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전엽 가야 사회에 횡혈식석실이 등장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대부분은 당시 묘제와 장제를 주관할 수 있는 최고수장층의 주도로 이루어졌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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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경북대학교 대학원, 2019
2019
한국어
930.1 판사항(23)
대구
ⅸ, 264 p. : 삽화 ; 26 cm
지도교수: 박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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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804:22001-00000009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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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전엽 가야 사회에 횡혈식석실이 등장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대부분은 당시 묘제와 장제를 주관할 수 있는 최고수장층의 주도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수혈식석곽이라는 완전밀폐 개념의 묘제를 사용하였던 가야 사회에 횡혈식석실이라는 개폐가 가능한 묘제가 도입되면서 실제로 추가장까지 이루어졌다는 것은 비교적 신속하게 가야 사회에서 새로운 묘⋅장제가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수많은 묘제가 사용되었지만, 결국 최고지배층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횡혈계 묘제로 볼 수 있다. 일찍부터 횡혈식석실을 선택한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적석목곽묘 전통을 긴 시간동안 유지하면서 대형 고분을 축조하였던 신라 왕족 역시 빠르면 6세기 중엽부터 횡혈식석실을 자신들의 묘제로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횡혈식석실을 고유한 형식으로 발전시켜 계급간의 공유, 지방지배나 복속지역을 통제하는 등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백제 사비기 횡혈식석실이 대표적인데, 신라는 보급형의 방형 횡혈식석실을 진출하는 지역마다 확산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야 횡혈식석실은 지금까지 단순 교류의 산물이거나 주변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대가야와 소가야는 권역 내 공통된 구조의 횡혈식석실을 공유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대가야는 실제로 횡혈식석실을 통해 지역사회를 재편하거나 권역 내 거점지역에 배치시키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여러 차례 시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소가야는 전통적인 매장관념을 고수한 상태에서 고유의 횡혈식석실을 축조했다는 점에서 역시 단순히 묘제만을 수용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가야지역에 존재하는 횡혈식석실을 통시적으로 관찰하면서 가야 사회의 발전단계 등 유의미한 해석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연구의 일관된 논점은 가야 횡혈식석실도 단순 교류의 흔적이 아닌 최고수장층의 목적에 의해 수용되었고, 비록 기초적인 단계에 그치게 되었지만 묘제를 통한 정치적 행위까지 있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특히, 국가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기울였던 대가야 최고수장층은 당시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묘⋅장제의 흐름에 편승하려 하였으나 결국 멸망을 극복하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fter the stone chamber tombs with horizontal entrance emerged in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in Gaya societies, a number of changes followed. Most of the changes are assumed to be led by the highest-ranking leaders who could oversee burial type...
After the stone chamber tombs with horizontal entrance emerged in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in Gaya societies, a number of changes followed. Most of the changes are assumed to be led by the highest-ranking leaders who could oversee burial types and funeral customs. In Gaya societies where stone-lined tombs, completely sealed tombs, had been used for burial, the introduction of stone chamber tombs with the door open and shut brought about the actual practice of additional burials; this implies that the novel concept of burial had quite quickly settled down in Gaya societies.
It is presumed that even though numerous burial types had been used in ancient East Asian societies, the ultimate tomb type chosen by the highest-ranking classes in Gaya was the stone chamber tomb. Unlike Goguryeo and Baekje, which had adopted the stone chamber tomb early on, Shilla’s royal families had built large ancient tombs while sustaining their tradition of wooden chamber tombs with stone mound for a long time. They, however, also came to adopt the stone chamber tombs from the second half of the 6th century at the latest. Furthermore, they developed the stone chamber tomb into a distinctive type of their own in order to utilize it for political purposes such as inter-class sharing, rule over provinces, and control over subjugated regions. The leading examples for such case are the stone chamber tombs used in the Sabi period of Baekje. Shilla had a similarity in that it spread some entry-level of stone chamber tombs across the areas where its control reached.
Stone chamber tombs in Gaya have thus far been recognized as an outcome of simple exchanges or a result of influences from surrounding areas. This study, however, found that Dae-gaya and So-gaya commonly had stone chamber tombs with the same structure in their territories. Dae-gaya was believed to have attempted several times the use of stone chamber tombs for political purposes including reorganizing regional societies and placing them in strategic areas within its territory. So-gaya did not just adopt a type of burial in that it built its own type of stone chamber tombs while retaining its traditional burial customs.
This study aimed to draw a meaningful interpretation of changes and developments in Gaya societies by diachronically studying the stone chamber tombs found throughout the territories of Gaya. The argument consistent through this study is that the stone chamber tombs in the Gaya period are not the outcome of simple exchanges, but were adopted to carry out the highest-ranking leaders’ special purposes; as for this, the author sought to find out political purposes behind the choice of burial types, even though they were at a basic stage. What is interesting is that Dae-gaya’s highest-ranking leaders, who in various ways to bring their tribal city into a state, tried to capitalize on the trends of the universal burial types and funeral customs throughout East Asia, but ended up seeing its falling.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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