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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金剛山圖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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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4198222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명지대학교 대학원 일반대학원, 2016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명지대학교 대학원 일반대학원 , 미술사학과 , 2016. 8

      • 발행연도

        2016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DDC

        709 판사항(22)

      • 발행국(도시)

        서울

      • 기타서명

        A Study of 19th-century Paintings of Mt. Geumgangsan

      • 형태사항

        xiii, 208 p. : 주로채색삽도 ; 30cm

      • 일반주기명

        명지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이태호
        참고문헌 : p.137-149
        서지적 및 설명적 각주 수록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명지대학교 인문캠퍼스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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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금강산도의 역사에서 18세기가 ‘창조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확산의 시대’였다. 이 논문은 확산의 시기에 나타난 금강산도의 모사적 성격과 그 배경을 살펴보았다. 19세기에는 금강산 유람이 저변화되고 다양한 계층이 기행문과 기행가사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금강산에 관한 여러 정보와 지식들이 문인사대부에서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공유되었다. 금강산도는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에 부응하여 18세기의 전통을 모본으로 확산되었다.
      19세기 금강산도의 특징은 화첩 형식과 병풍 형식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9세기에 문인들은 금강산과 嶺東地域을 여행하고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화첩을 제작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김홍도가 정조의 명으로 제작한 금강산 그림이 5권 70폭으로 이루어진 화첩 형식이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19세기에 화첩 그림들은 새로운 화풍과 개성을 추구하기보다 김홍도의 《海山帖》을 모사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의 遊覽詩文 이외에 각 경물의 지리적 위치와 형상, 역사적 내역 등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새로운 성격의 記文들과 함께 하나의 화첩으로 장첩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19세기 금강산 화첩에 보이는 모사적, 복제적 성격의 배경을 문인들 사이에 유행한 博物學的 취향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요컨대 19세기에는 지리학의 발달과 考證學, 博物學의 영향으로 각 경물의 객관적 정보를 기술한 백과사전적 저술들이 등장하였다. 19세기에 금강산도는 이러한 글들과 함께 하나의 화첩으로 장첩됨으로써 회화적 감상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금강산에 관한 시각적 이미지 자료라는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일종의 근대적 성격을 내포한 것으로서 20세기에 출판된 금강산 안내서나 전문서들의 체제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금강산도 병풍은 18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장식 그림의 유행과 함께 발전하였다. 실용적, 장식적 기능을 겸비한 병풍 그림들은 화첩과 달리 민간의 가옥을 장식하거나 冠婚喪祭 등의 민간 행사에 사용되면서 더욱 저변으로 확산되었다.
      화첩 형식의 그림들이 주로 김홍도의 화풍을 수용했던 것과 달리 병풍 그림들은 정선의 화풍을 위주로 다양한 화풍을 계승하였다. 정선의 금강산도는 이미 18세기 전반부터 모사를 통해 꾸준히 전승되어 왔으며 이러한 방식은 19세기 신학권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신학권의 모사작들에는 도식화 현상이나 다른 화풍과의 습합 현상이 나타나 있지만 그의 병풍그림은 정선의 금강전도가 병풍형식으로 확대, 발전되어간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세기 금강산도 병풍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작자미상의 民畵 금강산도들이다. 작자미상의 그림들이 증가한 것은 19세기 기행가사에 無名氏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과 동일한 현상으로서 제작층이 다양화되고 익명의 다수를 위한 작품들이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민화금강산도의 특징은 總覽圖式과 名所圖式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총람도식은 내금강-외금강-해금강으로 이어지는 기행 여정에 따라 全圖式 그림과 명소도식 그림이 혼합된 것이며 명소도식은 각 명소를 근경에서 포착한 그림들로 구성된 형식이다. 총람도식 금강산도는 정선의 화풍에서 변화된 일정한 양식에 근거하고 있다. 명소도식 그림들은 김홍도의 화풍과 남종문인화풍 등 다양한 화풍을 계승하였다. 두 형식의 민화금강산도는 모두 18세기 금강산도를 토대로 장식 그림으로서의 변모를 시도하였으며 내용적으로 그동안 표출되지 않던 금강산에 대한 민간의 정서와 미감을 표현해냈다. 민화금강산도들이 더욱 저변화되면서 나타난 자유분방한 필치나 단출한 기법 등은 19세기 회화식 지방 지도과도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어 이 그림들이 향촌사회 곳곳에서 제작되고 향유되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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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도의 역사에서 18세기가 ‘창조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확산의 시대’였다. 이 논문은 확산의 시기에 나타난 금강산도의 모사적 성격과 그 배경을 살펴보았다. 19세기에는 금강산...

      금강산도의 역사에서 18세기가 ‘창조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확산의 시대’였다. 이 논문은 확산의 시기에 나타난 금강산도의 모사적 성격과 그 배경을 살펴보았다. 19세기에는 금강산 유람이 저변화되고 다양한 계층이 기행문과 기행가사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금강산에 관한 여러 정보와 지식들이 문인사대부에서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공유되었다. 금강산도는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에 부응하여 18세기의 전통을 모본으로 확산되었다.
      19세기 금강산도의 특징은 화첩 형식과 병풍 형식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9세기에 문인들은 금강산과 嶺東地域을 여행하고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화첩을 제작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김홍도가 정조의 명으로 제작한 금강산 그림이 5권 70폭으로 이루어진 화첩 형식이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19세기에 화첩 그림들은 새로운 화풍과 개성을 추구하기보다 김홍도의 《海山帖》을 모사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의 遊覽詩文 이외에 각 경물의 지리적 위치와 형상, 역사적 내역 등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새로운 성격의 記文들과 함께 하나의 화첩으로 장첩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19세기 금강산 화첩에 보이는 모사적, 복제적 성격의 배경을 문인들 사이에 유행한 博物學的 취향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요컨대 19세기에는 지리학의 발달과 考證學, 博物學의 영향으로 각 경물의 객관적 정보를 기술한 백과사전적 저술들이 등장하였다. 19세기에 금강산도는 이러한 글들과 함께 하나의 화첩으로 장첩됨으로써 회화적 감상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금강산에 관한 시각적 이미지 자료라는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일종의 근대적 성격을 내포한 것으로서 20세기에 출판된 금강산 안내서나 전문서들의 체제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금강산도 병풍은 18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장식 그림의 유행과 함께 발전하였다. 실용적, 장식적 기능을 겸비한 병풍 그림들은 화첩과 달리 민간의 가옥을 장식하거나 冠婚喪祭 등의 민간 행사에 사용되면서 더욱 저변으로 확산되었다.
      화첩 형식의 그림들이 주로 김홍도의 화풍을 수용했던 것과 달리 병풍 그림들은 정선의 화풍을 위주로 다양한 화풍을 계승하였다. 정선의 금강산도는 이미 18세기 전반부터 모사를 통해 꾸준히 전승되어 왔으며 이러한 방식은 19세기 신학권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신학권의 모사작들에는 도식화 현상이나 다른 화풍과의 습합 현상이 나타나 있지만 그의 병풍그림은 정선의 금강전도가 병풍형식으로 확대, 발전되어간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세기 금강산도 병풍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작자미상의 民畵 금강산도들이다. 작자미상의 그림들이 증가한 것은 19세기 기행가사에 無名氏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과 동일한 현상으로서 제작층이 다양화되고 익명의 다수를 위한 작품들이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민화금강산도의 특징은 總覽圖式과 名所圖式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총람도식은 내금강-외금강-해금강으로 이어지는 기행 여정에 따라 全圖式 그림과 명소도식 그림이 혼합된 것이며 명소도식은 각 명소를 근경에서 포착한 그림들로 구성된 형식이다. 총람도식 금강산도는 정선의 화풍에서 변화된 일정한 양식에 근거하고 있다. 명소도식 그림들은 김홍도의 화풍과 남종문인화풍 등 다양한 화풍을 계승하였다. 두 형식의 민화금강산도는 모두 18세기 금강산도를 토대로 장식 그림으로서의 변모를 시도하였으며 내용적으로 그동안 표출되지 않던 금강산에 대한 민간의 정서와 미감을 표현해냈다. 민화금강산도들이 더욱 저변화되면서 나타난 자유분방한 필치나 단출한 기법 등은 19세기 회화식 지방 지도과도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어 이 그림들이 향촌사회 곳곳에서 제작되고 향유되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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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f the 18th century was a period of creativity in the history of paintings of Mt. Geumgangsan (a genre known in Korean as Geumgangsan-do), the 19th century can be regarded as a period of expansion for the genre. This paper examines the phenomenon of imitation in Geumgangsan-do(金剛山圖) produced during this period. In the 19th century, Koreans of various social classes produced travel essays and free verse gasa poems(紀行歌辭) based on pleasure trips to Mt. Geumgangsan. As a result, diverse information about this mountainous region was widely shared among Koreans, from the literati nobility to the general public. Geumgangsan-do paintings based on traditional examples from the 18th century became widespread in response to this cultural environment.
      19th-century Geumgangsan-do can be divided into painting albums and painted folding screens. 19th-century literati produced large, multi-volume painting albums after traveling to Mt. Geumgangsan and Korea's eastern Yeongdong(嶺東) region. These reflected the format of the five-volume album of 70 paintings of Geumgangsan produced by Kim Hong-do(金弘道) on the orders of King Jeongjo(正祖). Artists producing 19th century album paintings modeled their works on those in Kim's Haesancheop (海山帖 “Sea and Mountains Album”), rather than pursuing new painting styles or individual character. These paintings were bound in albums with travel poems, essays and gimun(記文), a new type of travel record that consisted of objective descriptions of the geographical position, form and history of each scenic feature.
      This study establishes that imitation and reproduction found in 19th century Geumgangsan painting albums can be attributed to fondness for natural history among literati at the time. In the 19th century, the influence of developments in geography and the study of ancient documents and natural history gave rise to the appearance of encyclopedia-like texts describing objective details of various natural features. As they were bound into albums alongside such texts, Geumgangsan-do acquired a new role in addition to that of providing aesthetic pleasure: they now also functioned as visual records of Geumgangsan. The inherently modern character of this change was such that 20th-century guides and specialist texts on Geumgangsan are closely related to the Joseon albums in terms of structure and content.
      Painted folding Mt. Geumgangsan screens developed in parallel with the trend for decorative paintings that began in the late-18th century. Unlike painting albums, such screens combined practical and decorative functions. They became increasingly widespread through use as decorative objects in private homes and in civil ceremonies such as coming of age, marriage, death and ancestral rites.
      Unlike the paintings found in albums, which adopted the style of Kim Hong-do, those used on screens drew on various styles, including that of Jeong Seon(鄭敾). Jeong's paintings of Geumgangsan had already been passed on through imitation since the early 18th century; the same techniques can be found in the works of 19th-century artist Sin Hak-gwon(申學權). Sin's imitative works show schematization and compromise with other painting styles, but his screen paintings are highly significant in that they show a process whereby Jeong Seon's Geumgangsan-do are expanded into screen-size formats and further developed.
      Most 19th-century Geumgangsan screen paintings were produced in the folk painting (minhwa 民畵) style by unknown artists. This growth in the number of anonymous works occurred at the same time as a proliferation of anonymously-written travel gasa verse, indicating the increasingly diverse class backgrounds of artists and writers and the production of works for the anonymous masses.
      In terms of characteristics, folk Geumgangsan-do can be divided into comprehensive and famous spot styles. Comprehensive style works depict a journey from the Inner Geumgangsan region through Outer Geumgangsan to Coastal Geumgangsan, featuring a mixture of general views and depictions of specific famous spots; famous spot-style works, by contrast, show close-range views of various scenic spots found in the region. Comprehensive-style works show a stylistic schematization altered from that of Jeong Seon, while famous spot-style works display various stylistic influences, including those of Kim Hong-do and Southern School literati painters. Both styles of folk Geumgangsan-do represent attempts to transform 18th century Geumgangsan-do into decorative works, while expressing popular sentiment and a sense of beauty regarding Mt. Geumgangsan not seen before. The carefree brush stroke style and simple techniques that appeared with the spread of folk Geumgangsan-do show similarities to 19th-century painting-style provincial maps, indicating that such paintings were widely produced and appreciated in rur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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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f the 18th century was a period of creativity in the history of paintings of Mt. Geumgangsan (a genre known in Korean as Geumgangsan-do), the 19th century can be regarded as a period of expansion for the genre. This paper examines the phenomenon of i...

      If the 18th century was a period of creativity in the history of paintings of Mt. Geumgangsan (a genre known in Korean as Geumgangsan-do), the 19th century can be regarded as a period of expansion for the genre. This paper examines the phenomenon of imitation in Geumgangsan-do(金剛山圖) produced during this period. In the 19th century, Koreans of various social classes produced travel essays and free verse gasa poems(紀行歌辭) based on pleasure trips to Mt. Geumgangsan. As a result, diverse information about this mountainous region was widely shared among Koreans, from the literati nobility to the general public. Geumgangsan-do paintings based on traditional examples from the 18th century became widespread in response to this cultural environment.
      19th-century Geumgangsan-do can be divided into painting albums and painted folding screens. 19th-century literati produced large, multi-volume painting albums after traveling to Mt. Geumgangsan and Korea's eastern Yeongdong(嶺東) region. These reflected the format of the five-volume album of 70 paintings of Geumgangsan produced by Kim Hong-do(金弘道) on the orders of King Jeongjo(正祖). Artists producing 19th century album paintings modeled their works on those in Kim's Haesancheop (海山帖 “Sea and Mountains Album”), rather than pursuing new painting styles or individual character. These paintings were bound in albums with travel poems, essays and gimun(記文), a new type of travel record that consisted of objective descriptions of the geographical position, form and history of each scenic feature.
      This study establishes that imitation and reproduction found in 19th century Geumgangsan painting albums can be attributed to fondness for natural history among literati at the time. In the 19th century, the influence of developments in geography and the study of ancient documents and natural history gave rise to the appearance of encyclopedia-like texts describing objective details of various natural features. As they were bound into albums alongside such texts, Geumgangsan-do acquired a new role in addition to that of providing aesthetic pleasure: they now also functioned as visual records of Geumgangsan. The inherently modern character of this change was such that 20th-century guides and specialist texts on Geumgangsan are closely related to the Joseon albums in terms of structure and content.
      Painted folding Mt. Geumgangsan screens developed in parallel with the trend for decorative paintings that began in the late-18th century. Unlike painting albums, such screens combined practical and decorative functions. They became increasingly widespread through use as decorative objects in private homes and in civil ceremonies such as coming of age, marriage, death and ancestral rites.
      Unlike the paintings found in albums, which adopted the style of Kim Hong-do, those used on screens drew on various styles, including that of Jeong Seon(鄭敾). Jeong's paintings of Geumgangsan had already been passed on through imitation since the early 18th century; the same techniques can be found in the works of 19th-century artist Sin Hak-gwon(申學權). Sin's imitative works show schematization and compromise with other painting styles, but his screen paintings are highly significant in that they show a process whereby Jeong Seon's Geumgangsan-do are expanded into screen-size formats and further developed.
      Most 19th-century Geumgangsan screen paintings were produced in the folk painting (minhwa 民畵) style by unknown artists. This growth in the number of anonymous works occurred at the same time as a proliferation of anonymously-written travel gasa verse, indicating the increasingly diverse class backgrounds of artists and writers and the production of works for the anonymous masses.
      In terms of characteristics, folk Geumgangsan-do can be divided into comprehensive and famous spot styles. Comprehensive style works depict a journey from the Inner Geumgangsan region through Outer Geumgangsan to Coastal Geumgangsan, featuring a mixture of general views and depictions of specific famous spots; famous spot-style works, by contrast, show close-range views of various scenic spots found in the region. Comprehensive-style works show a stylistic schematization altered from that of Jeong Seon, while famous spot-style works display various stylistic influences, including those of Kim Hong-do and Southern School literati painters. Both styles of folk Geumgangsan-do represent attempts to transform 18th century Geumgangsan-do into decorative works, while expressing popular sentiment and a sense of beauty regarding Mt. Geumgangsan not seen before. The carefree brush stroke style and simple techniques that appeared with the spread of folk Geumgangsan-do show similarities to 19th-century painting-style provincial maps, indicating that such paintings were widely produced and appreciated in rur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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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 차
      • 도판목록 ⅲ
      • 표목차 ⅺ
      • 국문초록 ⅻ
      • 목 차
      • 도판목록 ⅲ
      • 표목차 ⅺ
      • 국문초록 ⅻ
      • Ⅰ. 서론 1
      • Ⅱ. 18세기 금강산도의 제작과 전래 5
      • 1. 금강산도의 발달과 양식의 확립 6
      • 2. 금강산도의 확산과 전래 9
      • Ⅲ. 19세기 유람풍조와 금강산 문학의 변화 23
      • Ⅳ. 19세기 금강산도의 변모와 성격 37
      • 1. 금강산 화첩의 제작과 복제적 성격 37
      • 1) 李豊瀷의《東遊帖》 38
      • 2) 李義聲의《海山圖帖》과 《關東名勝帖》 51
      • 3) 金夏鍾의《海山圖帖》과 《楓嶽卷》 68
      • 2. 금강산도 병풍의 제작 양상 93
      • 1) 정선 화풍의 전래와 모사: 申學權의《金剛內山總圖》 8 곡병 96
      • 2) 다양한 화풍의 수용: 李昉運, 李維新, 趙廷奎의 금강산도 105
      • 3. 민화금강산도의 유행 110
      • 1) 總覽圖式 금강산도 111
      • 2) 名所圖式 금강산도 118
      • Ⅴ. 20세기초 금강산도의 변모 124
      • 1. 유람방식의 변화 124
      • 2. 금강산도의 근대적 변모 126
      • Ⅵ. 결론 134
      • 참고문헌 137
      • 도판 150
      • Abstract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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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東游帖, 이충구, 이성민, 이풍익,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

      2. 「東游帖考」, 조선미, 이풍익 著, 이충구 역, 『東游帖』,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pp. 272-283, , 1994

      3. 謙齋鄭敾評傳, 崔完秀, 『澗松文華』 76, 한국민족미술연구소 , pp. 105-179., , 2009

      4. 韓國繪畫史論, 李東洲, 열화당, , 1990

      5. 韓國의 歷史上, 李佑成, 창작과 비평사, 1992(초판1982)., , 1992

      6. 金剛山圖 연구, 朴銀順, 一志社, , 1997

      7. 역, 『東游帖』, 이충구, 이풍익,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1994

      8. 『韓國繪畵史』, 안휘준, 일지사, (초판 1980년), , 1991

      9. 李朝漢文短篇集, 林熒澤, 李佑成, 일조각, , 1978

      10. 역, 『金剛山記』, 이창섭, 목란문화사, , 1990

      1. 東游帖, 이충구, 이성민, 이풍익,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5

      2. 「東游帖考」, 조선미, 이풍익 著, 이충구 역, 『東游帖』,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pp. 272-283, , 1994

      3. 謙齋鄭敾評傳, 崔完秀, 『澗松文華』 76, 한국민족미술연구소 , pp. 105-179., , 2009

      4. 韓國繪畫史論, 李東洲, 열화당, , 1990

      5. 韓國의 歷史上, 李佑成, 창작과 비평사, 1992(초판1982)., , 1992

      6. 金剛山圖 연구, 朴銀順, 一志社, , 1997

      7. 역, 『東游帖』, 이충구, 이풍익,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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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역, 『金剛山記』, 이창섭, 목란문화사, , 1990

      11. 금강산기행가사집, 강혜선, 이경수, 김남기, 강원대학교출판부, , 1999

      12. 「동궐도 그리기」, 안휘준, 『동궐도읽기』,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 , pp. 11-23, , 2005

      13. 『금강산 유람기』, 김동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전통문화연구회, , 1999

      14. 「병풍 속의 서예」, 박철상, 『병풍 속 글씨와 그림의 멋』, 수원박물관, , 2011

      15. 옮김, 『豹菴遺稿』, 변영섭, 강세황, 조송식, 정은진, 김종진, 지식산업사, , 2010

      16. 『조선미술사기행』, 이태호, 1, 다른세상, , 1999

      17. 『한국근대판화사』, 홍선웅, 미술문화, 미술문화, , 2014

      18. 역, 『기행문선집』1, 김찬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 , 1964

      19. 『금강산 길라잡이』, 김경웅, 집문당, 집문당, , 1999

      20. 『한국회화사 연구』, 안휘준, 시공사, 시공사, , 2000

      21. 『檀園 金弘道 연구』, 진준현, 일지사, , 1999

      22. 謙齋 鄭敾 眞景山水畵, 崔完秀, 범우사, , 1993

      23. 18 19세기 기행가사 연구, 유정선, 역락, 도서출판 역락,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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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19세기 平生圖 연구」, 최성희, 『미술사학』, 한국미술사교육학회, , pp. 79-110,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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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18, 19세기 기행가사 작자층의 성격변화 연구-<금강별곡>과 <금강산유산록>을 중심으로- 」, 유정선, 『한국시가연구』, 한국시가학회, , pp. 235-261,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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