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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삼국시대 임진·한탄강유역 지역성 연구 : 취사·난방시설을 중심으로

        이요한 상명대학교 대학원 2015 국내석사

        RANK : 247631

        In this study, to analyze the settlements to be distributed at Imjin-Hantan basin in the Proto Three Kingdoms Period , was discussed the locality at that time. As a result, the settlement of this area has been confirmed that there was total of three class divided into earthenware assemblies, location types and types of cooking and heating apparatus. Locality is divided in areas where first Hanseong-Baekje earthenware excavated and according to kang form, one region was strongly influenced culture of Hanye clan of regional hometown clan and another depend on the effects of Hanseong-Baekje is continued strongly. And Hanye clan village is subdivided into water system in structure of cooking and heating apparatus. According to a recent archaeological materials, natural boundary of Hanseong- Baekje and Hanye clans culture is located at a river boundary where Imjin river- Hantan river? Youngpyeng stream is connected. In Hanye clans village which is located in this northern shore, Hanseong-Baekje style earthenware has not been completely excavated. On the other hand, settlement Hanseong-Baekje style pottery have been excavated. Next, the location type is classified as a low-position alluvial basins of the Imjin main basin and a high-position plain basins of Hantan river. Also it seems to have been somewhat different in using a traffic way between villages in Imjin river basin and villages in Hantan river basin. In the case of Hanseong-Baekje type’s village, the village can be seen that the characteristics of water system, so as to integrate into this area was provided to the base of both land and water. Locality that are classified based on the cooking and heating apparatus is as follows. First, in the types of kang-shaped, there are divided into the (ㅡ)-shaped type in Hanseong Baekje system village occupied an overwhelming percentage and the (ㄱ)-shaped. Specifically, the difference of cooking and heating apparatus in Hanye clan that have a large number of the (ㄱ)-shaped is observed. And Hantan River settlements , while Village of Imjin basin is not common binding a hearth, is a very predominant feature, binding with a furnace site. Finally, locality of Imjin-Hantan basin, which is three divided into the Proto Three Kingdoms period. It formed a basis for the traditional administrative divisions consisted of Cheorwon, Yeonchun, Pocheon. It is considered that this continues the pre-morden period. 본 연구에서는 원삼국시대 임진 · 한탄강유역에 분포하는 취락들을 분석하여 당시 지역성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이 일대의 취락들은 토기 유물상과 입지유형 그리고 취사 · 난방시설 형태면에서 총 세 지역으로 구분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역구분은 먼저 한성백제토기 출토 유무와 쪽구들 형태에 따라 한성백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지역과 재지세력인 한예세력의 문화가 강고하게 지속되는 지역으로 양분된다. 그리고 한예세력 취락들은 취사 · 난방시설 구성 면에서 수계별로 세분된다. 최근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한성백제와 한예세력 문화권의 자연적 경계는 임진강-한탄강-영평천이 연결되는 강계선으로서 현재 37번 국도와 중첩된다. 이 강계선 북안에 위치한 한예세력 취락들에서는 한성백제양식 토기들이 전혀 출토되지 않았다. 반면 남안의 취락들은 강계선을 따라 구축된 한성백제 관방유적들이 주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성백제양식 토기들이 출토된다. 일반적으로 성곽과 특정양식의 토기는 국가 정치체의 영역확대 과정을 방증하는 자료들로 여겨진다. 이에 강계선 남안에 위치한 취락들은 한성백제 영역에 편입된 취락들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입지유형 면에서는 임진강 본류역의 저지성 충적지대형과 한탄강유역의 고지성 평야지대형으로 분류된다. 또한 임진강유역 취락들과 한탄강유역 취락들은 중점적으로 활용한 교통로에서도 다소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성백제계 취락의 경우 이 일대에 진출하면서 수륙 양면의 요충지를 점하였으므로 수계별 특성을 아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취사 난방시설을 기준으로 구분되는 지역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쪽구들 형태면에서는 ㄱ자형 쪽구들이 우세한 한예세력 취락들과 一자형 쪽구들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한성백제계 취락으로 대별된다. 세부적으로는 ㄱ자형 쪽구들이 다수인 한예세력 내에서도 취사 · 난방시설 구성 면에서 상이점이 관찰된다. 임진강유역의 취락들은 노지의 결합도가 약한 반면 한탄강 유역의 취락들은 노지와의 결합양상이 매우 우세하다. 특히 강내리유적에서만 확인되고 있는 B2유형(ㄱ자형쪽구들 단독)과 사정리에서만 관찰되는 C유형(?자형 쪽구들+노지)의 대비는 취사공간 조성에 있어 수계별로 확연한 인식차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취사 · 난방시설의 절대연대를 참조한 결과, 한예세력의 전성기는 B유형 시설들이 축조된 시기와 연관되어 있으며, 임진강유역은 2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 경, 한탄강유역은 2세기 중반에서 3세기 중반에 성기로 판단된다. 이후 C-D유형 시설 축조시기에는 개체수가 감소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 시기에 경기북부 일대에 진출하는 한성백제의 영향인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이 원삼국시대에 세 지역으로 구분된 임진 · 한탄강유역의 지역성은 철원-연천-포천으로 구성된 전통 행정구역의 근간을 이루어 전근대시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판단된다.

      • NPC 3-레벨 인버터 시스템의 최적화

        이요한 漢陽大學校 大學院 2001 국내박사

        RANK : 247631

        본 논문은 고압 대용량 전력변환시스템에 적용하기 위한 NPC 3-레벨 인버터 시스템을 최적화시키기 위한 연구로서 전력변환시스템 설계에 있어서 시스템 용량이 정해지고 사용할 전력용 소자가 정해지면 각 소자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구하는 것은 설계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3300V-1200A정격의 IGBT를 대상으로 하여 각 소자에서의 손실을 변조지수와 부하역률의 함수로 나타내고 이것을 토대로 인버터 시스템의 방열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NPC 3-레벨 인버터 시스템의 주 적용 대상은 고압 대용량 시스템이므로 설계와 실험에 앞서서 시스템 전체를 모델링하여 그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력변환시스템의 시뮬레이션을 위해 많은 시뮬레이션 도구가 사용이 되고 있지만 본 연구에서는 범용의 시뮬레이션 도구인 MATLAB/SIMULINK를 이용한 전력변환시스템의 모델링 방법을 보이고 NPC 3-레벨 컨버터/인버터 시스템을 모델링 하였다. 인버터 시스템의 특성은 PWM(pulse width modulation) 기법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PWM기법에 따라 스위칭 주파수, 전력용 소자의 손실, 선형 변조영역, 과변조 특성, 출력전압의 고조파 특성 등이 변화하게 된다. 특히 출력전압에서의 고조파 성분은 유도기 부하에 맥동토크를 야기하며 고조파 손실을 초래하는 등 시스템의 성능 및 특성에 많은 영향을 주는 부분이다. 본 연구에서는 3-레벨 인버터의 전압변조방식에 있어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삼각파 비교방식 PWM기법에서의 출력 고조파를 샘플링시간, 지령전압벡터의 위치, 그리고 변조지수에 따라서 정량적으로 계산하고 비교 분석하였다. 특히 기존의 2-레벨 인버터와 3-레벨 인버터의 출력 고조파 비교를 통해서 2-레벨 인버터에서 가장 좋은 특성을 보이는 SVPWM이 3-레벨 인버터에서는 가장 좋은 특성을 보이지 못함을 보이고 출력 고조파 성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SVPWM 변조방식을 제안하였다. 또한 중성점 전압변동은 3-레벨 인버터 시스템의 성능과 신뢰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PWM방법에 따라 변화한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전압변조방법에 따른 중성점 전류의 양상을 비교 고찰하고 변조지수와 부하역률에 따른 중성점 전류의 변화를 분석하였다. 또한 옵셋전압값과 중성점 전류 변화량의 관계를 수식적으로 유도하고 중성점 전류를 0으로 제어할 수 있는 옵셋전압 지령값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였다. 아울러 허용 가능한 옵셋전압 지령값은 한계를 갖고 있음을 보였으며 변조지수와 역률이 변화할 때 순시적으로 중성점 전류를 0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제어영역을 표시하였다. 최종적으로 중성점 전류제어기를 구성하고 이를 이용하여 중성점 전압변동이 억제될 수 있음을 보였다. 제안된 알고리듬은 3300V-1200A IGBT를 이용한 3-레벨 컨버터/인버터 시스템에 적용하였으며 실부하 시험을 수행하여 타당성을 입증하였다.

      • Thomas Berry의 우주론적 생태신학 고찰

        이요한 수원가톨릭대학교 도서관 2013 국내석사

        RANK : 247631

        오늘날 ‘생태계 파괴’는 더 이상 간과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전 (全)지구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생태계 파괴’는 특정 시대나 문명, 혹은 몇몇 개체나 종(種)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파급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만물의 사활이 걸 린 ‘총체적 재난’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급속도로 성장한 ‘생 태계 파괴’의 심각성에 상응하여, 해결을 위한 인류의 시도들도 즉 각적으로, 그리고 절박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인류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생태계 파괴’의 현실은 전반적 으로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특정 부분, 소폭의 성 과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국소적이며 단기적인 성과로 그쳤다는 아 쉬움을 남긴다.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감행했던 ‘인 류의 시도’에 대한 기대감과 성취도의 차이는 새로운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더욱 긍정적인 성과, 더욱 많은 생태계의 회복에 대한 희망은 지 금까지 이루어진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시 도’에 대한 냉정한 ‘재검토’를 기반으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결국, 기대감과 성취도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인류의 시도’에 대한 방법론과 실천적 원동력에 대한 재검토 뿐 아 니라, ‘생태계 파괴’라는 현실에 대해 더욱 깊은 고찰과 더욱 넓은 안목을 요청하고 있다. 한편, ‘생태계 파괴’는 ‘시대의 징표’로서, 교회가 처한 상황이며, 동시에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고 극복해야할 현실이다. 교회는 외부 로부터 생태계 파괴의 원인으로 부정되고 있으며, 동시에 교회 내부 로부터 생태계 파괴 현실의 극복을 위한 책임감을 부여받고 있다. 오늘날의 상황, 곧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시 도’의 재검토의 요청은 ‘생태계 파괴의 근본적인 원인의 기반’이었다 고 비판받았던 교회에게는 벗어야할 오명과, 시대의 징표로서의 생 태계 파괴 현실을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고 극복하여야할 과제를 제 시한다. 다른 한편, 시대의 상황 안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요청들과 책임들 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생태계 파괴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이를 개 선하기 위해 이루어진 인간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존을 그 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인류에게 그 생존은 본질적인 요소(要素)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태계 현실에 대한 분석, 대안 제시라는 책임과 그에 따르 는 갖은 수고와 노력이 오직 인류의 생존의 연장에만 목적을 두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본 연구에서 필자는 인류와 교회에 요청된 생태계 파괴의 현실의 더욱 근본적인 원인 분석, 그에 따른 과학과 신학과 철학 등을 포괄 하고 통합하는 대안,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생태계 회복 및 개선 목적의 제시를 문제로 제기하며, 지구학자이자 문명사학자이며 신학자인 토마스 베리(Thomas Berry, 1914~2010)의 ‘우주론적 생태 신학’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생태계 파괴’가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그리고 누적적으 로 얽혀서 발생되고 심화되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시도 또한 다양한 양태를 띠며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시도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과학적 사고에 의한 현실분석과 대안 제시의 ‘방 법적론 형태’로 드러나며, ‘인간중심주의’ 속에 자란, ‘생존의 위협에 대한 공포’와 ‘윤리적 책임의 부여’에서 ‘실천적 원동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베리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인간중심주의’에 의해 발생하 는 ‘지구-인간 관계’의 일그러짐을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발생시킨 더욱 근본적인 원인으로 파악한다. 일그러진 관계 안에서 지구는 물 질, 대상 등으로 파악되며 인간과의 친밀감이 상실되었다. 그에 따 르면, 오늘날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형적 조 건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며, 내적인 변화가 요청된다. 곧 ‘인류의 행동양식’으로 드러나는 ‘인류의 인식’, ‘지구-인간 관계’에 대한 ‘올 바른 관계’ 맺음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베리에 의하면, 현대 ‘인류 의 시도’는 아직도 신생대 말기의 ‘일그러진 지구-인간 관계’에 머물 러 있거나, ‘기술대’를 택하여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베리의 분석은 우주론으로 이어진다. 우주론의 변화는 인식의 변 화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며, 존재양식의 변화로 드러난다. 우주론은 인류의 자기 인식과 우주 인식, 그리고 존재양식과 목표의 설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리는 현재의 상황을 건전한 우주 론의 부재 상황 - 기존의 우주론이 영향력을 잃고 적합한 새로운 우주론이 부재인 상황 - 으로 파악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개 선하는 적합한 우주론이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베리는 사회 구조 전 반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우주론’의 변화, 곧 사회 구조 전반의 전 복, 패러다임의 전환이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여 새로운 시대 를 살게 하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명의 시대로 들어서게 할 우주론을 탐색하는 베리는 ‘현대 과학 적 통찰’을 주시한다. 현대 과학적 통찰은 기존의 우주 이해, 곧 ‘기 계론적 세계관’과 ‘인간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우주론의 오류를 고발한다. 현대 과학적 통찰은 ‘역사적 역동성’이라는 우주의 특성과 우주의 세 원리(다양성, 내적 명료성, 교제)를 통해, 인간과 우주의 관계가 주체-객체, 의식-비의식, ‘사용자-도구’의 관계가 아니라, ‘주 체들의 교제’임을 드러낸다. 이 메시지는 신학과 과학의 통합적 메 시지이며, 새로운 우주론의 시대에 적절한 인류의 정체성을 제시한 다. 바로, ‘공동체 안의 존재’이다. 이와 같은 통찰은 우주의 ‘심리적 -영적(psychic-spiritual)’ 차원의 인정이며, 과학과 종교의 통합적 비전의 제시가 된다. 현대 과학적 통찰이 제시하는 인류의 새로운 정체성은 비록 그리 스도교가 주제적으로 명시적으로 제시하진 않았지만, 그리스도교 안 에서 면밀히 이어온 인간의 정체성과도 상통한다. 베리는 역사 안에 서 그리스도교 본질의 상실, 왜곡, 소외가 일어났다고 파악한다. 베 리는 하느님 이해와 계시의 이해와 공동체의 이해의 재고를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게 되며, 동시에 새로운 우주론과 같은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피력한다. 신학의 재고를 통해 드러나는 이해는 바로, 우주/자연에 대한 이 해와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인간은 ‘우주 안의 존재’이며, 우주는 인 간과 분리될 수 없는 공동체를 이룬다. 우주/자연은 하느님 활동의 장으로서, 계시의 장으로서, 복음 선포의 대상으로서, 인간과 함께 ‘신성한 공동체’를 이루는 동반자가 된다. 바로 이것이 베리가 제시 하는 그리스도 교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며, 존재양식이며, 궁극 적 목표이다. 베리는 현대의 상황을 본질의 왜곡과 상실, 소외로부터 말미암은 결과라 파악한다. 역사의 발달과정 안에서, 인류는 과학과 종교의 통합적 비전이 드러내고 있는 인간의 정체성, 곧 ‘우주 안의 존재’라 는 정체성을 망각하고 있었다. 이 망각 속에 인류의 사회 구조는 형 성되었으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베리의 대안은 결코 온전히 새로운 정체성의 소개가 아 니다. 베리가 주장하는 생태학적 대안은 ‘본질로의 회심’을 통한 ‘존 재양식의 전향’이다. 현대 과학적 통찰이 제시하듯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제시하듯이, 인류는 자연과 하나의 ‘운명공동체’를 이루며, 그 것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 한 인류의 시도는 인류의 본질적 목표의 추구이며, 인간이라면 누구 나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시도를 ‘첨부된 의무가 아니라 완성을 향한 여정’, ‘죽음의 위협에서 오는 공 포가 아니라 완성에 대한 희망에서 오는 기쁨’으로 제시하며, 더욱 더 강력하고 긍정적인 정신적 에너지로, 실천적 원동력을 부여한다 베리는 현 시대적 상황을, 멸종을 앞둔 위기이며, 새로운 정체성을 제공받으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호기로 파악한다. ‘시간에 따라 발전하는(time-developmental)’, 곧 ‘역사적 역동성’을 지니는 우주의 역사 속에서, 인류는 현재의 신생대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인 생태 대로 들어서야 한다. 베리는 생태대로의 실현이야 말로, 현시대의 인류에게 주어진 ‘위대한 과업(The Great Work)’이라고 선언한다. 이와 같은 베리의 주장은 비록 비판의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하더 라도, 그리스도교의 고유성을 상실하지 않으며, 동시에 현 시대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하는 노력으로서, 그리스도교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에 대한 고찰

        이요한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7631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 중 19년간의 기독교도에 대한 관용정책으로 인해 기독교는 어느 때보다도 자유를 누릴 수 있었으며, 황실과 궁전, 군대 등 어느곳에도 진출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로마라는 세계에 있는 한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박해에 대한 잠재적 요소는 언제나 않고 있어야 했다. 기독교도에 대한 박해는 어느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일순간에 촉발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융화하지 못하는 정치, 종교, 사회적인 여러 측면에서 안겨져 있던 갈등 요소들이 수면아래 가라않아 있는 상태에서 계기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양상을 띤것이었다. 따라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도 정치, 사회, 종교적인 여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로마인들은 예속된 모든 민족에게 대체적으로 자치권을 비롯하여 관습을 인정해 주었으며, 이민족을 동화시키는 방법으로 로마시민권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로마세계 내에서 보편자가 되기보다는 '특수'가 되기를 선택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역시 시민의 의무인 종교의식을 회피하고 비밀집회와 군복무등의 거부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를 추구하는 로마인들로 하여금 유대교와의 연속성을 가진 분파적 종교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둘째로, 황제에 대한 예배는 제국에 대한 충성과 성실성을 증명할 수 있는 바탕이었지만 기독교도는 이것을 거부함으로서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했느냐보다는 기독교도인가 아닌가에 재판의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으며, 그 명칭만으로도 박해가 가해지게 되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로마인들은 개인들에게 신앙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며, 영적 신앙이나 도덕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또한 신의 의미도 완전한 도덕적 최고의 실현의 본보기가 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의 의미는 제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외적 행위를 통하여 국가의 보존과 체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은혜를 간구하는 협정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제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유지하는데 불필요하다면 어떤 신들이건 신앙해서는 안되었으며, 로마제국의 시민들의 모든 삶의 영역은 이러한 다신교적인 영역아래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들을 거부한다는 것은 곧 로마제국을 거부하는 것이었으며, 사회와의 격리로 직결되었으며, 무신론자로 낙인찍히는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의 배타적인 유일신은 로마전체의 생활구조와 사회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박해의 필연적인 결과로 예인하는 것이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로마대중들의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은 기독교인들의 꾸준한 증가와 이로 인한 신전경제의 감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대의 도시들은 대개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으며, 종교적 축제와 예배는 도시민의 사회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에 의한 우상 숭배의 배타성은 곧바로 시민들의 생업의 위험과 소득의 감소로 연결되는 것이었기에 기독교도에 대한 증오심의 확장에 영향을 준 것이다. 로마사회는 사회간접자본의 필요성을 이해한 민족이었으며, 이러한 시설들은 로마의 영화를 유지하는 밑거름이었고, 황제와 시민들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독교도는 이런 시설들에 대한 출입을 금하였고, 이것은 시민들이 볼 때 모든 전통과 의식을 부정하며, 관습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또한 기독교도들에 대한 그릇된 소문과 오해는 당시의 역사가와 황제, 로마사회의 일반 대중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296년경 다뉴브강 주둔군 내에서 일부 병사들의 입대 거부와 병영 이탈로 갈레리우스는 몇몇 기독교 신자들을 처형한 이후 군대내에서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였다. 이후 전반적으로 박해가 있기 얼마전에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갈레리우스가 참석한 자리에서 희생제사가 수행되었으며 이 곳에서 복점관들은 기독교인들로 인해서 거룩한 의식이 방해를 받는다고 말했다. 황제는 황궁에 속한 자들까지도 제사를 드리기를 명했으며 군대내의 불경스런 일에 대해서는 관직에서 추방할 것이라고 공포했다. 그러나 이후 후속조치를 발효하지는 않았다. 갈레리우스는 이후 황제의 조치에 불만을 품고 기독교인의 박해 필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견해를 표력했는데 이는 군대내에서의 기독교인들에 의한 일련의 사태와 이후 희생제사에서의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보면서 제국의 전쟁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해 염려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갈레리우스의 설득과 관료들 그리고 아폴로 신탁의 답변등이 고려되어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박해를 결정하게 된다. 박해의 주동자가 누구인가? 라는 문제에 있어서 유세비우스(eusebius)와 락탄티우스(Lactantius) 모두 갈레리우스를 제시하고 있다. 이점에 있어서는 현대사가들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갈레리우스의 박해 동기는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유능한 정치가이기보다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대신하여 다뉴브 강의 방어를 일임받고 있는 그에게서 기독교도들이 보여준 여러 측면에서의 불관용과 비타협적인 측면들이 갈레리우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심각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1차 칙령에서의 특징적인 것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언급이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서 단순히 정치적 목적의 칙령이라고 볼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자유민의 경우도 역시 기독교 신앙을 고집할 때 자유를 박탈시키라는 조항 때문이다. 2차 칙령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투옥이 명령되었다. 이로 인해 감옥은 만원을 이루게 되었고, 이로 인해 황제는 즉위 20주년을 기념하여 투옥된 자들에게 희생제사를 조건으로 사면을 선포하였다. 따라서 3차 칙령은 기독교인들의 처형이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차 칙령은 갈레리우스에 의해 304년 4월에 공포되었는데 이는 전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그러나 306년에 특별명부가 작성되기 전까지 박해는 적극적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인 전체로 대상이 확대되면서 상당수 무산계층의 명부가 작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해의 진행양상은 동부와 서부에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서부 지역에서는 2년 동안만 박해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동부에서는 갈레리우스의 관용령(311년 4월 30일) 이후에도 막시민 다자에 의해 312년까지 박해가 진행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사두체제(四頭體制)의 속성상 관할 지역의 명확한 구분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리차드 백스터의 목회 : 「The Reformed Pastor」를 中心으로

        이요한 亞細亞聯合神學大學校 大學院 2005 국내석사

        RANK : 247631

        Richard Baxter's life, faith and ministry are well described in his book, "The Reformed Pastor". Richard Baxter shows a complete image of a pastor maintaining an integrated relationship among his life, faith and ministry. The Baxter's life, faith and ministry are to achieve the objectives centered on the Bible. Baxter did not have formal studies. But he made up his mind to become a pastor through self-studies. He learned the Reformation thoughts by reading the books written by Protestant leaders and also learned the worldview and theological thoughts based on the Bible by reading the books related to the Puritans in England. However, it was truly the English Puritanism that provided the foundation for Baxter's thoughts. Through the Puritanism the Bible-centered attitude provided the basis for the Baxter's faith. The essence of Puritanism has the following three points. The first is the individual godly life shown in the New Testament. The second is the sound Biblical doctrine. The third is the orderly church life. The harmonization of these points was the key for the Puritan movement. It is essential to understand the harmony of the three areas for the correct understanding of Puritan movement, and those were the major influence over the Richard Baxter's ministry. In March 1641 he started his first ministry with St. Mary located at Kidderminster which was a small town. The St. Mary Church was so small and poor that no one was willing to serve there. Richard Baxter succeeded the spirit of Puritanism and devoted himself to reform the St. Mary Church into the faith of the Puritanism. He pointed out that the worship of the Church of England at that time was so accustomed to the formalism that it should restore the features of the New Testament worship in the spirit and truth. He refused the religious ritualism and adopted the simple worship style shown in the early church of the New Testament. Consequently the Roman Catholic residue in the church was removed, and the life of the people was changed to the flourished Bible-centered life. In this way the integrated whole of Baxter's life, faith and ministry were applied at Kidderminster and came to bear fruits and achievements worthy to get worldwide attention. Richard Baxter's life, faith and ministry were centered on the Bible and he lived an exemplary life maintaining the harmony of life, faith and ministry.

      • 교회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현황과 활성화방안 : 대한예수교 장로회 충청노회를 중심으로

        이요한 청주대학교 사회복지 행정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7631

        What a church had a reversal for gospel anger, education, intimacy, four missions called service, and a mission of four this had meaning called social responsibility, and was recognizing a currently how ever korean church negatively appeared obviously. These phenom ena are the results that it is not to have been performed in the morning of the first and a Korean church gave way to only quantitative growth of a church than service for a community between him, and it is looked. The way how a Korean church can harmonize with a community again is to activate church social welfare now. On this paper, checked a currently social welfare service of an executed Korean church, and presented a problem to this and groped for he solution plan and presented a way of church social welfare. The first, condition on substance and a mission of a church. Considered with the welfare resources utilization present situation of a church and social welfare by field in the church social welfare service present situation and a problem. Finally, presented a social welfare service operating activation plan of a church about this. A problem about a Korean church social welfare service to have appeared through this study is as follows. Recognition shortage about thing practice to believe in a church, recognition shortage of a welfare budget or social welfare special phosphorus racial, it is shows shortage of social welfare facilities space or for to be cold by beauty utilization, absence of information, stepping state. The second, If it is looks into a problem as a result of having analyzed a business by church social welfare object concretely, to have appeared, a medical charge child of a church social welfare program, the juvenile protective object were working first, and a supply and demand program for the disabled appeared by having been not enough. A program for a child and an old man is universal, on the other hand a failure and a program for a nursing baby appear by having been not enough. Durability and a budget security of a budget are hard, and temporary relief activity and manpower service occupy a lot of specific gravity of a social welfare program. A connection with a church and a church, a church and welfare facilities is not enough, and scalr of a business is kept in a comparatively small unit. Proposes these analysis result in several by a foundation as follows. First of all. with welfare resources utilization activation plan, so that human traces resources utilization and utilization of facilities resources, utilization of financial resources are efficiently achieved, effort such as importance recognition of social welfare planning a church building open athletic spread for local welfare, a church social welfare action network construction, a church social welfare budget increase is necessary. It is requested by revival of diaconal mind and practice, enhancement of social welfare education of ministers, a motive about social welfare activity of and training enhancement, development of a professional service program, a swagger of an efficient delivery system, establishment of inform as soon as possible.

      • <Beethoven Symphony No.1> in Cmajor, Op.21 의 분석 연구 : -제 Ⅰ악장 지휘기법을 중심으로-

        이요한 忠南大學校 大學院 2022 국내석사

        RANK : 247631

        베토벤(Ludwig von Beethoven, 1770∼1827)은 1800년 4월 2일 자신의 지휘로 <교향곡 제 1번>을 내놓은 이후 1827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9곡의 교향곡을 꾸준하게 발표해왔다. 그는 고전시대의 기악 어법인 주제-동기 가공작업을 훨씬 더 철저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은 구조적으로 빈틈이 없이 꽉 짜여진 작품으로 완성되어지는 형태로 발전 되어졌으며. 동시에 그는 오케스트라의 음향에 대한 가능성을 탐험하기 시작하였고, 교향곡이 추구할 수 있는 음악적 이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구했다. <베토벤 교향곡 제 1번> 1악장은 베토벤의 첫 번째 심포니이면서도 초기작이라는 점에서 앞 세대의 작곡가들의 어법에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들을 모방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어떻게 구축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의 중요성에 따라 이 연구에서는 이 작품의 지휘기법에 중심을 두고 작곡가가 추구하는 음악적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요소들을 철저히 분석하였다. 이론적인 면에서 베토벤의 생애와 그의 전기적 요소들을 파악했으며, 나아가 베토벤의 작품 경향을 시기에 따라 구분하였다. 이러한 이론적 분석을 토대로 이 작품을 실제로 지휘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특히 제시된 템포와 박자, 다이나믹, 규칙적인 프레이징과마디그룹. 느린 도입부의 분할 기법 및 제시부의 2/4박자가 축소된 2분음표의 표현 악곡전체의 리듬분할과 액샌트의 이동으로 곡의 유연함을 표현하는 기법, 목표점을 설정한 후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위한 불규칙적인 마디그룹을 병행하며 옥타브 유니즌으로 인한 음량의 극대화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하였다. 또한 선율의 흐름에서 파생되는 화성의 진행 및 변화 그리고 전조과정을 세밀히 분석하여 악곡구조와 프레이징에 대비시켜 분석하였으며 이 작품이 모든 관현악곡의 표본이 되는 이유를 고찰하였다. Ludwig von Beethoven (1770-1827) released <Symphony No. 1> under his direction on April 2, 1800, and continued to release 9 symphonies until his death in 1827.As he began to do the subject-synchronous processing, which is the instrumental language of the classical era, much more thoroughly, his work was developed into a form that was completed with no gaps in the structure. At the same time, he began to explore the possibilities of orchestral acoustics, and in his own way pursued the musical ideals that a symphony could pursue. The first movement of <Beethoven Symphony No. 1> is an important piece that clearly shows how he was influenced by the vocabulary of composers of the previous generation and built his own unique world of music while imitating them as it is Beethoven's first symphony and early work. According to the importance of this work, this study thoroughly analyzed the theoretical elements of how to interpret the music pursued by the composer, focusing on the conducting technique of this work. In the theoretical aspect, Beethoven's life and his biographical elements were grasped, and furthermore, the trends of Beethoven's work were classified according to the period. Based on this theoretical analysis, I focused on the most important factors when actually conducting this work. Especially the suggested tempo, time signature, dynamics, regular phrasing and bar group. Split technique of slow introduction and expression of quarter notes with reduced 2/4 time in the presentation A technique of expressing the flexibility of the song by dividing the rhythm of the whole piece and moving the accent, irregularities to reach the climax after setting the goal A study on maximization of volume due to octave unison while conducting an in-madi group was centered.In addition, the progression and change of harmony derived from the flow of melodies and the transposition process were analyzed in detail and analyzed in contrast to the structure and phrasing of the music.

      • A STUDY ON DIASPORA MISSION AND COPING MECHANISMS FOR INTERCULTURAL ADJUSTMENTS AMONG SELECTED FILIPINOS IN KOREA

        이요한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 2014 국내박사

        RANK : 247631

        This dissertation argues that the identification of the dominant type of coping mechanisms for intercultural adjustments helps to find effective and relevant strategy of mission to the foreign diaspora, i.e., diaspora mission. This research employs both missiolgical and empirical methods. The questionnaire survey and analysis disclose the cognitive mechanism as the most dominant type, followed by the adaptive one, out of the five types of coping mechanisms (adaptive, attack, avoidance, cognitive, and defense), among the Filipino diaspora in Korea. This finding demonstrates that the Filipinos are quite positive in behavioral and attitudinal responses to new intercultural environments inasmuch as these two types (cognitive and adaptive) bear much more affirmative aspect than the other three (avoidance, attack, and defense). Historical, cultural, and religious studies of the Filipinos, based on literary research, actually support the findings of this field research. This research emphasizes the cross-cultural experiences in intercultural environments as the cognitive process: enhancing the understanding of oneself as well as others, and ultimately identifying God’s purpose in one’s life as the gospel-carrier—a quality which is required for an effective missionary. This is supported by examining the coping mechanisms of the key figures illustrated in the Bible. The Filipinos, one of the largest diaspora groups in Korea, are actively involved in global evangelism for which the networking ministry such as the FIN (Filipinos International Network) takes a facilitating role in building a strong relationship among the Filipino diaspora. This ministry of the FIN is a good example for Korean mission agencies to learn from. Attracting foreign diaspora more and more, Korea, with mono- ethnic, linguistic, and cultural heritage, is moving toward a multi–ethnic, multi-linguistic, and multi-cultural society. At this juncture, this research reveals that the current intercultural situation is the best learning environment for the Korean church to enhance her cultural competency and to be engaged with already in-reached people more genuinely and holistically. Dissertation Advisor: Dr. Jae Bum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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