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알코올중독자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A)’이라는 자조모임에 나와 알코올중독을 회복하고 단주(斷酒)를 지속할 수 있는지, AA를 거쳐 이들의 삶은 어떠한...
이 논문은 알코올중독자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A)’이라는 자조모임에 나와 알코올중독을 회복하고 단주(斷酒)를 지속할 수 있는지, AA를 거쳐 이들의 삶은 어떠한 양태로 변화하는지 분석한다. 현대사회에서 알코올중독은 정신장애로 분류되며, 정신병원 입원과 약물처방을 기반으로 치료되는데, AA 모임에 다니는 알코올중독자들은 어떻게 의료기관이 아닌 자조모임에서 회복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논문에서는 (1) AA 모임에 다니는 알코올중독자들 중 대부분이 정신병원 입원을 먼저 경험했지만 병원에서의 알코올중독 치료에 실패했다는 점과, (2) AA 모임에서 알코올중독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겪어온 삶의 고통이라는 점, (3) AA 모임에 다니는 알코올중독자들은 단지 술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연구를 위해 AA 모임에 다니는 알코올중독자들과 심층면접 및 AA 모임에서의 참여관찰을 병행했다.
분석을 위해, 병의 회복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지 의과학적 치료일 뿐만 아니라 환자의 삶 속에서 병으로 인해 총체적으로 경험되는 고통이라는 관점, 이러한 고통은 사회구조적 부정의에 의한 것인 동시에 개인의 몸, 감정, 사회적 관계를 관통하며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차원에서 경험된다는 관점과, 근대 생명권력의 통치는 사회의 각 영역에서 배태된 장치들을 통해 개별 신체 위에서 자유롭게 작동하며 언제나 특정한 주체를 생산해낸다는 관점에 착안하였다.
II장에서는 알코올중독자들이 어떤 계기로 AA 모임에 참여하고 모임생활을 지속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다루었다. 알코올중독자들이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살기 위해서였다. 알코올중독자들은 술로 인해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놓이거나, 상충하는 낮과 밤을 살거나,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 고립된 채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알코올중독자들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감각으로부터 생존을 향한 욕망을 가지게 되거나, AA 모임에 나가 자신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고통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발견함으로써 삶에 대한 의지를 발현할 수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오히려 다른 알코올중독자를 통해 자신은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모임을 떠났지만, 결국 술로 인한 고통과 AA 모임에서 경험한 안전, 연결의 감각을 토대로 모임에 복귀했다.
알코올중독의 고통을 중심으로 발화된 질병 경험은 알코올중독이 쾌락의 추구나 의지의 실패로 인한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트라우마, 구조적 부정의 등으로 인해 추동된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대응으로서의 음주가 이들의 몸을 죽음으로 내몰고, 도덕적 분열과 관계의 단절을 낳은 사회적 고통임을 드러낸다. 알코올중독의 고통은 단지 개인의 의학적 문제나, 혹은 그 반대로 온전히 구조적인 문제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 고통을 온전히 담지해야만 했던 몸과 감정의 경험을 포착함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III장에서는 AA가 회복장치로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코올중독자들이 AA 모임에 나가 어떤 실천들을 수행하는지 분석하였다. AA는 모임의 개방성, 모임 참여의 자율성을 특징으로 하는 동시에 외부 집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형성함으로써 알코올중독자들이 AA 내부에서의 회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매일 반복하는 모임 참석, 모임이 제공하는 환영과 보상의 경험, 술로 인한 고통을 상기하고 말함으로써 지니게 되는 경각심을 바탕으로 모임참여와 단주를 지속했다.
회복의 핵심은 고통을 재정의하고 재해석하는 데 있었다. II장에서 다루었던, 알코올중독자들이 술을 마실 수밖에 없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재정의되었으며, 잔존하는 현실의 고통은 회복의 과정으로 전유되었다. 나아가, 이들은 술을 마시고 저질렀던 행위, 술을 마셨던 행위,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겪었던 고통을 그들의 ‘잘못’으로 재해석했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치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나갔다. 그들은 이렇게 잘못으로 재해석된 고통을 다른 알코올중독자들과 공유하고, 반성하며, 보상했다.
IV장에서는 알코올중독자들이 과거의 고통을 재해석함으로써 술을 끊어냈음에도 AA 모임 생활을 지속하는 것을 회복장치로서 AA의 효과라는 관점으로 분석하였다. 이들은 단주를 통해 복구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몸과 감정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겪는 고통의 원인에 구조적 부정의가 놓여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에 저항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였다. 이는 일견 AA가 알코올중독자들을 현실에 순응하는 유순한 몸으로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알코올중독의 원인과 그로 인한 고통을 자신의 삶 속에서 발견해내고 내면의 강인함을 벼림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규범이 빚어내는 고통으로 인해 다시 술을 마시고 죽음의 늪으로 빠지기보다 그러한 규범적 요구를 빗겨가거나 의연하게 받아냄으로써 자기돌봄을 수행했다. 이러한 자기돌봄은 비단 자기점검의 결과였을 뿐만 아니라, 점검의 내용을 AA 모임에 나가 이야기하고, 다른 알코올중독자들과 공유하며 서로를 돌봄으로써 수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상호돌봄이 없다면 자기돌봄마저도 실패함으로써 중독의 재발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사례로부터, 알코올중독자들은 AA 모임에 다니며 상호돌봄에 기반한 자기돌봄을 수행함으로써 강인한 몸이 됨을 알 수 있다.
이 연구는 알코올중독자들이 AA 모임에 나가 자신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발화함으로써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점에 주목함으로써, 알코올중독은 삶의 사회적 고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경험된 또다른 사회적 고통이었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몸과 마음을 강인하게 다져냄으로써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보였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아가, AA에서의 회복은 사회적 고통으로서의 알코올중독을 자신의 내면과 살아온 삶 속에서 해석하는 것,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외부 조건이나 타자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는 과정인데, 이 과정은 고통의 개인화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질적인 고통을 공유하는 알코올중독자들에게 전유됨으로써 상호돌봄을 전제하기에, 이는 고통의 상호돌봄에 기반한 ‘사회적’ 주체의 가치를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