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영산강유역의 석실묘 가운데 6세기 중엽의 백제 사비기부터 고려에 이르는 석실묘의 전개과정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지역 석실묘에 대한 연구는 영산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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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전남대학교 대학원, 2011
2011
한국어
301 판사항(22)
광주
(A) Study of Stone Chamber Tombs around Yeongsan River from Baek-je to Korea Dynasty
ii, 92 p. : 삽도 ; 30 cm.
전남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임영진
참고문헌 : p.8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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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영산강유역의 석실묘 가운데 6세기 중엽의 백제 사비기부터 고려에 이르는 석실묘의 전개과정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지역 석실묘에 대한 연구는 영산강식석실묘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으며 각 시기별로 한정되어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횡혈식과 횡구식으로 구분되는 석실묘를 전체적인 평면형태, 전벽의 축조방법, 바닥 시설 등을 기준으로 다시 세부형식으로 구분한 후 백제 사비기부터 고려시대까지 석실묘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검토 결과 영산강유역권 백제 사비기이후 횡혈식석실묘의 형식별 변천 과정은 ⅠA식→ⅠB식, Ⅱ식, Ⅲ식→ⅣA식, ⅣB식→ⅠC식, ⅣC식 순으로 파악 되었다. 백제식 석실묘는 6세기 중엽으로 편년되는 ⅠA식이 영산강 중류지역인 복암리 일대를 중심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복암리 3호분 5호묘에서 출토되는 은화관식이나 흥덕리 석실에서 출토된 은화관식 등으로 보아 영산강유역은 비교적 평화적인 방법으로 백제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영산강 중류지역이 중심세력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6세기 후엽경이 되면 ⅠA식 석실묘가 영산강 북서부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ⅠB식, Ⅱ식, Ⅲ식의 새로운 형식의 횡혈식석실묘가 등장하게 된다. 7세기에는 나주 복암리 일대에 Ⅳ식 횡혈식 석실묘가 등장하는데 영산강 북서부 지역을 비롯하여 해남과 신안 일대에도 백제 사비기 석실묘가 확인된다. ⅠC식, ⅣC식 석실묘는 Ⅰ식과 Ⅳ식 석실묘의 퇴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보이는데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고려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횡구식석실묘는 Ⅰ식이 사비기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6세기 중엽경 복암리 일대를 중심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횡구Ⅱ식 석실묘가 축조되며 고려시대에는 현실 바닥에 아무런 시설이 없는 횡구Ⅲ식 석실묘가 주로 축조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광주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 상류지역에 석실묘가 주로 분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백제 사비기 석실묘가 주로 확인되는 영산강 중류지역과 일정한 분포권의 차이가 확인된다. 이는 광주에 통일신라시대의 9주 5소경가운데 하나인 무진주가 설치되었고 그에 따라 영산강유역권의 중심지가 영산강 중류지역에서 광주를 중심으로 하는 상류지역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영산강유역의 석실묘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볼 때 고려시대(13세기 무렵)까지 축조되다가 점차 회격묘, 토광묘 등으로 대체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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