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20년대 전반기 식민지 조선에서 전개된 ‘문화운동’에 참여했던 개신유학자 설태희(1875-1940)에 관한 연구다. 설태희는 계몽운동에 참여한 이래 대동사상을 수용, 조선물산장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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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高麗大學校, 2004
2004
한국어
911.06 판사항(4)
951.903 판사항(21)
서울
76p.; 2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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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20년대 전반기 식민지 조선에서 전개된 ‘문화운동’에 참여했던 개신유학자 설태희(1875-1940)에 관한 연구다. 설태희는 계몽운동에 참여한 이래 대동사상을 수용, 조선물산장려회 등에서 활동했다. 필자가 설태희에 주목하는 이유는 ‘문화운동’에 대한 기존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함이다. 선행연구들은 ‘문화운동’을 동일한 정치사상 아래 전개된 것으로, 일본유학을 마치고 서구근대사상을 수용한 ‘신지식층’이 독립역량에 회의를 품고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한 실력양성운동이라 평가했다. 내부의 이념차를 거론한 연구들의 경우도 일제 통치 문제와 어떠한 자본주의를 건설할 것인가 라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보았지만 그 차이는 앞선 연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설태희는 첫째, 서구근대사상에 기반하지 않은 개신유학자였고 둘째,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동사상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의 의의를 받아들였다. 다만 식민지 조건 하에서 민족의 자작자급이 선행되어야 하고 계급투쟁에 의한 변화 보다는 소비조합 및 생산력증대를 통한 점진적 사회개조를 주장했다. 즉 광의의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적 민족주의’ 경향을 보인 것이다. 설태희의 존재는 ‘문화운동’ 내 이념차가 자본주의 근대 문명 지향으로 획일화될 수 없음과 식민지 민족운동 세력 분류에 유의해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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