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양의 궁궐에는 후원(後苑)과 더불어 함춘원(含春苑), 상림원(上林苑), 방림원(芳林苑)으로 불린 원유(苑囿)가 실존했다. 이상의 사례들은 각각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 소속의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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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 韓國傳統文化大學校, 2019
학위논문(박사) -- 韓國傳統文化大學校 文化遺産專門大學院 , 文化財修理技術學科 建築·造景·都市專攻 , 2019
2019
한국어
600.27 판사항(6)
702.88 판사항(23)
충청남도
ix, 182 p. : 삽화(일부천연색), 초상 ; 26 cm
지도교수: 金永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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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양의 궁궐에는 후원(後苑)과 더불어 함춘원(含春苑), 상림원(上林苑), 방림원(芳林苑)으로 불린 원유(苑囿)가 실존했다. 이상의 사례들은 각각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 소속의 궁원(宮苑)으로 운영되었으며, 모두 궁성(宮城) 밖에 소재했기 때문에 궁궐 외원(外苑)으로 통칭할 수 있다. 그동안 궁궐 조경의 정수로 평가되던 후원에 대해서는 양적・질적으로 괄목할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다. 반면 궁궐 외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으며, 오늘날 그 실체도 남아 있지 않다. 본 연구는 궁궐 외원의 실상을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조영상의 특징과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궁궐 외원이 현존하지 않는 배경과 요인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에도 중점을 두었다. 나아가 오늘날 궁궐 외원의 장소성 회복이 지니는 의미와 기대효과를 제언했다.
궁궐 외원은 성종 연간 조성된 창경궁 함춘원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창경궁 함춘원의 공간 범위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점차 축소되었지만, 궁궐 외원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동안 운영되었다. 방림원은 광해군 연간의 경덕궁(慶德宮) 창건 과정에서 조성되었다. 고종 연간에 경덕궁의 후신인 경희궁이 훼철되면서 방림원은 러시아공사관 부지로 매각되었다. 창덕궁 상림원은 효종 연간에 만수전(萬壽殿) 건립공사의 일환으로 조성되었으며, 서원(西苑)으로도 불렸다. 헌종 연간의 궁궐지(宮闕志)는 동궐(東闕)과 서궐(西闕)의 외원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고종 연간 중건된 경복궁에도 함춘원으로 불린 외원이 존재했다. 경복궁 함춘원은 장원서(掌苑署) 혁파 이후 친일파 소유로 전환되면서 궁궐 외원 가운데 가장 짧은 시간동안 운영되었다. 궁궐 외원은 한양의 실질적 법궁(法宮)과 이궁(離宮)마다 존재했지만, 조성 시점을 감안하면 일정한 규범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따라 선택적으로 도입된 시설이었다.
조선시대 궁궐의 금원(禁苑)은 내원(內苑)과 외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내원은 보통 후원을 가리키며, 국왕을 비롯한 왕실의 전유물이었다. 반면 외원은 왕실의 직접적인 이용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원의 위상(位相)과 견주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외원 역시 금원의 성격을 뚜렷하게 가졌으며, 민간의 출입과 이용이 철저하게 제한되었다. 금원으로 운영된 외원은 궁궐 주변부 산지의 보존과 관리에 중점을 두었다. 실제로 외원에는 민간을 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설만이 도입되었으며, 왕실의 위락(慰樂)과 정무(政務)를 위한 시설은 일체 마련되지 않았다. 외원은 산줄기에 대한 민간의 접근과 이용을 규제하고, 궐내에 대한 조망을 제한하여 왕실의 사생활을 보장했다. 또한 외원은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요주의 보호가 필요했던 산줄기에 입지했기 때문에 민간의 무단개발 행위도 방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금원으로서 외원은 궁궐 주변부 산지에 국지적으로 설정된 제한구역 또는 완충구역과 같은 시설이었다.
궁궐 외원에는 울창한 숲의 녹지가 조성되었다. 함춘(含春), 상림(上林), 방림(芳林)과 같은 외원의 명명(命名)도 직・간접적으로 녹지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외원의 녹지는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비보(裨補)와 지맥(地脈) 관리에 목적을 두었다. 방림원의 녹지는 경희궁의 입지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비보림(裨補林) 형태로 조성되었다. 창경궁 함춘원에서도 산줄기의 지맥 배양을 목적으로 보식(補植) 활동이 이루어졌다. 궁궐 외원의 녹지는 소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종으로 이루어졌다. 수종의 다양성은 궁궐 외원의 녹지가 자연림과 같은 입체적 식생구조를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녹지를 보전하기 위한 국가 주도의 시책도 다양하게 강구되었다. 특히 국법을 통해 외원에 생육하는 수목의 무단벌채를 제재했으며, 금산(禁山)이나 궁궐에 준하는 강도 높은 형량이 적용되었다. 궁궐 외원의 수목을 관용 재목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녹지 보호의 기조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시행되었다.
궁궐 외원의 조영 가치도 금원과 녹지로서 두드러진다. 궁궐의 외원은 위상이나 비중면에서 내원과 비견되기 어렵지만, 금원의 이원적(二元的) 체계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금원의 이원화는 궁성 밖으로 외원이 조성되면서 나타난 이형적(異形的) 현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외원은 궁궐 소속의 독립적 시설보다 금원의 이원적 체계상에서 보다 특수한 면모와 가치를 드러낸다. 녹지는 궁궐 외원의 외형과 부지환경 그 자체였다. 특히 외원은 궁궐 소속의 시설이지만, 지리적 여건상 한양의 도시공간과 환경을 구성하는 인공녹지였다. 궁궐 외원의 녹지는 산줄기를 토대로 녹지축을 형성했으며, 주변산림과도 자연스럽게 연계되었다. 또한 궁궐 외원의 녹지는 궁성 주변공간을 시각적으로 위요(圍繞)하거나 한양 도심의 주요 조망경관으로 인식되었으며, 무엇보다 산지 중심의 전통적 도시경관을 구성하는 요소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조선 당대에 금원과 녹지로 관리된 외원은 근대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경희궁 방림원의 소멸은 조선 조정에 의한 부지 매각이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여타의 궁궐 외원은 통감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을 밟았다. 창경궁 함춘원은 대한의원(大韓醫院)을 비롯한 의료시설의 건축부지와 위락(慰樂) 장소로 전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서울대학교병원의 부속시설들이 건립되었다. 황실 소유의 창덕궁 상림원은 국유임야(國有林野)로 귀속된 이후 민간의 대부지(貸付地)로 전락했으며, 이후 도시개발 과정에서 택지(宅地)로 변모했다. 경복궁 함춘원은 소유권 분쟁을 거친 이후 친일파 소유의 사저(私邸) 공간으로 이용되었고, 종국에는 교지(校地)로 편입되어 교사(校舍) 신축 부지로 개발되었다.
근・현대기에 전개된 토지이용상의 변화에 따라 오늘날 궁궐 외원의 장소성 회복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도시구조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서울시는 ‘2천년 역사도시’와 ‘더불어 사는 숲의 도시’를 표방하고 있으며, 궁궐 외원의 장소성 회복은 궁궐과 도시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첫째, 외원은 조선만의 독특한 금원 체계를 보여줄 수 있는 사례이며, 나아가 전각(殿閣) 중심의 복원・정비를 탈피하고, 궁궐 공간의 완전성을 갖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외원을 통한 녹지 조성은 서울시의 도시 녹지 확충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단순히 양적 증대를 위한 녹지 조성이 아니라 역사성과 장소성에 기반한 녹지 회복은 오늘날 서울시의 도시 녹지 확충 과정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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