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研究は殖民地時代の地方制度関連法令、これと関連された先行研究、朝鮮総督府および地方団体が作成した文書を通じて、植民地の地方団体 光州の実体に迫ろうとした。 研究結果は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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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研究は殖民地時代の地方制度関連法令、これと関連された先行研究、朝鮮総督府および地方団体が作成した文書を通じて、植民地の地方団体 光州の実体に迫ろうとした。 研究結果は次...
本研究は殖民地時代の地方制度関連法令、これと関連された先行研究、朝鮮総督府および地方団体が作成した文書を通じて、植民地の地方団体 光州の実体に迫ろうとした。
研究結果は次のとおりである。
第一に、光州の在朝鮮日本人既得権層は日本本土水準の自治を要求しながらも、朝鮮人はいうまでもなく経済力が脆弱な在朝鮮日本人との差別を望みました。朝鮮総督府の同化政策との間で乖離していたということだ。朝鮮総督府は、植民地である朝鮮(以下、「植民地朝鮮」という。)に、日本本土と特例地域においてすでに検証済みの地方制度を移植し、その過程において植民地統治により適合する方式に変形を加えた。結局、光州という事例を通じてみると植民地朝鮮の地方制度は「自治」と「既得権」を主張した在朝鮮日本人と「統治」および「同化政策」を重視した日帝との、摩擦と葛藤、調律と妥協、認定と編入の産物であった。これにより地方制度が在朝鮮日本人の密集居住地域とそうでない地域に両分されて移り変わったのである。地方団体のみならず、その下部組織である町総代と区長も同様であった。光州の場合、日本式地名であり自治組織である町の町総代は、日帝の植民地支配の初期にはすべて日本人で構成された。朝鮮式地名である里には、単純に地方団体の行政事務補助の役割をした名誉職区長があっただけである。このような非公式的な地方団体の下部組織は、地方団体と住民の媒介の役割をしたが、日本に由来した植民地朝鮮に原形そのまま、あるいは変形されて移植された。日帝の植民地支配の後期、戦時体制に入りながら、朝鮮総督府の激励のうち、光州の町総代は町会へと変形しながら地方団体の細胞組織、すなわち公式的な行政組織へと変貌したのである。また日本本土と同様に植民地朝鮮においても、各地域別に構成員および構成時期、性格、運営方式等に多少差があったものとみられる。
第二に、日帝植民地支配の以前から、光州で拠点を形成した在朝鮮日本人は地方団体の長でありながら、普通地方行政官(府)であり議事機関の議長を直接推薦するか、朝鮮総督府の反対があったとしても自分たちの意志を貫き通すなど「自治」を強調して地方団体の運営に参与した。これらの地方団体に対する影響力は、相当期間維持され、これを単一地方統治体制の中に編入しようとする朝鮮総督府の努力は続いた。日帝の植民地支配の後期、戦時体制に入りながら在朝鮮日本人らは、殖民権力に順応するか積極的に同調したものと判断される。
第三に、面長と邑長など地方官を管理待遇としたことは、それによる費用負担を転嫁するためのものであり、植民地時代、日本人が集団居住した指定面(邑)の面長(邑長)の身分を朝鮮人が主に居住した普通の面と異なり、高等官である主任官の待遇に格上げしたことは在朝鮮日本人の推薦を受けた者や地域で長年勤めた後、退職した官僚が選任されたためであるものと推定される。指定面と邑には、管理待遇したのに、ここで格上げされた府は官などを有する朝鮮総督府の管理を任命し、したがって指定面(邑)と府に対する朝鮮総督府の処遇は全く異なっていた。光州の在朝鮮日本人が地方団体の格上げをするために朝鮮総督に請願するなどの努力を傾けたことも、このような処遇の差がその背景にあるといえる。
第四に、日本人居住人口の比率が高かった指定面である光州面と光州邑は、主要事業において光州郡を経ず、全羅南道を経由して朝鮮総督府を相手に直接意見を提示するか、指示を受けた。地方制度上、邑․面は事務においては第1次で郡守または島司、第2次で道長官、第3次で朝鮮総督の監督を受けるように規定されていたが、水道施設の設置など予算が伴う事業においては、この限りでは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
五番目は、極めて制限的な役割に止まったが、住民代表から構成されて諮問議決機能を有した光州の議事機関は在朝鮮日本人が過半数を占めており、大部分の案件が原案可決された。また日本人の再選の割合が非常に高いという点において、光州の在朝鮮日本人の主流はかなり安定した基盤を持っていた。これらは自分たちの既得権を守るために、公式または非公式的に朝鮮総督府の地方官らと調整․調律に出たりした。
六番目は、光州の議事機関は、全案件の大部分が原案どおり決定されるなど、法制度的に保障された諮問または議決機能ができず、地方団体、すなわち朝鮮総督府の地方統治機構の行為に正当性を付与する役割に重点を置いた。また構成初期には、諮問機関に過ぎなかった指定面の面協議会においては、在朝鮮日本人は法制度的に保障された機能とはとは異なり、むしろ積極的に参与して案件を修正し、利害を反映させたが、以後議決機関として一層その機能が強化された後には、上程された案件の迅速な原案可決を主導し、地方統治機構であると同時に執行機関の行為に正当性を付与するに止まった。日帝植民地支配の初期には「自治」に出た在朝鮮日本人が、徐々に朝鮮総督府の統治体制に吸収されていったということを意味したものと思われる。植民地後期になるほど、中日戦争、太平洋戦争等の外部状況により、住民代表から構成された議事機関の機能と役割は大きく低下された。
七番目は、指定面である光州面は光州邑、光州府に成長し、日本人の居住人口が多かった地方団体の光州は、起債が可能であり、大規模予算が投入される都市施設事業を施行し、元金と利子を支払うことに負担が大きくなり、負債も急増した。このような事業により日本人が集団居住する町並みと居住民の大部分が朝鮮人であった農村間の暮しに、質的な差が大きくなった。植民地後期に至っては、朝鮮総督府の支援が大きく減少しながら、地方税を大幅に増額するか、地方税の項目を増やすために地方制度が改正され、これにより住民の税金負担が非常にあがった。
본 연구는 식민지 시기 지방제도 관련 법령, 이와 관련된 선행연구, 조선총독부와 지방단체가 생산한 문서를 통하여 식민지 지방단체 광주의 실체에 다가서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본 연구는 식민지 시기 지방제도 관련 법령, 이와 관련된 선행연구, 조선총독부와 지방단체가 생산한 문서를 통하여 식민지 지방단체 광주의 실체에 다가서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광주의 재조선 일본인 기득권층은 일본 본토 수준의 자치를 요구하면서도 조선인은 물론 경제력이 취약한 재조선 일본인과의 차별을 바랐다. 동화정책을 식민 통치의 기조로 하였던 조선총독부와는 괴리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에 일본 본토와 특례지역에서 이미 검증을 거친 지방제도들을 이식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식민지 통치와 좀 더 어울리는 방식으로 변형을 가하였다. 결국 광주라는 사례를 통하여 살펴본 식민지 조선의 지방제도는 「자치」와 「기득권」을 주장하였던 재조선 일본인과 「통치」와 「동화정책」을 중시하였던 일제와의 마찰과 갈등, 조율과 타협, 인정과 편입의 산물이었다.
지방제도는 재조선 일본인이 밀집거주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으로 양분되어 변천하였다. 지방단체는 물론 하부 조직인 정총대(町總代)와 구장(區長) 역시 그러하였다. 광주의 경우 일본식 지명이자 자치조직 정(町)의 대표인 정총대(町總代)는 식민지 초기 모두 일본인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식 지명인 리(里)에는 단순히 지방단체의 행정사무 보조 역할을 하였던 명예직 구장이 있었을 뿐이다. 정총대와 구장은 지방단체와 주민의 매개 역할을 하였는데, 모두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다. 식민지 후기 전시체제에 들어가면서 조선총독부의 독려 속에 광주의 정총대는 정회(町會)로 탈바꿈하면서 지방단체의 세포조직, 즉 공식적인 행정조직으로 변모하였다. 일본 본토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조선에서도 각 지역별로 이러한 정총대, 구장, 정회 등 지방단체 하부조직의 구성원 및 구성 시기?성격?운영 방식 등이 다소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일제 강점 이전부터 광주에 정착한 재조선 일본인들은 식민지 초기 지방단체의 장이면서 보통지방행정관(청)이자 의사(議事)기관의 장을 직접 추천하였다. 조선총독부의 반대가 있더라도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등 「자치」를 강조하며 지방단체 운영에 참가한 것이다. 광주의 경우 이들의 지방단체에 대한 영향력은 상당기간 유지되었으며, 이를 단일 지방통치체제 속으로 편입하려는 조선총독부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식민지 후기로 가면서 재조선 일본인들은 식민 권력에 순응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면장과 읍장 등 지방관을 관리대우로 한 것은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전가하기 위한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인이 집단 거주하였던 지정면(읍)의 면장(읍장) 신분을 조선인이 주로 거주하였던 보통면과 달리 고등관인 주임관 대우로 격상한 것은 재조선 일본인의 추천을 받은 자나 지역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뒤 퇴직한 관료 등이 선임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정면과 읍에는 관리대우로 한 반면 여기서 격상된 부는 관등을 가진 조선총독부의 관리를 임명하였으며, 따라서 지정면(읍)과 부를 대하는 조선총독부의 처우는 완전히 달랐다. 따라서 광주의 재조선 일본인들은 지방단체의 격을 올리기 위하여 조선총독에게 청원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넷째, 일본인 거주인구 비율이 높았던 지정면인 광주면(읍)은 주요 사업에 있어서 광주군을 거치지 않고 전라남도를 경유하여 조선총독부를 상대로 직접 의견을 제시하거나 지시를 받았다. 지방제도상 읍?면은 제1차로 군수 또는 도사(島司), 제2차 도장관(도지사), 제3차 조선총독의 감독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 수도(水道)시설 설치 등 예산이 수반되는 업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다섯째, 식민지 시기 극히 제한적인 역할에 머물렀지만 주민대표로 구성되어 자문?의결 기능을 가진 의사기관이 있었다. 지방단체 광주에 구성된 광주면협의회, 광주읍회, 광주부회 등 의사기관은 재조선 일본인들이 과반을 차지하였고, 대부분의 안건이 원안 가결되었다. 또 일본인의 재선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볼 때 재조선 일본인의 주류는 상당히 안정된 기반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지방관과 조정?조율에 나서기도 하였다.
여섯째, 광주의 의사기관이 논의한 안건의 대부분이 원안대로 결정되는 등 법?제도적으로 보장된 자문 또는 의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지방단체, 즉 조선총독부의 지방통치기구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에 치중하였다. 또 의사기관 구성 초기, 지방관(대우)의 자문에 응하였던 광주면의 면협의회에서 재조선 일본인은 법?제도적으로 보장된 기능과 무관하게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안건을 수정하여 이해를 반영하였다. 그러나 이후 의결기관인 읍회, 부회가 되어 한층 그 기능이 강화된 뒤에는 상정된 안건의 신속한 원안 가결을 주도하며 조선총독부의 지방통치기구이자 집행기관의 행위에 동조하는데 급급하였다. 식민지 초기 「자치」에 나선 재조선 일본인들이 점차 조선총독부의 통치 체제에 흡수되어 갔다는 것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 후기로 갈수록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외부 상황에 의하여 주민대표로 구성된 의사기관의 기능과 역할은 크게 저하되었다.
일곱째, 재조선 일본인이 밀집 거주한 지방단체 광주는 기채(起債)가 가능하여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도시기반시설사업을 시행함으로써 원금과 이자를 지불하는 데 부담이 커지고 부채 역시 증가하였다. 이러한 사업으로 인하여 일본인이 집단 거주하는 시가지와 거주민의 대부분이 조선인이었던 농촌 간 삶의 질 격차가 벌어졌다. 식민지 후기에 이르러서는 조선총독부의 지원이 크게 줄면서 지방세를 대폭 증액하거나 지방세 항목을 늘리기 위하여 지방제도가 개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주민의 세금 부담이 크게 높아졌다.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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