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광채를 가진 금은 예로부터 암흑과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광명을 뜻하며 국가의 성립과 함께 등장하였던 지배자들의 재력과 권력을 상징해 왔다. 금속공예란 금을 포함한 금속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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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 한서대학교 국제예술디자인대학원, 2015
학위논문(석사) -- 한서대학교 국제예술디자인대학원 , 문화재보존학과 , 2015. 2
2015
한국어
충청남도
133 ; 26 cm
지도교수: 장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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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화려한 광채를 가진 금은 예로부터 암흑과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광명을 뜻하며 국가의 성립과 함께 등장하였던 지배자들의 재력과 권력을 상징해 왔다. 금속공예란 금을 포함한 금속이 지...
화려한 광채를 가진 금은 예로부터 암흑과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광명을 뜻하며 국가의 성립과 함께 등장하였던 지배자들의 재력과 권력을 상징해 왔다. 금속공예란 금을 포함한 금속이 지닌 특색 가운데 색채나 광택을 이용하여 장식으로 쓰거나 장엄하기 위하여 각종의 장신구류부터 무기, 제기, 의기 및 일상생활용품까지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재료 가운데에서 금은 늘어나는 성질인 연성(延性)과 얇게 퍼지는 전성(展性)이 가장 우수한 금속으로 그 가공성이 다른 금속에 용이하다. 이러한 여러 우수한 성질 때문에 금은 여러 가지 공예품의 재료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본고에서 주목하는 조선시대는 가장 많은 금박의 사용 예를 찾아 볼 수 있는 시대이다. 더욱이 조선왕실은 금박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을 ‘금박장(金箔匠)’이라 부르고 궁중에 이들 장인을 따로 두어 왕실의 금박 수요를 충족시켰다. 또한 금박을 사용하여 공예품을 제작하는 장인을 ‘도다익장(都多益匠)’, ‘부금장(付金匠 )’, ‘니금장(泥金匠)’ 등으로 세분화 시켜 구분하였다.
조선시대는 다른 시대에 비해 유물이나 문헌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금박이나 금박장 관련 자료의 수집이나 정리가 용이하였다. 그동안 복식사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주로 다루었으나, 본고에서는 『악학궤범』을 비롯하여 『경국대전』, 『국조오례의』, 『국조속오례의』 및 조선후기 『왕실의궤』 까지 포괄하였다. 특히 『악학궤범』의 경우 공예품의 형태, 재료, 칫수, 문양, 색채 등을 분석하여 이를 도설로서 기록하였기 때문에 금박의 문양이나 기법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악학궤범』에 기록된 금박과 관련된 도설 25건을 분석하여 각 공예품의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그 외 각종 왕실 의궤를 참고하여 공예품에 사용된 금박관련 기술을 분석해 보았다. 또한 현재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그리고 단국대학교 석주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9세기 왕실 공예품 중 금박기법이 사용된 25건의 유물자료를 분석하여 금박의 장식적 요소의 변화양상과 특징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한편 금박 장인의 경우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 왕실의 오례행사를 위해 조성되었던 도감에 동원되었으며, 그들 장인의 명단을 『왕실의궤』의 「장인질」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금박관련 장인들은 도감의 각 방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는데 그들 장인은 대다수가 ‘부금장(付金匠)’으로 기록되어 져 있다. 일반적으로 부금장은 ‘금박을 붙인다.’라는 의미의 부금과 ‘전문적으로 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장인이 합쳐진 말로서 이 시기에 부금장은 각 공예품에 금박을 붙이는 모든 장인을 통칭하였다. 이들 부금장은 종종 다른 장인명에서도 공통적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확인된 장인은 금장(金裝), 재금장(栽金匠), 나올장(羅兀匠), 청상립장(靑箱笠匠) 등이다. 시기적으로 거의 동일한 시기에 등장하며 또한 장인의 의미상 금박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동일 인물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의미로 보아 같은 부금장이라 할지라도 부금해야 할 공예품에 따라 분화되거나 겸업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에 등장하는 도다익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도다익은 본래 좁은 폭에 금박을 박은 긴 댕기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당시에 활동하던 금박장인의 전문분야 중 하나였을 것이다. 즉 도다익 댕기에 금박을 박는 장인은 도다익장이었으며 시대가 흐르면서 그 의미가 합쳐서 도다익 역시 금박관련 기술 중 하나로 여겨 진 것이다. 19세기 장인명단 목록에는 유일하게 ‘금박장(金箔匠)’이 등장한다. 금박장이 하는 일은 순수하게 금박을 제작했던 장인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조선은 금박을 제작하던 장인과 금박을 사용하여 찍는 기술을 가진 장인을 따로 분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현대 중요무형문화재장인으로 지정되어 활동하고 있는 금박장의 경우 조선시대 금박을 제작하던 금박장과는 그 기술적인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부금장이라는 명칭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제작되어진 금박과 기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금박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손으로 금을 두드려 만드는 수공 금박기술은 사실상 단절된 상태이다. 따라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으로 인정되어 금박기술을 가지고 있는 김덕환 보유자 역시 선친인 고 김경용옹에게서 구전으로 들은 기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때문에 한지, 금편, 모루와 망치까지 모든 재료가 예전과 다르며, 제작방법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기록이 없어 금박을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다만 이러한 작업들이 더 잊혀지기 전에 시도해 보고, 기록하는 것이 앞으로의 체계적인 연구와 전통 금박기술 복원에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재현과정을 정리해보았다.
본 논문은 금박에 관련된 기술의 정리와 문헌에 기록된 금박공예품과 실존공예품의 비교 분석 그리고 금박관련 장인의 역사와 그 제작과정까지 살펴보았다. 이렇게 조선시대 금박과 관련된 폭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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