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는 ‘문학 위기론’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여전히 이야기의 보고(寶庫)로서 다른 예술 장르로 활발하게 변용되고 있다. 기존 장르가 분화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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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는 ‘문학 위기론’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여전히 이야기의 보고(寶庫)로서 다른 예술 장르로 활발하게 변용되고 있다. 기존 장르가 분화되고 ...
문학의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는 ‘문학 위기론’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여전히 이야기의 보고(寶庫)로서 다른 예술 장르로 활발하게 변용되고 있다. 기존 장르가 분화되고 신종 장르가 탄생하는 오늘의 문화 현상을 생각한다면 문학 연구를 굳이 문자 텍스트에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학은 다양한 컨버전스(convergence)를 통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읽기의 대상’에서 ‘능동적으로 소통하고 향유하는 대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박경리의 <토지>를 대상으로 작품에 나타난 대중적 요소가 각각 영화, TV드라마, 만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변용을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소설 <토지>가 다양한 매체에서 꾸준히 각색되어 왔다는 것은 이 작품이 독자에게 매력적인 텍스트로 인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설 <토지>가 다양한 예술 장르로 변용되는 현상을 살펴보는 것은 문학의 OSMU에 대한 담론으로 확장되는 한편, 차후에 있을 각색 작업에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Ⅱ장에서는 소설 <토지>에 나타난 대중 서사 전략을 살펴보았다.
첫째, 소설 <토지>에는 남녀의 애정 모티프를 중심으로 하는 멜로드라마가 부각된다. 남녀의 애정문제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여성이다. 소설에서 남성인물은 항일운동과 관련된 특정 인물을 매개로 등장하는 반면, 여성인물은 멜로드라마의 구도 안에서 등장한다. 남녀 관계에서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함에 따라 여성은 남성보다 우위에 놓인다. 소설 <토지>에서 여성 중심의 멜로드라마는 극적 사건을 형성하여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둘째, 흔히 소설 <토지>는 최서희 중심 서사와 항일투쟁 관련 서사로 양분되는데, 이 중 후자가 독서의 재미를 반감시킨다고 평가된다. 최서희 중심 서사는 대화 중심의 ‘장면’으로 서술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는 항일투쟁 관련 서사가 ‘논평적 서술’에 의해 장광설로 진행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서희 중심의 최 참판가 관련 서사가 독자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은 사적 문제에서 비롯된 개인의 갈등이 서사적 긴장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셋째, 소설 <토지>에서 최 참판가 관련 사건은 대부분 평사리 소작인들에 의해 전언(傳言)의 방식으로 그려진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이입되어 구어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서술로 인해 서술자는 발화자에, 독자는 청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구술문화에서 보이는 서술 방식과 유사한 방식을 구사함으로써 소설 <토지>는 독자를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Ⅲ장 1절에서는 영화 <토지>에 나타난 서사적 변용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첫째, 영화 <토지>는 원작에서 서정적으로 그려지는 김환과 별당아씨의 사랑을 불륜으로 규정함으로써 윤리적 태도를 강화한다. 영화는 운명적 사랑에 따른 두 사람의 내적 갈등을 그리지 않은 채 육체적 욕망만을 갈구하는 그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이는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1970년대 상황과 대중성과 상업성이라는 영화의 매체 특성이 작용했음을 보여 준다. 둘째, 영화 <토지>는 원작에 나타난 역사적 담론을 축소시키는 대신 인물의 내적 갈등을 부각한다. 원작에서 역사의식을 드러내는 인물들은 영화에서 주요인물의 내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이에 따라 시대적 배경은 대화의 소재 차원에 머무르게 된다. 역사적 담론이 축소되었다고 해서 영화가 원작에 나타난 역사의식을 도외시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영화 <토지>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 민족의 슬픔을 그리는 대신 최 참판가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개인의 갈등 위주로 극적 긴장을 조성하여 대중성을 견인하려는 각색자의 의도를 드러낸다. 셋째, 영화 <토지>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서사를 전개하는 서술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플래시백(flashback)을 통해 인물의 내적 갈등을 부각하는 반면, 후반부에서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voice-over-narration)을 통해 주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다. 영화는 후반부 서사를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대신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사용하지만 이는 서사의 논리적 비약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Ⅲ장 2절에서는 TV드라마 <토지>에 나타난 서사적 변용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첫째, TV드라마 <토지>는 주요인물의 애정을 긍정하는 멜로드라마적 구성을 드러낸다. 드라마는 원작과 달리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윤씨부인과 김개주, 별당아씨와 김환의 사랑을 부각시킨다. 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하나인 TV드라마의 시청 패턴을 염두에 둔 서사적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윤씨부인과 김개주의 사랑, 별당아씨와 김환의 사랑은 동일한 시퀀스로 제시되며, 김환과 별당아씨의 사랑은 상징적인 사물에 의해 김길상과 최서희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이들의 멜로드라마적 서사가 하나로 연결되는 것은 TV드라마 <토지>의 창조적 해석으로 볼 수 있다. 둘째, TV드라마 <토지>는 주인공 최서희를 중심으로 등장인물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분류한다. 드라마에서 최서희와 팽팽한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조준구와 김두수이다. 이들은 원작과 달리 드라마에서 전형적인 악인으로 그려짐으로써 잔인한 면모가 부각된다. 조준구에 대한 최서희의 복수가 완결된 이후부터는 김두수와 함께 일제 권력에 기댄 주변인물들이 최서희와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 이는 서사적 긴장을 지속시켜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셋째, TV드라마 <토지>는 다양한 영상을 통해 시공간의 범위가 넓은 ‘대하드라마’의 서사를 효율적으로 전개한다. 계절 변화를 나타내는 영상은 사건의 전환 지점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시간의 경과를 드러내고, 은유적인 영상 표현은 아이에서 여인으로 성장하는 최서희의 모습은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원작과 달리 드라마에서 악인형 인물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악의 완전한 패배를 통해 최서희의 승리를 강조함으로써 시청자의 기대심리를 보상하고 있는 것이다.
Ⅲ장 3절에서는 만화 <토지>에 나타난 서사적 변용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첫째, 만화 <토지>는 성인 독자층을 염두에 둔 사실적인 그림기호를 통해 멜로드라마적 서사를 구성한다. 남녀의 정사 장면에서 보이는 그림기호는 선악의 캐릭터에 따라 다르게 연출되는데, 선인형 인물의 경우 상징적인 그림기호가 사용됨으로써 독자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이는 만화 <토지>가 단순히 어린 아이들이 보는 텍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둘째, 만화 <토지>는 언어기호를 배제하고 배경그림을 활용하여 인물의 내적 갈등을 극대화한다. 만화에서 내적 갈등이 부각되는 인물은 최치수, 윤씨부인, 이용 등이다. 각색자 오세영은 감정을 드러내는 언어기호를 배제하고 그림기호만으로 이들의 복잡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인물의 대사나 생각구름(thought cloud) 없이 그림기호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구사하는 것은 만화 <토지>가 보편적 호소력을 통해 대중성을 의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셋째, 만화 <토지>는 언어기호와 그림기호를 다양하게 조합함으로써 극적 긴장과 이완을 창출한다. 중심사건은 언어기호가 절제되고 그림기호가 부각되는 반면, 주변사건은 여백이 없을 만큼 빽빽하게 채운 칸들로 연출된다. 또한 사건의 발단과 극적인 장면에서는 몽타주(montage) 기법의 화면을 연출함으로써 독자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한다. 만화 <토지>에 나타난 몽타주 기법은 중심사건과 주변사건의 대조적 연출 방식과 더불어 서사적 긴장과 이완을 창출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박경리의 <토지>를 각색한 영화, TV드라마, 만화에서 동일하게 부각되는 것은 남녀의 애정 모티프를 중심으로 하는 멜로드라마적 구성이다. 이는 대중예술에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환기시킨다. 인물의 갈등 양상이나 극적 긴장을 조성하는 서술 방식 또한 넓게는 남녀의 애정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흔히 소설 <토지>의 후반부가 독서의 재미를 반감시킨다고 평가받는 까닭은 최서희의 복수가 끝나는 지점부터 극적 사건이 사라지고 서술자의 논평적 서술이 과도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평사리 소작인들의 대화 장면에 나타난 서술의 구술성은 독자를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이지만, 반일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후반부의 서술은 서사적 긴장을 상쇄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멀티미디어 시대에서 문학의 OSMU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문화 현상이 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학계의 연구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활발한 문화 활동을 가능케 하는 문화콘텐츠로서 문학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문학 연구의 대상과 범위를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소설 <토지>가 다양한 매체에서 변용되는 현상을 고찰한 본 논문이 문학 연구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향후 진행될 문학작품의 각색 작업에 참고 자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