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 정판사 ‘위폐’ 사건이란 조선공산당 간부 및 조선정판사 직원들이 공모하여 조선정판사 인쇄시설을 이용하여 1945년 10월 하순부터 1946년 2...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T13702005
서울 :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2015
학위논문(박사) --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 한국학과 , 2015. 2
2015
한국어
915.1 판사항(22)
서울
A Study on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during the United States Occupation of South Korea
313 p. : 삽도 ; 26cm.
한국외대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반병률
참고문헌 : p.301-309
0
상세조회0
다운로드미군정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 정판사 ‘위폐’ 사건이란 조선공산당 간부 및 조선정판사 직원들이 공모하여 조선정판사 인쇄시설을 이용하여 1945년 10월 하순부터 1946년 2...
미군정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
정판사 ‘위폐’ 사건이란 조선공산당 간부 및 조선정판사 직원들이 공모하여 조선정판사 인쇄시설을 이용하여 1945년 10월 하순부터 1946년 2월 상순에 이르기까지 총 6회에 걸쳐 매회 200만원씩 총 1200만원이라고 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의 위조지폐를 찍어 내어 조선공산당의 자금으로 사용하였다는 사건이다.
이러한 정판사 ‘위폐’ 사건은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이후 미군정 공보부가 사건에 대해 공식 발표를 하면서부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재판 결과 피의자 10명이 최소 징역 10년, 최고 무기 징역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발표 직후 조선공산당 측이 피고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사건에 의혹을 제기한 이래 정국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으며, 사건 발생 7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논란이 끝나지 않고 있다. 또한 이 사건은 사건 발표 이후 미군정의 조선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었고, 조선공산당 역시도 대미 강경 노선으로 전환함에 따라 1946년 하반기의 정세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이 지니는 이러한 중요성에 비해 정판사 ‘위폐’ 사건은 그동안 거의 연구가 되지 않았는데, 연구가 부족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사건의 정치적 성격과 자료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그동안 학계에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던 정판사 ‘위폐’ 사건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기존 연구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자료들을 이용하여 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 전개 과정, 논란의 쟁점, 영향에 대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첫째, 정판사 ‘위폐’ 사건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선 미군정은 1945년 9월 진주와 함께 좌익에 대한 탄압 방침을 세웠으며, 1945년 말 모스크바 3상회의를 계기로 좌익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위 결렬을 계기로 좌익분열 및 조선공산당 고립화 정책이라는 새로운 대좌익 정책 하에 본격적인 좌익에 대한 탄압을 개시하였다. 그리고 정판사 ‘위폐’ 사건은 이러한 좌익 탄압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다음으로 조선공산당은 해방 이래 좌익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인공을 선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나 한민당 등 우익이 미군정과 결탁하여 비난과 공격을 가해오자 대미협조노선을 강화하여 미군정은 더욱 끌어들이고 민족통일전선을 표방하면서도 우익에 대해서는 배제하는 분리 대응 전략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1945년 말 모스크바 3상회의를 계기로 미군정과 우익이 좌익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며 민주의원을 설치하여 조선공산당을 배제하자 조공 측은 민전 설립으로 좌익을 결집하며 우익에 대한 강경화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그러나 미소공위의 성공을 위해 대미협조노선은 계속 유지하였다. 그러나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위 결렬을 계기로 미군정이 좌익분열 및 조선공산당 고립화 정책이라는 새로운 대좌익 정책 하에 본격적인 좌익에 대한 탄압을 개시하였으며, 정판사 ‘위폐’ 사건을 계기로 조공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을 가하면서 조공 측은 전술 변화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월 말 이후 신문허가제, 이승만의 단정수립안, 대중의 지지 이탈, 좌우합작, 소련영사관 철수 등이 이어지자 박헌영이 소련 및 북조선과의 협의를 통해 대응 조치를 논의하였고, 7월 말에 이르러 소위 ‘신전술’이라는 대미강경노선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정판사 ‘위폐’ 사건은 이러한 조선공산당의 대미노선 전환의 계기가 된 핵심적인 사건이었다.
둘째, 정판사 ‘위폐’ 사건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았다.
정판사 사건의 전개 과정은 크게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시기는 조선정판사 ‘위폐’ 사건 피의자에 대한 수사 및 조사가 이루어졌던 시기였으며, 좌익과 우익 및 군정 당국 간에 치열한 공방이 있었던 ‘여론 전쟁’의 시기였다. 두 번째 시기는 정판사 ‘위폐’ 사건의 1심 재판이 있었던 시기로서, 재판은 1946년 7월 29일 제1회 공판으로부터 11월 28일 제30회 마지막 공판에 이르기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시기는 피고 및 변호사단과 검사, 판사 등 사법 당국간의 공방이 중심이 되었던 ‘재판 전쟁’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시기는 정판사 ‘위폐’ 사건의 1심 재판이 끝난 이후로부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피고인들이 처형될 때까지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피고 및 변호사단 측은 1심에 불복하여 상고를 하는 등 사건을 공론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투쟁을 시도하였지만 미군정, 사법 당국 측이 그러한 투쟁의 장 자체를 회피했기 때문에 피고 및 변호사단 측은 정판사 ‘위폐’ 사건과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이 모두 차단된 ‘공론장 소멸’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정판사 ‘위폐’ 사건에 대한 논란의 쟁점을 분석하였다.
사건 당시의 수사 기록, 증거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고, 공판 기록은 일부만 남아 있으며, 사건의 피고‧변호인‧판검사‧증인들이 모두 사망하였으므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여러 자료를 비교 검토한 결과 정판사 ‘위폐’ 사건은 여러 가지 의혹이 많을 뿐 아니라 검사의 논고 및 재판부의 판결에서도 여러 가지 결정적인 모순점들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이 사건은 미군정이 조선공산당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며, 피고들은 최소한 검사 측의 공소 제기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무죄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정판사 ‘위폐’ 사건 판결의 가장 핵심적인 모순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검사의 주장에 따르면 조공의 근택빌딩 입주 시기, 위폐 공모 시기, 제1차 위폐 인쇄 시기가 모두 1945년 10월 하순이라고 했다. 그러나 피고 박락종이 10월 24일 이후 서울에 없었다는 부재증명이 성립되자, 재판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판결문에서 위폐 공모 시기를 10월 중순으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이는 조공 본부가 10월 하순에 근택빌딩으로 이전하였다는 검사의 주장과 모순된다. 둘째, 판결문에서는 송언필과 김창선이 10월 중순 경 숙직할 때 조선공산당 재정난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김창선이 송언필에게 징크판을 이용하여 돈을 인쇄, 사용하자고 제안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당의 재정 문제는 중앙 간부 중에서도 재정과 관계있는 자들에게만 공개되는 비밀이었으므로 당시 간부는커녕 당원도 아니었던 김창선과 송언필이 이를 파악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셋째, 판결문에서는 김창선과 정명환이 세사와 석유로 닦은 흑청자색 징크판을 재생시키고, 적색 징크판을 제작하여 위폐를 제조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징크판 재생 및 제작에는 화공 기술과 제판 기술이 필요한데, 김창선과 정명환은 평판공으로서 그러한 기술이 없었으므로 말이 되지 않는다. 넷째, 검찰 측에서 제출한 실물 증거물(징크판, 인쇄기, 재단기, 잉크, 모눈종이, 위조지폐) 중 증거능력이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특히 정판사 ‘위폐’ 사건의 피고들이 인쇄했다고 볼 수 있는 위조지폐는 단 한 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넷째, 정판사 ‘위폐’ 사건의 영향을 살펴보았다.
우선 정판사 위폐 ‘사건’은 단기적으로 해방 정국의 정세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정판사 ‘위폐’ 사건은 미군정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6년 당시 미군정은 남조선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미곡자유화조치의 실패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와 통화 남발, 생산 부진으로 인한 물가 폭등 등 경제 정책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46년 5월 4일 뚝섬 위폐 사건 용의자들이 검거되었는데, 그 중에는 우익 인사인 독촉 뚝섬지부 조직부장 이원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미군정과 우익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에 미군정은 정판사 ‘위폐’ 사건을 조작하였고, 이로써 대중들의 미군정에 대한 불만은 조선공산당에 대한 분노로 전환되었고, 이로써 미군정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또한 정판사 ‘위폐’ 사건은 1946년 하반기 이후 조선공산당이 고립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정판사 ‘위폐’ 사건 이후 대중들의 박헌영 및 조공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함에 따라 조선공산당은 해방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조공 측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해방 이래 견지해 오던 대미협조노선을 폐기하고 신전술이라고 하는 대미강경노선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전술 지침 하에 대중 투쟁을 통한 정판사 ‘위폐’ 사건에 대한 강경 대응책으로 맞섰으며, 이는 위폐 공판 소요 사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중은 극한 투쟁으로 내닫는 조선공산당의 노선에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조공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도 못하고, 대중만 희생시킨다는 신전술의 한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러한 무모한 대중 투쟁 방식을 계속 고수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9월 총파업과 10월 항쟁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미군정의 무자비한 탄압에 따른 대중들의 수많은 희생과 조공의 지지 기반 약화를 스스로 초래하였다.
또한 정판사 ‘위폐’ 사건은 일제의 대표적 억압적 국가 기구인 경찰과 사법 기구가 미군정을 통해 부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미군정은 정판사 ‘위폐’ 사건 발표 전 친미 경찰 조직의 정비를 완료하였고, 정판사 ‘위폐’ 사건의 제1회 공판이 시작되기 전 친미 우익적 사법 조직의 정비를 완료하였다. 또한 정판사 ‘위폐’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조병옥-장택상-친일 경찰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으며, 미군정과 우익의 좌익 탄압을 위한 중요한 물리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미군정기 내내 큰 변화 없이 탄탄하게 지속되었다. 또한 정판사 ‘위폐’ 사건 이후 검찰은 더욱 우경화되어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 제정을 계기로 1949년경에는 일제의 사상검찰이 부활하게 되었다. 이러한 검찰 조직은 향후 대한민국 반공 사상 통제 체제의 중요한 물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정판사 ‘위폐’ 사건은 일제 강점기 친일 경찰 및 사법 조직이 친미 반공 우익적 경찰 및 사법 조직으로 재조직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정판사 ‘위폐’ 사건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반공주의 체제의 형성과 공고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정판사 ‘위폐’ 사건은 ‘낙인 찍기’를 통해 대한민국 반공주의 체제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미군정과 우익은 정판사 ‘위폐’ 사건을 통해 조선공산당에 ‘경제 파괴범’이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좌익이 지녔던 ‘민족지향성’과 ‘민중지향성’의 이미지를 파괴하고 대신 ‘건국 파괴범’과 ‘민생 파괴범’의 이미지를 덮어씌웠다. 이러한 점에서 정판사 ‘위폐’ 사건은 일제 강점기의 반공주의 사상통제 체제가 해방과 함께 소멸되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다시 부활 형성되는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대한민국 반공주의 체제 하에서 정판사 ‘위폐’ 사건은 ‘기억의 조작’을 통해 반공주의 체제를 공고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첫째, 정판사 ‘위폐’ 사건에 대해 사법 당국의 판결 내용과 다른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일체 금지되었으며, 이를 통해 국가가 원하지 않는 대중의 기억은 배제되었다. 둘째, 정판사 ‘위폐’ 사건은 반공 교육 프로그램, 각종 기록물, 대중문화 콘텐츠의 소재로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의 기억을 조작하는 데에 활용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정판사 ‘위폐’ 사건은 권위주의 국가가 체제 유지와 정권 연장을 위해 조작 사건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사상을 통제하는 사례의 전형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연구 결과를 통해 정판사 ‘위폐’ 사건은 일제, 미군정,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한국현대사의 권위주의 정권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반공주의적 분열 통치술의 일환으로서 꾸며낸 조작 사건의 대표적 사례’라고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 Study on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during the United States Occupation of South Korea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is allegedly known as a case that some executive members of Korean Communist Party (KCP) and ...
A Study on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during the United States Occupation of South Korea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is allegedly known as a case that some executive members of Korean Communist Party (KCP) and the factory workers at Chousn Jeongpansa, a printing company, conspired together and printed bank notes amounting to 12 million wons (KRW) in total, 2 million wons at a time, in total of 6 times between late October 1945 and early February 1946, for the purpose of financing the business of the party.
The case became known to public through the official announcement issued by the Department of Public Information (DPI) of the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 not long after the adjournment of the First US-USSR Joint Commission in early May 1946. And all of the 10 accused of the case were sentenced to a sever punishment, ranging from a minimum of 10 years' imprisonment to a maximum of life imprisonment.
From the time when the KCP proclaimed the innocence of the suspects and raised questions on the authenticity of the case right after the case became known to public, however, the case became a hot issue at the time and is still in controversy even though it has passed almost 70 years since the case happened. And the case had strong influence on the change of the political situation in the second part of the year of 1946 in that the USAMGIK's suppression on the KCP was raging, and the KCP also took a firm line against the USAMGIK.
In spite of its importance, the case has not almost been studied so far, mainly because it is a politically very sensitive issue and there are insufficient primary sources available about the case.
Therefore, the research subject of this thesis is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which has not almost been studied, and the research purpose of it is to address the historical background, the development, the controversial issues, and the influences of the case.
The first research topic of this thesis i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case. On stationing of the U. S. forces in South Korea in September 1945, the USAMGIK established the policy of suppression against the leftists, reinforcing the suppression after the Moscow Conference of Foreign Ministers of the United States, the United Kingdom and the Soviet Union in December 1945. And after the adjournment of the First US-USSR Joint Commission in early May 1946, the USAMGIK started the full-scale suppression against the left wing under the new policy of dividing the leftists and isolating the KCP. And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was the first signal that alarmed the beginning of the new phase of the suppression against the left wing.
On the other hand, the KCP had sticked to the cooperation policy with the U.S. despite the suppression against itself on the part of the USAMGIK until May 1946. Due to the severe suppression like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the separate government establishment plan by the extreme-right wing, the Left-Right coalition, and the evacuation of the USSR consulate in Seoul after the adjournment of the First US-USSR Joint Commission, however, the KCP decided to adopt the "New Tactics", a tough line against the U.S.
The second research topic is the development of the case. The first period of the case was when the suspects of the case were arrested and investigated by the police and prosecutors and the fierce political battle between the leftists and the rightists and the USAMGIK. The second period was when the case was on the first trial, in which the 30 sessions were held in total over 4 months. The third period was when the first trial was over, the appeal to a higher court was dismissed, and the accused of the case were shot to death right after the Korean War had broken out.
The third research topic is the controversial issues of the case. On closer examination of the prosecutor's summation, the sentencing of the judge, and the defense of the lawyers, it was found that the argument of the prosecutors and the judge has not only lots of doubtful and inexplicable points but fatal errors and contradictions. Thus the conclusion can be drawn that the accused are innocent of the charges claimed by the prosecutors.
The last research topic is the influences of the case. In short terms, the case had an effect on the change of the political situation during the period of the United States occupation of South Korea. Firstly, the USAMGIK passed a serious political crisis caused by the failure of its economic policies by manipulating the fak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and blaming all the economic failure like hyperinflation on the KCP. Secondly, the KCP was isolated by losing of public support due to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and by the severe and decisive suppression of the USAMGIK after its switching to "New Tactics". Thirdly. the repressive state apparatus like the police and the jurisdiction of the Japanese Imperialism regime was restored taking the opportunity of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In long terms, the case exerted an influence on the formation of the anti-communist system of the Republic of Korea by "attaching stigmas" and on the consolidation of the anti-communist system of the Republic of Korea by "manipulating memories". In that sense,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shows a typical example that authoritarian states control the public's thoughts by manipulating the memories of the public in the way they want using the manipulated affairs for the purpose of maintaining its regime and extending its rule.
In conclusion, from the historical point of view, the “counterfeit” case at Chosun Jeongpansa can be interpreted as "a representative example of the manipulated affairs under the tactics of the anti-communistic divide and rule" conducted by the authoritarian regimes in the modern Korean history like Japanese Imperialism, U. S. occupation, and the dictatorship of the Republic of Korea in order to overcome their political crisis and control the populace.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북한의 역사, 김성보, 1, 역사비평사, , 2011
2. 『격랑 80년』, 선우종원, 삼화출판사, , 2009
3. 『사건야화』, 김태호, 서음출판사, 3권, 서음출판사, , 1976
4. 『사상검사』, 선우종원, 계명사, , 1992
5. 『해방일기』, 김기협, 너머북스, 1~9, 너머북스, ~2014, , 2011
6. 『해방3년사』, 송남헌, I~Ⅱ, 까치, , 1985
7. 빨갱이의 탄생, 김득중, 선인, , 2009
8. 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역사비평사, , 2012
9. 『제3의 재판』, 김태호, 2권, 홍진출판사, , 1975
10. 미군점령 4년사, 송광성, 한울, , 1993
1. 북한의 역사, 김성보, 1, 역사비평사, , 2011
2. 『격랑 80년』, 선우종원, 삼화출판사, , 2009
3. 『사건야화』, 김태호, 서음출판사, 3권, 서음출판사, , 1976
4. 『사상검사』, 선우종원, 계명사, , 1992
5. 『해방일기』, 김기협, 너머북스, 1~9, 너머북스, ~2014, , 2011
6. 『해방3년사』, 송남헌, I~Ⅱ, 까치, , 1985
7. 빨갱이의 탄생, 김득중, 선인, , 2009
8. 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역사비평사, , 2012
9. 『제3의 재판』, 김태호, 2권, 홍진출판사, , 1975
10. 미군점령 4년사, 송광성, 한울, , 1993
11. 『이관술 -1950』, 안재성, 사회평론, 2006, , 1902
12. 『중국혁명사』, 서진영, 한울, 한울아카데미, , 1992
13. 『한국사법사』, 김병화, 일조각, (현세편), 일조각, , 1979
14. 『한국언론사』, 김민환, 사회비평사, 나남, , 1996
15. 몽양여운형평전, 정병준, 한울, , 1995
16. 미군정자료연구, 정용욱, 선인, , 2003
17. 『김구 청문회』, 김상구, 2, 매직하우스, , 2014
18. 『나의 회고록』, 조병옥, 해동, 해동, , 1986
19. 『남로당 연구』, 김남식, 1~3, 돌베개, , 1988
20. 『해방1945 -1950』, 고준석, 도서출판 겨레, 1989, , 1989
21. 고등학교 한국사, 최준채, 리베르스쿨, 교학사, , 2014
22. 우남 이승만 연구, 정병준, 역사비평사, , 2005
23. 『북괴도발 30년』, 송효순, 북한연구소출판부, , 1978
24. 『법조비화 100선』, 김이조, 고시연구사, 고시연구사, , 1997
25. 『운명의 순간들』, 박영수, 바다출판사, , 1998
26. 『한국 신문 역사』, 정진석, 커뮤니케이션북스,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3
27. 법원과 검찰의 탄생, 문준영, 역사비평사, , 2010
28. 역사와 지식과 사회, 박명림, 나남, , 2011
29. 이정 박헌영 일대기, 임경석, 역사비평사, , 2004
30. 편, 『해방 20년사』, 이병도, 희망출판사, , 1965
31. 『대한민국 건국사』, 양동안, 현음사, , 2001
32. 『사도법관 김홍섭』, 최종고, 육법사, , 1976
33. 『야만시대의 기록』, 박원순, 1~2, 역사비평사, , 2006
34. 『해방정국의 증언』, 고영민, 사계절출판사, , 1987
35. 『희생양과 죄의식』, 강준만, 김환표, 개마고원, , 2004
36. 『가인 김병로 평전』, 김학준, 민음사, , 2007
37. 『끝나지 않은 심판』, 김태호, 삼민사, , 1982
38. 『박헌영 노선 비판』, 김남식, 世界, 세계, , 1986
39. 『북한 정치사 연구』, 김광운, 1, 선인, , 2003
40.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김흥식, 서해문집, 2, 서해문집, , 2009
41. 『한국근대금융연구』, 정병욱, 역사비평사, , 2004
42. 미군정과한국민족주의, 최상룡, 나남, , 1988
43.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서중석, 역사비평사, , 1991
44. 『교학 한국사대사전』, 변태섭, 교학사, 교학사, , 2013
45. 『한국언론사의 이해』, 조맹기, 서강대학교 출판부,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1
46. 『고개 숙인 수정주의』, 전상인, 전통과 현대, , 2001
47. 『언론과 한국 현대사』, 정진석, 커뮤니케이션북스,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1
48. 『제주 4‧3 반란 사건』, 지만원, 시스템, , 2011
49. 『한국 언론의 사회사』, 김영호, 상, 지식산업사, , 2004
50. 『한국법조의 세 어른』, 김진배, 韓國法曹3聖紀念事業會, 한국법조3성기념사업회, , 1999
51. 『한국공산주의운동사』, 한창수, 지양사, , 1984
52. 『한국현대사자료총서』, 김남식, 1~15, 돌베개, , 1986
53. 미군정기의정치행정체제, 조기안, 아람, , 2003
54. 편, 『한국언론연표』 Ⅱ, 계훈모,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 1987
55. 『분단시대의 청년운동』, 이경남, 삼성문화개발, 상, 삼성문화개발, , 1989
56. 『한국현대사의 재조명』, Scalapino, Robert A, 돌베개, 돌베개, , 1982
57. 『해방전후의 조선진상』, 김종범, 김동운, 제2집, 돌베개, , 1984
58. 한국민족주의와 남북관계, 도진순, 서울대학교 출판부, , 1997
59. 『남로당의 조직과 전술』, 박일원, 세계, 세계, , 1984
60. 『한국분단사 연구 : ~1953』, 신복룡, 한울아카데미, 2006, , 1943
61.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정용욱,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3
62. 「미군정시대의 신문현상」, 金榮熙,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저널리즘연구』 제5호,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 상학부, , 23-39쪽, , 1975
63. 『한국 근현대사의 재조명』, 이현희, 三光, 삼광출판사, , 2000
64.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박명림, 나남, Ⅱ, 나남출판, , 1996
65. 『한국현대사 산책 년대편』, 강준만, 1~2, 인물과사상사, 2006, , 1940
66.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고경일, 고지훈, 앨피, , 2005
67. 「미군정 초기의 점령 정책」, 金元德, 건국대학교, 『건국대학교 대학원 학술논문집』 제38집, 건국대 학교, , 112-131쪽, , 1994
68. 『대한민국, 이렇게 세웠다』, 박갑동, 이철승, 계명사, , 1998
69. 『민족통일투쟁과 조선혁명』, 고준석, 힘, 힘, , 1988
70. 편, 『한국분단사 자료집』 1~6, 신복룡, 원주문화사, ~1993, , 1991
71. 1946년경 남한 주민의 사회 의식, 전상인, 『사회와 역사』 52호, 한국사회사학회, 1997, 291-339쪽, , 1997
72. 「미군정경찰의 정치적 위상」, 김왕식, 『한국문화연구원 논집』 65권 1-2호, 이화여자 대학교 부설 한국문화연구원, , 201-229쪽, , 1991
73. 미군정기 지배구조와 한국사회, 이혜숙, 선인, , 2008
74. 해방직후의 반공이야기와 대중, 신형기, 『상허학보』 37권, 상허학회, , 397-436쪽, , 2013
75. 「1947년 12월 북한의 화폐개혁」, 전현수, 한국역사연구회, 『역사와 현실』 19집, 한국역사연구회, 1996, 175-218쪽, , 1996
76. 일제강점기 조선 반제동맹 연구, 박한용, 고려대학교 대학원,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 2013
77.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 강만길, 창작과비평사, 창작과비평사, , 1996
78. 『한국의 국가형성과 민주주의』, 박찬표, 고려대학교출판부, , 1997
79. 『해방정국의 정치이념과 노선』, 심지연, 백산서당, 백산서당, , 2013
80. 「미군정 초기 미국의 대한정책」, 丁泰鉉, 조선대학교 통일문제연구소, 『통일문제연구』 8집, 조선대학교 통일문제연 구소, , 139-159쪽, , 1990
81. 「한국 반공영화의 제도화 연구」, 정영권,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 2010
82. 『우리나라 현대사의 인식 방법』, 이현희, 삼광출판사, , 1998
83. 「미군정기 식량공출정책의 고찰」, 이승활,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2005
84.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 김경란, 성신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1999
85.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김성동, 박종철, 박종철출판사, , 2014
86. 편, 『식민지시대 한국사회와 운동』, 임영태, 사계절, , 1985
87. 1950~60년대 반공주의 담론과 감성 정치, 이하나, 『사회와 역사』 95권, 한국사회사 학회, 2012, 201-241쪽, , 2012
88. 『변질되어가는 한국현대사의 실상』, 김종오, 鍾소리, <상>, 종소리, , 1989
89. 『소위 ‘정판사위폐사건’의 해부』, 박수환, 아세아서점, , 1947
90. 「친일 친미 경찰의 형성과 분단활동」, 임대식, 역사문제연구소 편, 『분단 50년과 통일 시대의 과제』, 역사비평사, , 11-48쪽, , 1995
91. 『사료로 본 한국의 정치와 외교 -1979』, 김용직,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2005, , 1945
92. 『송건호 전집 9 민주언론 민족언론 2』, 송건호, 한길사, 한길사, , 2002
93. 「정판사사건 재심청구를 위한 석명서」, 고지훈, 『역사문제연구』 제20호, 역사문제연구 소, , 349-373쪽, , 2008
94. 「제주 4‧3 학살사건의 사회학적 연구」, 강성현,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2002
95. 「조병옥의 친미반공노선과 극우 테러」, 김무용, 『역사비평』 제7호, 역사비평사, , 242-255쪽, , 1989
96. 『상록의 자유혼 : 창랑 장택상 일대기』, 장병혜, 창랑장택상기념사업회, , 1992
97. 『중도파의 민족주의 운동과 분단국가』, 윤민재,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4
98. 조병옥, 반공전선에 앞장선‘구국경찰’, 강혜경, 『내일을 여는 역사』 제25호, 내일을 여는 역사, , 128-138쪽, , 2006
99. 해방 공간, 유행어로 표출된 정서의 담론, 주창윤, 『한국언론학보』 53권 5호, 한국 언론학회, , 360-383쪽, , 2009
100. 백과사전연구소, 『두산세계대백과사전』, 두산동아, 두산동아, , 2002
101. 「한국의 국가형성과 미군정기 식량정책」, 박성진, 한국사회조사연구소, 『사회연구』 제4호, 한국사회조사연 구소, , 219-248쪽, , 2002
102.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활동과 노선변화」, 장정은,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 문, , 2011
103. 「해방직후 국군준비대의 결성과 그 성격」, 李剛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군사』 제32호, 국방군사연구소, , 209-253쪽, , 1996
104. 「미군정 재정 금융정책의 전개와 그 성격」, 辛泰坤, 부산대학교 상과대학, 『부산상대논집』 54집, 부산대학교 상과대학, , 25-50쪽, , 1987
105. 「한국 라디오 드라마의 형성과 장르 특성」, 문선영, 고려대학교 대학원,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 2012
106.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노선과 국가건설 운동, 김무용, 고려대학교 대학원,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 2005
107. 「일제말 미군정기 반공이데올로기의 형성」, 정영태,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 16집, 역사문제연구 소, , 126-138쪽, , 1992
108. 편, 『‘삐라’로 듣는 해방 직후의 목소리』, 정선태, 김현식, 소명출판, , 2011
109. 「국가보안법 제정 배경과 법조프락치 사건」, 김대현, 연세대학교 대학원,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 문, , 2012
110. 「조선공산당의 '신전술'에 관한 연구 : -1946」, 정초희,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 학위논문, 1991, , 1945
111. 해방공간에서 사법기구의 재편과정에 관한연구, 이국운, 『법과 사회』 29호, 법과사 회이론학회, , 135-175쪽, , 2005
112. 「조선공산당의 신전술 채택요인에 관한 연구」, 이규성, 인하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 문, , 2005
113. 역, 『해방 3년과 미국 Ⅰ: 미국의 대한정책 ~1948』, 김국태, 돌베개, 1984, , 1945
114. 편, 『창랑 장택상 자서전 : 대한민국 건국과 나』, 장병초, 장병혜, 창랑장택상기념사업 회, , 1992
115. 「미군정 하의 우익 청년단체에 관한 연구 : -1948」, 오유석, 이화여자대학교 대 학원 석사학위논문, 1988, , 1945
116. 「해방직후 미군정치하의 여론동향에 관한 분석」, 李聖根, 한국국제정치학회, 『국제정치논총』 제25호, 한 국국제정치학회, , 119-131쪽, , 1985
117. 「1945~1948년 우익 청년단 테러의 전개 양상과 성격」, 임나영,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 2008
118. 「1946~1947년 좌우합작운동의 전개과정과 성격변화」, 정병준,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 사학위논문, 1992, , 1992
119. 「최남선 기증도서에서 찾아낸 박헌영의 8월 테제」, 김남식,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 제17호, 역사 비평사, , 299-302쪽, , 1991
120. 「해방 후 조선공산당의 신전술 채택과 당면 과제」, 김무용,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제5호, 역사학 연구소, , 213-321쪽, , 1997
121. 「8‧15 이후 ‘융자명령’의 실시와 무책임의 체계」, 정병욱, 『한국민족운동사연구』 33 집,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229-268쪽, , 2002
123. 「미군정 여론조사로 본 한국의 정치 사회 동향~1947)」, 송재경, 서울대학교 대 학원 석사학위논문, 2014, , 1945
124. 「신탁통치를 둘러싼 미군정과 좌익세력의 권력대결」, 송유경, 부산정치학회, 『부산정치학회보』 제6 권 제1호, 부산정치학회, , 175-195쪽, , 1996
125. 「조선공산당 8월 20일 테제와 9월 20일 테제 비교 분석」, 문광석, 성균관대학교 대학 원 석사학위논문, , 2004
126. 「조선인민공화국에 대한 미군정의 인식과 대응 연구」, 강택구, 한림대학교, 한림대학교 대학원 석 사학위논문, , 1998
127. 일제 말기 반파시즘 인민전선론-경성콤그룹을 중심으로-, 이애숙, 『한국사연구』 제126호, 한국사연구회, , 203-238쪽, , 2004
128. 「남한에 남은 혁명가 김철수(1893-1896)의 삶과 한국전쟁」, 반병률, 『국제한국사학』, 국제한국사학회, , 49-88쪽, , 2014
129. 「소련의 대한정책과 북한에서의 분단질서 형성, ∼1946」, 김성보, 역사문제연구 소 편, 『분단 50년과 통일시대의 과제』, 역사비평사, 1995, 49-96쪽, , 1945
130. 「한국 사상통제기제의 역사적 형성과 보도연맹 사건, -50」, 강성현,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 1925
131. 「해방 직후 일본인 잔류자들 – 식민지배의 연속과 단절」, 정병욱, 『역사비평』 64집, 역사문제연구소, , 129-149쪽, , 2003
132. 「미군정의 대한정책과 남한의 국가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송유경, 동아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1987
133. 「코민테른 6차대회와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사상 연구」, 최규진,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대 학원 박사학위논문, , 1996
134. 『한국법조인 비전 : 법조를 움직인 대표적 인물 31인의 발자취』, 김이조, 법률, 법률출판사, , 1999
135. 구술, 유영구‧정창현 엮음,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 박병엽, 선인, , 2010
136. 구술, 유영구‧정창현 엮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 박병엽, 선인, , 2010
137.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1권, 5권, 진실, 진실‧화해 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10, , 2010
138. 「1945년-1946년 미군정의 정치세력 재편계획과 남한 정치구도의 변화」, 박태균, 서 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1, , 1991
139. 「미군정기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연구」, 『경찰학논총』 제5권 제1호, 박진, 최선우, 원광 대학교 경찰학연구소, , 185-216쪽, , 2010
140. 「해방 전후 금융기관의 자금 수급 구조와 은행권 남발의 배경에 대한 연구」, 정태헌, 『국사관논총』 제84집, 국사편찬위원회, , 101-131쪽, , 1999
141. 「1945년 말 1946년 초 신탁통치 파동과 미군정 - 미군정의 여론공작을 중심 으로」, 정용욱, 『역사비평』 62집, 역사문제연구소, 2003, 287-322쪽, , 2003
142. 「단정된 아관(俄館)의 역사에 대한 고찰 : 해방 후 소련영사관의 활동 및 철 수과정을 중심으로」, 김도종, 『국제정치논총』 38권 3호, 한국국제정치학회, , 81-98쪽, , 1999
143. 해방 후 한반도 거주 일본인 귀환에 관한 연구 : 점령군·조선인·일본인 3자간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이연식,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 2009
144. “Counterfeit 100 place with dies and rollers or printer of display at police station at Seoul, will be used as evidence against 13 Korean prisoners”, Hans Jonan, NARA, Record Group 111: Records of the Office of the Chief Signal Officer, 1860 – 1985, Signal Corps Photographs of American Military Activity, 1754 - 1954 [111-SC], Signal Corps Photographs of American Military Activity Part 3 (2차 세계대전 전후), ,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