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본 논문에서는 15世紀 王室에서 發願한 佛像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成宗시기에 儒敎가 강화되면서 佛敎에 대한 억불이 강력해졌고, 이후 文定王后와 같은 親佛的인 왕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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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7
학위논문(석사) -- 고려대학교 대학원 ,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전공 , 2017. 8
2017
한국어
서울
A study on buddha statue sponsored by royal family in 15th century Joseon Dynasty
v, 118 p. : 삽화, 도판 ; 26 cm
지도교수: 方炳善
부록: 1.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기, 2. 경주 왕룡사원 목조아미타불좌상 조성결원기, 3. 수종사 석탑 출토 불상군 발원문 외
참고문헌: p. 9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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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본 논문에서는 15世紀 王室에서 發願한 佛像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成宗시기에 儒敎가 강화되면서 佛敎에 대한 억불이 강력해졌고, 이후 文定王后와 같은 親佛的인 왕실구성원이 등장하여 佛畵를 제작하고 佛事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아직 발견된 佛像은 없기 때문에 15세기 성종시기까지로 시기를 정하였다.
조선전기는‘抑佛崇儒’의 정책으로 사원의 통폐합이나 寺院田 축소와 같은 불교에 대한 탄압과 억불정책이 시행되지만, 水陸齋와 같은 불교의식을 통해 왕실의 명복을 빌고, 妃嬪들은 불교를 좋아하였다는 기록은 왕실 내부적으로는 불교를 숭상하고 있었던 것을 잘 보여준다.
왕실에서 발원한 불상은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1458), 경주 왕룡사원 목조아미타불좌상(1466), 평창 상원사 목조 문수동자좌상(1466), 원각사지 십층석탑(1467), 남양주 수종사 탑 출토 불상군(1493)이 발원문과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또한 현재 불상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발원문을 통해 세조2년(1456)에 제작된 견성암 약사삼존불이 있다. 이 중에서 원각사지 석탑은 부조상이고 고려시기 제작된 경천사지탑을 모본으로 제작된 점을 고려하여 제외하고자 한다.
흑석사 불상에서 보이는 왕실 발원자는 孝寧大君, 明嬪 金氏, 懿嬪 權氏, 貞懿公主, 延昌尉 安孟聃 부부이며, 왕룡사원 불상에서는 世祖, 睿宗, 孝寧大君이다. 상원사상에서는 懿淑公主, 河城尉 鄭顯祖 부부, 수종사 불상에서는 明嬪 金氏, 淑容 洪氏, 淑容 鄭氏, 淑媛 金氏 등이다. 흑석사 불상의 시주자인 명빈 김씨는 수종사 불상에서도 보이는데, 명빈 김씨가 발원하여 만든 불상을 成宗代 후궁인 숙용 홍씨와 숙용 정씨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중수하여 봉안한 것이다. 이후 仁祖 6年(1628) 仁穆大妃가 발원하여 조성된 佛像群이 더 봉안되어 당시 비빈들의 불사 활동을 잘 보여준다. 왕실발원 불사는 후궁 한사람이 아니라 왕실의 여러 비빈들이 함께 불사를 진행하고, 왕실 어른인 선왕의 비, 후궁이 진행한 불사를 계속해서 하거나 보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선왕이 세운 탑, 절을 중수하던 왕실 발원의 불사의 한 양상이라고 생각되는데, 친인척 관계인 왕실구성원들의 관계가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왕실발원 불사의 한 특징이다.
불상을 제작한 彫刻僧에 대한 기록도 찾을 수 있다. 흑석사 불상을 제작한 畵員 李重善은 견성암 약사불상 발원문에서도 화원 이중선이라는 기록으로 보인다. 畵員이나 관청소속 匠人이 불상 제작에 동원되었던 것을 보여준다.
왕룡사원의 불상을 제작한 造成良手인 性了는 단속사에서 住持를 역임하고 禪宗大禪師의 僧職을 받았다. 당시 가장 많은 原屬田과 승려가 소속된 절은 회암사였는데 회암사와 비교해보면 단속사의 寺勢가 상당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주지를 역임하고 禪宗의 法階중 가장 높은 선종대선사였던 성료는 당시 지위가 어느 정도 있던 고승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왕실구성원들의 관계와 시주자들의 교류를 통해 왕실발원 불상이 유사한 양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사료된다.
흑석사, 왕룡사원 불상은 높은 肉髻와 頂上髻珠, 中間髻珠의 표현, 갸름한 달걀형 얼굴, 通肩의 大衣 왼쪽 어깨 옷깃에 삼각형 모양의 주름, 오른쪽 어깨에 한 겹 덮인 대의자락, 왼팔에 Ω자형 주름, 내의에 묶인 띠 매듭, 下品中生印의 手印, 세장한 허리, 높은 무릎표현 등 양식적으로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상원사 문수동자상은 童子形의 菩薩像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세장한 허리, 옷주름 표현 등에서 유사하다.
왕실발원 불상들은 高麗 佛像 樣式과 明 宮庭 佛像 樣式이 합쳐서 혼합된 양식을 보인다. 고려 불상의 중간계주와 명 양식인 정상계주가 합쳐져 같이 나타나지만, 육계는 명 양식처럼 뾰족하게 높지 않고 완만한 굴곡을 이루고 있다. 大衣 오른쪽 어깨에 대의자락을 덧댄 자락표현은 명 불상에서도 보이는 옷주름이 표현되지만, 通肩式으로 대의를 표현하였다. 偏袒右肩의 대의표현 오른쪽 어깨에 대의자락을 덧댄 명 불상은 오른팔의 팔꿈치 아래 부분이 다 보이지만, 왕실발원 불상들은 통견식의 대의착용으로 손만 보인다. 또한 대의 안의 매듭을 그대로 표현하여, 명 양식 불상에서 보이는 왼쪽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늘어지는 옷주름 표현과 그 안의 대의에 물결무늬가 표현되지 않았다. 왼팔의 Ω형 주름도 왼쪽으로 치우친 무늬에서 더 입체적이고 정면으로 보인다. 또한 무릎이 높게 표현된다.
왕실발원 불상 양식을 계승한 불상은 천주사 불상, 기메박물관 소장 불상, 천성산 관음사 보살상, 클리블랜드 박물관 소장 삼존불상, 금강산 내강리 출토 삼존불상이다. 천주사 불상, 기메박물관 소장 불상, 클리블랜드 박물관 소장 삼존불상은 세장한 허리, 높은 육계와 왼쪽 옷깃의 삼각형 옷주름, 오른쪽 어깨에 덧 대인 대의자락의 무늬, 下品中生印의 수인 등의 동일한 양식을 보인다. 보살상인 천성산 관음사 보살상과 상원사 문수동자상은 착의 방식이 평면적이고 도식화 된 점을 제외하면 매우 유사하다. 금강산 내강리 출토 삼존불상도 세장한 허리와 높은 육계 등 수종사 불상과 양식적으로 동일하다.
편년이 확실한 금강산 향로봉 출토 불상, 통도사 불상, 금강산 은정골 출토 불상, 매곡동 불상은 티베트불교양식 유입의 다른 유형을 보여준다. 1429년(세종 11)의 향로봉 출토 불상은 티베트불상에서 보이는 覆蓮의 연화대좌만을 표현하였고, 통도사 불상과 은정골 출토 불상은 높은 肉髻와 偏袒右肩式의 大衣 착용, 覆蓮의 연화대좌 표현으로 明 궁정양식과는 다른 티베트양식을 보이고 있다. 매곡동 불상은 착의법은 전통적인 通肩式의 大衣표현이지만, 높은 육계와 覆蓮의 연화대좌 등 티베트 불상양식이 보이고 있다.
이렇듯 왕실발원 불상은 명과의 교류를 통해서 명나라 양식을 빠르게 받아들였지만, 고려양식과 융합되어 새로운 양식을 만든 선두적 역할을 하며 조선 전기 불상의 한 양식을 이루어 이후 조각 양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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