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헤겔의 낭만적 예술형식을 미와 추의 관계로 재구성한 것이다. 헤겔이 예술철학을 구성하는 방식은 첫째, 통념과 본질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자율성을, 둘째, 내용과 형식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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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전남대학교, 2014
2014
한국어
165.4 판사항(6)
193 판사항(23)
광주
v, 159 p. ; 30 cm
참고문헌: p. 14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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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헤겔의 낭만적 예술형식을 미와 추의 관계로 재구성한 것이다. 헤겔이 예술철학을 구성하는 방식은 첫째, 통념과 본질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자율성을, 둘째,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개념을, 셋째, 개념과 실재성의 관계를 통해 이념적 통일성을, 넷째,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통해 유기적, 정신적 생명성을, 다섯째, 일상과 예술의 관계를 통해 이념상의 지향을, 여섯째, 실체와 주체의 관계를 통해 이념상의 현실성을, 일곱째, 외면성과 내면성의 관계를 통해 예술장르를, 여덟째, 직관과 사유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진리를, 아홉째, 정신화와 감각화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종말을 서술하는 것 등이다. 놀라운 것은 이 모두가 연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다양한 관심과 의욕적 구성은 미와 추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헤겔은 미와 추의 구분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특히나 추를 배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헤겔의 서술에는 미와 추에 관한 규정이 있고, 어떤 예술주제는 아름답고 어떤 예술주제는 추하다. 다만 일관된 기준이 없고, 때로는 하나의 예술주제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하며, 모호한 부사들(여전히, 아직 등)과 함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본 논문은 미와 추에 관한 헤겔의 달라지는 기준, 상반된 평가, 모호한 부사를 뚜렷한 기준, 일관된 평가, 확실한 이행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미와 추의 관계에 주목한 본 연구에 따르면 위에서 제시한 헤겔의 구성 방식은 첫째, 끌림(미)과 꺼림(추)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자율성으로, 둘째, 내용과 형식의 일치(미)와 불일치(추)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자기운동으로, 셋째, 앎(개념)과 형태(실재성)의 관계를 통해 미·추 현상의 이념적 통일성으로, 넷째, 영혼과 (하나)와 육체(다양성) 관계의 화해(미)와 불화(추) 관계를 통해 유기적, 정신적 생명성으로, 다섯째, 못한 통일(일상)과 과한 통일(예술)의 관계를 통해 이념상의 지향으로, 여섯째, 현실로 들어선 실체, 즉 주체를 통해 현실화된 이념상으로, 일곱째, 외면성과 내면성의 관계를 통해 양자 모두 자유로운 예술장르의 새로운 형성으로, 여덟째, 미뿐만 아니라 추를 통해서도 현상하는 예술의 진리로, 아홉째, 정신화와 감각화가 동시에 확대되는 관계를 통해 끝냄으로써 계속되는 예술로 재구성된다.
추에 관한 이론의 현재성은 대개 추의 독자성 및 범위의 무제한성을 선취했는가 여부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기준에서라면 헤겔은 낙제를 면할 수 없다. 그러나 헤겔은 미래의 예술현상을 볼 수 없었고 예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헤겔에게 그런 것은 철학의 사명이 아니다. 오히려 헤겔은 그의 현재와 과거의 예술에 주목하면서 그 속에서 정신의 일관된 운동을 찾고자 했다. 헤겔은 현재와 과거의 어떤 예술현상도 실체화하지 않으면서 사고하고, 미래를 열어둔다. 헤겔의 제자들에게서 역사의 어느 시기보다 추에 관한 논의가 활발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헤겔에게 있어서 추에 관한 이론의 현재성은 첫째, 추가 미와 함께 예술진리의 자율성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미는 그것이 드러내는 진리 때문에 끌리고, 감추는 진리 때문에 이행한다. 추는 미가 감추는 진리 때문에 드러나고, 꺼려지기 때문에 이행한다. 예술은 다른 진리의 형식과 뚜렷이 구별되는 끌림과 꺼림의 운동을 통해 자율성을 획득한다. 둘째, 추를 구체적인 현상으로 제한하지 않고 하나와 여럿의 불화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통념 속의 추, 즉 감각적인 것의 훼손은 헤겔에겐 종교적 영역에 국한된 추이다. 추는 감각 훼손뿐만 아니라 주체와 객체의 불화, 즉 자의적 반성, 무매개, 무의미 등으로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헤겔에게 추 현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열려 있다. 셋째, 열려 있는 추를 화해하는 방식도 무한히 열려 있다는 점이다. 분열된 현대사회에서 불화의 추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화해될 수 없다. 분열된 현대사회, 각자가 자신의 반성에 기반한 현대사회는 빛과 어둠을 함께 갖는다. 빛이 어둠을 밝히려할수록 어둠은 더 낮고 그늘진 곳에서 깊어진다. 오히려 어둠을 밝혀야할 대상으로 삼지 않는 곳, 분열된 차이를 인정하는 곳, 추를 미로 바꾸려 하지 않는 곳, 아름다운 예술의 끝냄을 선언하는 곳에서 화해가 등장한다. 그런 점을 괄호에 넣고 이미 지나버린 통일과 화해를 찾으려 한다면 낭만적 예술형식은 종말의 징후로서 분열만을 서술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분열을 위해 분열을, 고통을 위해 고통을, 추를 위해 추를 추구하는 활동은 피학성일 뿐이다. 동시에 화해를 위해 분열을, 고통이 제거된 상태의 만족을 위해 고통을, 미를 위해 추를 추구하는 활동도 피학성의 또 다른 형태이다. 불화와 분열의 감각적 형태화인 추는 그 자체 인간의 진실(진리)이기 때문에 표현된다. 피학성에 빠지는 것은 대상의 목적을 자체에서가 아니라 다른 것에서 찾으려는 왜곡이다. 본 논문은 미와 추, 그리고 그 관계를 대등한 일면적 진리 현상의 이행으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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