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장가사』는 조선시대 궁중의 제례 및 연향에 사용되었던 가사 집으로 편찬 체재는 용도와 음악에 따라 배분 정리되었으며, 편찬주체는 궁중 행사를 주관했던 掌樂院으로 보인다. 최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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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高麗大學校 大學院, 2003
2003
한국어
810.903 판사항(4)
서울
ii, 277p. : 삽도 ; 26cm.
참고문헌: p. 26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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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악장가사』는 조선시대 궁중의 제례 및 연향에 사용되었던 가사 집으로 편찬 체재는 용도와 음악에 따라 배분 정리되었으며, 편찬주체는 궁중 행사를 주관했던 掌樂院으로 보인다. 최초 ...
『악장가사』는 조선시대 궁중의 제례 및 연향에 사용되었던 가사 집으로 편찬 체재는 용도와 음악에 따라 배분 정리되었으며, 편찬주체는 궁중 행사를 주관했던 掌樂院으로 보인다. 최초 편찬 시기는 <중광> 악장의 종묘 편입 시기와 표기 체계 등을 고려할 때 17세기 후반이며, 이후 문선왕묘악장의 증가가 있었던 18세기 초반과 경모궁악장의 제작과 경모궁 제례의 奉祭 시기인 19세기에 각각 수정·개찬이 있었다.
한편, 연구가 초기부터 제기된 박준 편찬설은, 『악장가사』의 수록 작품이 궁중 소용물인 점, 퇴계가 언급한 박준 편찬서는 순수 가사집이라보다는 '악보와 가사가 합쳐진 樂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이두 악서간 공유 작품이 두 편에 불과 하다는 점, 표기 체계가 17세기인 점 등을 근거로 비판하였다.
예악서의 흐름에서 볼때, 『악장가사』는 예악서의 분화 편찬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삼국사기』 제사·악→『고려사』예지/악지→(조선전기) 예지: 법전/의례서; 악지: 가+무/가+악/무+악 등→(조선후기) 歌·舞·樂 단독 樂書 등장'이라는 분화 편찬의 흐름에 위치할 수 있다. 그리고 예악서가 지닌 정리적 성격과 時用·常用적 성격 가운데 『악장가사』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후자의 측면에서 놓일수 있다. 따라서 『악장가사』는 17세기 후반에 궁중에서 시용·상용을 위해 편찬된 순수 가사를 수록한 악서라 할 수 있다.
『악장가사』의 성립과 성격이 이와 같기 때문에 소재 작품들 특히, 고려속요와 경기체가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선행 연구 가운데 『악장가사』를 '16세기에 편찬된 정리서'라는 견해에 의거하여 이 두 갈래의 斷承 시점으로 조선전기로 보는 시각이 존재 했었다. 그러나 이 두 갈래는 궁중에서 악장으로 사용되면서 조선후기까지 전승되었기 때문에 조선전기 단승론은 마땅히 재고되어야 할 것이며, 詩歌使의 시각 설정에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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