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예전부터 유람을 즐겨하였고 그것을 시나 산문형식의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유람록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나타나고 있으나 유람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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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 2018
학위논문(석사) --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 , 산림환경자원학전공 , 2018.2
2018
한국어
경상남도
; 26 cm
지도교수: 박재현
I804:48015-200000013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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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예전부터 유람을 즐겨하였고 그것을 시나 산문형식의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유람록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나타나고 있으나 유람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기는 조선시대이고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조선 후기 웬만한 문인이라면 금강산을 안 가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금강산유람이 하나의 유행이었다. 고려 이후 많은 선인들이 금강산을 탐승하여 금강산에 대한 유람기록이 많이 남아 있으며 금강산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은 고려 이후부터 구한말까지 문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창작되어 왔다.
본 연구는 이러한 금강산유람록에 나타난 유람행태, 이동경로, 휴양행태, 식물학적 출현수종 등을 파악하여 조선시대 산림기행문화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유람록을 남긴 저자들은 대부분 사대부계층이었고, 유람여정은 내금강에서 유람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유람 시기는 봄이나 가을에 유람한 이들이 많았다. 숙박장소로는 대부분 사찰을 이용하였고 유람행태로는 시를 짓거나 재명행위, 음주가무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유람록에 나타나는 초본류는 20종, 목본류는 38종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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