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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선교를 위한 비판적 상황화의 적용연구

        윤종혁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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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대만의 효과적인 선교를 위하여 대만의 상황을 고찰하고 이를 토대로 비판적 상황화에 의한 선교 방안을 모색하는 데 그 중점을 두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지상명령을 내리셨다. 선교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명령이며 과제이다. 선교의 본질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증거하여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이다. 대만은 한국보다 오래전에 복음을 접하였지만 복음화률은 3% 이하로 무척 낮다. 대만교회의 복음화률이 낮은 이유는 선교초기의 오류로 인하여 기독교에 대한 서양종교로의 배타적 오해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부재와 더불어 토착화된 대만적 불교와 도교, 유(儒), 도(道), 불(佛) 삼교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정령 숭배에 의한 기복적 민간 신앙과 조상숭배가 종교 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에 복음이 대만의 특수한 환경에 적합하게 상황화하는 것에 실패하였고 이로서 대만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대만 복음화를 위한 전략의 기초는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문화 속에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화된 복음으로 대화함에 있다. 대만은 정치, 문화, 사회, 종교적으로 여러 요소들이 다원화되어 혼합된 사회이다. 이러한 대만에서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복음에 유해한 종교나 문화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 제시와 조상제사나 우상숭배 등 그들이 전통문화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에 대하여 우려되는 혼합주의를 경계한 별도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피력하였다. 이를 위하여 대만의 전통적인 문화와 관습을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온갖 종류의 혼합주의의 함정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선교 전략은 성경의 원리에 입각하여야 한다는 전제하에 대만 선교와 복음화를 위한 두 가지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예수님의 선교방법에 의한 선교이다. 선교에 대한 부르심의 절대적 확신을 통한 복음전도자들의 선교적 소명과 확신 회복과 희생, 대만의 영혼을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하여 개종자가 아닌 회심자로 변화시키고, 성경의 메시지를 대만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는 말로 전달하기 위하여 대만적 복음을 정립하기 위한 신학을 수립하여야 하고 이를 통하여 대만 사람 스스로가 혼합주의의 함정을 경계하는 가운데 그들의 과거의 관습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성경과 성령이 말씀하시는 진리 가운데 그들이 변화되는 삶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사도 바울의 선교방법에 의한 선교이다. 사도 바울의 선교 원리는 혼합주의적 종교형태를 지니고 있는 대만의 상황에서 복음의 절대성을 보존함과 이에 대한 타협을 경계하는 측면에서 유익하다. 바울은 문화속에 적응하는 선교원리를 적용하였지만 복음의 본질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인 만남을 통한 바울의 선교원리는 대만인의 체면과 자긍심에 부합하여 효과를 나타내고 신뢰적 관계에 의한 선교의 효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교육을 행하였던 사도 바울의 선교원리에 입각하여 비판적 상황화에 의한 대만적 상황화 신학을 창출해내고 이를 태동하기 위한 교육선교와 신학교의 설립이 조속히 필요하다고 본다. 복음의 핵심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이다. 회개와 사죄는 복음전체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회개와 사죄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사역자들은 성경에 의존한 도구로써만 사용되어야 한다. 각 나라마다 정치, 사회, 문화가 모두 다르기에 선교방법이나 전략을 논하기가 어렵다. 대만 선교를 위하여 대만인들의 문화의 옷을 입고 그들에게 다가간다고 하더라도 복음이 변질되지 않는 선교를 해야만 한다. 현재 대만 교회는 성장의 지체를 거듭하고 있으며 복음화가 더디 진행되고 있지만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학생들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에 대한 호응과 평신도들이 복음전도하려고 하는 열정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교역자들이 한국교회의 성장을 흠모하여 부흥의 필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빠른 시일 내 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잃어버린 백성으로서 대만 자체를 복음화하고, 복음 화된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증거자로서 중국 대륙과 중국민족, 중국인 선교의 주체가 되어 중국을 복음화 함에 있어 크게 이바지 할 것을 기대한다. 본 주제를 연구함에 있어서의 취약점은 대만의 상황과 비판적 상황화를 위한 자료와 최근의 통계자료 획득의 한계로 적잖은 어려움이 적잖게 있었다. 따라서 후속 연구로서 대만 영혼들을 사랑하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원리와 방안들을 수립할 수 있는 보다 심도 있는 통계 자료와 상황화에 대한 이론들과 이들의 실제적 논의가 이어져가길 기대하며 본 연구를 마치고자 한다.

      • '한(恨)' 에 대한 신학적 고찰 : 민중신학과 영산신학에 나타난 기독교적 '한(恨)'의 구조와 특징을 중심으로

        정호준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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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에 대한 연구는 그 시기에 따라 1970년대부터 각 시기별로 구분할 수 있다. 1970년대에 와서 군사정권에 대한 민중운동이 일어나면서 민중과 한의 개념이 급부상한 한 연구의 태동기이다. 인문학적인 한론은 한의 다정다감한 정감의 측면과 간절한 소원의 측면에 주목한 정한론과 원한론이 있으며 민중론적 한론은 한을 사회개혁의 에너지로 보았다.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의 시대로서, 한 연구의 전개기이다. 인문학적 한론에서 한맺힘과 한풀이를 이원대칭적 구조로 본다. 민중론적 한론은 개념의 발전을 많이 이루지 못했다. 1990년대는 87년 6월항쟁으로 정권이 민주적으로 교체되었고, 91년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시대가 지나가면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는 지나간 시기로서, 한 연구의 결실기이다. 인문학적 한론에서는 삭임의 기능을 가진 일원론적 한이 연구되었고, 심리학적 한론에서는 정동, 정조, 성격특질이란 심리학적 개념으로 한을 설명했다. 정신병리학적 한론에서는 한이 방어기제적인 특징을 지니고, 신체적 증상을 유도한다고 보았다. 상담학적 한론에서는 한을 치유해야할 마음의 상처, 관계의 깨어짐등으로 이해하였다. 2000년대 들어와서 90년대 이루어진 연구들을 토대로 여러 학문과 교류하며 한의 연구가 확장된 한 연구의 확장기이다. 이는 심리학, 정서심리학, 신학등 90년대의 논의들을 계승, 발전시킨 연구들이라 할 수 있다. 한의 속성에 대한 질문은 “감정인가?, 부정적인가?, 에너지인가?, 한국적인 것인가? 집단적으로 해소되는가?” 라는 다섯 가지 질문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의 해소는 크게 외적인 방법, 내적인 방법, 초월적인 방법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외적인 해소는 직접적인 해소로 한을 유발한 원인과 상황이 종결되는 종한(終恨)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순간에 이루어지는 일회적인 것이고 직선적인 성격을 띄며 종한의 구조는 다시 반복할 수 있는 반복성을 가진다. 내적인 해소는 간접적인 해소로 개인적인 해한과 집단적인 해한으로 구분된다. 집단적인 해한은 한국 전통가운데 놀이와 예술, 종교 -탈춤, 판소리, 굿- 세 가지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해한은 민중들, 상황, 매개자, 작품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며 과정가운데 신명이 나타난다. 해한은 공동체적으로 풀어낼 때 더 효과를 발휘하며, 순환적이고 반복적인 속성을 가진다. 초월적 해소는 한의 순환의 고리를 뛰어넘는 승한(昇恨)의 과정이다. 이것은 각 종교가 추구하는 구원과도 같은 것이다. 한은 감정이나 에너지도 아니다.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어떻게 발전되느냐에 따라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한 정서적 머묾의 상태이다. 한이란 ‘인간이 처한 대립적, 역설적, 모순적 상황에 대하여 인간 본연이 가지는 마음의 반응 상태’를 말한다. 한은 다섯 가지의 특성을 지닌다. 첫째, 한은 저절로 생성되며 움직이려는 속성을 지닌다(유동성). 둘째, 한은 아래로 흐르는 특징을 가진다(하향성). 셋째, 한은 풀이를 통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풀이성) 넷째, 움직이려는 한의 속성은 움직이지 못할 때, 응축된 에너지로 드러난다.(응축성), 다섯째, 한의 구조속에서 풀이와 하향의 반복은 계속된다(반복성). 천이두와의 차이점으로는 한의 정의가 다르고, 한을 푸는 행위의 주체성이 다르다. 삭임의 과정도 다르게 이해되는데, 천이두의 삭임은 침전의 과정이라면, 기독교적 한의 한풀이는 흘러넘침의 과정이다. 천이두는 한을 구조적으로 초월해서 해결하고자 할 때, 부정적 한의 개념인 체념에서 시작하지만 기독교는 간절한 소망이 초월의 실마리가 된다. 민중신학과 영산신학은 한을 다룬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이다. 민중신학은 ‘실천의 신학’으로서 체제와 교리에 반대하는 반정통신학의 특징을 가진다. 서구적 주객도식을 반대하고 구원자와 구원받는 이가 하나인 민중구원론을 주장한다. 또한 반자본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민중신학은 죄를 기득권층이 약자를 억압하는 개념으로 보고 민중의 한을 억압된 감정, 사회개혁의 에너지로 보았다. 한의 해결은 단으로 해결되는데, 단은 한의 보복적인 악순환을 막고 한의 에너지를 키워서 한의 절대적 해소를 성취하자는 개념이다. 한의 구조에서 살펴볼 때 민중신학은 해한의 요소가 부족하였다. 자력적인 종한을 강조했으며, 실천과 사회정치적 참여를 시도했다. 그리고 승한의 요소는 결여되었다. 영산신학은 영산 조용기 목사의 신학이다. 영산신학은 ‘체험의 신학’으로 오순절신학과 희망신학의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오순절신학은 성령충만과 방언의 체험을 강조하고 신유를 강조하는 신학이다. 희망신학은 삼중축복을 강조하며 믿음과 희망을 강조하고 소그룹적 목회를 지향한다. 영산은 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목회는 한의 상황에서 시작한 목회였으며 그는 한을 긍정적 해결태인 소망을 희망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의 설교와 목회적 특징은 해한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다. 첫째로 입술을 사용한 개인적 한풀이의 기도와 말의 강조이다. 부르짖는 통성기도를 통해 개인은 해한 가운데 신명을 경험한다. 둘째는 공동체적 한풀이로서의 예배형식이다. 예배때의 합심기도와 아멘으로의 화답, 박수치는 찬양을 통해서 사람들은 공동체적 일체감을 느낀다. 셋째, 삼중축복의 강조는 종한으로서의 한의 해소를 지향한다. 한의 구조에서 살펴볼 때 영산신학은 해한의 요소가 강조되었다. 해한은 민중의 욕구를 충족해주었고,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종한의 요소도 강조되는데, 민중신학과는 달리 종한의 요소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강조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지나친 종한의 강조와 승한의 결여는 종한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말았다.

      • 영산 조용기의 관계적 삼위일체와 성령에 대한 연구

        송하종 한세대학교 신학대학원 202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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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삼위일체 교리’와 ‘성령론’은 성경전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 화해를 거쳐 종말의 완성에 이르는 신학의 전 구원사적 전개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영산의 사상과 신학은 삼위일체 교리와 성령론이 저변에 깔려있는 가운데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 신앙으로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고 발전해 갔다. 동방교회(카파도키아교부들)의 삼위일체는 세 위격이 구별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한 분이시고, 이 한 분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상호 내주·교통·교류의 친교적·관계적 연합을 이루는 위격중심 방식이다. 반면에 서방교회(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는 하나님은 삼위의 본질에서 출발해서 아버지, 아들, 성령이 관계적으로 각각의 위격적 독특성과 상호간의 동등성을 갖는다는 본질중심 방식이다. 영산의 ‘관계적 삼위일체론’은 동·서방교회 방식 모두를 취하고 있다. 특히 목회사역 현장에서는 동방교회 방식인 구원의 경륜적 역사 속에 나타나신 위격중심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한다. 이점에서 영산은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몰트만, 보프, 지지울러스 등과는 서로 간 직·간접적으로 상당히 닮아 있다. 특별히 최근 관계적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삼위일체가 ‘사회적 삼위일체’인데, 영산은 ‘심장병 어린이 무료시술 지원 사업’(1984), ‘사랑의 헌혈 운동’(1988), ‘선한 사람들’(Good people), ‘생태신학’(Eco-Theology), ‘사랑과 행복 나눔 재단’ 등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현실의 삶의 현장(Sitz im Leben)에서 실천하고 있다. 삼위일체 교리에 바탕을 둔 영산의 ‘삼중축복’사상은 좋으신 하나님, 속죄 사역의 예수 그리스도, 거룩케 하시는 성화사역의 성령으로 풀어나간다. 또한 더불어 페리코레시스적·관계적으로 삼위(三位)가 성령으로 역사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영산의 ‘4차원의 영성’이다. 이 ‘4차원 영성’은 생각, 꿈, 믿음, 말(씀)을 통해서 4차원의 영적세계가 현실의 3차원 물질세계를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영산의 ‘관계적·삼위일체적 성령’이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상호공유(교통, 교류)적 관계를 중요시 한다(고후13:13). 성경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관계는 아버지의 위격이 아들의 위격 안에, 그리고 성령의 위격이 아버지와 아들의 위격 안에 상호 내주·교통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영산은 성령의 역사를 성부·성자와의 연합으로, 성령을 성부·성자와 동일 실체(본질)로 풀어나간다. 특별히 영산의 ‘관계적·삼위일체적 성령론’은 죄인 된 인간이 삼위하나님의 상호공유(교통, 교류)적인 위격적 관계 속에서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성령의 능력(empowerment)과 충만함(fullness)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본받는 생명력 있는 역동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산의 ‘관계적·삼위일체적 성령운동’은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영향은 오랫동안 이론에 갇혀 있던 성령을 해방시켜, 믿는 성도들 모두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불이 임한 초대교회 때처럼 자신의 신앙 속에서 또는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성령을 인격적으로 직접 체험케 했다는데 있다(행2:17; 욜2:28,29).

      • 예레미야와 요시야 개혁 : 정치적 관점으로

        이우찬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2019 국내석사

        RANK : 249631

        예레미야는 긴 기간 동안 활동한 예언자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눈으로 목격한 예언자였으며, 모든 예언자가 그랬듯이 그가 활동하는 기간 동안 그의 메시지는 늘 외면 받았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나라가 멸망한 후에 주목을 받았고, 그는 신약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경화 작업을 거친 후에 그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신학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의 메시지는 당대의 거짓예언자, 성전설교, 왕가에 대한 예언과 이방에 대한 예언 그리고 구원의 메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메시지들은 그 이후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예레미야서는 많은 신학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예레미야서가 갖고 있는 신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크게 네 가지로 바라볼 수 있다. 첫 번째, 예레미야는 요시야 개혁 기간에 침묵 했는지의 여부이다. 이것은 연구사를 통하여 논의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예레미야의 활동 연대와 요시야의 개혁의 연대가 겹친다면, 예레미야서와 열왕기하의 보고들은 요시야의 개혁에 대하여 혹은 예언자로서 예레미야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 요시야 개혁 당시에 활동한 예언자가 스바냐, 예레미야가 있었는데, 요시야는 왜 그들에게 가지 않았는지 의문이 있다. 오히려 정말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여 예언자 훌다를 왜 등용했을까? 마지막 세 번째는 예레미야의 친족 혹은 친구들은 왜 예레미야의 선포를 거절 했는지에 대해서이다. 이 이야기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예레미야의 고향은 솔로몬 이후로 등용 받지 못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만한 사람이 없다. 지역주의와 더불어 이념적인 갈등이 충분하다. 네 번째, 요시야를 세운 ‘암 하아레츠’가 왜 요시야 개혁 때 등장하지 않았던 것인가? 요시야의 개혁의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요시야가 개혁을 시작한 목적이 제의중앙화만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목적에 대한 여지는 얼마나 가능한가? 위에서 언급한 4가지의 문제는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나는 본 논문에서 여기서 위에서 제시한 문제들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두 가지를 통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한다. 첫 번째, 예레미야는 시대적인 대세 혹은 권력보단, 하나님께서 나아가라고 지시하신 방향이 자신의 삶에서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의 사명이 어떠한 조건보다 우위에 두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사람들, 친구들, 가족들에 어떠한 이야기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예언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친인척관계와는 무관하게 선포한다. 두 번째, 정치적인 문제로 인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한계성을 갖고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요시야의 개혁이 단순히 종교적-제의적인 문제로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주장했던 개혁은 정치적인 의도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들이 처한 국제 정세는 혼란스러웠고, 그러한 혼란스러웠던 상황에 맞추어서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본 논문은 다음의 주제에 대하여 논할 것이다. 요시야 개혁기간 동안 ‘암 하아레츠’가 왜 등장하지 않았으며, ‘산당’ 파괴의 목적은 순수하게 제의개혁인가? 예레미야의 가문이 이 개혁에 동참하고 있다면, 어떤 의의가 있겠는가? 그것을 통하여 요시야의 개혁이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Jeremiah is the prophet who gave prophecies for a long period of time. He was the prophet who observed the fall of Jerusalem. As same as all prophets, his messages were always neglected during his time of ministry. However, his prophecies received attention after the fall of Jerusalem, and he and his prophecies affected to the new testament. After the canonicalization, his message theologically affected the Jewish community a lot. His message is composed of the prophecies for the contemporary false prophets, the royal family and foreign nations, sermon at the temple, and the message of salvation. These messages have allowed many influences after fall of Jerusalem. However, the book of Jeremiah, which have gathered in various way, have many theological issues. There are four perspectives toward the thelolgical issues of the book of Jeremiah. First, If Jeremiah remained silence during the period of Josiah’s reform. This is the most important subject discussed through the research history. If Jeremiah’s period of ministry overlaps with the period of Josiah’s reform, On the book of 2Kings didn’t refer to Jeremiah as a prophet and on the book of Jeremiah didn’t refer to about Josiah’s reform. It is not a problem that can be resolved easily. Second, why Josiah never visit the prophets who have actively doing the ministry during Josiah’s reform; Zephaniah, and Jeremiah? rather, why did he appoint indeed unheard, unseen prophetess Huldah? Third is about why the family and friends of Jeremiah rejected the proclamation. Some scholars have doubts about those things. No one would deny that Anathoth, the home of Jeremiah, is in position not to be appointed after King Solomon. With Regionalism, there is big ideological conflict. Lastly, Why didn't ‘Am Ha-arez’, who nominated Josiah, emerge during Josiah's reform? What was the purpose of reform of Josiah? Is the purpose of the reform of Josiah only for the centralization of cult. Then, what are the chances of other aims? It is not easy to find a direct correlation of four issues mentioned above. I will discuss the issues proposed above on this paper. So with these problem, I want to solve them with two things. First of all, following the lead and direction of God was more crucial and important than following the political power to Jeremiah. It shows that Jeremiah put priority on the mission as a prophet to any other condition. He was a messenger who did not submit to gossip of people, friends, and family. He declared the word of God irrelevant to relatives. Second, it appears that Jeremiah realized the limit of the problems because of the political issues. Josiah’s reform was not simply confined to the religious-cultic issues. We must recognize that the reform they insisted had a political intention. The national situation they faced was confusing, and through that confusion they tried to make a change according to the situation. This paper will be discussed on next topic. Why didn’t ‘Am Ha'arez’ appear during the period of Josiah’s reform? Is the purpose for destruction of ‘High place’ purely for reform of cult system? If Jeremiah’s family participates in this reform, what significance can it have? Through this issue, Josiah’s reform can be an interesting topic.

      • 예레미야를 통해 본 예수의 성전 행위의 의미 분석 : 렘 7:1-15, 막 11:15-19를 중심으로

        김명년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201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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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와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실천되지 않았던 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이다. 두 예언자의 시대는 공통적으로 힘없던 이웃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억압과 착취를 당하던 때였다. 그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를 보였다. 그들이 선포한 일치된 내용이란, 바로 사회적 사랑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렘 7:1-15과 막 11:15-19는 마가의 신학적인 의도에 따라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마가는 예수의 성전 행위가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의 맥락 아래에서 읽혀지도록 의도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성전에 들어가서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남유다 백성들의 십계명 위반을 비판한다(렘 7:9). 이 십계명 언급을 통해 예레미야는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첫째, 남유다로 하여금 그들의 초기 소명이 무엇인지 상기하도록 만든다. 초기 소명이란 이스라엘이 핍박하는 애굽을 떠나 이웃 사이에서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의 땅을 정의와 사랑이 실천되는 장소로 만들지 못하였으며 옛 애굽과 같이 이웃을 핍박하는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의 초기 소명은 상실되었다. 둘째, 십계명은 이스라엘이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기초적인 사회 질서였다. 예레미야가 범죄한 남유다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언급한 이유는, 십계명이 애굽처럼 변해버린 남유다를 심판하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실천되는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안에는 이웃 사랑의 실패와 새로운 공동체 탄생 암시가 들어가 있다. 이 두 가지의 내용은 마가에 의해 예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도 예레미야 때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억압과 착취를 당하였다. 그들은 로마 제국과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극심한 수탈을 경험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은 극빈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며, 결국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선택은 노예가 되거나, 일용직 노동자가 되거나, 도적떼에 가입하는 것뿐이었다. 예수는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에 저항하였으며 착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 당국자들과 대립하였다. 여기에서 마가는 구약 성서 인용문을 예수의 말로 첨가하였다(막 11:17). 이 인용문을 통해 마가는 두 가지를 설명한다. 첫째, 예수는 옛 예언자들의 전통 위에 서있으며 성전을 파괴하려는 예수의 시도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둘째, 억압을 일삼는 기존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예수의 행동 역시 합당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를 통해 예수의 성전 행위를 보았을 때, 예수는 불합리한 성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예수는 억압이나 착취가 없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하였다. Jeremiah and Jesus were prophets who worked in times when the Word of God was not fully practiced. In common, the days of the two prophets were at the time of social, political and economic oppression and exploitation of the weakest neighbors. They preached the word of God in different times, but they were consistent in their content. The unified content they proclaimed was God's word to practice social love. Jer 7:1-15 and Mark 11:15-19 have a significant connection according to Mark's theological intent. Mark intends that the temple work of Jesus be read in the context of Jeremiah's temple preaching. Jeremiah enter the temple and criticizes the violation of the Ten Commandments by the southern people of Judah who oppress the weak(Jer 7:9). Through this mention of the Ten Commandments, Jeremiah points out two aspects. First, it reminds Southern Judah of what their early calling is. The early calling means that Israel leaves Egypt where they are persecuted and creates a new nation among its neighbors, full of love and justice. However, they did not make the land of promise a place where justice and love were practiced, and they turned into persecuting their neighbors like the old Egyptians. Therefore, their initial call was lost. Second, the Ten Commandments were the basic social order that Israel received from God to make a new nation. The reason why Jeremiah mentioned the Ten Commandments to the Southern Jews who sinned is to give the implication that the Ten Commandments could judge South Judah, who have turned like Egypt and create a new nation where the Word of God is to be practiced. In other words, in Jeremiah's temple sermons, there are a failure of neighborly love and a hint of the birth of a new nation. Both of these are equally applicable to Jesus by Mark. During the days when Jesus lived, the weak were oppressed and exploited, as in Jeremiah’s times. They experienced serious economic, social and political exploitation from the Roman Empire and the Temple of Jerusalem. The result was that the poor were in a state of extreme poverty, and in the end their choices were only to be slaves, to become daily workers, or to join gangs. Jesus resisted he unprotected structures of the weak, entered into the temple, which was regarded as a symbol of exploitation, and opposed against the authorities of the temple. Here Mark referred to the Old Testament in the words of Jesus (Mark 11:17). Through this quotation, Mark explains two things. First, Jesus stands on the tradition of the old prophets and Jesus' attempt to destroy the temple is justified. Second, it means that the actions of Jesus, who rejected the existing system of oppression and created a new community, are also reasonable. As a result, looking at the temple work of Jesus though Jeremiah’s temple preaching reveals that Jesus actively rejected the temple which had become unjustified. In addition, Jesus established a new community where neither opposition nor exploitation ex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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