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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初期 國喪儀禮의 정비와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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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글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대에 걸쳐 진행된 유교적 국상의례의 정비과정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밝힌 글이다. 조선 초기에는 유교국가의 이념적 실현을 위한 국가의례의 정비가 진행되었고 국상의례의 정비도 국가의례 정비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초창기의 국상의례는 국왕의 국상의례와 백관의 국상의례가 다르게 거행되는 ‘이중적 국상의례’의 성격을 가진다. 이중적 국상의례는 태종대 거행된 태조 국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태종은 親父인 태조를 위해 3년 상기에 따라 국상의례를 거행하였지만 백관들은 역월제를 통해 개월을 날짜로 바꾸어 27일만에 국상의례를 마무리하였다. 이렇게 역월제와 3년상제가 이중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빈전과 혼전에서 각각 연제, 상제, 담제를 거행하고 태종과 백관의 상복을 입는 기간도 서로 달랐다.
    이중적 국상의례가 하나의 국상의례로 단일화되는 것은 세종 4년(1422) 태종의 국상 때부터이다. 태종 국상을 계기로 이중적 국상의례를 혁파하고 3년 상기에 따라 국왕과 백관 모두 상복을 바꾸어 입을 뿐만 아니라 국상의례에도 함께 참여하는 의식절차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 시기 국상의례는 단일화된 국상의례를 진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奠 의식을 祭 의식과 다르게 설정하고 『문헌통고』나 『당원릉의주』를 참고하여 의식 절차 구성을 시도한 점이 특징이다. 그 결과 酹茶 三奠酒와 같은 奠酒 절차를 『문헌통고』에서 차용하였고 拜禮나 다른 의식절차 역시 『문헌통고』나 『당원릉의주』를 차용하여 의식절차를 구성하였다. 국상의례가 단일화되었다 하더라도 국상의례의 세부 의식절차를 구성하는데 참고할만한 문헌이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문헌통고』나 『당원릉의주』를 차용하여 국상의례 의식절차를 구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일화된 국상의례의 의식절차는 세종대 의례 연구의 심화와 함께 재검토되었는데 특히 세종 28년(1446) 세종비 소헌왕후 국상을 계기로 『문헌통고』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만의 특징이 있는 의식절차 구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의식절차의 변화로는 代奠官의 도입과 ‘連奠三盞’으로 표현되는 전주 절차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이 절차를 통해 조선의 國喪儀禮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奠 의식절차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奠 의식에서 대군 이하 왕자들의 자리 배치를 西向南上으로 하여 『당원릉의주』의 영향은 여전히 받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세종실록』「오례」까지도 확인되는데 이러한 『당원릉의주』의 영향은 『국조오례의』가 편찬되기 이전 시기에 거행된 國喪儀禮에서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조선 초기 國喪儀禮 정비는 초창기에는 『문헌통고』나 『당원릉의주』의 영향에 따라 의식절차를 구성하였으나 점차 그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의식절차를 설정하게 되었다. 조선만의 독자적인 의식절차 구성이 가능하게 된 원인은 참고할만한 國喪儀禮 자료가 소략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조선 초기 유교국가 지향에 따른 국가의례 연구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이렇게 만든 독자적인 의식절차를 국상의례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관례에 따르지 않고 『세종실록』「오례」나 『국조오례의』와 같은 국가전례서로 편찬하였다. 따라서 태종, 세종대의 국상의례 정비는 『세종실록』「오례」나 『국조오례의』의 국상의례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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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대에 걸쳐 진행된 유교적 국상의례의 정비과정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밝힌 글이다. 조선 초기에는 유교국가의 이념적 실현을 위한 국가의례의 정비가 진행되...

    이 글은 조선 초기 태종과 세종대에 걸쳐 진행된 유교적 국상의례의 정비과정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밝힌 글이다. 조선 초기에는 유교국가의 이념적 실현을 위한 국가의례의 정비가 진행되었고 국상의례의 정비도 국가의례 정비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초창기의 국상의례는 국왕의 국상의례와 백관의 국상의례가 다르게 거행되는 ‘이중적 국상의례’의 성격을 가진다. 이중적 국상의례는 태종대 거행된 태조 국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태종은 親父인 태조를 위해 3년 상기에 따라 국상의례를 거행하였지만 백관들은 역월제를 통해 개월을 날짜로 바꾸어 27일만에 국상의례를 마무리하였다. 이렇게 역월제와 3년상제가 이중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빈전과 혼전에서 각각 연제, 상제, 담제를 거행하고 태종과 백관의 상복을 입는 기간도 서로 달랐다.
    이중적 국상의례가 하나의 국상의례로 단일화되는 것은 세종 4년(1422) 태종의 국상 때부터이다. 태종 국상을 계기로 이중적 국상의례를 혁파하고 3년 상기에 따라 국왕과 백관 모두 상복을 바꾸어 입을 뿐만 아니라 국상의례에도 함께 참여하는 의식절차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 시기 국상의례는 단일화된 국상의례를 진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奠 의식을 祭 의식과 다르게 설정하고 『문헌통고』나 『당원릉의주』를 참고하여 의식 절차 구성을 시도한 점이 특징이다. 그 결과 酹茶 三奠酒와 같은 奠酒 절차를 『문헌통고』에서 차용하였고 拜禮나 다른 의식절차 역시 『문헌통고』나 『당원릉의주』를 차용하여 의식절차를 구성하였다. 국상의례가 단일화되었다 하더라도 국상의례의 세부 의식절차를 구성하는데 참고할만한 문헌이 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문헌통고』나 『당원릉의주』를 차용하여 국상의례 의식절차를 구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일화된 국상의례의 의식절차는 세종대 의례 연구의 심화와 함께 재검토되었는데 특히 세종 28년(1446) 세종비 소헌왕후 국상을 계기로 『문헌통고』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만의 특징이 있는 의식절차 구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의식절차의 변화로는 代奠官의 도입과 ‘連奠三盞’으로 표현되는 전주 절차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이 절차를 통해 조선의 國喪儀禮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奠 의식절차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奠 의식에서 대군 이하 왕자들의 자리 배치를 西向南上으로 하여 『당원릉의주』의 영향은 여전히 받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세종실록』「오례」까지도 확인되는데 이러한 『당원릉의주』의 영향은 『국조오례의』가 편찬되기 이전 시기에 거행된 國喪儀禮에서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조선 초기 國喪儀禮 정비는 초창기에는 『문헌통고』나 『당원릉의주』의 영향에 따라 의식절차를 구성하였으나 점차 그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의식절차를 설정하게 되었다. 조선만의 독자적인 의식절차 구성이 가능하게 된 원인은 참고할만한 國喪儀禮 자료가 소략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조선 초기 유교국가 지향에 따른 국가의례 연구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이렇게 만든 독자적인 의식절차를 국상의례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관례에 따르지 않고 『세종실록』「오례」나 『국조오례의』와 같은 국가전례서로 편찬하였다. 따라서 태종, 세종대의 국상의례 정비는 『세종실록』「오례」나 『국조오례의』의 국상의례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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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태종대 이중적 國喪儀禮의 거행양상
    • 1. 태조 國喪儀禮의 이중적 성격
    • 2. 奠祭의 혼용과 晝奠의 설행
    • 3. 魂殿의 정비와 文昭殿의 운영
    • Ⅰ. 머리말
    • Ⅱ. 태종대 이중적 國喪儀禮의 거행양상
    • 1. 태조 國喪儀禮의 이중적 성격
    • 2. 奠祭의 혼용과 晝奠의 설행
    • 3. 魂殿의 정비와 文昭殿의 운영
    • Ⅲ. 세종대 전반 國喪儀禮의 단일화와 의식절차의 특징
    • 1. 國喪儀禮의 단일화 과정
    • 2. 『문헌통고』와 『당원릉의주』를 參用한 奠 의식 구성
    • 3. 廣孝殿 의식의 거행과 실제
    • Ⅳ. 세종대 후반 內喪 규정의 정비와 國喪儀禮의 변화
    • 1. 國喪儀禮의 변화 배경과 內喪 규정의 정비
    • 2. 奠 의식 절차의 변화와 그 의미
    • 3. 虞祭의 설행시기 조정과 吉禮의 변화에 따른 祭 의식 구성
    • Ⅴ. 맺음말
    • 參考文獻
    • 영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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