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해위록(南漢解圍錄)》은 석지형(石之珩, 1610~미상)이 27세 때에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 이하 工曹佐郞이라 함)으로 어가(御駕)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겪은 내용을 기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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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전남대학교 대학원, 2013
학위논문(석사) -- 전남대학교 대학원 , 한문고전번역협동과정 , 2013. 2
2013
한국어
495.7 판사항(22)
광주
(The) translation and annotation of Namhanhaewirok(An Explanatory Record on Namhan Mountain Fortress)
134 p. : 삽도 ; 30 cm.
전남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신해진
참고문헌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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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남한해위록(南漢解圍錄)》은 석지형(石之珩, 1610~미상)이 27세 때에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 이하 工曹佐郞이라 함)으로 어가(御駕)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겪은 내용을 기록한 ...
《남한해위록(南漢解圍錄)》은 석지형(石之珩, 1610~미상)이 27세 때에 공부 원외랑(工部員外郞: 이하 工曹佐郞이라 함)으로 어가(御駕)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겪은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 전의 배경에서 시작하여 1636년 12월 9일 청이 조선의 국경을 넘은 날부터, 이듬해 인조(仁祖, 1595∼1649)가 항복한 후 소현세자 등이 청에 압송될 때까지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본 번역 논문인 《남한해위록》은 필사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며 간행된 해는 미상이다. 본 필사본은 1책 37장(74면)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면부터 66면까지는 석지형이 직접 임금을 호종하고 남한산성에서 겪은 병자호란을 기록한 것이고, 그 나머지는 구봉 송익필(宋翼弼, 1534∼1599) 등의 시와 갑인년(1854, 철종5) 11월 29일 수원 유생들이 당시 경상도 관찰사 조석우(曺錫雨, 1810~1878)가 그의 고조부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인 《서주집(西州集)》을 간행한 것에 대해 토죄하기를 청하는 통문(通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인 《남한해위록》은 병자호란 당시 27세의 공조 좌랑이었던 석지형(石之珩)이 남한산성에서 겪은 일을 기록하고, 난이 끝난 이듬해인 1638년(28세, 判官)에 자편(自編)하여 서문과 발문을 지어서 세상에 알린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쓴 서문과 발문에서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간 이후 자신이 목격한 사실들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편찬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은 여진족이 금을 거쳐 청에 이르는 연원을 간략히 밝히고, 이어 정묘호란과 그 이후의 조선과 후금과의 관계 및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 양상을 기록하였다. 이어서 1636년 12월 병자호란의 발발에서부터 이듬해 1637년 11월까지, 왕실이 강화도와 남한산성으로 나누어 피난하게 된 상황, 남한산성에서의 방어와 청군과의 소규모 전투 내용, 남한산성에서의 군량 및 물자의 부족 상황, 청과 조선 사이의 강화회담의 진행 과정과 척화파 주화파 간의 대립 양상, 강화도 함락에 이은 인조의 항복과 환도, 이후 세자와 대군 및 대신들이 청으로 압송되는 모습 등을 시간 순으로 기록하였다. 특히 남한산성에 피난한 기간은 매일매일 날짜를 밝히며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날인 1636년 12월 9일부터 이듬해 3월 6일까지는 12월 12일, 13일과 1월 7일, 8일을 제외하고 매일 썼으나, 그 이후 4월부터는 월별로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병자호란과 그 뒤 사후 처리에 관한 기록은 총 66면 분량이다. 이어서 67면부터 74면까지는 최초 필사자인 이운회(李雲會)가 추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본 논문을 번역함에 《남한해위록》과 관련이 없는 67면부터 74면까지는 제외함을 밝혀 둔다.
병자호란을 기록한 책은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仁祖實錄》과 당시 대표적 척화파인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이 쓴 《南漢紀略》, 최명길의 《丙子封事》, 공조참의 나만갑(羅萬甲)이 쓴 《丙子錄》, 승려였던 법홍(法弘)이 쓴 《南漢紀略》, 석지형이 쓴 《南漢日記》와 《南漢解圍錄》, 그리고 이긍익이 쓴 《練藜室記述》의 제25권, 제26권, 남급(南?)의 《南漢日記》, 어한명(魚漢明)의 《江都日記》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김상헌이 쓴 《남한기략》은 필사본으로 1636년 12월 12일 저자가 고향인 경기도 양주의 석실(石室)에서 변보(變報)를 전문(傳聞)하였을 때부터 다음해 1월 삼전도(三田渡)에서 왕이 항복한 후 환도할 때까지의 사실을 일기체로 서술하였다. 《남한기략》은 산성의 수비 및 척화파(斥和派)·주화파(主和派) 사이의 알력을 척화파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 특징이며, 병자호란 당시 조정의 동향과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갈등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는다. 최명길의 《병자봉사》는 말 그대로 병자년의 상소문을 모은 책으로, 당시 척화파인 김상헌과 주화파인 저자 사이에 서로의 주장을 치열하게 전개해 나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따라서 《남한기략》과 《병자봉사》를 비교하여 살펴보면 당시 척화파와 주화파는 비록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 이해관계가 아닌 나라를 아끼는 같은 마음에서 치열하게 서로의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만갑이 쓴 《병자록》은 《白登錄》, 《丙子南漢日記》라고도 하며, 화의(和議)의 진행과 농성(籠城), 척화파(斥和派)의 화의 반대와 항복 등의 경과를 생생하게 기록하여, 병자호란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승려인 법홍이 쓴 《남한기략》은 필사본으로 1권 1책이며, 주로 남한산성 안에 있는 사찰의 연기(緣起)와 승군설치(僧軍設置) 등의 경위를 밝히기 위하여 쓴 것이다. 그러므로 병자호란과 산성제도(山城制度)·군사제도·승군(僧軍)에 관한 일 등을 알아보는 데 참고가 된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병자호란 관련 기록을 수집하여 모았다는데 의의가 있다. 남급의 《남한일기》는 석지형의 《남한해위록》과 유사하게 병자호란 당시의 기록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고, 더하여 강도관련 기사와 당시의 군권을 장악한 장수들의 공과를 서술한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항복하기 위해 출성할 때 남급도 함께 출성하여 당시 직접 목격한 것을 기록한 부분은 다른 어느 기록보다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석지형이 쓴 《南漢日記》는 청군의 군비상황과 부대배치, 적장의 인적 사항과 당시 남한산성의 전란방어책과 청군의 격퇴상황 등이 면밀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1992년 경기도 광주문화원에서 번역하였다. 어한명(魚漢明)의 《강도일기(江都日記)》는 수운판관이었던 저자가 병자호란 발발 직후 수운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강화도로 들어가려는 피난민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경기도 김포의 통진 나루에서 직접 목격하고 생생히 증언 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강화도 일대에서 벌어진 피난 상황을 직접 기록함으로써 병자호란 당시의 이면 정황을 이해하는데 매우 긴요한 자료가 된다.
《남한해위록》은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 전의 배경에서 시작하여 1636년 12월 9일 청이 조선의 국경을 넘은 날부터, 이듬해 인조(仁祖, 1595∼1649)가 항복한 후 소현세자 등이 청에 압송될 때까지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가 자신이 직접 쓴 서문과 발문에서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간 이후 자신이 목격한 사실들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편찬하였다고 밝히고 있듯이, 그 내용은 가감 없이 왕실이 강화도와 남한산성으로 나누어 피난하게 된 상황, 남한산성에서의 방어와 청군과의 소규모 전투 내용, 남한산성에서의 군량 및 물자의 부족 상황, 청과 조선 사이의 강화회담의 진행 과정과 척화파 주화파 간의 대립 양상, 강화도 함락에 이은 인조의 항복과 환도, 이후 세자와 대군 및 대신들이 청으로 압송되는 모습 등을 시간 순으로 객관적으로 기록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병자호란에 대한 기록은 각기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기록하였으나, 본서처럼 처음부터 병자호란에 대해 사대부 지식인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당시 조정 안팎 관원들의 무능과 기강의 문란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이를 통해 후세에 경계로 삼고자 했던 편찬 의도를 가지고 기록한 것은 그리 많지가 않다. 따라서 본서는 당시 공조 좌랑이었던 당하관의 입장에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병자호란 당시 및 그 전후의 사정과 풍속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적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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