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조선중기의 ‘斯文’과 文章 四大家 = "Samun(斯文,This Culture of Ours)" in the Middle period of Joseon, and the Four Literary Masters("文章四大家")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T13143620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URL 복사
    • 오류접수
    인용문이 복사되었습니다.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중기의 ‘斯文’과 文章 四大家

    吳 世 炫

    조선중기 사상사의 과제는 성리학의 사회적 위상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전기와 후기의 조선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인 ‘斯文’의 인식에 대한 변화가 중기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文’의 독자적 가치를 유지하려 했던 노력들은 전기부터 지속되었는데 중기에 이르러서는 ‘道’의 가치를 최상에 위치시키려는 움직임 또한 확산되기 시작했다. 조선중기 '斯文'의 해석을 두고 벌어진 문과 도의 줄다리기는 전기와 후기 조선사회의 질적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공자에 의해 지적되었던 문장의 현실적 효용성은 북송대 程頤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고문운동을 주도했던 당사자들 역시 사회적 가치를 변화시키는 가장 대표적 수단으로서 문장의 역할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문장의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역시 국가의 경영을 위해 문장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공유되었다. 특히 근본인 도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말단으로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은 事大交隣이라는 외교적 필요성에 의해 주목받았다. 공자가 강조했던 ‘文質彬彬’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문장이라는 생각이 조선전기 내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조선중기는 문장의 가치와 문장가의 사회적 역할이 지속되던 시기였는데, 동시에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증진됨에 따라 그동안 문장의 뒤에 놓였던 도학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조선중기 문장 사대가(李廷龜, 申欽, 張維, 李植)는 문장력을 立身의 발판으로 삼아 조정에 진출하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및 명⋅청 교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탁월한 문장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풍부한 외교적 경험으로 위기 극복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또한 文衡을 비롯해 文翰의 요직을 역임하며 조정에서 막대한 정치적 위상을 확보했던 이들은 성리학에 대한 기본 소양을 겸비하여 당시 사대부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므로 문장 사대가의 사문에 대한 해석은 당시 사회의 실질적인 가치 지향을 반영했고 그러한 모습은 도와 문에 대한 관계해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장과 도학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전기부터 지속되었던 문장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16-17세기 도학자들의 등장과 활동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맞이해 ‘斯文’의 해석에 대한 변화를 의미했다. 기존에는 조선후기의 ‘實學’ 논의와 연관해 조선중기에 이미 성리학이 정착했고 문학론에서도 성리학적 문학론이 정착했다고 전제했다. 그 결과 다수의 체제옹호적 문인들은 성리학에 근거했던 반면 소수의 체제반항적 인물들에 의해 反성리학적⋅脫성리학적 문학론이 전개되었다고 지적하며, 사대가의 일원이었던 신흠과 장유의 문학론을 바로 그러한 탈성리학적 문학론의 대표적 예로 언급했다.
    그러나 조선중기 사회가 정치적, 사상적,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성리학이 정착된 시기가 아니었던 것처럼 문학론에서도 성리학이 지배적 담론으로 정착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조선중기는 전기부터 지속되었던 문장의 독자적 가치와 역할을 중시하고 문장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려는 문장가들이 많았던 시기였다. 신흠과 장유는 성리학을 공부했으면서도 문장의 가치와 독자적인 영역에 대한 긍정을 토대로 도학에 대한 문장의 상대적 중요성을 강조했던 다수의 문장가들 안에 포함된다.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문장의 기능과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문장을 평가하는 기준을 載道論이라는 도학자들의 원칙과 일치시켰다.
    이처럼 문과 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조선중기 사상사의 전반적인 지형도의 문제였다. 신흠과 장유가 보여준 문장의 독자적 가치에 대한 긍정은 성리학의 心學化에 바탕한 儒佛道 三敎의 공존과 포용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조선전기 대다수의 사대부들은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노장철학과 불교에 대한 이해와 동질화의 태도를 보였는데, 신흠과 장유는 그러한 전기적 유학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道文一致論에 기반하여 성리학의 강력한 이단 비판을 수용하며 양명학을 포함한 非성리학적 사상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특히 李珥를 중심으로 한 서인 道統의 정립 과정에 이정구와 이식은 문장을 통해 적극 참여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조선후기 도학자들이 강조했던 성리학 전통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신흠과 장유가 조선전기 사문을 문과 도의 대등한 가치 지향으로 해석했던 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金昌協을 비롯한 조선후기 일부 문장가들에게서 확인되는 도학에 근접한 면모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문장과 도학의 관계에서 본다면 문장의 가치를 지키려는 보수적 입장과 새로운 도학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혁신의 사상적 분기가 조선중기 문단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중기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대부들의 사상적 분기의 모습은 결국 조선사회의 가치 지향이 변화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번역하기

    조선중기의 ‘斯文’과 文章 四大家 吳 世 炫 조선중기 사상사의 과제는 성리학의 사회적 위상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전기와 후기의 조선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핵...

    조선중기의 ‘斯文’과 文章 四大家

    吳 世 炫

    조선중기 사상사의 과제는 성리학의 사회적 위상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전기와 후기의 조선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키워드인 ‘斯文’의 인식에 대한 변화가 중기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文’의 독자적 가치를 유지하려 했던 노력들은 전기부터 지속되었는데 중기에 이르러서는 ‘道’의 가치를 최상에 위치시키려는 움직임 또한 확산되기 시작했다. 조선중기 '斯文'의 해석을 두고 벌어진 문과 도의 줄다리기는 전기와 후기 조선사회의 질적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공자에 의해 지적되었던 문장의 현실적 효용성은 북송대 程頤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고문운동을 주도했던 당사자들 역시 사회적 가치를 변화시키는 가장 대표적 수단으로서 문장의 역할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문장의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역시 국가의 경영을 위해 문장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공유되었다. 특히 근본인 도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말단으로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은 事大交隣이라는 외교적 필요성에 의해 주목받았다. 공자가 강조했던 ‘文質彬彬’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문장이라는 생각이 조선전기 내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조선중기는 문장의 가치와 문장가의 사회적 역할이 지속되던 시기였는데, 동시에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증진됨에 따라 그동안 문장의 뒤에 놓였던 도학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조선중기 문장 사대가(李廷龜, 申欽, 張維, 李植)는 문장력을 立身의 발판으로 삼아 조정에 진출하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및 명⋅청 교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탁월한 문장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풍부한 외교적 경험으로 위기 극복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또한 文衡을 비롯해 文翰의 요직을 역임하며 조정에서 막대한 정치적 위상을 확보했던 이들은 성리학에 대한 기본 소양을 겸비하여 당시 사대부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므로 문장 사대가의 사문에 대한 해석은 당시 사회의 실질적인 가치 지향을 반영했고 그러한 모습은 도와 문에 대한 관계해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장과 도학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전기부터 지속되었던 문장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16-17세기 도학자들의 등장과 활동이라는 시대적 변화를 맞이해 ‘斯文’의 해석에 대한 변화를 의미했다. 기존에는 조선후기의 ‘實學’ 논의와 연관해 조선중기에 이미 성리학이 정착했고 문학론에서도 성리학적 문학론이 정착했다고 전제했다. 그 결과 다수의 체제옹호적 문인들은 성리학에 근거했던 반면 소수의 체제반항적 인물들에 의해 反성리학적⋅脫성리학적 문학론이 전개되었다고 지적하며, 사대가의 일원이었던 신흠과 장유의 문학론을 바로 그러한 탈성리학적 문학론의 대표적 예로 언급했다.
    그러나 조선중기 사회가 정치적, 사상적,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성리학이 정착된 시기가 아니었던 것처럼 문학론에서도 성리학이 지배적 담론으로 정착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조선중기는 전기부터 지속되었던 문장의 독자적 가치와 역할을 중시하고 문장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려는 문장가들이 많았던 시기였다. 신흠과 장유는 성리학을 공부했으면서도 문장의 가치와 독자적인 영역에 대한 긍정을 토대로 도학에 대한 문장의 상대적 중요성을 강조했던 다수의 문장가들 안에 포함된다.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문장의 기능과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문장을 평가하는 기준을 載道論이라는 도학자들의 원칙과 일치시켰다.
    이처럼 문과 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조선중기 사상사의 전반적인 지형도의 문제였다. 신흠과 장유가 보여준 문장의 독자적 가치에 대한 긍정은 성리학의 心學化에 바탕한 儒佛道 三敎의 공존과 포용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조선전기 대다수의 사대부들은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노장철학과 불교에 대한 이해와 동질화의 태도를 보였는데, 신흠과 장유는 그러한 전기적 유학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道文一致論에 기반하여 성리학의 강력한 이단 비판을 수용하며 양명학을 포함한 非성리학적 사상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특히 李珥를 중심으로 한 서인 道統의 정립 과정에 이정구와 이식은 문장을 통해 적극 참여했는데, 이러한 모습은 조선후기 도학자들이 강조했던 성리학 전통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신흠과 장유가 조선전기 사문을 문과 도의 대등한 가치 지향으로 해석했던 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반면 이정구와 이식은 金昌協을 비롯한 조선후기 일부 문장가들에게서 확인되는 도학에 근접한 면모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문장과 도학의 관계에서 본다면 문장의 가치를 지키려는 보수적 입장과 새로운 도학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혁신의 사상적 분기가 조선중기 문단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중기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대부들의 사상적 분기의 모습은 결국 조선사회의 가치 지향이 변화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 차
    • 서 론 ............................................................................ 1
    • 1) 조선중기에 대한 인식의 전환 ..................................... 1
    • 2) 조선중기 文章의 의미와 文章 四大家 .......................... 8
    • 목 차
    • 서 론 ............................................................................ 1
    • 1) 조선중기에 대한 인식의 전환 ..................................... 1
    • 2) 조선중기 文章의 의미와 文章 四大家 .......................... 8
    • 3) 文章 四大家에 대한 기존 연구 ................................... 19
    • 一. 조선전기 文章의 위상 ............................................... 27
    • 1. 文章 중심의 유학 전통 .............................................. 27
    • 1.1 ‘文質彬彬’의 전통과 文章 중시 ............................ 27
    • 1.2 文章 중심의 전통에 대한 道學의 비판 .................. 36
    • 2. 文章을 통한 국가 경영 .............................................. 49
    • 2.1 文章에 의한 인재 선발 ....................................... 49
    • 2.2 斯文에 대한 文章의 功 ....................................... 62
    • 3. 文章의 外交的 가치 .................................................. 73
    • 3.1 文章을 통한 事大交隣 ......................................... 73
    • 3.2 文章으로 높아진 국제적 위상 ............................... 85
    • 二. 文章 四大家의 文翰活動 ........................................... 101
    • 1. 선조대 정계 진출과 임진왜란기 문한활동 .................... 103
    • 1.1 선조대 문장력을 통한 정계 진출 .......................... 103
    • 1.2 문한활동을 통한 임진왜란 극복 ........................... 107
    • 2. 광해군대 정치적 시련과 문한활동 ............................... 120
    • 2.1 서인 문장가로서의 정치적 시련 ........................... 121
    • 2.2 문장력을 통한 외교적 難題의 해결 ...................... 128
    • 3. 인조대 전반 大臣과 文衡으로서의 문한활동 ................. 138
    • 3.1 大臣으로서의 활동 ............................................. 138
    • 3.2 文衡으로서의 활동 ............................................. 145
    • 4. 정묘⋅병자호란기 외교활동 ........................................ 159
    • 4.1 문장을 통한 외교활동 ......................................... 159
    • 4.2 척화와 주화 논리의 전개 .................................... 170
    • 三. 文章 四大家의 道文論 .............................................. 183
    • 1. 조선중기 文學論에 대한 성찰 .................................... 183
    • 1.1 조선중기 文學論에 대한 再考 .............................. 183
    • 1.2 性理學的 文學論의 정착에 대한 문제제기 ............. 191
    • 2. 文章의 독자적 가치에 대한 긍정 ................................ 206
    • 2.1 申欽의 道文相須論 ............................................. 206
    • 2.2 張維의 文章不朽論 ............................................. 214
    • 3. 道文一致論에 충실한 문학의 추구 .............................. 226
    • 3.1 李廷龜의 道文一致論 .......................................... 227
    • 3.2 李植의 載道論 ................................................... 236
    • 四. 文章 四大家의 사상적 분기 ....................................... 249
    • 1. 儒佛道의 共存: 조선전기 유학 전통의 유지 ................. 249
    • 1.1 申欽 – 儒佛道의 共存 ........................................ 250
    • 1.2 張維 - 心學에 바탕한 道佛 포용 ......................... 275
    • 2. 西人 道統意識의 성립:
    • 조선후기 성리학 전통의 시작 .............................. 289
    • 2.1 李廷龜 – 道統 성립의 주도자 ............................. 290
    • 2.2 李植 – 道統 확립의 주역 .................................... 312
    • 결 론 ........................................................................... 329
    • 참고문헌 ................................................................... 346
    • Abstract .................................................................. 357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