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창극은 그 본래의 판소리적 특성이 점차 약화되고, 외래 사실주의 연극의 영향이 매우 강화되었다. 창극은 처음부터 대화 중심의 서구 무대극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
오늘날의 창극은 그 본래의 판소리적 특성이 점차 약화되고, 외래 사실주의 연극의 영향이 매우 강화되었다. 창극은 처음부터 대화 중심의 서구 무대극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서구적 사실주의 연극 형식이 되기 쉽고, 한편으로는 판소리가 음악으로서의 ‘소리’를 중심으로 하는 공연 양식이기 때문에 오페라나 뮤지컬 드라마 쪽으로 전개되어 갈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창극이 우리나라에 정착한 지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자적인 음악극으로서 고유의 공연 양식을 수립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로는 전문적인 ‘창극 연출’의 원리와 기법을 찾지 못 했기 때문이며, 창극 연출가들이 기존의 판소리가 지닌 개방적 연희로서의 아름다움을 폭넓게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현대 음악극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그동안 창극 연출은 신파극이나 사실주의 신극에 의거한 방법들을 여과 없이 이식하여 적용하고, 전통극이나 서구식 무대 메커니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공연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창극은 전통적으로 판소리를 그 모태로 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독자적인 양식적 특성을 지닌 우리 고유의 공연 양식으로 거듭나야 한다. ‘창극 연출 근본 원리는 판소리 안에 있다’는 명제로부터 가장 최근의 전위적인 여러 실험들에 이르기까지, 창극 연출의 몇 가지 사례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창극 양식화를 위한 본격적 논의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창극은 종종 과도한 무대장치와 장면의 이미지화에 치중하느라고 극적인 면에서의 취약성을 노출하기 일쑤이다. 창극의 외형만을 중시하다보니, 장치의 대형화와 불필요한 특수효과의 남발로 우리 전통연희의 독창적 특성을 잃어버렸다. 또한 창극은 공연자들과 청관중과의 상호작용 곧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양상을 빚었다. 의상이나 분장의 화려함도 우리의 연극 전통 본래의 양식적 특징들을 왜곡하여, 창극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데 저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연기적 측면에서도, 오버액션을 강조한 나머지 등장인물의 진정한 성격 창조보다는, 유형적 인물의 희화화에 치우친 전형적 연기를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창극 대본의 부재와, 텍스트의 통속성, 자료 및 소재의 한계 등에 관한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이 모든 문제들로 인해서 아직도 창극은 완성된 공연 양식이라기보다 ‘전통에 기반을 둔 미완성의 전위예술’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이러한 평가들은 결국 창극이 판소리에 근원을 두었다는 점만으로 우리 고유의 공연 양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창극은 판소리를 중요한 재료로 하여 만들어낸 독특한 연극형태이지 판소리를 더 잘 감상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극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판소리의 진정한 맛이 아니라 창극의 예술성이다. 그런데 이 예술성은 창극에서 연출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 모든 배우와 배경과 음악은 정밀한 연출 의도에 통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판소리에서 작품 해석의 주체는 배우이기도 하며 고수일 수도 있지만, 창극에서 작품해석의 최종적 권한은 결국 연출이 가질 수밖에 없다. 배우나 소도구는 연출의 작품 해석에 종속되어야만 극이 성립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연물이 서구식 극장 무대에 의존하는 한국 공연예술계의 현실에서, 창극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창조하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과제들을 종합하면 창극양식의 독자성 확보와 연출사적 의미의 맥락은 결국 ‘창극 연출’의 문제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오늘날 공연예술에 있어서의 ‘연출’은 바로 공연 전체에 가장 효율적으로 직접 관여하여 그 공연을 예술적으로 완결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창극 연출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그 유형과 연출 사례에 관한 연구는 더욱 절실하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의 이루어진 창극 연출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연출의 경향을 유형적으로 파악하여, 우리 창극 연출의 전체적인 양상과 특징을 거시적으로 조망해 보고, 이를 통해서 창극 연출의 바람직한 방향과 미래를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 창극 연출은 대체로 볼 때, 판소리의 창극화 단계에서 이루어진 ‘판소리 명창 주도형 연출’, 그 이후 주로 서양 사실주의 연극과 부조리극 등 현대극 전통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신극 지향 연극인 주도형 연출’과 ‘판소리 지향 연극인 주도형 연출’, 좀 더 다양한 최근의 실험적 연극 작업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음악극 전문가 주도형 연출’ 등 4가지의 창극 연출 유형을 추출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런 4가지 창극 연출 유형을 설정하고, 그 각각의 유형들을 다시 좀 더 구체적으로 플롯의 전개방법, 연기의 방식, 무대미술, 반주음악, 그리고 연출미학 등 5개 항목에 걸쳐서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다룰 연구 대상 자료들은 주로 국공립 창극 단체의 대표적 작품들을 선택하였다. 우리나라 창극은 그 현실적 여건으로 인하여 주로 국공립 창극 단체 중심으로 그 주요 공연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또한 연출의 유형별 논의를 통해서 도출된 결과를 토대로 한국 창극 연출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과제들과 역사적 의미를 파악해 보고자 했다.
오늘날의 창극은 아직까지도, 전통적인 제작방식, 즉 전통창극에서 제시하는 ‘주어진 환경’을 일차적인 목표로 하는 소위 ‘문학적 창극’론에 입각한 연출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창극 제작방식으로는, 연출가에 의한 제2의 창조과정이 생략된 채, 텍스트 자체에 충실한 소극적 연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여, 본고에서는 창극 연출의 문제점들을 유형별로 고찰 정리하고, 그 토대 위에서 창극 연출론을 좀 더 확장하여, 새로운 연출방법을 모색하였다. 연출가는 공연 작품 생산의 중간자 혹은 무대와 객석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는 ‘총체적 매개자’이다. 공연의 연출은 최소한 다음의 다섯 가지 요소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것은 공연작품의 구성, 동작, 시각화, 리듬, 극화 등이다. 연출가는 모든 작품의 연출에서 비록 어떤 작품이 갖는 개성이나 성격상, 어느 요소는 특히 강조하고, 어느 요소는 약화시키는 경우는 있을 지라도, 이 다섯 요소를 반드시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판소리로부터 창극이 분화된 이래로 현재의 창극이 있기까지, 수많은 창극 작품이 무대화되고, 실험적으로 시도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종합적인 역할을 해온 분야는 바로 연출이었다. 연출은 창극의 발전과 이론의 정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존재에 해당한다. 비록 전문적인 창극 연출가의 존재가 아직 분명하게 독립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창극 ‘연출가’의 직분을 수행한 이들이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연구가 곧 창극 발전과 이론적 토대의 확립에 필수적인 전제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창극 연출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첫째, 창극의 양식적 특성과 제작방법에 관한 연구, 둘째, 이들 연구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면서 각 창극 작품의 연출 방법과 실험 작업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해 보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본 연구의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창극 연출의 통시적 고찰 곧, 창극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연출 방법의 변화에 주목하여 3시기로 나누어 그 역사적인 검토를 하였다. 역사적인 전개과정에서 창극 연출 방향은 고전 판소리의 실내극장으로의 이동과 입체화 양상을 보였으며, 연출의 도입에 따른 해학적 연기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창극 연출은 음악극적 변화와 실험을 통한 창극 정립과 실험이 있어 왔다. 이러한 창극 연출의 역사적 변화와 전개과정은 창극 연출의 4가지 유형과 서로 상응하도록 고려하였다.
둘째, 창극 연출의 공시적 고찰, 곧 창극 연출 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왔고, 그것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를 논의하였다. 이를 위해 창극 연출의 성격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으며, 이러한 창극 연출의 유형은 전장에서 다루어진 역사적 전개과정에 기초한 결과이다. 그 4가지 유형은 ‘판소리 명창 주도형’, ‘신극 지향 연극인 주도형’, ‘판소리 지향 연극인 주도형’, 그리고 ‘음악극 전문가 주도형’ 연출이다.
‘판소리 명창 주도형’은 역사적으로 볼 때, 앞장의 ‘고전 판소리의 입체화’ 시기와 상응하는 유형으로, 대체로 일제강점기 전반기와 ‘조선성악연구회’의 활동을 비롯하여 판소리의 분화와 신극의 영향관계 속에서 아직 연출이라는 직분이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판소리 명창들을 주축으로 적극적인 무대화가 이루어진 유형이다.
‘신극 지향 연극인 주도형’은 역사적으로 볼 때, 앞장의 ‘연출의 도입과 사실적 연기 방식’ 시기와 상응하는 유형으로, 대체로 일제강점기 후반기에 상응하여 해방 이후 국극이라는 이름으로 번성하였던 신극인 또는 연극인들이 주도하였던 연출유형이다. 이와 함께 ‘판소리 지향 연극인 주도형’은 ‘국립창극단’이 만들어지고, 이후 각 지역에서 관립 창극단체들이 창단되면서 창극이 하나의 민족적인 연극 양식으로 자리를 잡아 나아갔던 연출 유형이다. 이를 기화로 수많은 연극인들이 창극 연출에 임하게 되었고, 동일한 판소리와 창작 창극 작품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어 양산되었다.
‘음악극 전문가 주도형’은 앞장의 ‘연출 방법의 변화와 양식적 실험’ 시기와 상응하는 유형으로, 서양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이른바 ‘퍼포먼스 운동’과 각종 전위예술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창극 유형이다.
셋째, 앞장에서 이루어진 통시적․역사적 고찰과 공시적․유형별 고찰을 좀 더 구체적으로 논증하기 위하여, 각 유형에 상응하는 창극 연출 사례를 연구하였다. 각 창극 연출 유형에 따라 극의 구조, 곧 전개방법, 연기방식, 무대장치, 반주음악, 연출미학 등, 5가지 항목에 걸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분석과 해석을 진행하고자 한다. 이 5가지 항목은 창극 연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빼놓을 수 없는 항목들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상에서 논의된 결과를 토대로 기존창극의 무대예술 양식에 어떻게 현대적 감각을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를 위해 판소리가 창극으로 전환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연출의 유형별 전개과정의 그 역사적 의미를 조망해 보고, 본질적인 창극 연출 방법의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창극은 한국근현대사와 그 부침을 함께 해온 대표적인 극예술장르이다. 따라서 창극은, 동시대인들의 가치관과 미적 지향점의 충실한 반영이어야 하며 나아가서 그 바람직한 발전을 선도해온 장르이어야 마땅하다. 특히 공연 양식적 측면에서의 창극은 판소리를 모태로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서구의 공연 양식을 도입해 온, 실험성 강한 공연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극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양식이라 할 수 있으며, 연출 분야에 있어서는 현재까지도 하나의 정형화된 양식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다양한 연출 방법이 선을 보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음악극으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해 가고 있다. 그 결과 최근의 창극에서 발견되는 연출적 성과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 점에서 창극연출 분야에서 최근 얻어내고 있는 성과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창극 연출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유형별 특성에 따른 사례분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연출 방법상의 과제는 한국음악극으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하는 양식적 탐색이 필요하다.
그 동안 창극은 하나의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공연 양상은 크게 달라지는 현상을 보였다. 이는 창극 연출 방법이 그동안 서구 무대극의 깊은 영향 속에서 성장해 온 배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 결과 극장 구조의 정형화와 연기형식의 고전적 답습 문제 등 연출 방법상의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창극 연출은 실제로 양식적 정립을 위한 많은 진전과 공연의 질적 성장을 이룩하였지만 지금까지도 한국 고유의 독창적 공연양식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음악적 특성을 가미한 전환기적 실험 단계에 이르고 있다.
Ⅴ장에서는 창극 연출의 방법의 유형적 성격과 현 단계의 창극 연출이 안고 있는 과제를 점검하고, 연출의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동안 창극 연출은 전통연희의 계승을 위한 양식적 토대를 구축하였으며, 서구 공연예술의 한국적 수용과 실험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의 창극 연출의 성과를 바탕으로 각각의 작품이 추구하는 전반적인 연출 사례를 분석하여, 앞으로의 창극 연출의 과제를 살펴보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창극 연출은 우리 고유의 전통성을 확대하고, 독창적 무대를 구현하기 위해서 청관중의 요구를 수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창극 연출이 실내의 극장개념과 무대개념을 동시에 아우르는 ‘한국 음악극’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대중적 감각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이 명분 있는 창극의 현실화에 기여하는 첩경이 될 것이며 동시에 창극의 발전적 위상을 확보하는 길이다. 더불어 현대의 창극 연출이 나아가야 할 지점이 어디인가에 대한 논의는 추가적인 연구를 통하여 밝혀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공연 원리와 현대적인 연출 기법 사이에서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제3의 연출 방법론을 탐색 하는 것이 미래의 창극을 위한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