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과 조선남성의 '일선결혼' 연구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T12487287

    • 저자
    • 발행사항

      춘천 : 강원대학교 대학원, 2011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江原大學校 大學院 , 史學科 , 2011. 8

    • 발행연도

      2011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KDC

      911.05 판사항(5)

    • 발행국(도시)

      강원특별자치도

    • 기타서명

      (A) Study on The Formation of Japanese Communities in Chosen.and Intermarriage of Chosen Males

    • 형태사항

      69 L. ; 26 cm

    • 소장기관
      • 강원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인용문이 복사되었습니다.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10년 일본에 의해 조선이 강제병합 당하면서 제국주의체제 아래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 틀을 깨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즉 ‘일선결혼’을 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고는 ‘일선결혼’이 당시 보통의 결혼과 비교하여 많은 수치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에서, 특히 1938년 이후 조선남성과 일본여성 사이의 결혼은 일본남성과 조선여성의 결혼과는 달리 꾸준한 증가세였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것이 의미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일제식민지 경제체제 아래 각계각층의 일본인들이 대거 조선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조선인 사회와는 상당정도 분리되어 조선인에게 무관심, 무지했던 재조일본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특히 조선남성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이원적인 관계 아래 사회진출에 있어서 대우, 노동시간, 임금면에서 재조일본인 사회로부터 차별받았다. 더욱이 조선인들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일본화’까지 강요받았다. 하지만 당시 일본인 본위의 근대 도시의 등장과 성장은 상업․교통업, 공무(公務)․자유업에 종사하게 된 도시 거주 조선인들의 수치를 증가시켰다. 이처럼 일본이라는 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조선남성들에게 재조일본여성의 존재는 결혼에 있어서 ‘고등교육과 사회진출’이라는 측면에서 조선여성과의 ‘신구(新舊)’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일선결혼’은 병합초기 정책적으로 이용․선전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강제병합의 현실적 명분을 위해 조선과 일본의 인종적 근친성 아래 일선동조론 등을 등장시켰으며, 특히 잡종강세론은 일본 우위적 입장에서 ‘일선결혼’의 존립 근거로 작용했다. 또한 조선총독부는 병합초기부터 조선인의 효율적 지배를 위해 조선민적법을 개정해왔다. 특히 3.1운동이후에는 조선인의 회유라는 목적 아래 서둘러 ‘일선결혼’을 법적으로 공인시켰다.
    1930년대 후반, 전시파시즘체제 아래 조선총독부는 조선남성들의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일선결혼’을 통해 일본인과 같아질 수 있는 존재로 조선인을 이미지화시켜나갔으며, ‘권리부여․공리성․비차별화’를 앞세워 조선남성들이 일본국민 의식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도록 선전했다. 이처럼 조선총독부는 정책적으로 폐쇄적인 재조일본인 사회에 그 틈을 만들었다. 또한 1930년대 재조일본인 2세들의 등장은 재조일본인 사회에 일종의 세대교체를 부여함으로써 부모세대와는 다른 ‘개인의지 발현’이라는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형성시켰다. 이로써 민족간 갈등에서도 한 발짝 물러나게 되어 그만큼 ‘일선결혼’성립 여지도 높아질 수 있게 됐다. ‘전통을 모르기 때문에 참으로 올바른 것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인습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기 때문에 비판과 취사선택이 가능하다.’라는 재조일본인 2세의 언사는 ‘정책에 일조했다는 관념은 없었습니다. 단지 일본에 살았으니깐 집안 좋은 사람만나 좋은 인연을 만났습니다.’라는 ‘박기용’과 ‘구니다 후사코’의 결혼동기와 더불어 일본인과 조선인 그 경계선에 맞닿아 있었던 일선 병합 2세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재조일본인 사회가 형성되어지고 그 속에서 재조일본여성과 조선남성의 부각은 전시체제기 내에서 일선 병합 2세들의 성향에 힘입어 ‘일선결혼’을 발생․증가시켰다.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남성들이 재조일본인 사회로 점진적으로 수용되어졌음을 의미해준다.
    번역하기

    1910년 일본에 의해 조선이 강제병합 당하면서 제국주의체제 아래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 틀을 깨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즉 ‘일선...

    1910년 일본에 의해 조선이 강제병합 당하면서 제국주의체제 아래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 틀을 깨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즉 ‘일선결혼’을 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고는 ‘일선결혼’이 당시 보통의 결혼과 비교하여 많은 수치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증가했다는 점에서, 특히 1938년 이후 조선남성과 일본여성 사이의 결혼은 일본남성과 조선여성의 결혼과는 달리 꾸준한 증가세였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고 그것이 의미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일제식민지 경제체제 아래 각계각층의 일본인들이 대거 조선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조선인 사회와는 상당정도 분리되어 조선인에게 무관심, 무지했던 재조일본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특히 조선남성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이원적인 관계 아래 사회진출에 있어서 대우, 노동시간, 임금면에서 재조일본인 사회로부터 차별받았다. 더욱이 조선인들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일본화’까지 강요받았다. 하지만 당시 일본인 본위의 근대 도시의 등장과 성장은 상업․교통업, 공무(公務)․자유업에 종사하게 된 도시 거주 조선인들의 수치를 증가시켰다. 이처럼 일본이라는 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조선남성들에게 재조일본여성의 존재는 결혼에 있어서 ‘고등교육과 사회진출’이라는 측면에서 조선여성과의 ‘신구(新舊)’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일선결혼’은 병합초기 정책적으로 이용․선전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강제병합의 현실적 명분을 위해 조선과 일본의 인종적 근친성 아래 일선동조론 등을 등장시켰으며, 특히 잡종강세론은 일본 우위적 입장에서 ‘일선결혼’의 존립 근거로 작용했다. 또한 조선총독부는 병합초기부터 조선인의 효율적 지배를 위해 조선민적법을 개정해왔다. 특히 3.1운동이후에는 조선인의 회유라는 목적 아래 서둘러 ‘일선결혼’을 법적으로 공인시켰다.
    1930년대 후반, 전시파시즘체제 아래 조선총독부는 조선남성들의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일선결혼’을 통해 일본인과 같아질 수 있는 존재로 조선인을 이미지화시켜나갔으며, ‘권리부여․공리성․비차별화’를 앞세워 조선남성들이 일본국민 의식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도록 선전했다. 이처럼 조선총독부는 정책적으로 폐쇄적인 재조일본인 사회에 그 틈을 만들었다. 또한 1930년대 재조일본인 2세들의 등장은 재조일본인 사회에 일종의 세대교체를 부여함으로써 부모세대와는 다른 ‘개인의지 발현’이라는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형성시켰다. 이로써 민족간 갈등에서도 한 발짝 물러나게 되어 그만큼 ‘일선결혼’성립 여지도 높아질 수 있게 됐다. ‘전통을 모르기 때문에 참으로 올바른 것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인습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기 때문에 비판과 취사선택이 가능하다.’라는 재조일본인 2세의 언사는 ‘정책에 일조했다는 관념은 없었습니다. 단지 일본에 살았으니깐 집안 좋은 사람만나 좋은 인연을 만났습니다.’라는 ‘박기용’과 ‘구니다 후사코’의 결혼동기와 더불어 일본인과 조선인 그 경계선에 맞닿아 있었던 일선 병합 2세들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재조일본인 사회가 형성되어지고 그 속에서 재조일본여성과 조선남성의 부각은 전시체제기 내에서 일선 병합 2세들의 성향에 힘입어 ‘일선결혼’을 발생․증가시켰다.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남성들이 재조일본인 사회로 점진적으로 수용되어졌음을 의미해준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s Chosen was absorbed by force into Japan in 1910, there was a dominance and subordination-relationship between Chosen people and Japanese. But, those who broke the mold emerged. That is, it was people that had an intermarriage. In this respect, this study looked into the reason for steady increase of an intermarriage between Chosen males and Japanese females since 1938 and its meaning.
    As a number of Japanese from different groups moved to Chosen since Japan’s annexation of Korea, Japanese communities quite separated from Chosen society were formed in Chosen. Along with this, though Chosen's people were treated and got wages with discrimination, the number of Chosen males in cities who came to be engaged in commerce, transportation, government affairs and a liberal profession was increased. To Chosen males who were getting familiar with Japan in this way, Japanese females in Chosen brought the conflict of the old and the new between Chosen's females and Japanese females in their marriage.
    ‘Intermarriage’ was used and encouraged for the political purpose in early annexation.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presented the discourse of same genealogy between Japan and Chosen as the cause of annexation and asserted hybrid vigor as a ground of intermarriages. In addition, Japan legalized an intermarriage in order to placate Chosen people in haste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Especially, They were to attract voluntary collaborating for war from Chosen males through intermarriages during Japanese Fascist Period in the late 1930s. Especially, at that time, as appearance of a second-generation of settling in Chosen-Japanese supported conditions for intermarriage by giving the meaning of the generational shift to Japanese communities in Chosen(Korea) and forming their own identity, revelation of individual will. In conclusion, after formation of Japanese communities in Chosen, standing out of Japanese females in Chosen and Chosen males in it, with a generation born after the Korea-Japan annexation, generated and increased an intermarriage. It meant that Chosen males were accepted gradually into Japanese communities in Chosen.
    번역하기

    As Chosen was absorbed by force into Japan in 1910, there was a dominance and subordination-relationship between Chosen people and Japanese. But, those who broke the mold emerged. That is, it was people that had an intermarriage. In this respect, this...

    As Chosen was absorbed by force into Japan in 1910, there was a dominance and subordination-relationship between Chosen people and Japanese. But, those who broke the mold emerged. That is, it was people that had an intermarriage. In this respect, this study looked into the reason for steady increase of an intermarriage between Chosen males and Japanese females since 1938 and its meaning.
    As a number of Japanese from different groups moved to Chosen since Japan’s annexation of Korea, Japanese communities quite separated from Chosen society were formed in Chosen. Along with this, though Chosen's people were treated and got wages with discrimination, the number of Chosen males in cities who came to be engaged in commerce, transportation, government affairs and a liberal profession was increased. To Chosen males who were getting familiar with Japan in this way, Japanese females in Chosen brought the conflict of the old and the new between Chosen's females and Japanese females in their marriage.
    ‘Intermarriage’ was used and encouraged for the political purpose in early annexation.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presented the discourse of same genealogy between Japan and Chosen as the cause of annexation and asserted hybrid vigor as a ground of intermarriages. In addition, Japan legalized an intermarriage in order to placate Chosen people in haste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Especially, They were to attract voluntary collaborating for war from Chosen males through intermarriages during Japanese Fascist Period in the late 1930s. Especially, at that time, as appearance of a second-generation of settling in Chosen-Japanese supported conditions for intermarriage by giving the meaning of the generational shift to Japanese communities in Chosen(Korea) and forming their own identity, revelation of individual will. In conclusion, after formation of Japanese communities in Chosen, standing out of Japanese females in Chosen and Chosen males in it, with a generation born after the Korea-Japan annexation, generated and increased an intermarriage. It meant that Chosen males were accepted gradually into Japanese communities in Chosen.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I. 서 론 ···················································································1
    • II.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과 조선남성······························6
    • 1.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6
    • 2. 근대 직업종사자 조선남성의 존재·······················15
    • III. ‘일선결혼’에 대한 인식의 추이····································24
    • I. 서 론 ···················································································1
    • II.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과 조선남성······························6
    • 1. 재조일본인 사회의 형성········································6
    • 2. 근대 직업종사자 조선남성의 존재·······················15
    • III. ‘일선결혼’에 대한 인식의 추이····································24
    • 1. 1910년대 정책적 전개···········································24
    • 2. 1920년대 정책적 전개··········································29
    • IV. 1938년 이후 조선남성의 ‘일선결혼’·······························33
    • 1. 거시적 차원의 ‘일선결혼’·······································33
    • 2. 미시적 차원의 ‘일선결혼’·······································43
    • Ⅴ. 결 론 ·····························································54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