계급이나 젠더의 위계질서가 우선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결혼생활을 하는 내선결혼 부부를 그린 소설에서는 2세인 혼혈아들이 겪는 차별과 역경을 그려냄으로써 개인의 사랑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국가와 국가, 혹은 민족과 민족의 결합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내선결혼 장려 정책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배가 안정화된 1920년대 이후 재조일본인의 내선결혼 소설작품에서는 조선인 남성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고 미개한 존재로, 조선인 여성은 나약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로 표상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인 여성은 계급적, 젠더적 위계질서를 넘어 민족적으로 우위에 있는 존재로, 일본인 남성은 계급적, 젠더적, 민족적으로 절대적 우위에 있는 존재로 표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本論文では、植民地時期朝鮮男性の兵力と勞動力の必要で日本と朝鮮の兩民族を結合させる手段として、日帝が內鮮結婚を奬勵し內鮮結婚が增加するに從って登場した內鮮結婚小說、特に在朝日本人による內鮮結婚小說における女性表象について檢討した。 韓國作家たちによる內鮮結婚小說では、日本家庭と朝鮮家庭が各?守ってきた自らの倫理がいかに閉鎖的で融合できないかが分かった。內鮮結婚奬勵政策以前、韓國人によって表象された內鮮結婚夫婦は、言語や習慣、あるいは貧乏さで絶望し後悔して破斷に到る場合が多い。內鮮結婚奬勵政策以後の內鮮結婚夫婦は、階級や民族、ジェンダ一の問題が錯綜し葉われないか破斷に至ってしまう。このような韓國人作家によって書かれた、植民地朝鮮で生活する內鮮結婚夫婦の問題を扱う小說では、朝鮮男性のほとんどは知識人あるいは經濟力のある人で、日本人女性は離婚經歷を持つか女給で、身分的に欠陷のある女性であるので、民族の位階より階級やジェンダ一の位階秩序が優先視される樣相を見せる。また、日本で結婚生活をする內鮮結婚夫婦を扱う小說はほとんど、二世の混血兒が遇わされる差別と困難を描くことによって、個人の愛という普遍的な眞理を國家や民族の結合の手段にしようとする內鮮結婚奬勵政策の矛盾を露にする。 上記のような韓國人作家による內鮮結婚小說とは違って、在朝日本人作家たちの書いた內鮮結婚小說では、朝鮮男性は純潔で高貴な日本女性を欺瞞するとか强壓によって拘束する不良な存在として表象されている。これとは裏腹に本格的な內鮮結婚小說である「內鮮和風」の場合、皆川に代表される日本人男性は未開な朝鮮人を啓蒙して完全な日本人に造ろうとする、絶對的で理想的な人物として表象される。日本女性も同じように、在朝日本人の書いた小說では韓日倂合以前に書かれた「二人の妻」の才次を除いては、日本女性の淸楚な美しさを象徵する「大和撫子」や陸軍中將の娘で、日本の貴族學校である學習院大學を卒業した貴く美しい存在として表象されている。すなわち、日本人男性は朝鮮人女性に對して、また日本人女性は朝鮮人男性に對して、階級的·民族的位階秩序において絶對的優位にある存在として表象されていることが分かる。 從って、韓國人作家たちの書いた內鮮結婚小說においては個人の愛や家庭の倫理、習慣が民族のそれと衝突し葛藤する樣相が描かれているが、在朝日本人作家の書いた內鮮結婚小說においては、日本男性·日本女性が絶對的優位を占めている存在として表象されるため、韓國人作家たちによる內鮮結婚小說に見えるような、複雜な葛藤の樣相は見られ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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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식민지조선의 어문정책과 조선문예 번역물 연구「조선 및 만주」의 조선문예물을 중심으로-

        김효순 한일군사문화학회 2014 한일군사문화연구 Vol.17 No.-

        본 논문은 1930년대의「조선 및 만주」조선문예물 관련기사의 성격과 내용을 검토한 것이다. 1930년대는 조선총독부가 정책의 기조를 ‘문화정치’에서 ‘강압정치’로 전환하면서 군국주의적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시기이며, 동시에 신문, 잡지, 단행본, 라디오 등과 같은 대중매체가 등장하게 되었고, 문학의 대량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며 연애소설, 역사소설, 계몽소설, 추리소설과 같은 대중문학이 등장하는 ‘대중문학의 발흥기’였다. 또한 식민정책의 강화와 문화정책의 실시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조선의 지식인에 의한 일본어 창작이나 번역이 나타나면서, 조선문학(번역) 붐이 일어난다. 이와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조선( 및 )만주」에는 1930년대에 들어서서도 조선문예물 게재양이 꾸준히 증가됨은 물론, 총독부 관리로 한정되었던 일본인 기고자들이 경성제국대학 교수, 연출가, 자영업자 등과 같이 다양한 부류의 일본인으로 확대되었으며, 조선인 번역자도 증가하였다. 또한 조선인에 의해 창작된 근대조선문예물의 게재도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르 역시 1930년대 조선문단에서 분위기가 반영되어 근대시, 연애소설, 야담 등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의 변화와 주체의 변화는 독자적인 조선의 근대문학의 발전과 전개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황의 격화에 따라 조선의 식민지로의 전락이 확고해진 상태에서, 아시아의 2등국민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겠다는 지식인의 사명감과 시대인식이 언어관과 일본어글쓰기를 통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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