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sigwa(田柴科) was a land granting system during the Goryeo Dynasty, according to which jeonto(田土; land) and siji(柴地; places to get forest resources) were given to government officials, military officials and hanin(閑人) by their r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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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8
2018
한국어
서울
Land granting system of Jeonsigwa and its management during Goryeo Dynasty
iii, 219 p. ; 26 cm
지도교수: 이진한
참고문헌: p. 200-216
I804:11009-00000008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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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sigwa(田柴科) was a land granting system during the Goryeo Dynasty, according to which jeonto(田土; land) and siji(柴地; places to get forest resources) were given to government officials, military officials and hanin(閑人) by their ranks...
Jeonsigwa(田柴科) was a land granting system during the Goryeo Dynasty, according to which jeonto(田土; land) and siji(柴地; places to get forest resources) were given to government officials, military officials and hanin(閑人) by their ranks. Related research has been undertaken regarding the method of land allocation, classification of jimok(地目; type of land), management methods, productivity, ownership and sujokwon(收租權; the right to reap land tax). Since jeonsigwa was basically a wage system, additional analysis is needed on how the system was managed and for what purposes, in addition to analysis of the allocated land itself. Noting this, we investigated who were eligible to receive land under the system, and how the system was managed.
Jeonsigwa was first introduced in 975 or the first year of King Gyeongjong(景宗)'s reign, some 60 years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dynasty. In 998 or the first year of King Mokjong(穆宗)'s reign, it was revised to gaejeong jeonsigwa(改定田柴科), and further refined to gyeongjeong jeonsigwa(更定田柴科) in 1076 or the 30th year of King Munjong(文宗)'s reign. Revisions were made in a way that strengthened bureaucratic nature of the system, and adjusted and reduced a pool of eligible recipients. In the beginning of the dynasty, gwange(官階; official ranks) were granted to people who made contributions to enthronement of King Taejo(太祖), establishment of the dynasty and unification of the late Three Kingdoms, and were far from a typical bureaucratic system. That is, ranks were granted for one's social status, military clout, and close relationship with the king. Over time, jeonsigwa evolved in a way that gradually excluded these factors, and instead took into account gwanjik(官職; official position). During this process, hojok(豪族; local gentry), honored officials and their offsprings during the late Silla and early Goryeo Dynasty complied with the changing land system and were incorporated into it. The pool of jeonsigwa recipients was formed in this historical procession.
The system had a structure that granted lands according to largely three categories. Among the 18 gwa(科) or ranks of recipients, munban(文班; civil official line) and muban(武班; military official line) represented gwa one through 11. They were the ruling class of the Goryeo Dynasty, and took high-rank positions of pum(品) 7 and higher. Namban(南班) and hyangjik(鄕職) were additionally included in gwa 12 through 14. Then munban, namban, isok(吏屬; subofficial functionary), soldiers, hanin, and japnyu(雜類; miscellanea) were included in gwa 15 through 18. Like this, recipients were ranked to receive land by their social status and jikbun(職分; official duties).
This system partly overlaps with land systems of the Tang Dynasty(唐; 618-907) and Song Dynasty(宋; 960-1279). The eligible official positions largely correspond to those of the Tang Dynasty, and so do pum of these positions, albeit a few differences. And some official positions such as chamjijeongsa(叅知政事) and gangmun(閣門) seem to be an influence of the Song Dynasty. Despite same position titles, official positions were managed in quite different manners as the Goryeo Dynasty adopted Chinese systems and then modified them.
Particularly, jeonsigwa defined 18 gwa, granted different amount of land and forest resources accordingly, and listed all eligible positions for each gwa. This included yuoe(流外; outside the current of ranked officials) like isok and soldiers, as well as pumgwan(品官) of yunae(流內; within the current of ranked officials). In Tang Dynasty, both gwaninyoungeopjeon(官人永業田) and jikbunjeon(職分田) were granted to yunae only, and seori(胥吏; petty officials) and jabim(雜任) could not receive land. That is, Goryeo Dynasty allowed for a larger pool of recipients than Tang Dynasty by including isok and soldiers.
In Goryeo, basically, jeongho(丁戶) took on jikyeok(職役; official work), and they were financially better off than baekjeong(白丁; commoners). Gwanin is regarded as jeongho from an economic perspective, but since they held official positions, a distinction was made. However, the way the granted land was managed as youngeopjeon(永業田) and gubunjeon(口分田) was the same. Youngeopjeon indicated land that was passed down through jikyeok, and when succession was discontinued, the land except gubunjeon was returned to the country, and later gubunjeon was returned as well. In this sense, management of youngeopjeon and gubunjeon of Goryeo Dynasty resembled land managed under China's gyunjeonje(均田制). Specifically, it was identical that youngeopjeon was passed down and gubunjeon was returned to the country. However, a difference is that the management was done through gwanjik and jikyeok in Goryeo Dynasty. Under jeonsigwa system, fulfilling and succeeding official position and official work was very important, depending on which provision of jeonsigwa land either continued or stopped.
Under jeonsigwa system, youngeopjeon and gubunjeon were granted to people who were charged with official work based on jeongho, and the system was set apart from gwaninyoungeopjeon and jikbunjeon of Tang Dynasty in terms of eligible recipients. In Tang Dynasty, land was not granted to yuoe and jabim, that is, official work other than pumgwan; in comparison, in Goryeo Dynasty, land was granted to isok and soldiers as well. Compared to the land system of Tang Dynasty, jeonsigwa had a broader recipient pool. This was both a characteristic and a contradiction of the system, but it acquired a symbolic meaning as jojongjeonje(祖宗田制) and was maintained until the late Goryeo Dynasty. Also, in Tang Dynasty, people of yuoe and jabim positions were recruited as a special type of gwayeok(課役; statute labor), but it was not so in Goryeo since the two countries were under different socioeconomic circumstances.
전시과는 고려시대에 문무백관으로부터 군인·한인에 이르기까지 지위에 따라 田土와 柴地를 지급한 제도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토지제도의 측면에서 분급 방법, 地目의 구분, 경영방�...
전시과는 고려시대에 문무백관으로부터 군인·한인에 이르기까지 지위에 따라 田土와 柴地를 지급한 제도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토지제도의 측면에서 분급 방법, 地目의 구분, 경영방식, 생산력, 소유권(所有權)과 수조권(收租權)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전시과는 기본적으로 급여제도의 일종이므로 분급의 내용인 토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분급 대상을 비롯하여 제도 운영 방법과 목적에 대한 분석이 아울러 필요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전시과를 보수체계로 파악하면서 어떠한 사람들이 지급대상이 되었으며 이와 같은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를 다루었다.
전시과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고려 건국 후 약 60년이 지난 976년(경종 1)의 일이었다. 이후 998년(목종 1) 개정전시과를 거쳐 1076년(문종 30)에 경정전시과를 끝으로 제도가 완비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대체적인 방향은 관료제적 성격을 강화하고 지급대상을 적절히 축소․조정하는 것이었다. 초기의 官階는 태조의 즉위와 개국,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관료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임무 수행 능력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군사력, 국왕과의 친밀성을 고려하여 官階가 수여되었다. 지배체제의 개편과정에서 점차 이러한 점을 배제하면서 관직을 중심으로 토지를 지급하는 것이 전시과의 대체적인 흐름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말여초의 호족 및 공신과 그들의 후예는 토지제도의 개편에 따라 변화에 순응하면서 포섭되었다. 전시과의 분급 대상은 이러한 역사적 경과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전시과는 분급 대상을 구성상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토지를 지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총 18과의 세부 등급 가운데 1과(科; rank)부터 11과까지는 문․무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은 고려 사회의 지배층으로 대체로 7품 이상의 관직을 망라하는 고위 관인이었다. 12과부터 14과에는 문․무반 이외에 남반과 향직이 포함되어 있다. 15과에서 18과까지는 문반과 남반, 이속, 군인, 한인, 잡류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전시과는 위로부터 아래까지 분급 대상을 구분하여 각각의 신분과 직무에 따라 토지를 지급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唐이나 宋의 제도와도 일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갖고 있었다. 전시과의 지급 대상이 되는 관직을 검토하면 대개가 唐의 관직과 일치하며 관직의 품계도 일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동일하다. 그러면서도 叅知政事라든가 閣門의 여러 관직은 宋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관직명은 동일하지만 운영방식이 전혀 다른 것은 고려가 중국의 제도를 참고하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용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전시과는 모두 18개의 科로 나누어 田地와 柴地를 차등적으로 지급하고 각 과에 해당 토지를 받는 관직이 하나하나 나열되어 있는데, 流內의 品官 이외에 이속․군인 등의 流外도 포함되어 있다. 唐에서는 官人永業田과 職分田 모두 유내를 대상으로 지급되었으며 流外의 서리나 雜任은 토지를 받지 못했다. 지급 대상만 비교하면 고려에서는 품관 이외에 이속과 군인을 포함하여 오히려 唐보다 더 포괄적이었다.
고려에서는 기본적으로 丁戶가 직역을 부담하도록 하였는데, 정호는 백정에 비해 경제적 여유가 있는 富實戶였다. 관인의 경우도 경제적으로는 丁戶로 판단되지만 관직에 복무하므로 이와 구분되었다. 그러나 전시과를 통해 받은 토지가 영업전과 구분전을 통해 운영되는 방식은 양자가 동일하였다. 관직이나 직역을 매개로 계승되는 토지를 영업전이라고 불렀으며, 계승이 단절될 경우 구분전만 남기고 토지가 환수되었다가 추후에는 구분전도 국가에 반환되었다. 이런 점에서 고려의 영업전과 구분전은 중국의 균전제 하에서 실시된 영업전, 구분전의 운영 방식과 닮아 있다. 영업전은 계승이 되고 구분전은 국가에 반환되는 방식이 같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관직․직역을 매개로 운영되었음은 차이점이다. 전시과에서는 관직과 직역의 수행 및 계승이라는 조건이 매우 중요했고 이에 따라 전시과의 지급도 지속되거나 중단되었다.
丁戶를 기초로 직역을 부과하고 영업전과 구분전을 통해 토지 분급을 운영한 전시과 제도는 지급 대상에 있어 唐의 관인영업전 및 직분전과 차이가 있었다. 唐에서는 품관 외에 유외, 잡임 등의 직역에 대해서는 토지가 지급되지 않았으나 고려에서는 이속, 군인 등에게 토지를 지급하였다. 전시과는 唐의 토지제도와 비교할 때 분급대상이 포괄적이었다. 이는 전시과의 특징이자 모순점이었으나 祖宗田制로서 상징성을 갖게 되어 고려말까지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또한 당에서는 특수한 형태의 課役으로 유외, 잡임을 확보했으나 고려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고려와 당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다.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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