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당은 와당면에 표현되는 문양의 변화양상이 민감하여 그 변천상을 파악하는데 유용한 유물이다. 집안지역에서는 고분과 국내성 건물지 등에서 78점의 권운문와당이 출토되었는데, 권운문...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T12162909
서울 : 高麗大學校 大學院, 2010
學位論文(碩士) -- 高麗大學校 大學院 , 文化財學協同課程 考古學專攻 , 2010.8
2010
한국어
서울
(A) study on the goguryeo the roof-end tiles
97 p. : 삽화 ; 26 cm
지도교수: 최종택
참고문헌: p. 81-85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와당은 와당면에 표현되는 문양의 변화양상이 민감하여 그 변천상을 파악하는데 유용한 유물이다. 집안지역에서는 고분과 국내성 건물지 등에서 78점의 권운문와당이 출토되었는데, 권운문...
와당은 와당면에 표현되는 문양의 변화양상이 민감하여 그 변천상을 파악하는데 유용한 유물이다. 집안지역에서는 고분과 국내성 건물지 등에서 78점의 권운문와당이 출토되었는데, 권운문와당은 평양지역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구려 초기에 사용된 와당으로 판단된다. 특히 고구려의 권운문와당에는 절대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연호와 간지명이 나타나 있어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성에 비해 그간의 연구는 부족하였으나, 최근에 자료의 증가와 함께 중국에서 『集安高句麗王陵』보고서가 발간되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편년과 형식 분류에 있어 연구자들간에 의견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와당의 형식분류가 8형식, 9형식으로 너무 세밀하게 분류가 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의 연구결과를 보면 집안에서 출토된 권운문와당을 고구려 통치 구역내에서 생활한 漢人들이 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 이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이 있다.
본고에서는 고구려 권운문와당의 속성을 파악하고 형식분류를 통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양상을 고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더불어 중국의 권운문와당의 흐름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고찰을 통하여 권운문와당의 전반적인 특성과 시기별 변천과정, 중국과의 관련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집안지역에서 출토된 권운문와당은 모두 원형와당으로 둥근 중방과 운문이 표현된 운문부, 주연부, 그리고 운문부와 주연부 사이에 위치한 연호부로 구성이 된다. 중방은 와당의 중앙에 반구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무문이거나 명문, 문양이 시문된다. 운문부에는 운문이 표현되는데 8등분으로 구획되기도 하고 4등분으로 구획되기도 한다. 운문부 內에는 하나의 운문이 나타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나 운문 2개가 한 쌍을 이루어 표현되기도 한다. 운문부는 구획선에 의해 구획되어지는데 구획선의 경우 1줄에서 4줄까지 나타난다. 구획선은 1줄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4줄의 구획선은 천추총에서 출토된 와당에서만 보인다. 내향연호부는 운문부와 주연부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와당에서 나타나는데 내향연호부에는 문양과 명문이 시문된다. 주연부에는 삼각문이 표현되는데 삼각문은 3가지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각각의 속성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문양이 일정한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면 시간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내향연호부의 유무와 내향연호부 내에서 나타나는 문양과 문자, 그리고 주연부에 표현되는 삼각문의 양상, 구획선 줄 수의 증가를 기준으로 하여 5형식으로 분류하였다.
Ⅰ형식은 내향연호부가 나타나지 않는 단계로 1줄의 구획선에 의해 8등분으로 구획된 운문부, 그리고 주연부로 구성된 와당이다. Ⅰ형식의 와당에는 太寧4年(326년)이라는 연호가 나타나 있어 절대연대를 파악할 수 있다. Ⅱ형식은 내향연호부가 생긴다는 점에서 Ⅰ형식과 차이가 있다. 구획선 1줄로 운문부를 8등분으로 구획하였고 내향연호부와 중방에는 명문이 양각되었다. 주연부에는 삼각문2가 시문된다. Ⅱ형식은 내향연호부에 쓰인 간지명에 따라 4개의 아형식으로 분류된다. Ⅱ형식에서는 운문부를 구획하는 구획선의 줄 수가 2줄→1줄→2줄→1줄로 나타나 운문부 2개가 1쌍으로 표현된 와당이 있는데 이 와당은 구획선의 증가와 함께 8등분에서 4등분으로 구획된 와당으로 전환하게 되는 과정으로 판단된다. Ⅱ형식의 와당에는 己丑, 戊戌年의 간지가 있어 각각 328년, 338년으로 비정된다. Ⅲ형식은 8등분으로 구획된 와당과 4등분으로 구획된 와당이 등장한다. 8등분으로 구획된 와당은 운문부에 운문 2개가 한 쌍으로 표현이 되고, 명문은 내향연호부가 아닌 주연부에 시문되고 내향연호부에는 운문 문양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4등분으로 구획된 와당은 우산하992호분에서 출토된 己丑年銘 와당에서 보았듯이 구획선이 2줄로 증가하면서 4등분으로 구획되어지는 과도기단계를 거치면서 나타나는 형태로 생각된다. 내향연호부에는 乙卯年癸酉 명문이 시문되어 있고 와당의 주연부에는 삼각문3이 시문된다. Ⅲ형식의 丁巳年은 357년, 乙卯年은 355년으로 각각 비정된다. Ⅳ형식은 내향연호부에 비조문이 시문되고 구획선은 3줄로 증가하는데 증가한 구획선은 주연부를 관통하여 주연부의 끝까지 뻗어나가 주연부의 독립성이 상실된다. 주연부에는 삼각문3이 시문된다. 이 단계는 구획선의 증가에 따라 각 문양의 독립적인 성격이 사라지고 정형성을 점차 잃어가는 것으로 보아 퇴화가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절대연대가 없어 정확한 시기를 판단할 수는 없으나 Ⅲ형식보다 후행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360년대 이후로 비정된다. Ⅴ형식은 모두 천추총에서 출토된 와당이다. Ⅴ형식은 8등분, 4등분의 구획이 모두 나타나고, 구획선의 줄 수도 1줄~4줄까지 나타나는 등 다양화된 양상을 보인다. 내향연호부는 주연부와 운문부 사이에서 호선을 이루며 나타났었는데, Ⅴ형식에 이르면 주연부에서 중방까지 내향연호부의 선이 S자로 이어지기도 하는 등 변형된 모습을 보이다가 점차 내향연호부의 공간이 줄어들면서 사라지게 된다. 이는 주연부도 마찬가지로, 삼각문이 나타나던 주연부가 소멸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Ⅴ형식에서는 각각의 형식에서 보이는 속성들이 모두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결국 일정한 정형성 없이 모든 속성이 섞여 나타나는 것으로, 내향연호부와 주연부의 소멸과 함께 권운문와당이 퇴화하는 단계로 보여진다. Ⅳ형식이 퇴화가 진행되는 과정이었다면 Ⅴ형식은 소멸단계인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고구려에서는 Ⅰ형식으로 분류한 와당에 326년으로 비정되는 太寧4年이라는 연호가 있어 4세기 초에는 권운문와당이 제작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4세기 초~중기에는 정형화된 형태의 권운문와당이 사용된다. 이 때의 권운문와당은 1줄의 구획선으로 8등분으로 구획이 되고 내향연호부가 존재하는데, 내향연호부에는 명문이 시문된다. 주연부에는 삼각문2가 시문이 되고 운문은 중방에서부터 주연부를 향하여 뻗어나간다. Ⅱ형식의 와당은 집안에서 출토된 권운문와당 중 가장 다수를 점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이르면 일정한 형태를 갖춘 고구려의 권운문와당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4세기 중기가 되면 4등분으로 구획되는 와당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이르게 되면 구획수의 변화 뿐 아니라 내향연호부의 표현에 있어서도 앞 형식과는 다른 점을 보인다. 내향연호부에 명문이 시문되던 것과는 달리 문양이 나타나고 명문은 주연부에 시문이 되는 등 전체적으로 과도기적 단계를 겪게 된다. 360년대 이후가 되면 구획선이 3줄로 증가하고 운문은 중방이 아닌 구획선 중간에서부터 시작하는 등 점차 퇴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천추총에서 출토된 와당을 보면 내향연호부의 공간이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은 내향연호부가 사라지는데 이는 주연부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기에 이르면 정형화되었던 속성들이 퇴화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엔 권운문와당이 소멸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와당은 西周시기부터 사용되었는데 각 시대별로 와당의 종류와 그 유형이 조금씩 다르고, 와당면에 새겨진 문양도 시대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중 권운문와당은 秦, 漢代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특히 漢代의 권운문와당을 완성된 형태로 보고 있다.
漢代에 이르면 권운문와당이 성행하게 되는데 秦과 마찬가지로 버섯형, 내권형, 양뿔형으로 구분된다. 漢代초기에는 버섯형운문와당이 보편적으로 유행하는데 운문부를 구획하는 구획선은 없다. 중기가 되면 버섯형운문과 양뿔형운문이 주를 이루게 되고, 구획선 2줄로 4등분으로 구획된다. 후기에는 버섯형운문이 유행을 하는데 구획선이 3줄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위진남북조의 와당은 漢代의 와당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주연부 안쪽에 거치문이 묘사되는 것이 특징이다.
낙랑은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 313년까지 420여년간 존속하였는데 중원의 선진문물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창구로서 기능을 하였다. 낙랑 토성지에서 권운문와당이 출토되었는데 출토된 와당은 4등분으로 구획되었고, 운문부에 표현된 운문은 내권형과 양뿔형운문이 주종을 이룬다.
고구려와 중국에서 확인된 권운문와당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운문이라는 기본 문양 모티브는 중국과 동일하나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중국의 와당은 4등분으로 구획되고 버섯형운문이 주를 이루는데 반해, 고구려의 권운문와당은 8등분으로 구획되고 양뿔형운문이 주를 이룬다. 또한 고구려의 권운문와당은 운문이 중방에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중국의 와당은 외측 원권에서 시작하는 것이 다수이다. 내향연호부가 생성되고 그 곳에 명문을 새긴 것은 고구려 권운문와당의 특징인데, 중국의 와당에서는 이런 내향연호부는 나타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중국의 영향하에 권운문와당이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권운문와당은 이미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였던 문양으로 고구려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낙랑 토성지에서 출토된 와당을 보면 어느 정도 고구려의 권운문와당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어 낙랑과의 관련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즉 권운문이라는 기본 모티브는 받아들였음을 상정할 수 있으나, 문양구성요소 등은 독자적으로 발생하여 고구려만의 특색을 지닌 권운문와당을 새롭게 창출해냈다고 생각된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