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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秦漢 祭禮와 國家支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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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9740064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延世大學校, 2005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延世大學校 大學院 , 史學科 , 2005

    • 발행연도

      2005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KDC

      912.03 판사항(4)

    • DDC

      951.01 판사항(21)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viii, 263p.: 삽도; 26cm

    •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p. 248-259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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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本稿는 秦漢 帝國初에 실행된 郊祀, 封禪祭, 明堂祭祀 등과 社 祭祀를 皇帝支配體制의 成立과 함께 國家가 制度化하고자 했던 國家儀禮(禮制)란 觀點에서 고찰해보았다. 本稿가 禮制에 注目하게 된 것은 古代 中國社會에서 禮가 法과 함께 國家支配에 必要不可缺한 要素로서 認識되어 歷代 王朝에서 律令과 官僚制에 기초한 法制的 統治手段을 物理的 기반으로 삼음과 동시에 禮制를 통해 統治의 正當性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役割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秦漢時期는 皇帝支配라는 새로운 政治秩序가 形成, 發展된 데 따라 이 政治秩序를 새로운 支配理念으로 정당화할 思想的 必要性 또한 대두된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天命’이란 傳統 觀念을 天人感應論과 陰陽五行論 틀 속에서 皇帝支配體制의 基本理念으로 再定義하고 그 表象으로서 祭禮 또한 神話와 傳統 속에서 끄집어내어 制度化되었다고 본다.그런데 이 天命은 皇帝에게 統治할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萬民을 敎化해야 할 當爲性 또한 內包하고 있다. 天命의 이 두 가지 이념은 祭禮를 통해서도 象徵的으로 再現되는데, 統治의 正當性은 一次的으로 天과 皇帝의 관계와 位相 定立으로 確保되며 그 절차가 다름아닌 祭天儀禮이다. 그러나 天으로부터 부여받은 統治의 正當性[天命]은 統治機構인 官僚集團의 同意와 支持를 통해서 實現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官僚들의 助祭 하에 皇帝가 建國始祖를 明堂에서 宗祀함으로써 再確認된다. 이 과정을 통해 天命이 皇帝에 의해 具體的인 實現形態인 月令으로 頒布되고, 이 月令은 明堂 宗祀에 참여한 官僚들에 의해 政治의 場에서 行政의 準則으로서 遂行된다. 이로써 萬民敎化가 실현되어 一元的인 皇帝支配體制가 완성된다고 본다.이러한 관점에서 本稿는 天命의 두 가지 상징적 含意인 皇帝權의 正當性과 敎化 觀念이 祭禮를 통해 어떠한 형식과 논리로 구성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皇帝權의 정당성은 郊祀와 封禪, 明堂祭祀 등 祭天儀禮를 통해 그 상징화과정과 논리를 검토해보았고 敎化 觀念은 基層社會인 社가 月令的 統治構造 속에서 어떻게 再編되는지를 통해 접근해보았다. 이와 관련해서 月令에 내포된 本源的인 時間의 强制力이 가지고 있는 一元的 支配意志에 주목하여 月令과 궤를 같이하는 日書에 나타난 祭祀를 분석해보았다.그 결과 郊祀는 天과 一次的으로 관계를 갖는 祭天形式과 始祖를 天에 配祀하는 以祖配天의 郊祀形式이 서로 다른 觀念構造에 기초하여 皇帝權을 규정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前者는 統一帝國 成立 직후 皇帝의 儀禮로 再整備된 秦의 郊祀制를 繼承, 發展시킨 漢武帝의 郊祀이며 그것을 思想的으로 뒷받침했던 것은 天의 絶對性으로부터 皇帝權의 神聖性과 尊嚴性을 導出한 董仲舒의 郊祀論이었다. 한편 後者는 漢武帝 이후 豪族세력의 성장을 사회배경으로 한 儒家集團의 전통적 天子觀이 대두되며 皇帝權의 神秘化를 主導했던 祭禮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논리로 재구성된 것으로 王莽의 郊祀論으로 歸結된다. 이것은 ‘嚴父配天’의 論理에 입각하여 皇帝 個人에게 그 權威가 집중되기보다는 皇帝의 血統을 강조, 一姓에게 權威가 부여되어 皇帝는 이 一家 내에 孝의 충실한 실천자로서, 郊祀는 天子의 孝를 행하는 祭祀로 그 의미가 변질되어갔다.明堂은 郊祀와 비교할 때 天命 神話를 또다른 방식으로 再現해야 할 祭禮場所였다. 특히 明堂이 가지고 있는 ‘布政之堂’으로서의 상징성은 嚴父配天의 論理와 결합하여 天命神話를 時空間的으로 가장 완벽하게 具顯하는 場所이자 儀禮로서 政治의 場에서 기능하였다. 이러한 明堂의 含意는 漢武帝 때부터 시작하여 王莽을 거쳐 後漢代에 이르는 과정에서 각 시대마다 강조점이 달라지는데, 먼저 漢武帝期 明堂制는 文帝 이후 진행되어온 改制論議의 延長線上에서 ‘漢家禮儀’의 樹立을 目標로 提起된 것으로, 五年一修封의 巡狩封禪制 틀 속에서 考案되어 泰山 근처인 汶上에 造營되었다. 그 行事는 “修封,祀明堂,因受計”로 要約되며, 明堂祭祀는 安置된 神位를 볼 때 上房에 太一을 頂点으로 해서 五帝를 配置하고 高祖를 配祀하고 下房에서는 后土를 제사함으로써 天地神과 祖上神을 함께 祭祀하는 總饗의 성격을 띤다. 王莽의 明堂制는 周公의 制禮作樂을 模倣하여 傳統文化 복원을 표방한 祭禮改革 속에서 재정비되었다. 이른바 ‘元始故事’로 일컬어지는 祭禮改革의 특징은 都城을 宇宙의 縮約형태로 설정한 점에 있다. 都城을 中心 軸으로 하여 南北에 天地 郊가 확립되고 이하 諸神들의 兆域이 四方에 조성되었다. 또한 그에 걸맞게 諸神들의 稱號가 부여되어 官僚組織의 君臣關係와 같이 神들의 位階가 體系化되었다. 明堂 역시 이 과정에서 泰山이 아닌 城南에 조성되었다. 王莽은 이 明堂에서 舜을 始祖로 하여 四代古宗과 함께 宗祀하였고, 諸侯에게 茅土를 下賜하고, 大射禮와 養老禮를 행하여 ‘朝諸侯’와 ‘布德政’을 試演하였으며 「四時月令詔條」를 頒布하여 ‘班時令’의 의식도 행하였다. 이로써 王莽의 明堂은 儒家의 이상적 統治觀念인 月令的 世界觀을 實現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이것은 天命을 ‘嚴父配天’의 論理로 具顯한 것으로, 결국 王莽의 明堂은 神話 속의 禪讓儀式으로 具現되어 漢으로부터의 政權簒奪을 正當化하는 데 이용되었다. 後漢의 明堂은 王莽의 元始故事를 기본구조와 논리를 수용하면서 雒陽 城南에 造成하였다. 後漢 雒陽 明堂祭祀는 明帝 永平 2년 光武帝를 宗祀하여 五帝를 처음으로 配祀함으로써 중요한 先例가 되었다. 여기에 配祀된 五帝는 感生帝로 이제 天命은 더 이상 形而上學的 道德律이 아닌 星의 ‘精氣’라는 生物學的 根據로 설명되고 있다. 이것은 前漢末 經學上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陰陽災異說과 讖緯說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明堂에서의 時令頒布와 五郊에서의 迎氣儀禮, 靈臺에서의 雲氣觀察, 辟雍에서의 養老禮 등 後漢에서 중시되었던 儀禮活動은 각각 독립적인 장소에서 機能함과 동시에 서로 有機的으로 연결되어 모두 月令的 世界觀 틀 속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이 月令的 統治觀念은 四時의 時令을 主管하는 羲和官을 中心으로 그 屬僚로 外史, 閭師 그리고 孝經師, 月令師 등의 ‘班敎化, 禁淫祀, 放鄭聲’의 吏治를 통해 실현되었다. 月令的 統治構造 속에서 ‘班敎化, 禁淫祀, 放鄭聲’의 敎化가 窮極的으로 행해져야할 곳은 基層社會인 社였다. 古代 聚落 共同體의 중심인 社는 春秋戰國 이래 中央集權的 權力이 强化되고 그 統治가 深化되면서 한편으로는 地方行政의 末端機關으로 再編됨과 동시에 自律的으로 행해지던 社 祭祀 역시 점차 國家의 禮制 속에서 統制되기 시작하였다. 즉 國家가 정해놓은 規定을 벗어난 祭祀를 ‘淫祀’로 처리하여 法令으로 統制하는 한편, 社 제사에 社嗇夫와 같은 地方 屬吏의 祭祀 干與와 鄕里를 대표하던 父老와 里正이 祭酒, 社老, 社掾, 社正, 社史 등 ‘庶民在官’의 形態로 官僚制的 統治構造 속에 編入됨으로써 그 祭祀 對象과 時間, 儀式節次面에서 그 祭禮 역시 調律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月令의 ‘命民社’는 社의 月令的 統治構造로의 編入을 明文化한 것이라 할 수 있다.月令的 統治는 무엇보다 天子가 時間의 主宰者로서 매년 頒布하는 달력[曆]을 통해 가장 效率的으로 貫徹된다. 달력의 기능을 가진 曆譜에 24節氣와 節日 같은 時間의 標識뿐만 아니라 時日의 吉凶을 判斷하는 建除, 反支, 血忌 등이 附記된 점, 그러한 時日禁忌를 綜合한 日書가 地方 屬吏의 墓에서 法律, 行政文書와 함께 出土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日書를 또 다른 時間의 强制力이란 側面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日書 建除類 曆忌의 占辭 중 도망한 奴隸나 盜賊에 대한 체포(‘捕亡’), 土木工事(‘作事’ ‘起土’), 軍事行動(‘攻伐’ ‘出師’) 등과 이밖에 耕作과 收穫, 창고관리 등의 내용이 地方의 行政과 民政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嗇夫의 업무와 일치하여 日書가 이들 吏治에 이용되었음이 확인된다. 또한 이 吏治에 日書의 占辭 중 多數를 차지한 公共 祭祀도 포함되는데, 그것은 內容面에서 日書에 보이는 大祭가 종종 大事와 서로 互換되기도 하며 이 大事는 또한 作事, 起事, 聚衆과 連繫된다는 점, 그리고 飮食, 歌樂, 祭祀가 大事의 一環으로 竝稱된다는 점 그리고 觀念構造面에서 時日禁忌의 按配가 五行說에 基礎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地方屬吏에게 日書가 또다른 시간의 강제력으로 吏治에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月令의 ‘命民社’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이라 하겠다.이상에서 살펴본 秦漢 祭禮는 郊祀의 경우 皇帝의 威儀로서, 明堂祭祀의 경우 天子의 統治權 발효를 의미하는 祭禮로서 새롭게 형성된 皇帝支配의 象徵으로 制度化되었으며, 동시에 그 統治論理 역시 天人感應說과 災異論에 기초하여 月令形式으로 綱領化되었다. 또한 基層社會인 社도 이 月令的 統治構造에 編入시켜 敎化의 場으로 변모됨으로써 皇帝支配體制를 維持, 强化해나갔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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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稿는 秦漢 帝國初에 실행된 郊祀, 封禪祭, 明堂祭祀 등과 社 祭祀를 皇帝支配體制의 成立과 함께 國家가 制度化하고자 했던 國家儀禮(禮制)란 觀點에서 고찰해보았다. 本稿가 禮制에 注目...

    本稿는 秦漢 帝國初에 실행된 郊祀, 封禪祭, 明堂祭祀 등과 社 祭祀를 皇帝支配體制의 成立과 함께 國家가 制度化하고자 했던 國家儀禮(禮制)란 觀點에서 고찰해보았다. 本稿가 禮制에 注目하게 된 것은 古代 中國社會에서 禮가 法과 함께 國家支配에 必要不可缺한 要素로서 認識되어 歷代 王朝에서 律令과 官僚制에 기초한 法制的 統治手段을 物理的 기반으로 삼음과 동시에 禮制를 통해 統治의 正當性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役割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秦漢時期는 皇帝支配라는 새로운 政治秩序가 形成, 發展된 데 따라 이 政治秩序를 새로운 支配理念으로 정당화할 思想的 必要性 또한 대두된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天命’이란 傳統 觀念을 天人感應論과 陰陽五行論 틀 속에서 皇帝支配體制의 基本理念으로 再定義하고 그 表象으로서 祭禮 또한 神話와 傳統 속에서 끄집어내어 制度化되었다고 본다.그런데 이 天命은 皇帝에게 統治할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萬民을 敎化해야 할 當爲性 또한 內包하고 있다. 天命의 이 두 가지 이념은 祭禮를 통해서도 象徵的으로 再現되는데, 統治의 正當性은 一次的으로 天과 皇帝의 관계와 位相 定立으로 確保되며 그 절차가 다름아닌 祭天儀禮이다. 그러나 天으로부터 부여받은 統治의 正當性[天命]은 統治機構인 官僚集團의 同意와 支持를 통해서 實現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官僚들의 助祭 하에 皇帝가 建國始祖를 明堂에서 宗祀함으로써 再確認된다. 이 과정을 통해 天命이 皇帝에 의해 具體的인 實現形態인 月令으로 頒布되고, 이 月令은 明堂 宗祀에 참여한 官僚들에 의해 政治의 場에서 行政의 準則으로서 遂行된다. 이로써 萬民敎化가 실현되어 一元的인 皇帝支配體制가 완성된다고 본다.이러한 관점에서 本稿는 天命의 두 가지 상징적 含意인 皇帝權의 正當性과 敎化 觀念이 祭禮를 통해 어떠한 형식과 논리로 구성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皇帝權의 정당성은 郊祀와 封禪, 明堂祭祀 등 祭天儀禮를 통해 그 상징화과정과 논리를 검토해보았고 敎化 觀念은 基層社會인 社가 月令的 統治構造 속에서 어떻게 再編되는지를 통해 접근해보았다. 이와 관련해서 月令에 내포된 本源的인 時間의 强制力이 가지고 있는 一元的 支配意志에 주목하여 月令과 궤를 같이하는 日書에 나타난 祭祀를 분석해보았다.그 결과 郊祀는 天과 一次的으로 관계를 갖는 祭天形式과 始祖를 天에 配祀하는 以祖配天의 郊祀形式이 서로 다른 觀念構造에 기초하여 皇帝權을 규정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前者는 統一帝國 成立 직후 皇帝의 儀禮로 再整備된 秦의 郊祀制를 繼承, 發展시킨 漢武帝의 郊祀이며 그것을 思想的으로 뒷받침했던 것은 天의 絶對性으로부터 皇帝權의 神聖性과 尊嚴性을 導出한 董仲舒의 郊祀論이었다. 한편 後者는 漢武帝 이후 豪族세력의 성장을 사회배경으로 한 儒家集團의 전통적 天子觀이 대두되며 皇帝權의 神秘化를 主導했던 祭禮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논리로 재구성된 것으로 王莽의 郊祀論으로 歸結된다. 이것은 ‘嚴父配天’의 論理에 입각하여 皇帝 個人에게 그 權威가 집중되기보다는 皇帝의 血統을 강조, 一姓에게 權威가 부여되어 皇帝는 이 一家 내에 孝의 충실한 실천자로서, 郊祀는 天子의 孝를 행하는 祭祀로 그 의미가 변질되어갔다.明堂은 郊祀와 비교할 때 天命 神話를 또다른 방식으로 再現해야 할 祭禮場所였다. 특히 明堂이 가지고 있는 ‘布政之堂’으로서의 상징성은 嚴父配天의 論理와 결합하여 天命神話를 時空間的으로 가장 완벽하게 具顯하는 場所이자 儀禮로서 政治의 場에서 기능하였다. 이러한 明堂의 含意는 漢武帝 때부터 시작하여 王莽을 거쳐 後漢代에 이르는 과정에서 각 시대마다 강조점이 달라지는데, 먼저 漢武帝期 明堂制는 文帝 이후 진행되어온 改制論議의 延長線上에서 ‘漢家禮儀’의 樹立을 目標로 提起된 것으로, 五年一修封의 巡狩封禪制 틀 속에서 考案되어 泰山 근처인 汶上에 造營되었다. 그 行事는 “修封,祀明堂,因受計”로 要約되며, 明堂祭祀는 安置된 神位를 볼 때 上房에 太一을 頂点으로 해서 五帝를 配置하고 高祖를 配祀하고 下房에서는 后土를 제사함으로써 天地神과 祖上神을 함께 祭祀하는 總饗의 성격을 띤다. 王莽의 明堂制는 周公의 制禮作樂을 模倣하여 傳統文化 복원을 표방한 祭禮改革 속에서 재정비되었다. 이른바 ‘元始故事’로 일컬어지는 祭禮改革의 특징은 都城을 宇宙의 縮約형태로 설정한 점에 있다. 都城을 中心 軸으로 하여 南北에 天地 郊가 확립되고 이하 諸神들의 兆域이 四方에 조성되었다. 또한 그에 걸맞게 諸神들의 稱號가 부여되어 官僚組織의 君臣關係와 같이 神들의 位階가 體系化되었다. 明堂 역시 이 과정에서 泰山이 아닌 城南에 조성되었다. 王莽은 이 明堂에서 舜을 始祖로 하여 四代古宗과 함께 宗祀하였고, 諸侯에게 茅土를 下賜하고, 大射禮와 養老禮를 행하여 ‘朝諸侯’와 ‘布德政’을 試演하였으며 「四時月令詔條」를 頒布하여 ‘班時令’의 의식도 행하였다. 이로써 王莽의 明堂은 儒家의 이상적 統治觀念인 月令的 世界觀을 實現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이것은 天命을 ‘嚴父配天’의 論理로 具顯한 것으로, 결국 王莽의 明堂은 神話 속의 禪讓儀式으로 具現되어 漢으로부터의 政權簒奪을 正當化하는 데 이용되었다. 後漢의 明堂은 王莽의 元始故事를 기본구조와 논리를 수용하면서 雒陽 城南에 造成하였다. 後漢 雒陽 明堂祭祀는 明帝 永平 2년 光武帝를 宗祀하여 五帝를 처음으로 配祀함으로써 중요한 先例가 되었다. 여기에 配祀된 五帝는 感生帝로 이제 天命은 더 이상 形而上學的 道德律이 아닌 星의 ‘精氣’라는 生物學的 根據로 설명되고 있다. 이것은 前漢末 經學上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陰陽災異說과 讖緯說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明堂에서의 時令頒布와 五郊에서의 迎氣儀禮, 靈臺에서의 雲氣觀察, 辟雍에서의 養老禮 등 後漢에서 중시되었던 儀禮活動은 각각 독립적인 장소에서 機能함과 동시에 서로 有機的으로 연결되어 모두 月令的 世界觀 틀 속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이 月令的 統治觀念은 四時의 時令을 主管하는 羲和官을 中心으로 그 屬僚로 外史, 閭師 그리고 孝經師, 月令師 등의 ‘班敎化, 禁淫祀, 放鄭聲’의 吏治를 통해 실현되었다. 月令的 統治構造 속에서 ‘班敎化, 禁淫祀, 放鄭聲’의 敎化가 窮極的으로 행해져야할 곳은 基層社會인 社였다. 古代 聚落 共同體의 중심인 社는 春秋戰國 이래 中央集權的 權力이 强化되고 그 統治가 深化되면서 한편으로는 地方行政의 末端機關으로 再編됨과 동시에 自律的으로 행해지던 社 祭祀 역시 점차 國家의 禮制 속에서 統制되기 시작하였다. 즉 國家가 정해놓은 規定을 벗어난 祭祀를 ‘淫祀’로 처리하여 法令으로 統制하는 한편, 社 제사에 社嗇夫와 같은 地方 屬吏의 祭祀 干與와 鄕里를 대표하던 父老와 里正이 祭酒, 社老, 社掾, 社正, 社史 등 ‘庶民在官’의 形態로 官僚制的 統治構造 속에 編入됨으로써 그 祭祀 對象과 時間, 儀式節次面에서 그 祭禮 역시 調律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月令의 ‘命民社’는 社의 月令的 統治構造로의 編入을 明文化한 것이라 할 수 있다.月令的 統治는 무엇보다 天子가 時間의 主宰者로서 매년 頒布하는 달력[曆]을 통해 가장 效率的으로 貫徹된다. 달력의 기능을 가진 曆譜에 24節氣와 節日 같은 時間의 標識뿐만 아니라 時日의 吉凶을 判斷하는 建除, 反支, 血忌 등이 附記된 점, 그러한 時日禁忌를 綜合한 日書가 地方 屬吏의 墓에서 法律, 行政文書와 함께 出土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日書를 또 다른 時間의 强制力이란 側面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日書 建除類 曆忌의 占辭 중 도망한 奴隸나 盜賊에 대한 체포(‘捕亡’), 土木工事(‘作事’ ‘起土’), 軍事行動(‘攻伐’ ‘出師’) 등과 이밖에 耕作과 收穫, 창고관리 등의 내용이 地方의 行政과 民政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嗇夫의 업무와 일치하여 日書가 이들 吏治에 이용되었음이 확인된다. 또한 이 吏治에 日書의 占辭 중 多數를 차지한 公共 祭祀도 포함되는데, 그것은 內容面에서 日書에 보이는 大祭가 종종 大事와 서로 互換되기도 하며 이 大事는 또한 作事, 起事, 聚衆과 連繫된다는 점, 그리고 飮食, 歌樂, 祭祀가 大事의 一環으로 竝稱된다는 점 그리고 觀念構造面에서 時日禁忌의 按配가 五行說에 基礎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地方屬吏에게 日書가 또다른 시간의 강제력으로 吏治에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月令의 ‘命民社’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것이라 하겠다.이상에서 살펴본 秦漢 祭禮는 郊祀의 경우 皇帝의 威儀로서, 明堂祭祀의 경우 天子의 統治權 발효를 의미하는 祭禮로서 새롭게 형성된 皇帝支配의 象徵으로 制度化되었으며, 동시에 그 統治論理 역시 天人感應說과 災異論에 기초하여 月令形式으로 綱領化되었다. 또한 基層社會인 社도 이 月令的 統治構造에 編入시켜 敎化의 場으로 변모됨으로써 皇帝支配體制를 維持, 强化해나갔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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