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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辰倭亂 前後 국문시가의 太古 모티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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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本論文研究目的在於檢討17世紀國文詩歌中因其自身所具有的辨別性內涵而備受矚目的太古Motif的出現動因及其文學意義。為此本稿以朝鮮初期成型的太古意識對16世紀太古Motif的影響為基礎,在歷經壬辰倭亂、光海亂政以及仁祖反正之後所顯現的華議論世界觀和末世觀的影響之下,推敲太古Motif的變化⦁擴散之樣象。
    首先,本稿所據論點從將太古概念作為儒家理想世界的一般意義中脫離,以當代具體的背景脈絡為前提進行考察。基於此,文中將堯舜、羲皇,及與羲皇相結合的桃花源Motif進行區分,以考察其原型內涵和隨著時代變化其所投射的觀念性涵義。考察結果,堯舜Motif在先秦時期便已成型歷經唐宋之後,在儒家修治道德準則下成為和諧社會、華夷秩序的理想社會、陰陽五行各據法理其秩序純粹而清明的時代典型。羲皇Motif則是陶淵明在詩文中結合儒家理解與莊子的太古觀所形成,陶之觀點對羲皇Motif產生了至關重要的影響。羲皇與桃花源Motif相結合則是歷經宋元,與當時受異民族侵襲、佔領之苦而極度不安的社會現實相結合,進一步揭示受此影響下將其視為避難之所文化根源的當代文人慾望的投影。朝鮮前期士大夫對陶淵明的憧憬則是廣泛且持續的,在將性理學作為社會統治規範的過程中,與唐宋道統論的受容同時進行。且在確立文明史的自主傳統目的主導之下,整理太古史的過程中,進而將太古意識使之成立。
    壬辰倭亂之前,太古Motif以潭陽為中心,反應某種地域文化特性。如果說通過堯舜Motif展現的是禮教傳統所具現的社會象,那麼通過羲皇Motif所展現的則是自然調和的秩序和豐饒的百姓生活。另外,如果說以政治現實的問題視線為前提,為標榜隱居生活進而與桃花源Motif相結合的話,那麼通過許由、巢父Motif所展現的則是政治現實和隔絕的生活的意圖。壬辰倭亂之前的太古Motif主要特征在關注個別Motif辨別性內涵的過程中將話者所處社會或者隱居空間化作太平盛世的一種修辭而存在。
    壬辰倭亂則是16世紀太古Motif意義變化的主要歷史性事件。在華議論世界觀的視角下,本次戰亂對太古意識的變化中賦予了華夷秩序的內涵,刻畫出自朝鮮前期以來太古意識的辨別性內涵。根據創作主體所處的現實條件,在避難地、終戰及戰後收拾期的過程中所展現的太古Motif作為華夷秩序具體體現的社會象,反映了話者對太古的憧憬。
    同時,壬辰倭亂之前個別出現的堯舜和羲皇,以及羲皇和桃花源結合的Motif在作品中所表露的華夷秩序問題意識的共出現象則是又一主要特征。
    壬辰倭亂中所浮現的華夷秩序問題意識在戰亂之後依然持續。尤其在診斷戰亂原因的過程中,以朱熹的氣數論為基礎的宇宙論思維體系開始受到矚目,而這一現象則值得本文關注。所謂氣數論則是將顯示問題放在太古視角中理解,認為是太古之後氣數野薄的結果,是一種年代記方式的認知邏輯,是命運論世界觀的一種思維體系。為此,朝鮮士大夫在壬辰倭亂之後將戰亂的發生和結束歸結為太古之後氣數變化的結果,其代表性認識則屬末世觀。
    壬辰倭亂之後太古Motif作品的創作主體大致通過末世觀對現實問題進行診脈。‘太古:理想, 現實:末世’都沒了二元構造在上層官僚文人和下層鄉村士族中持續共有,這種現象則是在光海君政權的政治力學關係中進行關聯的結果。在16世紀相比較下,這是17世紀所特有的時代象。太古Motif所反映的末世問題視線就如先行研究中所關注的那樣,現實中並不能視作太古秩序的表現方式開始出現,這是太古Motif的一種反證。
    應當注意,與末世觀含義相反,通過太古Motif所展現的作品主體意識並非都是具有否定意味的。就算現實是末世,只要遵循儒家理念秩序,中興之運依然可期,這是運數論世界觀和人事論理解的並行結果。但是,如此主張在光海君昏定,嚴密來說在廢母殺弟事件之後急劇轉變。當代士大夫認為要克服末世必須要強調君主的道德性,然而光海君犯下的廢母殺弟事件則將王家的道德徹底喪失。時人認為壬辰倭亂的發生是因為當時朝鮮社會未能嚴格遵守儒家道德規範所致,為此認為國家即使滅亡儒家秩序不能亡,可見廢母殺弟對當時士大夫造成的衝擊之大。因此以廢母殺弟時間為背景,太古Motif的登場則是對政治現實、朝鮮社會末世狀況的悲觀視線的反應。從郭期壽保持對儒家理念生活的樂觀到申欽完全消除,是對廢母殺弟事件影響的反證。
    以末世觀為基礎的太古Motif在鄉村士族的集團結構中也發生著影響。朴善長以奉化地區書院的設立和運營為背景所創作的<五倫歌>中認為文風淪喪、末世已至。其提出的對應方案是嚴守從太古流傳下來的五倫法則,這種態度反映出17世紀末世觀已經超出個人層面在社會整體蔓延的問題。
    朝鮮社會在仁祖反正之後從光海君的昏定危機中解放出來,仁祖反正的含義非常多,尤其在華議論世界觀的視角中對當時社會問題進行診脈的情況值得矚目。仁祖反正對當時社會所造成的影響通過金光煜的<栗里遺曲>也能得到確認。因此,仁祖反正時間是太古Motif出現的一大動因。另外,在朴仁老的<嶺南歌>中也有切實的展現,作品中刻畫了夷狄入侵造成社會動亂狀況,以及通過太古名臣和堯舜秩序恢復的願望。
    然而,與仁祖反正的期望向左,末世觀的構圖依然在當代士大夫文人作品中持續。與反正的肯定意義無關,末世觀本身的影響力在當代依然難以消除,其原因是當代人認為仁祖反正並不是變革的完成而是改變的開始。
    同時,太古Motif與窮困、迂闊、放逐等17世紀具有特殊內涵的詞語相結合,這一現象亦是值得關注。眾所周知,窮困和迂闊、放逐意識脫離16世紀的基本視線,是17世紀所特有的主題。鄭勳的<迂闊歌>和曺友仁的<梅湖別曲>中,作者對當代的末世認識是一貫的,這是非常有意思的。如此表現樣象包含著17世紀對太古Motif辨別性內涵的理解,而且在解構詩歌史方面是有效的一種讀解手段。
    最後,以壬辰倭亂為中心檢討的太古Motif在診脈丙子胡亂之後的構圖方面作為一種方法論非常有意義。眾所周知,丙子胡亂是當時明朝被夷狄清朝所滅亡,對朝鮮也是一大屈辱性事件。這一事件被認為是朝鮮社會未能嚴守儒家修治道德準則所帶來的後果,向蠻夷屈服的絕望感對當代人造成了不可磨滅的印跡。當時將仁祖批判為汚君辭職罷官的行為被認為是高蹈之態度,在清朝的外教壓迫下對小中華意識乃至朝鮮中華主義的標榜,以及萬東廟大報壇的設立,可一窺丙子胡亂在朝鮮社會中造成的震動。
    因此,在擊退倭寇入侵,結束壬辰倭亂之後,華夷秩序的問題意識開始抬頭,在丙子胡亂之後達到高潮也是不難理解的。在這個基礎上,太古Motif作為丙子胡亂以後理解17世紀國文詩歌和時代象的重要方法論,具有重要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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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論文研究目的在於檢討17世紀國文詩歌中因其自身所具有的辨別性內涵而備受矚目的太古Motif的出現動因及其文學意義。為此本稿以朝鮮初期成型的太古意識對16世紀太古Motif的影響為基礎,...

    本論文研究目的在於檢討17世紀國文詩歌中因其自身所具有的辨別性內涵而備受矚目的太古Motif的出現動因及其文學意義。為此本稿以朝鮮初期成型的太古意識對16世紀太古Motif的影響為基礎,在歷經壬辰倭亂、光海亂政以及仁祖反正之後所顯現的華議論世界觀和末世觀的影響之下,推敲太古Motif的變化⦁擴散之樣象。
    首先,本稿所據論點從將太古概念作為儒家理想世界的一般意義中脫離,以當代具體的背景脈絡為前提進行考察。基於此,文中將堯舜、羲皇,及與羲皇相結合的桃花源Motif進行區分,以考察其原型內涵和隨著時代變化其所投射的觀念性涵義。考察結果,堯舜Motif在先秦時期便已成型歷經唐宋之後,在儒家修治道德準則下成為和諧社會、華夷秩序的理想社會、陰陽五行各據法理其秩序純粹而清明的時代典型。羲皇Motif則是陶淵明在詩文中結合儒家理解與莊子的太古觀所形成,陶之觀點對羲皇Motif產生了至關重要的影響。羲皇與桃花源Motif相結合則是歷經宋元,與當時受異民族侵襲、佔領之苦而極度不安的社會現實相結合,進一步揭示受此影響下將其視為避難之所文化根源的當代文人慾望的投影。朝鮮前期士大夫對陶淵明的憧憬則是廣泛且持續的,在將性理學作為社會統治規範的過程中,與唐宋道統論的受容同時進行。且在確立文明史的自主傳統目的主導之下,整理太古史的過程中,進而將太古意識使之成立。
    壬辰倭亂之前,太古Motif以潭陽為中心,反應某種地域文化特性。如果說通過堯舜Motif展現的是禮教傳統所具現的社會象,那麼通過羲皇Motif所展現的則是自然調和的秩序和豐饒的百姓生活。另外,如果說以政治現實的問題視線為前提,為標榜隱居生活進而與桃花源Motif相結合的話,那麼通過許由、巢父Motif所展現的則是政治現實和隔絕的生活的意圖。壬辰倭亂之前的太古Motif主要特征在關注個別Motif辨別性內涵的過程中將話者所處社會或者隱居空間化作太平盛世的一種修辭而存在。
    壬辰倭亂則是16世紀太古Motif意義變化的主要歷史性事件。在華議論世界觀的視角下,本次戰亂對太古意識的變化中賦予了華夷秩序的內涵,刻畫出自朝鮮前期以來太古意識的辨別性內涵。根據創作主體所處的現實條件,在避難地、終戰及戰後收拾期的過程中所展現的太古Motif作為華夷秩序具體體現的社會象,反映了話者對太古的憧憬。
    同時,壬辰倭亂之前個別出現的堯舜和羲皇,以及羲皇和桃花源結合的Motif在作品中所表露的華夷秩序問題意識的共出現象則是又一主要特征。
    壬辰倭亂中所浮現的華夷秩序問題意識在戰亂之後依然持續。尤其在診斷戰亂原因的過程中,以朱熹的氣數論為基礎的宇宙論思維體系開始受到矚目,而這一現象則值得本文關注。所謂氣數論則是將顯示問題放在太古視角中理解,認為是太古之後氣數野薄的結果,是一種年代記方式的認知邏輯,是命運論世界觀的一種思維體系。為此,朝鮮士大夫在壬辰倭亂之後將戰亂的發生和結束歸結為太古之後氣數變化的結果,其代表性認識則屬末世觀。
    壬辰倭亂之後太古Motif作品的創作主體大致通過末世觀對現實問題進行診脈。‘太古:理想, 現實:末世’都沒了二元構造在上層官僚文人和下層鄉村士族中持續共有,這種現象則是在光海君政權的政治力學關係中進行關聯的結果。在16世紀相比較下,這是17世紀所特有的時代象。太古Motif所反映的末世問題視線就如先行研究中所關注的那樣,現實中並不能視作太古秩序的表現方式開始出現,這是太古Motif的一種反證。
    應當注意,與末世觀含義相反,通過太古Motif所展現的作品主體意識並非都是具有否定意味的。就算現實是末世,只要遵循儒家理念秩序,中興之運依然可期,這是運數論世界觀和人事論理解的並行結果。但是,如此主張在光海君昏定,嚴密來說在廢母殺弟事件之後急劇轉變。當代士大夫認為要克服末世必須要強調君主的道德性,然而光海君犯下的廢母殺弟事件則將王家的道德徹底喪失。時人認為壬辰倭亂的發生是因為當時朝鮮社會未能嚴格遵守儒家道德規範所致,為此認為國家即使滅亡儒家秩序不能亡,可見廢母殺弟對當時士大夫造成的衝擊之大。因此以廢母殺弟時間為背景,太古Motif的登場則是對政治現實、朝鮮社會末世狀況的悲觀視線的反應。從郭期壽保持對儒家理念生活的樂觀到申欽完全消除,是對廢母殺弟事件影響的反證。
    以末世觀為基礎的太古Motif在鄉村士族的集團結構中也發生著影響。朴善長以奉化地區書院的設立和運營為背景所創作的<五倫歌>中認為文風淪喪、末世已至。其提出的對應方案是嚴守從太古流傳下來的五倫法則,這種態度反映出17世紀末世觀已經超出個人層面在社會整體蔓延的問題。
    朝鮮社會在仁祖反正之後從光海君的昏定危機中解放出來,仁祖反正的含義非常多,尤其在華議論世界觀的視角中對當時社會問題進行診脈的情況值得矚目。仁祖反正對當時社會所造成的影響通過金光煜的<栗里遺曲>也能得到確認。因此,仁祖反正時間是太古Motif出現的一大動因。另外,在朴仁老的<嶺南歌>中也有切實的展現,作品中刻畫了夷狄入侵造成社會動亂狀況,以及通過太古名臣和堯舜秩序恢復的願望。
    然而,與仁祖反正的期望向左,末世觀的構圖依然在當代士大夫文人作品中持續。與反正的肯定意義無關,末世觀本身的影響力在當代依然難以消除,其原因是當代人認為仁祖反正並不是變革的完成而是改變的開始。
    同時,太古Motif與窮困、迂闊、放逐等17世紀具有特殊內涵的詞語相結合,這一現象亦是值得關注。眾所周知,窮困和迂闊、放逐意識脫離16世紀的基本視線,是17世紀所特有的主題。鄭勳的<迂闊歌>和曺友仁的<梅湖別曲>中,作者對當代的末世認識是一貫的,這是非常有意思的。如此表現樣象包含著17世紀對太古Motif辨別性內涵的理解,而且在解構詩歌史方面是有效的一種讀解手段。
    最後,以壬辰倭亂為中心檢討的太古Motif在診脈丙子胡亂之後的構圖方面作為一種方法論非常有意義。眾所周知,丙子胡亂是當時明朝被夷狄清朝所滅亡,對朝鮮也是一大屈辱性事件。這一事件被認為是朝鮮社會未能嚴守儒家修治道德準則所帶來的後果,向蠻夷屈服的絕望感對當代人造成了不可磨滅的印跡。當時將仁祖批判為汚君辭職罷官的行為被認為是高蹈之態度,在清朝的外教壓迫下對小中華意識乃至朝鮮中華主義的標榜,以及萬東廟大報壇的設立,可一窺丙子胡亂在朝鮮社會中造成的震動。
    因此,在擊退倭寇入侵,結束壬辰倭亂之後,華夷秩序的問題意識開始抬頭,在丙子胡亂之後達到高潮也是不難理解的。在這個基礎上,太古Motif作為丙子胡亂以後理解17世紀國文詩歌和時代象的重要方法論,具有重要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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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의 목적은 17세기 국문시가의 변별적 자질로 주목 받는 太古 모티프(Motif)의 출현 동인과 그 의미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 전기에 정립된 태고의식이 16세기 태고 모티프에 미친 영향을 토대로, 임진왜란을 거쳐 광해군 혼정과 인조반정을 거치며 대두된 화이론적 세계관과 말세관의 영향 아래 태고 모티프가 변화·확산된 양상을 추적하였다.
    먼저 본고의 주된 논점인 태고의 개념을 유가의 이상 세계라는 다소 막연한 이해에서 벗어나 당대적 맥락을 전제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堯舜과 羲皇, 그리고 희황과 결합한 桃花源 모티프의 3가지 층위를 구분하여 각각의 原型적 자질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投影된 觀念性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요순 모티프의 경우 先秦 시기에 형성되어 唐宋을 거치며 유가의 전인격적 도덕 준칙에 의해 조화를 이룬 사회이자 華夷 질서가 성립된 이상 사회로 인식되었으며, 理法에 의해 陰陽五行의 질서가 純粹 淸明한 시대를 의미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희황 모티프의 경우는 유가의 이해와 더불어 󰡔장자󰡕의 太古觀이 반영된 陶淵明의 시문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하였고, 희황과 도화원 모티프가 결합한 경우는 宋元을 거치며 이민족의 침입 하에 극도로 불안해진 사회상과 그 영향 아래 當代 문인이 피난지에서 문화적 근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이 투사된 결과임을 살펴보았다.
    조선 전기 사대부는 도연명에 대한 광범위한 동경과 더불어 성리학을 사회의 통치 규범으로 정립하는 과정에서 당송 시대의 道統論을 수용하는 한편, 문명사의 자주적 전통을 수립하기 위한 목적 하에 太古史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태고의식을 성립하였다.
    임진왜란 이전 태고 모티프는 潭陽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지역 문학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요순 모티프를 통해 禮敎의 전통이 구현된 사회상으로 제언되는가 하면, 희황 모티프를 통해 조화로운 자연의 질서와 풍요로운 백성의 삶을 형상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치 현실의 문제적 시선을 전제로 은거의 삶을 표상하기 위해 도화원 모티프와 결합되는가 하면, 許由·巢父 모티프를 통해 정치 현실과 격절된 삶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전 태고 모티프의 주요한 특징은 개별 모티프의 변별적 자질을 주목하는 과정에서 화자가 처한 사회 또는 은거 공간을 태평성대로 修辭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은 16세기 태고 모티프의 의미를 변화시킨 주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華夷論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診斷된 이 전란은 태고 모티프에 조선 전기 태고의식의 주요한 자질인 온전한 화이 질서가 부여된 시대의 의미를 浮刻시켰다. 창작 주체가 처한 현실적 조건에 따라 피난지, 終戰, 그리고 종전 이후 전란의 여파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태고 모티프는 화이 질서가 구현된 사회상으로서 태고를 동경하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구현되었다.
    이와 더불어 임진왜란 이전에 개별적으로 출현하였던 요순과 희황, 그리고 희황과 결합한 도화원 모티프가 작품에 화이 질서의 문제의식을 전제로 共出하게 된 양상 또한 주요한 특징이다.
    임진왜란에 의해 부각된 화이 질서의 문제의식은 전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전란의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주희의 氣數論에 기반을 둔 宇宙論적 사유 체계가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양상이다. 기수론은 현실의 문제적 상황을 태고 이후 기가 점차 野薄해진 결과로 이해하는 일종의 年代記적 인식 논리이자 운명론적 세계관이 반영된 우주론적 사유 체계이다. 따라서 조선 사대부는 임진왜란 이후 전란의 발발과 쇠락한 풍속이 나타난 정황들을 태고 이후 기가 야박해진 결과로 진단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식 논리가 바로 末世觀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태고 모티프가 확인되는 작품의 창작 주체는 대개 말세관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였다. ‘太古:理想, 現實:末世’의 二元化된 구도가 상층 관료 문인과 하층 향촌 사족 모두에게서 지속적으로 출현하였으며, 이는 광해군 정권에 대한 정치적 역학 관계의 문제와는 별개의 층위에 놓여 있었다. 16세기와는 변별적인 17세기만의 시대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경향이다. 태고 모티프 또한 말세의 문제적 시선을 반영하고 있었는바, 선행 연구에서도 주목한 것처럼 현실에 태고의 질서를 조금도 볼 수 없다는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이를 反證한다.
    주의할 점은 말세관의 含意와는 달리, 태고 모티프를 통해 구현된 작품의 주제의식이 모두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부분이다. 말세의 현실일지라도 유가의 이념적 질서를 지킨다면, 中興의 운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순환론적 세계관과 人事論의 이해가 竝行된 결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해는 광해군 昏定, 보다 엄밀히 말하여 廢母殺弟 사건을 통해 급격히 전환된다. 당대 사대부는 조선이 처한 말세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 군주의 도덕성을 주목하였다. 그런데 광해군에 의해 자행된 폐모살제 사건은 王家의 도덕성이 극도로 타락했음을 의미하였다. 임진왜란의 발발이 조선 사회가 유가의 도덕 준칙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결과로 이해하였으며, 때론 나라가 망하더라고 유가의 질서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던 당대의 사대부에게 폐모살제 사건이 가져다준 충격은 대단하였다.
    따라서 폐모살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태고 모티프의 경우는 정치 현실을 비롯하여 조선 사회의 말세적 상황에 대한 비관적 시선이 반영되어 나타났다. 현실에 태고의 질서가 볼 수 없을지라도 유가의 이념적 삶을 지키며 흥겨워하던 郭期壽의 태도가 申欽의 시조에서 완전히 소거되어 버린 양상은 당시 폐모살제 사건이 지니는 영향력을 반증한다.
    또한 말세관에 기반을 둔 태고 모티프는 향촌 사족 사회라는 집단의 구도에서도 작용하고 있었다. 奉化 지역의 서원 건립과 운영 문제를 배경으로 향유된 朴善長의 <五倫歌>에서 文風이 쇠락한 말세의 세태를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서 태고시대부터 내려온 오륜의 법칙을 강조하는 태도는 17세기 말세관의 영향력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조선 사회는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 혼정이 일으킨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조반정의 함의는 다양하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화이론적 세계관의 구도로 당시의 문제를 진단하고 있었던 정황이다. 인조반정이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은 반정을 계기로 부친이 유배를 가게 된 상황일지라도, 이를 감격에 찬 어조로 읊조린 金光煜의 <栗里遺曲>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태고 모티프 또한 인조반정의 영향에 견인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적에 의해 쇠락한 현실 사회와 태고적 명신의 부임을 통해 요순의 질서를 회복하게 되었음을 노래한 朴仁老의 <嶺南歌>는 이러한 양상을 적절히 보여준다.
    그러나 인조반정의 전망과는 달리 말세관의 구도는 여전히 지속되었다. 국문시가의 양상과는 별개로 당대 사대부는 현실의 문제를 여전히 말세관의 구도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반정의 함의가 긍정적인 것과는 별개로, 그 자체가 말세의 영향력을 온전히 소거할 수는 없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를 통해 당대인이 인조반정을 변혁의 완성이 아니라 개선의 전망이 마련된 사건으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태고 모티프는 가난과 迂闊, 放逐의식 등과 같은 17세기의 변별적 자질들과 결합되어 나타났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 가난과 우활, 방축의식 등은 16세기의 전망에서 벗어난 17세기만의 독특한 주제들이다. 鄭勳의 <迂闊歌>와 曺友仁의 <梅湖別曲> 등을 통해 검토한 양상인바, 흥미로운 점은 이들 작가들이 당대를 일관되게 말세로 진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은 태고 모티프가 17세기의 변별적 자질들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고 있으며, 나아가 시가사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는 유효한 독법의 마련에 의의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끝으로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검토한 태고 모티프는 병자호란 이후의 구도를 진단하는 방법론으로서 유효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병자호란은 이적인 청에 의해 명이 멸망하고 조선 또한 굴욕적인 항복을 경험하게 된 사건이었다. 사회적 환란은 조선 사회가 유가의 전인격적 도덕 준칙을 지키지 못한 결과로 이해하였던 사대부에게 이적에 의해 굴복당한 현실이 가져다준 절망감을 대단하였을 것이다. 당시 인조를 더러운 임금(汚君)으로 비난하며 辭職을 하는 행위가 고답적인 행위로 평가 받았던 정황이나, 청의 외교적 압박 속에서도 小中華意識 내지는 朝鮮中華主義를 標榜하며 萬東廟와 大報壇을 건립하였던 사례들은 병자호란이 조선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이적의 침입을 극복한 임진왜란을 통해서도 화이 질서의 문제의식이 대두되었던 양상을 고려해 본다면, 화이 질서의 문제가 병자호란 이후에 더욱 고조되었을 점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이러한 점은 병자호란 이후 17세기 후반의 국문시가와 그 시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태고 모티프의 중요성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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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의 목적은 17세기 국문시가의 변별적 자질로 주목 받는 太古 모티프(Motif)의 출현 동인과 그 의미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 전기에 정립된 태고의식이 16세기 태고 모티프에 미...

    본고의 목적은 17세기 국문시가의 변별적 자질로 주목 받는 太古 모티프(Motif)의 출현 동인과 그 의미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선 전기에 정립된 태고의식이 16세기 태고 모티프에 미친 영향을 토대로, 임진왜란을 거쳐 광해군 혼정과 인조반정을 거치며 대두된 화이론적 세계관과 말세관의 영향 아래 태고 모티프가 변화·확산된 양상을 추적하였다.
    먼저 본고의 주된 논점인 태고의 개념을 유가의 이상 세계라는 다소 막연한 이해에서 벗어나 당대적 맥락을 전제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堯舜과 羲皇, 그리고 희황과 결합한 桃花源 모티프의 3가지 층위를 구분하여 각각의 原型적 자질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投影된 觀念性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요순 모티프의 경우 先秦 시기에 형성되어 唐宋을 거치며 유가의 전인격적 도덕 준칙에 의해 조화를 이룬 사회이자 華夷 질서가 성립된 이상 사회로 인식되었으며, 理法에 의해 陰陽五行의 질서가 純粹 淸明한 시대를 의미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희황 모티프의 경우는 유가의 이해와 더불어 󰡔장자󰡕의 太古觀이 반영된 陶淵明의 시문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하였고, 희황과 도화원 모티프가 결합한 경우는 宋元을 거치며 이민족의 침입 하에 극도로 불안해진 사회상과 그 영향 아래 當代 문인이 피난지에서 문화적 근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이 투사된 결과임을 살펴보았다.
    조선 전기 사대부는 도연명에 대한 광범위한 동경과 더불어 성리학을 사회의 통치 규범으로 정립하는 과정에서 당송 시대의 道統論을 수용하는 한편, 문명사의 자주적 전통을 수립하기 위한 목적 하에 太古史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태고의식을 성립하였다.
    임진왜란 이전 태고 모티프는 潭陽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지역 문학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요순 모티프를 통해 禮敎의 전통이 구현된 사회상으로 제언되는가 하면, 희황 모티프를 통해 조화로운 자연의 질서와 풍요로운 백성의 삶을 형상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치 현실의 문제적 시선을 전제로 은거의 삶을 표상하기 위해 도화원 모티프와 결합되는가 하면, 許由·巢父 모티프를 통해 정치 현실과 격절된 삶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전 태고 모티프의 주요한 특징은 개별 모티프의 변별적 자질을 주목하는 과정에서 화자가 처한 사회 또는 은거 공간을 태평성대로 修辭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은 16세기 태고 모티프의 의미를 변화시킨 주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華夷論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診斷된 이 전란은 태고 모티프에 조선 전기 태고의식의 주요한 자질인 온전한 화이 질서가 부여된 시대의 의미를 浮刻시켰다. 창작 주체가 처한 현실적 조건에 따라 피난지, 終戰, 그리고 종전 이후 전란의 여파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태고 모티프는 화이 질서가 구현된 사회상으로서 태고를 동경하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구현되었다.
    이와 더불어 임진왜란 이전에 개별적으로 출현하였던 요순과 희황, 그리고 희황과 결합한 도화원 모티프가 작품에 화이 질서의 문제의식을 전제로 共出하게 된 양상 또한 주요한 특징이다.
    임진왜란에 의해 부각된 화이 질서의 문제의식은 전란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전란의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주희의 氣數論에 기반을 둔 宇宙論적 사유 체계가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양상이다. 기수론은 현실의 문제적 상황을 태고 이후 기가 점차 野薄해진 결과로 이해하는 일종의 年代記적 인식 논리이자 운명론적 세계관이 반영된 우주론적 사유 체계이다. 따라서 조선 사대부는 임진왜란 이후 전란의 발발과 쇠락한 풍속이 나타난 정황들을 태고 이후 기가 야박해진 결과로 진단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식 논리가 바로 末世觀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태고 모티프가 확인되는 작품의 창작 주체는 대개 말세관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였다. ‘太古:理想, 現實:末世’의 二元化된 구도가 상층 관료 문인과 하층 향촌 사족 모두에게서 지속적으로 출현하였으며, 이는 광해군 정권에 대한 정치적 역학 관계의 문제와는 별개의 층위에 놓여 있었다. 16세기와는 변별적인 17세기만의 시대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경향이다. 태고 모티프 또한 말세의 문제적 시선을 반영하고 있었는바, 선행 연구에서도 주목한 것처럼 현실에 태고의 질서를 조금도 볼 수 없다는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이를 反證한다.
    주의할 점은 말세관의 含意와는 달리, 태고 모티프를 통해 구현된 작품의 주제의식이 모두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부분이다. 말세의 현실일지라도 유가의 이념적 질서를 지킨다면, 中興의 운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순환론적 세계관과 人事論의 이해가 竝行된 결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해는 광해군 昏定, 보다 엄밀히 말하여 廢母殺弟 사건을 통해 급격히 전환된다. 당대 사대부는 조선이 처한 말세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 군주의 도덕성을 주목하였다. 그런데 광해군에 의해 자행된 폐모살제 사건은 王家의 도덕성이 극도로 타락했음을 의미하였다. 임진왜란의 발발이 조선 사회가 유가의 도덕 준칙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결과로 이해하였으며, 때론 나라가 망하더라고 유가의 질서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던 당대의 사대부에게 폐모살제 사건이 가져다준 충격은 대단하였다.
    따라서 폐모살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태고 모티프의 경우는 정치 현실을 비롯하여 조선 사회의 말세적 상황에 대한 비관적 시선이 반영되어 나타났다. 현실에 태고의 질서가 볼 수 없을지라도 유가의 이념적 삶을 지키며 흥겨워하던 郭期壽의 태도가 申欽의 시조에서 완전히 소거되어 버린 양상은 당시 폐모살제 사건이 지니는 영향력을 반증한다.
    또한 말세관에 기반을 둔 태고 모티프는 향촌 사족 사회라는 집단의 구도에서도 작용하고 있었다. 奉化 지역의 서원 건립과 운영 문제를 배경으로 향유된 朴善長의 <五倫歌>에서 文風이 쇠락한 말세의 세태를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서 태고시대부터 내려온 오륜의 법칙을 강조하는 태도는 17세기 말세관의 영향력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조선 사회는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 혼정이 일으킨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조반정의 함의는 다양하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화이론적 세계관의 구도로 당시의 문제를 진단하고 있었던 정황이다. 인조반정이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은 반정을 계기로 부친이 유배를 가게 된 상황일지라도, 이를 감격에 찬 어조로 읊조린 金光煜의 <栗里遺曲>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태고 모티프 또한 인조반정의 영향에 견인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적에 의해 쇠락한 현실 사회와 태고적 명신의 부임을 통해 요순의 질서를 회복하게 되었음을 노래한 朴仁老의 <嶺南歌>는 이러한 양상을 적절히 보여준다.
    그러나 인조반정의 전망과는 달리 말세관의 구도는 여전히 지속되었다. 국문시가의 양상과는 별개로 당대 사대부는 현실의 문제를 여전히 말세관의 구도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반정의 함의가 긍정적인 것과는 별개로, 그 자체가 말세의 영향력을 온전히 소거할 수는 없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를 통해 당대인이 인조반정을 변혁의 완성이 아니라 개선의 전망이 마련된 사건으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태고 모티프는 가난과 迂闊, 放逐의식 등과 같은 17세기의 변별적 자질들과 결합되어 나타났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 가난과 우활, 방축의식 등은 16세기의 전망에서 벗어난 17세기만의 독특한 주제들이다. 鄭勳의 <迂闊歌>와 曺友仁의 <梅湖別曲> 등을 통해 검토한 양상인바, 흥미로운 점은 이들 작가들이 당대를 일관되게 말세로 진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은 태고 모티프가 17세기의 변별적 자질들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고 있으며, 나아가 시가사의 구도를 이해할 수 있는 유효한 독법의 마련에 의의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끝으로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검토한 태고 모티프는 병자호란 이후의 구도를 진단하는 방법론으로서 유효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병자호란은 이적인 청에 의해 명이 멸망하고 조선 또한 굴욕적인 항복을 경험하게 된 사건이었다. 사회적 환란은 조선 사회가 유가의 전인격적 도덕 준칙을 지키지 못한 결과로 이해하였던 사대부에게 이적에 의해 굴복당한 현실이 가져다준 절망감을 대단하였을 것이다. 당시 인조를 더러운 임금(汚君)으로 비난하며 辭職을 하는 행위가 고답적인 행위로 평가 받았던 정황이나, 청의 외교적 압박 속에서도 小中華意識 내지는 朝鮮中華主義를 標榜하며 萬東廟와 大報壇을 건립하였던 사례들은 병자호란이 조선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이적의 침입을 극복한 임진왜란을 통해서도 화이 질서의 문제의식이 대두되었던 양상을 고려해 본다면, 화이 질서의 문제가 병자호란 이후에 더욱 고조되었을 점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이러한 점은 병자호란 이후 17세기 후반의 국문시가와 그 시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태고 모티프의 중요성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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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론 1
    • 1. 연구 목적 및 연구사 검토 1
    • 2. 연구 방법 12
    • 3. 연구 대상 및 범위 21
    • Ⅰ. 서론 1
    • 1. 연구 목적 및 연구사 검토 1
    • 2. 연구 방법 12
    • 3. 연구 대상 및 범위 21
    • Ⅱ. 太古 모티프의 意味網과 壬辰倭亂 以前의 활용 양상 23
    • 1. 太古 모티프의 意味網 23
    • 2. 壬辰倭亂 以前 太古 모티프의 활용 양상 46
    • Ⅲ. 壬辰倭亂期: 華夷論의 動搖와 太古의 憧憬 68
    • 1. 桃花源의 세계와 太古象의 결합 68
    • 2. 島山城의 패전과 天運循環의 믿음 81
    • 3. 戰後 복구의 難關과 太平聖代의 희구 99
    • Ⅳ. 光海君 昏政期: 末世觀의 擡頭와 太古의 憧憬 113
    • 1. 末世의 到來와 盛世의 기다림 113
    • 2. 王家의 悖倫과 運數 回復의 좌절 131
    • 3. 文風의 衰落과 鄕村 질서의 회복 운동 156
    • Ⅴ. 壬辰倭亂 前後 국문시가 太古 모티프의 시가사적 의의 166
    • Ⅵ. 결론 187
    • 참고문헌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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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 「담양의 장소성에 대한 일고찰 -<면앙정가>와 <성산별곡>을 중심으로」, 􋺷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 35􋺸, 김은하, 한국시가문화학회(구 한국고시가문화학회), , 2015

    167. 「명(明) 형개(邢玠) 􋺷경략어왜주의(經略御倭奏議)􋺸의 정유재란(丁酉再亂) 사료(史料) 고찰(考察)」, 􋺷중국사연구􋺸 113, 박현규, 중국사학회, , 2018

    168. 「소식(蘇軾)과 도연명(陶淵明)의 `만남` ― 소식(蘇軾)에 의한 도연명 (陶淵明) 전범화(典範化)를 중심으로」, 􋺷중국문학􋺸 62, 김보경, 한국중국어문학회, , 2010

    169. 「강호가사(江湖歌辭)의 작중공간(作中空間) 설정(設定)과 의미(意味) - <상춘곡(賞春曲)>,<면앙정가>,<성산별곡(星山別曲)> 을 중심으로-」, 􋺷한국시가연구􋺸 23, 김광조, 한국시가학회,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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