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체제는 1차대전 후 많은 전후질서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세계 최초의 그리고 동아시아 태평양에서 유일한 다자간 안전보장 및 군축·군비통제체제라는 의미가 있다. 워싱턴체제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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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2
2002
한국어
349 판사항(4)
서울
377p. ; 26cm.
참고문헌: p. 36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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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워싱턴체제는 1차대전 후 많은 전후질서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세계 최초의 그리고 동아시아 태평양에서 유일한 다자간 안전보장 및 군축·군비통제체제라는 의미가 있다. 워싱턴체제에 관�...
워싱턴체제는 1차대전 후 많은 전후질서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세계 최초의 그리고 동아시아 태평양에서 유일한 다자간 안전보장 및 군축·군비통제체제라는 의미가 있다. 워싱턴체제에 관한 국내 연구는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미와 일본에서는 대단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기존 연구는 대체로 워싱턴체제의 결과와 그 영향의 평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즉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에 있었던 국제레짐의 하나라는 측면에서 2차대전을 막지 못한데 대한 책임이 없는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워싱턴체 제 성립 과정에서 어떤 국제·국내 환경에서 어떤 요인에 의해 어떤 상호작용 과정을 거쳐 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는가에 대한 조명은 부족했다. 더욱이 기존의 연구에서는, 1차대전 후 파리평화회의에서 윌슨주의의 훼손·권력정치적 행태의 지속·영-미-일 해군력 경쟁의 격화·미국의 국제연맹 가입 거부 등 엄연한 무정부적 국제정치 현실에서 유럽에서는 어떠한 군축에도 진전을 보지 못했던 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영-미 적대감정·미-일 적대감정·영·미 對일본의 이익충돌·영일동맹에 의한 제국주의 질서 유지 등 무정부적 국제정치 현실을 극복하고 열강들의 합의에 의해 워싱턴체제를 성립했다는 측면을 과소 평가했다. 이러한 기존 연구의 경향과 한계는 대체로 권력중심적 관점에서 워싱턴체제의 성립을 권력정치적 현상만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권력요인뿐만 아니라 국제규범요인도 워싱턴체제의 성립 요인으로 상정하여 두 요인이 어떤 국제 국내 환경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하였는가에 대해 조명하고자 했다.
워싱턴체제가 성립하는데 영향을 미친 국제규범은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 공유된 문호개방과 기회균등주의였다. 이것은 약소국에게도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과 같은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어떤 약소국에서 한 강대국이 다른 강대국에 대해 독점적인 특권을 가지지 않음으로써 강대국들이 약소국에 대해 이권을 차지할 기회를 균등하게 공유한다는 제국주의 열강들만의 규범이었다. 이러한 국제규범은 팍스 브리태니커 시대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특히 중국에서 이권획득 기회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 국제규범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국의 해양력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 권력질서가 형성된 가운데 작동한 규범이었다. 즉 문호개방·기회균등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권력으로 유지된 국제규범이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새로이 부상하는 강대국인 일본은 아시아 지역의 섬나라 국가로서 고유의 특수한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아시아 대륙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안보문제로 연관시켜 생각하였고 서구 열강에 대한 인종적 반감을 가졌다. 그래서 일본은 서구 열강이 유지해 온 기존의 국제규범에 반발하고 아시아에서 특수이익을 주장했으며, 1차대전 중 서구 열강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지역 패권을 추구했다. 이러한 일본의 도전은 서구 열강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영, 미는 파리평화회의 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戰前의 질서를 회복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부상하는 강대국이었던 미국은 일본과는 달리 중국에 대한 문호개방주의를 천명함으로써 기존의 제국주의 열강이 유지해 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국제규범과 조화로울 수 있었다. 당시 영-미간의 적대감과 영-미-일 해군력 경쟁의 상황에서 영국이 영일동맹으로 미국에 대항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규범에 대해 도전하는 일본의 위협에 대항하여 영-미 협조를 추진할 것인가를 머뭇거리고 있을 때 영-미 사이의 국제규범에 대한 상호주관성은 영국이 미국은 선택하는 저변의 요인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윌리엄 보라(William Borah) 상원의원의 국제군축결의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워싱턴회의 개최를 촉진한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이에 힘입어 영국과 미국이 거의 동시에 군축회의를 제의했고, 일본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워싱턴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영-미 협조로부터 고립되는 두려움이 작용한 데다가 大正민주주의의 물결 속에서 국제협조노선의 정치지도자가 국제체제에 도전하려는 세력을 억누를 수 있었기 때문에 워싱턴회의 개최제안 수용이 가능했다. 결국 워싱턴체제의 성립과정에서 권력수단에 의한 경쟁과 갈등의 이면에서 작용한 국제규범에 대한 정치지도자들의 공감대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것은 곧 "이익의 정체성은 국가나 개인간의 가장 확실한 유대"(Identity of interests is the surest bonds whether between states or individuals.)이며, "감정상의 차이는 또한 행동의 차이를 가져온다"(Difference in feeling springs also difference in conduct.)는 것을 의미한다.
워싱턴체제의 성립은 영, 미, 일 해군력 경쟁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형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팍스 브리태니커 시대에서 팍스 앵글로-아메리카나 시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영-미 평화적 패권전이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적 패권전이에서 작용한 본질적인 요인은 영-미 사이의 국제규범에 대한 상호주관적 공감대였다. 따라서 국제협조는 단지 권력요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국제규범에 대한 상호주관적 공감대는 다자간 안보협력이나 양자 및 다자간 군비통제를 이루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리고 무정부적 국제정치 현실이란 언제나 어느 지역에서나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행위자의 정체성에 따라 그리고 상호작용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체제는 해군력 강대국들간의 질서였으며, 중국은 단지 강대국이 이익을 추구하는 대상일 뿐이었으며, 한국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에서 작동하는 규범은 도덕적 규범과는 다르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숭고한 도덕적 이상일지라도 권력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낱 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동서고금의 역사에서나 워싱턴체제의 성립과정에서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양자 혹은 다자간 군비통제는 무기에 의한 평화이며, 현상유지의 질서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므로 어느 정도 군사력을 가지지 못한 국가는 어떤 군비통제 협상장에서 주변을 기웃거리는 처지를 면할 수 없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워싱턴체제의 3대 열강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해군력 건설을 통해 청일전쟁·러일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영일동맹의 대등한 동반자가 되었으며, 또 1차대전 중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독일의 해군력을 몰아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국 어떤 국제규범이라도 물리적 권력으로 유지된다. 다만 국내적 정체성의 차이에 따라 국제규범에 대한 선호가 달라질 뿐이다. 그리고 강대국간의 어떤 국제레짐(안보협력, 경제협력, 군비통제 등)의 성립은 국제규범에 대한 상호주관적 공감대가 중요하며, 그 국제레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규범에 대한 상호주관적 공감대의 국내적 내면화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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