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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적부에 나타난 1910년대 통영공립보통학교의 학생생활 = The School Lives of the Students Attending Tongyeong Public General School in the 1910s Shown through the School Regi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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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에서는 2010년 현재 설립된 지 102년이 되는 통영공립보통학교(경상남도 통영시 무전3길 57번지, 현 통영초등학교)의 학적부를 분석하여 1910년대 일제시대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먼저 통영공립보통학교는 통영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학교로 ‘진남공립보통학교’라는 교명으로 출발하였는데, 1915년 이후 통영공립보통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통영공립보통학교에는 일제시대 학적부가 잘 남아 있다. 그 중 인적사항을 비롯한 신상정보가 뚜렷하게 기재되어 있는 1912년부터 1916년까지 5년간의 학적부를 분석하였다. 이 학교의 학적부는 입학연도보다는 졸업연도에 맞춰서 학적부 자료가 한 데 묶여 있으며, 일정한 기준없이 학적부 자료가 배열되어 있다.
      다음으로 통영공립보통학교의 인적사항을 살펴보면, 입학연령에서는 전국적인 입학연령 평균보다 2세 높은 13.40세의 학생들이 주로 입학하였다. 그리고 50% 이상의 학생들이 집안에서 장남이거나 장녀였다. 또한 학생들의 주거분포를 보면, 1910년대 통영지역 내 유일한 보통학교였지만 주로 학교 소재지 부근의 학생들이 이 학교에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910년대에는 보통학교보다는 서당이나 사립학교가 많이 존재하여 굳이 보통학교가 아니더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대다수가 사숙의 형태로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능력도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는데, 보호자의 직업을 통해 알 수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농업에 종사하는 보호자의 비율도 낮은 편이었고 상업이 발달한 지역의 특성 때문에 상공업에 종사하는 보호자가 많았다.
      학업성적 부분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학년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수신, 일본어, 조어급 한문, 산술, 도화, 체조, 창가는 공통적으로 학습하였다. 석차란에 등수가 기재되어 있는데, 여학생과 남학생은 구분하였다. 성적표기는 10점 만점제였는데, 10점 만점을 받은 학생수가 적은 것으로 보아 만점을 받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연도별로 차이가 조금씩 나긴 하지만 대체로 8점에서 6점의 점수를 획득했으며, 모든 과목에서 8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상위권을 형성하였다. 과목성적에 있어서 1학년에서는 조선어 성적이 일본어보다 좋은 반면, 4학년에서는 일본어 성적이 조선어보다 좋아졌는데, 이것은 일제가 강조한 일본어 보급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활태도와 출결사항을 보면, 학적부상의 조행표시는 연도마다 통일되지 않고 여러 가지 기준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대체로 중간 정도의 조행점수를 받았다. 이 조행은 특별한 시험이 아닌 평소 생활태도를 관찰하여 기록하였던 만큼 담임교사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한편 200일 이상의 수업일수로 규정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250일 이상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교육을 받고자 하는 열의는 높았으나 결석을 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중도에서 학교교육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사나 전학, 병으로 인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빈곤이나 가사조력 때문이었다.
      이상과 같이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적부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이 당시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입학생 중 70~80%의 학생들이 진급하여 졸업하였다.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낸 사람들은 주로 일제의 교육정책에 적극 참여해야 했던 관공서의 관리들이나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통영이라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통영은 전통적인 기반이 약하고 일본과 가까워 다른 지역보다 일제의 새로운 제도나 정책이 침투하기에 용이하였다. 게다가 통영경제를 일본인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기반이 농업이 아닌 상공업에 있었던 일부 사람들은 거기에 편승하여 식민지 교육제도를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처럼 1910년대 일제의 교육정책은 통영이라는 지역의 특성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수용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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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에서는 2010년 현재 설립된 지 102년이 되는 통영공립보통학교(경상남도 통영시 무전3길 57번지, 현 통영초등학교)의 학적부를 분석하여 1910년대 일제시대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

      본 논문에서는 2010년 현재 설립된 지 102년이 되는 통영공립보통학교(경상남도 통영시 무전3길 57번지, 현 통영초등학교)의 학적부를 분석하여 1910년대 일제시대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먼저 통영공립보통학교는 통영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학교로 ‘진남공립보통학교’라는 교명으로 출발하였는데, 1915년 이후 통영공립보통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통영공립보통학교에는 일제시대 학적부가 잘 남아 있다. 그 중 인적사항을 비롯한 신상정보가 뚜렷하게 기재되어 있는 1912년부터 1916년까지 5년간의 학적부를 분석하였다. 이 학교의 학적부는 입학연도보다는 졸업연도에 맞춰서 학적부 자료가 한 데 묶여 있으며, 일정한 기준없이 학적부 자료가 배열되어 있다.
      다음으로 통영공립보통학교의 인적사항을 살펴보면, 입학연령에서는 전국적인 입학연령 평균보다 2세 높은 13.40세의 학생들이 주로 입학하였다. 그리고 50% 이상의 학생들이 집안에서 장남이거나 장녀였다. 또한 학생들의 주거분포를 보면, 1910년대 통영지역 내 유일한 보통학교였지만 주로 학교 소재지 부근의 학생들이 이 학교에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910년대에는 보통학교보다는 서당이나 사립학교가 많이 존재하여 굳이 보통학교가 아니더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대다수가 사숙의 형태로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능력도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는데, 보호자의 직업을 통해 알 수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농업에 종사하는 보호자의 비율도 낮은 편이었고 상업이 발달한 지역의 특성 때문에 상공업에 종사하는 보호자가 많았다.
      학업성적 부분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학년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수신, 일본어, 조어급 한문, 산술, 도화, 체조, 창가는 공통적으로 학습하였다. 석차란에 등수가 기재되어 있는데, 여학생과 남학생은 구분하였다. 성적표기는 10점 만점제였는데, 10점 만점을 받은 학생수가 적은 것으로 보아 만점을 받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연도별로 차이가 조금씩 나긴 하지만 대체로 8점에서 6점의 점수를 획득했으며, 모든 과목에서 8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상위권을 형성하였다. 과목성적에 있어서 1학년에서는 조선어 성적이 일본어보다 좋은 반면, 4학년에서는 일본어 성적이 조선어보다 좋아졌는데, 이것은 일제가 강조한 일본어 보급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활태도와 출결사항을 보면, 학적부상의 조행표시는 연도마다 통일되지 않고 여러 가지 기준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대체로 중간 정도의 조행점수를 받았다. 이 조행은 특별한 시험이 아닌 평소 생활태도를 관찰하여 기록하였던 만큼 담임교사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한편 200일 이상의 수업일수로 규정되어 있었는데 대체로 250일 이상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교육을 받고자 하는 열의는 높았으나 결석을 하지 않고 학교에 다니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중도에서 학교교육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사나 전학, 병으로 인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빈곤이나 가사조력 때문이었다.
      이상과 같이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적부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이 당시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입학생 중 70~80%의 학생들이 진급하여 졸업하였다.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낸 사람들은 주로 일제의 교육정책에 적극 참여해야 했던 관공서의 관리들이나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통영이라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통영은 전통적인 기반이 약하고 일본과 가까워 다른 지역보다 일제의 새로운 제도나 정책이 침투하기에 용이하였다. 게다가 통영경제를 일본인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기반이 농업이 아닌 상공업에 있었던 일부 사람들은 거기에 편승하여 식민지 교육제도를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처럼 1910년대 일제의 교육정책은 통영이라는 지역의 특성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수용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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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1
      • Ⅱ. 통영공립보통학교와 학적부 5
      • 1. 통영공립보통학교의 설립과 변화 5
      • 2.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적부의 기재내용 10
      • Ⅲ. 학생의 실태 18
      • Ⅰ. 머리말 1
      • Ⅱ. 통영공립보통학교와 학적부 5
      • 1. 통영공립보통학교의 설립과 변화 5
      • 2. 통영공립보통학교 학적부의 기재내용 10
      • Ⅲ. 학생의 실태 18
      • 1. 입학생의 연령과 교육경험 18
      • 2. 형제관계 23
      • 3. 재학생의 주거분포 25
      • 4. 보호자의 직업 30
      • Ⅳ. 학생의 학교생활 36
      • 1. 학업성적 36
      • 2. 생활태도 44
      • 3. 출결사항 47
      • Ⅴ. 맺음말 54
      • 參考文獻 57
      • ABSTRACT 60
      • 부록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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