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시기 경상북도의 첫 번째, 전국에서 11번째 사립 고등보통학교인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 운동과 김천 지역 내 주요 세력의 흐름을 고찰하고자 함이다. 3.1운동을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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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19
학위논문(석사)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대학원 , 사회과교육학과역사교육전공 , 2019. 8
2019
한국어
907 판사항(22)
충청북도
iv, 61 p; 26 cm
한국교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 이용기
참고문헌 : p.p.54-58
I804:43012-000000037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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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시기 경상북도의 첫 번째, 전국에서 11번째 사립 고등보통학교인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 운동과 김천 지역 내 주요 세력의 흐름을 고찰하고자 함이다.
3.1운동을 계기로 1920년대 전국에는 많은 청년회가 발생하였다. 그런 대세 속에 김천에도 1921년 8월 금릉청년회가 조직되었다. 전국적인 청년회의 전개 상황은 주로 비슷한 흐름 속에서 흘러갔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일반화하여 금릉청년회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김천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김천 사회는 1920년대 중반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색채가 강해졌고, 이후 보수적 성향의 김천 지역 유지들과 개혁을 주도하려는 사회주의 계열이 이념적으로 대립하며 맞부딪치게 되었다.
고덕환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유지들은 금릉청년회의 창립을 이끌었다. 청년회는 주로 상공인, 지식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면협의원, 군 서기, 도평의원 등의 공직에 몸담으며 관변적인 성격을 띠었다. 반면, 대립하는 사회주의 계열은 주로 타지에서 김천으로 유입되어 황태성을 중심으로 각종 사회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사회주의 계열 활동이 왕성한 가운데 지역 유지들은 김천고등보통학교 기성회를 조직하여 학교 설립에 나서기 시작했다. 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려는 이유는 실력양성운동의 배경 위에 여러 이해관계가 복합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해관계는 지역사회의 질서 변화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었다.
보수적인 지역 유지들과 급진적 사회주의 계열은 대립과 갈등 속에서 때로는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협력의 대표적인 예는 금릉학원 유지와 김천고등보통학교 설립에 관한 교육 사업이었다. 김천고보 기성회는 여러 방법으로 고보 설립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갔고, 1930년 송설당을 끌어들여 학교 설립에 최종적인 목표를 이루고자 하였다.
전국적으로 고등보통학교 설립 운동이 일어났지만, 내부 갈등과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많은 지역들이 실패하게 된다. 또한 기존의 인문고보 설립의 목적을 철회하고 일제의 실업학교나 농림학교 종용에 넘어 간 경우도 많았다. 김천지역은 다른 지역만큼이나 대립이 심했던 곳이었고, 일제의 인가 불허 방침 속에서도 끝내 인문고등보통학교를 완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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