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陰陽學 관련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科擧 雜科의 陰陽科와 取才 시험제도가 그것이다. 두 국가고시에서 합격한 사람은 觀象監에 근무하면서 천문・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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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2013
학위논문(박사) --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 한국문화학과 , 2013. 2
2013
한국어
전북특별자치도
P257 ; 2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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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陰陽學 관련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科擧 雜科의 陰陽科와 取才 시험제도가 그것이다. 두 국가고시에서 합격한 사람은 觀象監에 근무하면서 천문・지리・인사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였다. 천문학 관리는 天體運行 및 天變災異를 관측하는 업무, 曆法을 바로 세우고 曆書를 편찬하여 보급하는 업무를 관장하였다. 그리고 지리학 관리는 수도와 궁궐터, 왕릉과 胎室을 정하고 보수하는 업무를 관장하였다. 또한 명과학 관리는 국가의 공식적인 행사와 국민의 日用百事에서의 택일, 그리고 국가의 주요 현안 및 타고난 祿命을 해석하는 업무를 관장하였다.
이와 같은 天地人三才 실현을 추구하는 관청은 우리나라에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日官部’와 신라의 ‘漏刻典’이 바로 그것이다. 고구려에도 관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전하는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이들이 근무하는 官職名도 전하고 있다. 고구려의 日者와 백제의 日者, 신라의 日者와 日官이 그들이다. 삼국・통일신라의 전통은 고려로 그대로 계승된다. 고려 천수 13년(930)에는 卜과 地理가 포함된 雜業이 설치되어 이 학문을 교육하였다. 고려 성종(981˜997)대에는 天文・曆數・測候・刻漏를 전담하는 太卜監과 太史局이 설치되었고, 광종 9년(958년)에는 후주의 귀화인 雙冀(???)의 건의로 과거제도가 설치되면서 잡과를 통해 卜과 地理 전문직 관리를 선발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다시 조선으로 계승된다. 조선 태조 원년(1392) 7월에는 ‘文武百官官制’에서 관상감의 조직과 업무가 규정되었고, 같은 해 8월에는 ‘入官補吏法’에 의해 陰陽科가 설치되며, 태종 6년(1406)에는 陰陽風水學이 포함된 ‘十學’이 설치되었다. 성종대에 완성된 「경국대전」에서는 관상감의 生徒와 업무내용, 그리고 官制가 구체적으로 규정된다. 이에 의하면 관상감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관상감의 生徒로 입학하여,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뒤에, 陰陽科나 取才에 합격하면 비로소 천문・지리・인사를 관장하는 관직자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법전에서는 관상감의 업무를 天文・地理・曆數・占算・測候・刻漏 등으로 규정하였다.
관상감 관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관상감에 입학하는 것이다. 생도 희망자는 四祖單子와 保擧單子를 祿官廳에 바친 뒤에, 관상감 관원에 의한 심사를 통과하여야 했다. 관상감 생도의 수는 천문학 20인, 지리학 15인, 명과학 10인이다.
관상감 관리를 선발하는 시험에는 陰陽科와 取才가 있다. 陰陽科에는 관상감 생도와 7품 이하의 관상감 관리가 응시하였다. 상급의 陰陽官으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初試와 覆試의 陰陽科를 반드시 거쳐야 하였다. 제1차 시험인 초시는 관상감에서 선발하였고, 제2차 시험인 복시는 초시에 합격한 사람에 한하여 禮曹에서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그리고 取才는 관상감의 祿官職이나 여러 직임을 맡을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제도로서, 관상감과 예조에서 합격자를 선발하였다. 취재는 음양과와는 성격이 다른 시험이었다. 음양과가 성격상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격인정 시험제도이면서 고급관리로 승진하는 시험인 반면, 取才는 관직임명 시험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음양과와 취재 합격자는 관상감 관리로 진출하여 근무하였다. 관상감의 최고책임자인 領事는 정1품의 영의정 1인이 겸직하였는데 관상감의 모든 사무를 총리하는 것이었다. 관상감을 통솔하는 提調는 종2품에서 종1품의 2명이 맡았고, 堂上官은 일정한 정원이 없다. 관상감의 녹관직 중에서 正, 副正, 僉正, 判官, 主簿는 陰陽科 합격자 중에서 임명하고, 그 아래의 관리는 遞兒職으로서 取才 합격자 중에서 임명하였다.
陰陽科와 取才에서의 시험교재와 선발인원 또한 「經國大典」과 「續大典」, 그리고 「大典會通」에 규정되어 있다. 시험은 천문학・지리학・명과학 전공별로 응시하였고, 시험과목은 「경국대전」에서 관상감의 업무를 규정한 天文・地理・曆數・占算・測候・刻漏에 관한 시험교재이다.
「경국대전」 천문학 시험에서는 「步天歌」를 비롯한 「七政算內篇」・「七政算外篇」・「交食推步」로 초시에서 10인, 복시에서 5인을 선발하였다. 지리학 시험에서는 「靑烏經」과 「錦囊經」을 비롯한 「明山論」・「胡舜申」(地理新法)・「地理門庭」・「?龍」・「捉脈賦」・「擬龍」・「洞林照膽」으로 초시에서 4인, 복시에서 2인을 선발하였다. 명과학 시험에서는 「袁天綱」을 비롯하여 「徐子平」・「應天歌」・「範圍數」・「剋擇通書」로 초시에서 4인, 복시에서 2인을 선발하였다. 이와 같은 소수의 합격자를 현대 국가고시와 비교하면 그 만큼 고급 두뇌가 합격하였음을 의미한다.
유교의 영향으로 기록문화가 꽃을 피운 조선시대에는 국가기록물 외에 陰陽科와 取才 시험교재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조사와 연구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본고에서는 음양과 제도의 구체적인 상황을 살피기 위해 이를 고찰하였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서 命課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변화에 따른 연구 분위기 속에서 관련 자료의 체계적인 정리가 더욱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명과학 시험교재가 소장된 학술기관과 板本을 고찰하되, 음양과과목과 취재과목으로 분류하고, 다시 命課學 三學 곧 祿命・卜筮・推擇으로 분류하여 고찰함으로써 조선시대 명과학 연구에 참고가 되게 하였다.
정조 19년(1795)에 徐浩修(1736-1799)와 함께 「國朝曆象考」를 편찬하기도 하였던 조선후기 천문학자 成周悳(1759-?)이 편찬한 「書雲觀志」에서는, 명과학 祿命書인 「袁天綱五星三命指南」・「徐子平三命通辯淵源」・「範圍數」・「應天歌」와, 그리고 推擇書인 「協吉通義」 판본을 보관했다고 하였다. 조사 결과 이 서책이 서울대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어서, 조선시대 命課學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시대 陰陽科・取才 시행에 따른 삼학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먼저, 조선시대 天文學은 ‘하늘을 받들고 백성을 위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조정에서는 천문학자를 양성하면서 동시에 이 학문에 뛰어난 사람을 관리로 선발하여 민생을 보살피게 하였다. 축적된 천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曆書를 편찬하여 보급함으로써 농업발전 및 일상생활에서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地理學은 ‘地利를 잘 활용하기 위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지리학은 國都를 정하는 일과 궁궐 조성, 그리고 시대를 내려가면서 聚落과 주택 및 분묘의 조성에서 활용되었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命課學은 日用百事를 위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흉일을 피하고 길일을 선택하기 위한 擇日學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개인의 祿命과 壽夭와 流年運을 예측하기 위한 祿命學, 그리고 한 가지 사안을 지혜롭게 풀기 위한 卜筮學이 발전하였다.
500 여년간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국가발전에 기여해 왔던 조선시대 음양학은 현대 음양학 발전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하였다. 조선시대 天文學 업무의 일부가 중앙기상대와 한국천문연구원으로 이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地理學과 命課學은 현대로 제대로 전승되지 못하였다. 그나마 최근 학계에서 지리학과 명과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날이 확장되고 있는 이러한 연구 분위기에 편승해서, 조선시대 陰陽科와 取才 시험교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 결과에, 다시 현대 음양학을 접목하여 연구한다면 현대 陰陽學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Yin-Yang studies(陰陽學)” which observes astronomy and geography, selects auspicious date for ceremonies of coming-of-age, marriage, funeral and memorial service, and interpret inborn fate of people, is an important subject of research in Kore...
“Yin-Yang studies(陰陽學)” which observes astronomy and geography, selects auspicious date for ceremonies of coming-of-age, marriage, funeral and memorial service, and interpret inborn fate of people, is an important subject of research in Korea from ancient to present day. Especially, Joseon dynasty had implemented laws to administrate "Gwan-Sang-Gam(觀象監)" which was an national institute to systematically research on this field of studies, and to enact the Yin-Yang examination and the recruitment of the intelligent for selecting talented government officials specialized on this field of studies.
Among them, officials of astronomy field were in charge of observing the movement of celestial bodies and its change or disaster; of straightening calender and compiling and distributing almanacs. Officials of geomancy took works that decides capital of nation and site of royal palace, and selects and maintains royal tombs and storage houses of umbilical cords of royal family.
Also, officials of Ming-li field worked for choosing dates of national official events and people's all matters, and predicting future by using its science.
In the period of Three States, for consultation to Kings on various matters of states, Baekjea established "Il-Gwan-Bu(日官部)" and Shilla settled "Ru-Gak-Jeon(漏刻典)." In Goryo dynasty, King Seong-Jong(981?997) established Tae-Bok-Gam(太卜監) and Tae-Sa-Guk(太史局) which were in charge of astronomy, calender, meterological observation and rainfall measurement. And in 958, the ninth year of King Gwang-Jong's reign, civil service examination system had legislated by Ssang Gi(雙冀, ?~?), and in miscellaneous section, specialized officials of divination and geography were chosen.
On July 1392, the first year of King Tae-Jo of Joseon dynasty, national system of civil and military officials defined structure and tasks of Gwan-Sang-Gam, and on August, the "regulation of selection and appointment of officials(入官補吏法)" settled Yin-Yang examination. On 1406, the sixth year of King Tae-Jong, "Ten studies(十學)" including Yin-Yang and Feng-Shui studies had established; and in Gyeonggukdaejeon(經國大典) of King Seong-Jong's time, the regulation on Yin-Yang examination and the recruitment of the intelligent had officially stipulated. In accordance with such government and official system, and academic structure, studies on astronomy, geography and human resource had developed, and people's life also had became prosperous. Especially, it needs to focus on the fact that the highest official of Gwan-Sang-Gam was taken by Yeong-Eui-Jeong, the Prime Minster, that is significantly showing importance of its tasks.
However, Yin-Yang studies of Joseon which continuously researched and contributed for development of the state during 500s years, had lost its opportunity to contribute on development of modern Yin-Yang studies. Some parts of works of astronomy of Joseon fortunately succeeded to Korea Meteorological Administration and Korea Astronomy and Space Science Institute. But, works and science of geomancy and Ming-Li had fail to properly succeed to present. It is very fortunate that recently geomancy and Ming-Li studies are focused and researched in academic circles. However, it is truly unfortunate that the collections of examination materials which used for Yin-Yang examination and the recruitment of the intelligent in Joseon are not correctly investigated, and also general analyzation of examination material were not prosecuted properly. In coping with the present research mood spreading widely by many scholars, the research on Yin-Yang examination of Joseon is urgently required for sound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the culture of Yin-Yang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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