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응당 문성(普應堂 文性, 1867~1954)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불화승이다. 문성은 갑사에서 출가하였고, 이후 마곡사에 주석하던 금호당 약효(錦湖堂 若效, 미상~1928)의 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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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동아대학교 대학원, 2020
2020
한국어
654.22 판사항(5)
부산
A study on the buddhist paintings of monk painter boeungdang munseong
115 p. : 천연색삽화, 도표 ; 26 cm
지도교수: 박은경
부록: 1. 보응당 문성 연보, 2. 보응당 문성 불화의 주제별·연대별 분류, 3. 현존하는 보응당 문성 불화의 주제별·연대별 분류 등
참고문헌: p. 87-92
I804:21008-200000282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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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보응당 문성(普應堂 文性, 1867~1954)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불화승이다. 문성은 갑사에서 출가하였고, 이후 마곡사에 주석하던 금호당 약효(錦湖堂 若效, 미상~1928)의 문하...
보응당 문성(普應堂 文性, 1867~1954)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불화승이다. 문성은 갑사에서 출가하였고, 이후 마곡사에 주석하던 금호당 약효(錦湖堂 若效, 미상~1928)의 문하에서 불화를 배웠다. 그는 60여년의 활동기간동안 130점 이상의 불화를 제작하였다. 행적을 통해 충청도뿐만 아니라, 서울․경기도․전라도․경상도 등에서 활발한 작화 활동을 하였으며, 평안도 지역에서도 그의 행적이 확인된다. 그의 행적은「상수정혜대흥불미보응당문성대불모비(常脩定慧大興佛美普應堂文性大佛母碑)」와 문헌자료, 화기 등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성은 불화 조성에 조선후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롭게 유입된 도상과 화풍을 불화에 시도하였다. 도상적 측면에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화보의 도상을 응용하여 변화를 모색하였다. 그리고 당시 복식과 시대생활이 그의 불화에 반영되었으며, 길상적 의미나 도교적 의미가 담긴 새로운 모티브도 표현하였다.
화풍적 측면에서 문성은 새롭게 유입된 서양화법을 받아들여 능숙하게 사용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화에 음영법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존상의 안면부나 육신부, 의습선 등에서 확인된다. 또한 시기별로 불보살의 안면부와 두광 표현에 단계별 변화가 있음도 알 수 있다. 게다가 문성의 불화를 통해 화면을 재구성하는 편집 능력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문성은 약효의 제자로서 본인 또한 제자를 양성하며 계룡산화파의 기반을 다지며 맥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형성된 기반을 바탕으로 계룡산화파는 근대기 불화소(佛畵所)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화맥이 이어지고 있다. 문성은 오랜 기간 활동하며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작화 활동을 하였다. 특히, 앞선 시기의 화승이 구사하였던 도상과 화풍을 단순히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화풍으로 개척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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