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김수영과 김춘수의 시를 주체와 타자의 관계와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김수영과 김춘수가 한국의 사회ㆍ정치적 격변으로부터 큰 자극과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시학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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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김수영과 김춘수의 시를 주체와 타자의 관계와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김수영과 김춘수가 한국의 사회ㆍ정치적 격변으로부터 큰 자극과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시학을 ...
이 논문은 김수영과 김춘수의 시를 주체와 타자의 관계와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김수영과 김춘수가 한국의 사회ㆍ정치적 격변으로부터 큰 자극과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시학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므로 외부라는 타자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를 검토하는 것은 그들의 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이를 살피기 위해 먼저 그들의 시에 나타나는 감정의 변화 양상을 검토하고, 이러한 작업을 토대로 하여 그들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 적극적 수동성이라는 개념이거니와, 이는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어느 하나를 우위에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둘을 수평적인 관계에서 고찰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을 상대의 우위에 두거나 상대를 자신의 우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지는 자극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일어나는 변화를 통해 발생하는 관계를 새로이 문제 삼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타자에 대한 태도가 새로이 정립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였다. 타자란 알 수 없는 영역에서 비롯하여 주체에게 엄습하는 것이기에 주체에게 위협과 공포를 주는, 말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타자를 주체의 작용을 통해 포섭과 이해의 영역으로 환원시킴으로써 결국 지배하고자 해서는 주체의 영역 바깥으로 조금도 나갈 수 없다. 그때 형성되는 세계란 자기만의, 자기만을 위한 세계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는 바깥이라는 타자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타자의 침임과 개입을 허용할 수 있는 강인한 인내심을 가질 때 타자와의 만남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주체와 타자가 서로 인격적 주체로 만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 논문이 궁극적으로 제기하고자 하는 물음이었다. 타자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해 열려 있는 태도를 견지할 때 비로소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이 가능한 것이니, 그런 의미에서 적극적 수동성의 태도는 타자와의 만남을 새로이 생각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문제 설정 아래 김수영과 김춘수의 시를 검토하였던 바, II장은 김수영과 김춘수의 초기시를 감정의 변화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였다. II-1에서는 김수영의 초기시에서 설움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설움을 특권화하는 기존 논의를 비판하며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같은 감정이 이 시기에 중요하게 작용함을 밝혔다. 김수영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설움이 그로 하여금 자기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라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나 여기에는 부끄러움과 수치와 같은 감정이 작용함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감정을 겪으면서 타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동시에 자기를 정립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또한 미안함과 죄책감 같은 감정의 작용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부끄러움이나 설움과 같은 감정이 주체의 입장에서 타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감정이라면 미안함이나 죄책감은 타자의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고 염려하는 감정이라 할 수 있으니, 김수영은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통해 타자에 대해 열려 있는 태도를 습득할 수 있었다. 외부의 충격을 받아들이고 그에 반응하는 과정을 거치며 김수영은 외부에 대한 인식을 고양시키면서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II-2에서는 비교적 간과되었던 김춘수의 초기시를 무한과 고독이라는 시어가 나타나는 시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김춘수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무한의 개념은 영원과 아름다움 등과 유사한 의미망을 가지고 있으며, 일상과 순간과 아름다움은 그와 반대되는 의미망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대립적 사고는 초기시의 상상력을 추동한 미학적 긴장으로, 이는 이상과 현실, 원형적 세계와 현실 세계를 근본적으로 단절된 것으로 생각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주체의 고독과 고립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반성적 자기의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계기로 작용하였으며 이를 통해 주체는 타자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해나갈 수 있었다. 특히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문제 삼는 시집 󰡔인인󰡕의 시편들은 각별한 주목을 요하거니와 이 시편들 가운데 「최후의 탄생」은 주체와 타자의 만남이 인격적 주체로서의 만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라 할 수 있다. 인격적 주체로서의 주체와 타자의 만남은 능동성과 수동성이 동시에 작용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인데 비록 이 시편들이 그에 대한 암시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이는 의미 있는 시도라 할 것이다.
III-1에서는 4ㆍ19에서 5ㆍ16에 이르는 시기 김수영 시의 변화를 살폈다. 김수영은 과도한 자의식과 경멸에 가까운 자기 학대를 오가며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을 가하면서도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정치적ㆍ사회적 압박으로부터 도망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이라는 토대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으니, 타자에게 자신을 내어 놓음으로써 자신도 변화하고 변화된 자신이 또한 타자에 자극을 끼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에 대한 긍지와 경멸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시기에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이 「신귀거래」 연작이거니와, 방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김수영은 반성적 자기의식을 수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수영의 중기시에 특이한 위치를 점하는 방은, 「그 방을 생각하며」에서 정치의 반동적 흐름을 거스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고, 「여편네의 방에 와서」에서 퇴행적인 자기 방어의 공간이 되기도 하다가 「누이야 장하고나!」에 이르면 새로운 자기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자극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기도 함을 살폈다. 방이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김수영의 시에서 방이란 자기의식의 변모를 잘 드러내는 하나의 소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이라는 공간의 다양한 의미를 경험하면서 김수영은 자기의식을 심화하는 동시에 타자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스스로 훈련할 수 있었다.
III-2에서는 김춘수의 시 가운데 이른바 실존적인 관심을 표명한 시편을 중심으로 살폈다. 김춘수는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대한 고심하면서 주체와 타자의 본질적인 관계에 대해 사유하기에 이른다. 그에게 언어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 재현할 수 있는 수단이면서도 어떻게 해도 사물을 제대로 지시할 수 없는 한계로 받아들여졌다. 언어의 무한한 가능성과 언어의 본질적인 한계에 대한 인식을 거치며 김춘수는 타자에 대한 인식에 다다르게 되니,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주체를 정립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나목과 시」 연작과 「꽃」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바, 주체가 타자의 작용을 받아들이며 수동성의 영역으로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자기를 주체로서 정립하게 되는 과정은 주체의 표상 능력에 대한 반성을 수행하며 동시에 주체와 타자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김춘수에게 주체와 타자가 만나 형성될 새로운 관계란 부름과 응답의 구조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그는 주체가 타자를 호명하고 동시에 타자의 호명에 응답하는 과정을 통해 주체와 타자가 서로에게 인격적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IV-1에서는 김수영의 후기시 가운데 사랑을 주제로 한 시편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사랑」과 「현대식 교량」과 「사랑의 변주곡」에 나타나는 사랑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거니와, 이를 적극적 수동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폈다. 사랑이 나라는 주체의 능동적인 활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너라는 타자에게서 비롯하는 수동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인을 통해 김수영은 사랑의 시학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확대시키는 되는 과정에서 타인의 자극으로부터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사랑의 의미를 적극적인 수동성으로서 깨우쳐가는 과정을 통해 그의 인식은 한층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었다. 인격적인 주체로서의 타자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변화의 원리에 자신을 맡기면서 사랑의 주체인 자신도 변하고 객체인 타자도 변하게 되는 원리를 깨닫는 과정, 이것이 그의 사랑의 시학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김수영은 사랑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변화를 인정하고 차이를 긍정할 수 있는 힘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IV-2에서는 이른바 무의미시로 불리는 김춘수의 「타령조」 연작과 「처용단장」 연작을 살폈다. 여기서는 무의미시의 정체를 규명하는 것보다는 이 연작의 특성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던 바, 이 연작의 대의는 사랑을 찾는 편력과 방황으로, 혹은 사랑에서 오는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려는 탐험으로 요약될 수 있음을 밝혔다. 「타령조」 연작과 「처용단장」 연작은 언어에 대한 실험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면서 언어와 대상, 기표와 기의의 분리가 가능한지를 근본적으로 묻고자 하였으나, 이 연작에서 오히려 중요하게 의미화되는 것은 사랑을 통한 새로운 관계에 대한 모색이었던 것이다. 김춘수는 이 연작을 통해 주체와 타자의 관계가 상호성을 기반으로 해서 형성될 수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사랑이 합일과 통합보다는 분리와 결렬에 대한 깨달음임을 표명하면서도 새로운 관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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