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사회참여의 윤리에 대한 연구 : 김재준의 신학사상을 중심으로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T8479688

    • 저자
    • 발행사항

      광주 :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01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 기독교윤리전공 , 2001. 2

    • 발행연도

      2001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KDC

      234.1 판사항(4)

    • DDC

      241 판사항(21)

    • 발행국(도시)

      광주

    • 형태사항

      69 p. ; 26 cm.

    • 일반주기명

      참고문헌: p. 69

    • 소장기관
      • 강서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광신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나사렛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백석대학교 도서관(서울) 소장기관정보
      • 서울신학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서울장신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성공회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장로회신학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총신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칼빈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한신대학교 장공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한일장신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호남신학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김재준의 생애는 유·청년기를 자연인으로서 일을 준비했던 시기로, 장년기를 학교. 교회.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자로서 일했던 시기로, 노년기를 사회의 공인으로서 성숙했던 시기로 살펴보았다.
    그는 당시의 다른 신학생들처럼 교권의 눈치를 보거나 자기의 출세를 고려하여 신학적 노선을 선택하지 않았다. 신학의 관심과 강조점을 학문의 연륜과 함께 다소 달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신학과 윤리는 신학순례의 경험을 배경으로 수립되었음이 틀림없기에 우리는 그의 신학기초를 살펴보았다.
    김재준의 신학사상에 있어서 성서학자로서 김재준의 면모를 살펴보았지만 그는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인격에서의 자유정신과 학문적 탐구정신이 그의 성서학 연구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자유정신에서 교조적 성서해석 방법 가운데 하나인 축자영감설을 거부했고 그의 탐구정신에서 성서학을 교리학의 시녀로 삼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을 공적으로 천명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이 글을 쓸 때는 종교다원주의의 문제가 제기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John Hick 나 Paul Knitter 등과 같이 신 중심적 선교신학의 입장은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칼 라너나 한스 큉과 같은 카톨릭 학자의 포괄주의적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에게 있어 생활신앙이란 용어는 그의 신학과 윤리의 핵심적 개념으로써 삶의 모든 부분에 신앙이 책임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신앙은 교회의 테두리에 머물기 쉬운 정체된 신앙에 도전하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생활신앙은 신앙의 밑거름인 경건, 기도, 예배, 교제 등의 중요한 주제들을 약화할 가능성도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본 논문에 있어서 김재준의 삶과 사상, 즉 실존론적인간과 인식론적시간과 공간과 실천적 참여를 과정과 결합하는 윤리의 방법으로 다루었다. 김재준은 이러한 참여의 신학적 근거를 하나님의 성육신에서 보고 있다.
    김재준은 사회참여 윤리에서 사회, 교회와 국가,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회참여 윤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에 대해서 다루었다.
    김재준은 사회관에서 오늘날의 시민을 "책임사회의 일원"으로 파악하는 데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러한 책임성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김재준은 그리스도인들과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책임 사회를 위해 힘을 합해서 협력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는 교회와 국가관에서 국가에 의한 민족주의의 악용도, 교회에 의한 민족주의의 오용도 거부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주의, 즉 에큐메니칼, 세계적 차원에서의 민족주의 정신에 기초한 박애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1967년 「기독교 사상」 에 발표한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라는 글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정치 참여의 신학적 근거를 하나님의 세계 창조와 섭리 그리고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왕권 통치 사상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예언자적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어떤 기도교 정당의 설립도 반대한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인이나 성직자들이 정치 활동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꼭 기독교 정당이 정권을 잡거나 기독교인이 정권쟁취에 몰두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보인다.
    이데올로기에서 김재준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모두 상대적 이데올로기로서 각기 모순들을 가지고 있음을 정확히 인식했고 여기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존하는 이데올로기적 체제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화하는 것을 그의 사명으로 알았던 것이다. 이러한 김재준의 입장 변화는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의 대화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이 등장한 것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재준은 개혁교회적 전통에서 서서 모든 이념들을 상대화하려는 입장이 그를 특정 이데올로기의 맹목적 추종이나 맹목적 저주로 떨어지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화관에서는 안보를 평화로 보던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청산하고 개혁교회 전통에서 서서 화해의 말씀(고후 5:17)에 근거해서 평화를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평화란 안보와는 무관하며 그리스도의 화해의 말씀에 기초한 용서와 화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가 평화로 이해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도, 화해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몇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김재준은 윤리학을 본격적으로 한 사람이 아니고 또 윤리학에 관한 글도 체계적으로 남긴 사람도 아니다. 그나마 김재준의 글들은 거의 모두가 아주 단편적이고 신변잡기적이기 때문에 그의 신학의 체계와 성격 속에서 사회 참여 윤리를 파악하고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그의 신학적 인간이해가 윤리 행위를 위한 지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인간이해의 강점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인간이해는 철학적, 사회과학적 차원까지 확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라는 과제부분의 구체성까지는 제시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그의 한계는 수평적 관계의 강조로 인해 수직적 관계의 일부를 약화 시킨데 있다.
    김재준은 내가 계명을 준행 한다는 I-it 의 관계에서 출발하는 한 율법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독교 윤리는 I-Thou의 인격적 관계에서 출발한다면서, 신앙은 개인인 '나'와 살아 계신 그리스도 '너'와의 인격적 만남과 그 만남에 대한 ‘예!’ 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번역하기

    김재준의 생애는 유·청년기를 자연인으로서 일을 준비했던 시기로, 장년기를 학교. 교회.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자로서 일했던 시기로, 노년기를 사회의 공인으로서 성숙했던 시기로 살펴보...

    김재준의 생애는 유·청년기를 자연인으로서 일을 준비했던 시기로, 장년기를 학교. 교회.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자로서 일했던 시기로, 노년기를 사회의 공인으로서 성숙했던 시기로 살펴보았다.
    그는 당시의 다른 신학생들처럼 교권의 눈치를 보거나 자기의 출세를 고려하여 신학적 노선을 선택하지 않았다. 신학의 관심과 강조점을 학문의 연륜과 함께 다소 달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신학과 윤리는 신학순례의 경험을 배경으로 수립되었음이 틀림없기에 우리는 그의 신학기초를 살펴보았다.
    김재준의 신학사상에 있어서 성서학자로서 김재준의 면모를 살펴보았지만 그는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인격에서의 자유정신과 학문적 탐구정신이 그의 성서학 연구에도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자유정신에서 교조적 성서해석 방법 가운데 하나인 축자영감설을 거부했고 그의 탐구정신에서 성서학을 교리학의 시녀로 삼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을 공적으로 천명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이 글을 쓸 때는 종교다원주의의 문제가 제기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John Hick 나 Paul Knitter 등과 같이 신 중심적 선교신학의 입장은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칼 라너나 한스 큉과 같은 카톨릭 학자의 포괄주의적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에게 있어 생활신앙이란 용어는 그의 신학과 윤리의 핵심적 개념으로써 삶의 모든 부분에 신앙이 책임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신앙은 교회의 테두리에 머물기 쉬운 정체된 신앙에 도전하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생활신앙은 신앙의 밑거름인 경건, 기도, 예배, 교제 등의 중요한 주제들을 약화할 가능성도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본 논문에 있어서 김재준의 삶과 사상, 즉 실존론적인간과 인식론적시간과 공간과 실천적 참여를 과정과 결합하는 윤리의 방법으로 다루었다. 김재준은 이러한 참여의 신학적 근거를 하나님의 성육신에서 보고 있다.
    김재준은 사회참여 윤리에서 사회, 교회와 국가,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회참여 윤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에 대해서 다루었다.
    김재준은 사회관에서 오늘날의 시민을 "책임사회의 일원"으로 파악하는 데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러한 책임성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김재준은 그리스도인들과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책임 사회를 위해 힘을 합해서 협력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는 교회와 국가관에서 국가에 의한 민족주의의 악용도, 교회에 의한 민족주의의 오용도 거부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주의, 즉 에큐메니칼, 세계적 차원에서의 민족주의 정신에 기초한 박애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1967년 「기독교 사상」 에 발표한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라는 글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정치 참여의 신학적 근거를 하나님의 세계 창조와 섭리 그리고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왕권 통치 사상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예언자적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어떤 기도교 정당의 설립도 반대한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인이나 성직자들이 정치 활동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꼭 기독교 정당이 정권을 잡거나 기독교인이 정권쟁취에 몰두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보인다.
    이데올로기에서 김재준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모두 상대적 이데올로기로서 각기 모순들을 가지고 있음을 정확히 인식했고 여기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존하는 이데올로기적 체제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화하는 것을 그의 사명으로 알았던 것이다. 이러한 김재준의 입장 변화는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의 대화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이 등장한 것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재준은 개혁교회적 전통에서 서서 모든 이념들을 상대화하려는 입장이 그를 특정 이데올로기의 맹목적 추종이나 맹목적 저주로 떨어지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화관에서는 안보를 평화로 보던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청산하고 개혁교회 전통에서 서서 화해의 말씀(고후 5:17)에 근거해서 평화를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평화란 안보와는 무관하며 그리스도의 화해의 말씀에 기초한 용서와 화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가 평화로 이해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도, 화해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몇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김재준은 윤리학을 본격적으로 한 사람이 아니고 또 윤리학에 관한 글도 체계적으로 남긴 사람도 아니다. 그나마 김재준의 글들은 거의 모두가 아주 단편적이고 신변잡기적이기 때문에 그의 신학의 체계와 성격 속에서 사회 참여 윤리를 파악하고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그의 신학적 인간이해가 윤리 행위를 위한 지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인간이해의 강점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인간이해는 철학적, 사회과학적 차원까지 확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라는 과제부분의 구체성까지는 제시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그의 한계는 수평적 관계의 강조로 인해 수직적 관계의 일부를 약화 시킨데 있다.
    김재준은 내가 계명을 준행 한다는 I-it 의 관계에서 출발하는 한 율법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독교 윤리는 I-Thou의 인격적 관계에서 출발한다면서, 신앙은 개인인 '나'와 살아 계신 그리스도 '너'와의 인격적 만남과 그 만남에 대한 ‘예!’ 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차 = 0
    • 1. 서론 = 1
    • 가. 연구의 목적과 의의 = 1
    • 나. 연구의 방법과 범위 = 2
    • 2. 김재준의 생애와 신학기초 = 2
    • 목차 = 0
    • 1. 서론 = 1
    • 가. 연구의 목적과 의의 = 1
    • 나. 연구의 방법과 범위 = 2
    • 2. 김재준의 생애와 신학기초 = 2
    • 가. 김재준의 생애 = 2
    • (1) 유·청년기(1901-1933) = 3
    • (2) 장년기(1933-1961) = 4
    • (3) 노년기(1961-1987) = 6
    • 나. 김재준의 신학기초 = 7
    • (1) 자유주의 = 7
    • (2) 보수주의 = 8
    • (3) 그리스도 중심 = 9
    • 3. 김재준의 사회참여의 신학사상 = 10
    • 가. 성서관 = 12
    • 나. 종교관 = 16
    • 다. 생활신앙관 = 22
    • 4. 김재준의 사회참여의 윤리의 방법론 = 29
    • 가. 실존론적 방법으로서의 인간 = 30
    • 나. 인식론적 방법의 시간과 공간 = 38
    • 다. 실천적 방법으로서의 참여 = 40
    • 5. 김재준의 사회 참여의 윤리 = 42
    • 가. 사회 = 42
    • (1) 가정 = 42
    • (2) 기술문명사회 = 45
    • (3) 하나님나라와의 관계 = 47
    • (4) 저항권 = 50
    • 나. 교회와 국가 = 52
    • (1) 국가와 민족 문제 = 52
    • (2) 정치와 종교 = 55
    • 다. 이데올로기 = 57
    • (1)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 57
    • (2) 사회주의 = 60
    • 라. 평화 = 63
    • 6. 결론(초록으로 간주하여 구축) = 65
    • 참고문헌 = 69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