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기는 영산강유역에서 옹관고분, 전방후원분, 석실분 등 백제와 구별되는 다양한 고분이 성행한 시기이다. 이는 이 지역에 재지세력이 독자적인 정치체로 존재하였음을 방증한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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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기는 영산강유역에서 옹관고분, 전방후원분, 석실분 등 백제와 구별되는 다양한 고분이 성행한 시기이다. 이는 이 지역에 재지세력이 독자적인 정치체로 존재하였음을 방증한다. 이 ...
5∼6세기는 영산강유역에서 옹관고분, 전방후원분, 석실분 등 백제와 구별되는 다양한 고분이 성행한 시기이다. 이는 이 지역에 재지세력이 독자적인 정치체로 존재하였음을 방증한다. 이 시기에 영산강 상류에서는 22기의 토기가마가 군집한 대단위 생산유적인 광주 행암동유적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대개 고분 출토품으로, 영산강유역 세력의 실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본고는 광주 행암동 토기가마의 구조와 토기를 분석하여 편년을 설정하고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생산체계를 추정해 보았다. 크게 3기로 구분되며 구조와 토기에 따라 세분이 가능하다.
Ⅰ기는 토기가마가 초축되는 시기로 5세기 중엽∼6세기 초엽으로 편년된다. Ⅰ-1기에 해당되는 4ㆍ5ㆍ6호 토기가마는 소성부 바닥의 직선형과 계단형, 연도부의 수직형과 계단형 등 다양한 구조가 확인된다. 토기는 각각의 가마마다 주요 출토 기종이 다르며, 제작기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또한 가마별로 동일한 형식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은 토기가마를 각기 따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 제작 및 소성 방식을 고수하는 장인 및 집단이 각각 따로 토기가마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Ⅰ-2기는 1호와 2호 토기가마가 해당된다. 이 중 2호 토기가마는 유일하게 평지에 축조되었으며 다른 가마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기종인 송풍관이 출토되었다. 특히 행암동유적 주변의 향등유적에서는 단야 공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어 주목된다.
Ⅱ기는 행암동 토기가마가 성행하는 시기로 5세기 후엽에서 6세기 중엽으로 편년된다. Ⅱ-1기는 2지구 토기가마군으로, 9기의 토기가마가 집중되어 위치한다. 구조는 수직 연소식 및 측벽단이 확인된다. 측벽단은 前 시기의 1지구 토기가마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구조이다. 또한 前 시기 토기가마와 달리 2지구 토기가마군은 한 차례의 소성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출토 토기를 살펴보면 가마별로 제작기법이나 기형이 유사하며, 특정 가마에서 특정 기종이 확인된 경우도 없다. 9기의 가마가 동시에 사용ㆍ관리ㆍ통제된 것으로 보인다.
Ⅱ-2기는 3지구의 16∼22호 토기가마가 해당된다. 구조는 측벽단, 수직 유단식의 연소부, 급격히 좁아지는 아궁이 등 다양한 요소가 확인된다. 토기는 가마별로 주요 출토 기종의 차이가 확인된다. 전반적으로 확인되는 단경호의 경우, 1, 2지구 출토품에 비해 구연 내면에 단이 확인되는 등 구연부에 다른 요소가 더 추가되며, 구연부 직경이 작아지고, 문양에 있어 승문이 확인되지 않고, 문양 타날 후 물손질로 지워지는 것이 확인된다.
Ⅲ기는 행암동 토기가마의 쇠퇴기로, 3호 토기가마가 해당되며 6세기 중엽으로 편년된다. 구조는 화구적석이라는 새로운 시설이 확인된다. 토기는 주로 심도가 낮은 개배와 함께 삼족기 대각이 출토되었다.
영산강유역의 토기가마는 대체적으로 소규모 생산체계에서 대규모 전문생산체계로 변화되는데, 행암동유적은 대규모 전문생산체계에서 소규모 생산체계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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