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우국지사이자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수당 이남규(1855~1907)의 상소문 14편을 연구 범위로 하여 그 내용과 논리 전개 및 설득력, 표현과 수사 양상을 살펴 문장가로서의 수당의 면모를 ...
본고는 우국지사이자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수당 이남규(1855~1907)의 상소문 14편을 연구 범위로 하여 그 내용과 논리 전개 및 설득력, 표현과 수사 양상을 살펴 문장가로서의 수당의 면모를 밝히고자 했다.
수당이 상소문을 작성한 배경은 구한말의 시대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93년의 「척동서사학소」를 시작으로 하여, 1894년의 갑오왜란과 갑오경장 당시에는 동학란의 발생 원인이 우리 조정에 있다는 것을 밝힌 「논비요급왜병입도소」와 일본과의 절교에 이어 전쟁도 불사하자는 「청절왜소」를 올렸다. 이때 수당은 외세의존적인 갑오경장에 반대하여 영흥부사로 출배당하게 된다. 영흥부사 부임 이후에는 광산 철폐논란을 다룬 「인광세자핵소」를 작성하였고,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청복왕후위호토적복수소」와 이어 「재영흥이폐후칙명불봉사자핵소」를 올리고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896년 1월에 수당은 안동의병의 위무를 위해 안동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오히려 안동의병의 오해를 받아 관찰사 부임이 막히는 사이 일본군의 ‘안동부 방화 사건’이 일어난다. 우여곡절 끝에 안동에 부임하여 사태 수습을 마친 수당은, 이 참극을 「사안동관찰사소」를 통해 고발하고 사직했다. 이후 수당은 고향에 은거하다가 1898년부터 이듬해까지 짧게나마 중추원 의관으로 있으면서, 노륙법과 연좌제 부활을 주장하는 「중추원연명소」를 올렸고, 비슷한 시기에 「논민회소」와 「논관민공동회소」를 통해 독립협회를 비판하고 구제도 옹호와 근왕주의적 면모를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1900년에는 함경남북도안렴사가 되어 덕원부윤 윤치호와 영흥군수 이윤재를 탄핵했는데, 도리어 수당이 모함을 받게 되면서 그 직책을 다 마친 후 자핵소를 제출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더 이상 관직에 나서지 않았다. 그 후 두 차례의 사직소인 「사특진관소」를 올렸고, 1905년 乙巳條約 때 비분강개한 어조로 마지막 상소인 「청토적소」를 올렸다.
수당 상소문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國體 回復과 繕甲治兵의 强調’는, 일본에게 모욕당하고 구속당하는 국체 훼손 상황에서 저들 일본을 논리적으로 비판한 뒤, 국체 회복을 강조하고 선갑치병의 적극적 대응을 주장한 것이다. 둘째 ‘伸王法과 正倫綱의 力說’은 국가의 혼란을 꾀하는 동학과 서학의 무리를 배척하자는 주장과, 동학란에 연루된 부패관리들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여 법과 기강을 바로잡자는 내용이다. 셋째 ‘碩果不食과 憂患意識’에서는 외세침탈의 민족수난과 암흑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과 신하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우환의식을 지녔고 임금에게도 이를 권면하였다.
수당 상소문의 논리 전개 과정 및 설득력을 획득하는 요소는 네 가지 항목으로 살필 수 있다. 첫째 ‘문단간의 유기적 구성’에서는, 주제 구현과 설득력 확보를 위한 문단간의 유기적인 구성이 돋보인 것을 확인했다. 둘째 ‘논리와 감정의 조화’에서는, 논리적 접근과 감정적 접근이 조화를 이뤄 설득력을 높이는 경우를 살폈다. 셋째 ‘결론 도출의 양상’에서는 결론을 도출하고 그것을 강화시키는 방식 등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 ‘직접 결론 도출’과 ‘자각을 통한 결론 유도’, ‘반대 경우 제시로 결론 강화’ 등이 있음을 밝혔다. 넷째 ‘공평하고 균형된 시각’에서는 우리 내부의 모순이나 잘못도 가감 없이 지적하고 비판하는 시각을 보여줌으로써, 설득력을 얻는 동시에 자성의 자세를 가지도록 촉구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수당 상소문의 표현과 수사 양상은 여섯 가지 항목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비유를 통한 뚜렷한 형상화’에서는 ‘동물 비유’와 ‘특정 국면의 비유’를 통해 각각 부정적 인물을 표현하거나, 독자로 하여금 복잡한 상황을 쉽게 이해하고 판단하도록 했음을 확인했다. 둘째 ‘행위 대조를 통한 인물 비판’에서는 부정적 인물들과 긍정적 인물의 행위를 대조함으로써 부정적 인물을 비판하는데, 그 대상은 ‘일본 사신, 무능한 우리 신하, 부정한 관리, 나라 팔아먹은 도적들’이 대부분임을 살필 수 있었다. 셋째 ‘의문문의 효과적 사용’은 ‘직언 및 직간, 울분 토로, 충정 강조, 동의를 구함, 자문자답’의 다섯 가지 경우로 분류하여 이들 의문문이 각각의 상황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넷째 ‘悲壯한 逆說 표현’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울림과 파장이 오래가는 표현으로, 모두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돌보지 않는 상황에서 쓰였음을 확인했다. 다섯째 ‘인용문의 활용’은 ‘반박을 위한 인용’과 ‘입지의 강화를 위한 인용’, ‘가상 인용’ 등 세 가지 경우로 쓰인 것을 확인했다. 여섯째 ‘典故의 多樣한 運用’은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는 ‘전제로 활용, 주장의 근거로 삼은 경우, 분발과 각성 촉구, 문단의 주지와 핵심어 역할, 동일한 상황 제시, 비판’ 등의 기능과 효과를 지닌 것을 확인하였다.
이상의 연구로 볼 때, 수당 이남규는 문장가의 명망에 걸맞게 14편의 상소문에서 ‘짜임새 있는 유기적인 문단 구성’, ‘논리와 감정의 조화’, ‘결론을 도출하고 강화시키는 여러 방식’, ‘공평하고 균형된 시각’ 등으로 논리 전개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비유와 대조, 의문문, 역설, 인용문, 전고의 활용’ 등 여러 표현과 수사를 다양하고 적절하게 구사함으로써 문학성을 획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