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 명종과 선조 때에 활동한 동원(東園) 김귀영(金貴榮)의 시・문을 모아 만든 『동원선생문집(東園先生文集)』에서 비지류(碑誌類)만을 뽑아 번역한 논문이다. 동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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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명종과 선조 때에 활동한 동원(東園) 김귀영(金貴榮)의 시・문을 모아 만든 『동원선생문집(東園先生文集)』에서 비지류(碑誌類)만을 뽑아 번역한 논문이다. 동원은 ...
본 논문은 조선 명종과 선조 때에 활동한 동원(東園) 김귀영(金貴榮)의 시・문을 모아 만든 『동원선생문집(東園先生文集)』에서 비지류(碑誌類)만을 뽑아 번역한 논문이다. 동원은 명종 2년 28세의 나이로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고 선조 때에 좌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당시로서는 정치적인 면과 학문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었지만 노년에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역신(逆臣)의 몸이 되어 동원이 남긴 정치적인 업적들이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였다. 더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가문은 멸문의 길을 겪게 되고 동원이 남긴 글마저 병화(兵禍)를 겪으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동원선생문집』은 동원이 죽은 지 300여 년이 지나 8대손 김우현(金禹鉉)이 『조선왕조실록』과 야사에 전하는 글들을 모아 만들게 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글은 동원이 남긴 글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동원의 학문과 교우관계 정치적인 공적을 살피기에는 충분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문집 전체를 번역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역량의 한계로 우선 조선 전기의 사림정치(士林政治)와 초기 붕당정치(朋黨政治)의 변천을 살피고, 동원의 교우관계를 엿볼 수 있는 비지류를 뽑아 번역하였다.
『동원선생문집』에 실린 비지류는 「황산대첩비(黃山大捷碑)」를 비롯하여 총 10편이고, 동원의 행장(行狀) 1편이다. 번역은 먼저 원문의 교감・주석을 하고 이를 토대로 번역하였다. 옛 문헌들은 육필로 필사하기 때문에 몇 번의 필사과정에서 모양이 비슷한 한자들은 간혹 다른 글자로 쓰이는 수가 많고 이것을 목판에 새기는 과정에서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더구나 『동원선생문집』같은 경우는 동원이 죽고 300년이나 지나서 간행되었기 때문에 누락된 부분도 많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오자와 탈자도 있었으리라고 여겨져 번역에 앞서 우선 신중히 교감하였다. 교감은 『동원선생문집』에 실린 비지류를 저본(底本)으로 하여 『조선금석문총람(朝鮮金石文總攬)』과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및 각 문집 중에 전하는 비지류를 대조하여 이동점(異同點)을 밝혔다. 주석은 인물・사건・지명・숙어 등을 상세히 주석하였고, 번역은 직역을 위주로 하였다.
동원 김귀영은 아직까지 학계에서 거론된 적이 없었던 인물이다. 그러므로 동원의 학문과 교유관계를 알리는 데 본고가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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