筆談是使用不同語言的幾個國家的文人用文字進行勾通的方式。洪大容、朴趾源的筆談擺脫了以前單純記錄的性格,發展爲具有高度文學性的獨立體裁。燕行錄爲特定作家、特定作品的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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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筆談是使用不同語言的幾個國家的文人用文字進行勾通的方式。洪大容、朴趾源的筆談擺脫了以前單純記錄的性格,發展爲具有高度文學性的獨立體裁。燕行錄爲特定作家、特定作品的研...
筆談是使用不同語言的幾個國家的文人用文字進行勾通的方式。洪大容、朴趾源的筆談擺脫了以前單純記錄的性格,發展爲具有高度文學性的獨立體裁。燕行錄爲特定作家、特定作品的研究提供重要的參考價值,而直到80年代它才被認識爲體現旅行和各種體驗的文學文本而受到矚目。最近,隨著對燕行錄著述方式的探討、中國文人的交流與知識傳播的研究、比較文學角度的考察、燕行錄的總體流程和現象的研究的深入,對燕行錄中所載筆談的研究也有了新的認識。但是這些研究都只認識到了筆談的重要性,並沒有對其作爲文學文本的著述方式予以重視,也沒有人把一時期文人的筆談歸於一類,做整體性的研究。本論文是針對於此,以具有高度文學性的洪大容、朴趾源等人的筆談爲中心,把北學派文人的筆談作爲研究對象,分析其著述方式和創作動機、話題的討論情況及主題。
第二章考察了18世紀筆談流行的背景與性格,以及中國方面的參與者。爲了從曆史、祛會的角度分析筆談流行的背景,本論文把參與筆談的人分爲提議者與參與者,比較韓中兩國曆史背景和文人的立場,從中發現兩國文人的連帶感並分析了筆談得以成立的根本原因。考慮到筆談體裁歸屬的模糊性,本論文在擴大文學這一概念外延的基礎上,分析了筆談了文學性,初步闡明了其存在方式、創作手法、素材的特點等總體性格,再次確認了文學領域內的筆談研究的可能性。
第三章具體分析了作爲文學文本的燕行錄體裁筆談的創作情況與創作意圖。本論文把焦點集中到筆談文本形式上的特點,分別考察了不同人物筆談創作形式上的變化。洪大容是第一個把筆談作爲獨立文本來創作的文人,他在筆談的構成方式注入了極大的心血。《乾淨衕筆談》爲了確保日記體作品的統一性,適當地設定了插入筆談記錄和信箋的日期。《燕記》以交流人物的姓名作爲標題,它可謂是對傳統日記體使行文學形式的挑戰。此作品在關心對象的轉變這一點上也獲得了革新的意義。朴趾源的《熱河日記》跟以往的燕行錄比起來,在筆談存在的方式、勾通的方式、傳達的信息等方面發生了總體的變化。他預先在日記部分交待了與清朝文人認識的經過、會面的場所、時間以及筆談對象的信息,預示了筆談的展開。討論重要話題的筆談則另設一章,試圖創作純以筆談爲中心的文學作品。構成筆談時,也沒有像洪大容那樣重視個人的情感,而把重點放在了筆談的內容即主題。朴趾源筆談作品形式上最大的轉換在於詩與筆談的分離,即純粹的筆談文本的完成。燕岩的筆談文本具有擺脫時間約束的特點。柳得恭與朴齊家的燕行錄在完全擺脫一定約束的同時,把更多的注意力集中到了交流對象身上,而對筆談內容的重視卻相對減少了些。
第四章分析了筆談的内容,從而比較了韓中兩國文人的學問觀與認識論,分析了兩者主張的不同,考察了他們對現實的認識在筆談裏是怎麼體現並如何變化的。重點考察了兩國文人討論時最常提及的代表性話題,即華夷論與世界觀的問題、正學異端論、清朝的動向和民心的向背。並通過考察《熱河日記》筆談中作者對文人的視線,進一步分析了朴趾源提義進行筆談的意圖和目的。北學派文人對中華文明的肯定是克服傳統華夷論式世界觀的關鍵所在。他們通過燕行體驗,摒棄了對清朝的偏見,確立了對自身和世界的新的思維方式。北學派文人通過筆談這一方式,試圖克服傳統華夷論的缺點。其認識的變化從服裝制度、天文知識、與周邊國家的對話意志上表現得非常突出。他們認識到了華夷論的弊害,並且從多方面談論了華夷論的問題,但是在文化論的側面來看,並沒有徹底擺脫了傳統的華夷論。
關於正學的問題,是韓中兩國文人學術討論的核心主題之一。洪大容在進行筆談的初期一一反駁了中國知識分子對朱子的批判,但隨著筆談次數的增加,他的立場漸漸發生了變化,在筆談記錄的末尾則批判了朝鮮學者對朱子的盲目崇拜。這種立場在他回國後寫的《毉山問答》上繼續加以體現。對朴趾源來說,他對朱子的絕對肯定和贊揚,與其說是他要抬高朱子行爲,不如說是試探中國知識分子心態的一種有意識的策略。柳得恭則對清朝學術不重視程朱理學的現狀表現出了憂慮,痛惜中國學術界程朱理學的衰退。在對中國人的戒備方面,朴齊家的筆談内容則相當程度上表現出了退色。他們通過與中國人的論爭與交涉,進行了思想認識上的轉換,批判了以往絕對化的朱子學和朱子主義,瞳景更加自由的學術風尚。北學派文人最關心的現實問題是清朝朝政的危機,即長久性問題。體現最明顯的就是關於民心即內亂的話題。與現實問題有關的筆談話題是指向清王朝的危機的,具有某種政治傾向。而異民族的內亂則被認定爲導致這種危機的的原因。北學派文人認爲這種危機並不只是中國內部的問題,他們認爲這一問題與朝鮮的安危也有密切關聯。通過考察《熱河日記》筆談中的中國文人形象研究,進一步明確了朴趾源提義進行筆談的意圖和目的。朴趾源提出的問題很多都是關於清朝的政治纠葛問題。他描述了中國文人筆談時的所有細節,试图勾勒出清朝統治下,受盡折磨的中國文人形象。
本文把筆談的表現手法分爲誘導與迂回、比較與再確認、伏筆與暗示,對作品進行了詳細的分析。構成獨立筆談的洪大容、朴趾源的筆談爲了進入某種話題,使用了誘導、稱贊、伏筆、暗示等多種方法。這種方式已經不僅僅是單純的表現手法。可以說它是構成筆談這種獨立文本的核心設置。
본 연구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교류양상과 사상적 동향을 가장 극명적으로 보여준 문학적 성과물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였다.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필담을 주목하였다. ...
본 연구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교류양상과 사상적 동향을 가장 극명적으로 보여준 문학적 성과물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였다.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필담을 주목하였다. 筆談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상호소통을 염원하는 지식인들이 문자로 진행한 의사소통방식으로서, 洪大容과 朴趾源 등 문인들에 의하여 단순한 기록적 성격을 벗어나 고도의 문학성을 보여주는 독립적 텍스트로 재창작된다. 특정 작가, 특정 작품을 중심으로 자료적 측면에서 주로 주목되었던 연행록이, 여행과 체험의 문학적 텍스트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최근 연행록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연행록에 소재한 필담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독립적 텍스트로서의 필담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을 뿐 문학텍스트로서의 저술방식에 대해서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며, 동시기 문인들의 필담을 공동으로 묶어서 고찰하려는 작업도 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고도의 문학성을 지닌 홍대용과 박지원의 필담을 중심으로, 동시기 연행에 오른 朴齊家와 柳得恭을 아우르는 북학파 필담에 주목하여 그 저술방식과 창작동기, 및 화제의 담론양상과 주제에 대하여 분석하고자 하였다.
Ⅱ장에서는 우선 18세기 한중문인의 필담이 성립할 수 있는 배경과 성격, 그리고 중국측 참여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필담이 성립할 수 있는 배경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보다 명확히 고찰하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필담의 참석자를 提議者와 參與者로 나누어 한중 두 나라의 역사적 상황과 문인의 입장을 비교하고 그 연대감을 발견함으로써 필담이 성립할 수 있는 근본원인을 짚어 보았다. 필담의 성격연구에 있어서는 특정한 문체나 범주에 국한시키기 어려운 필담의 특성을 고려하여 문학개념의 외연을 확장하여 필담의 문학성을 조명해 보았고 그 존재방식, 창작기법, 소재의 특징과 같은 총체적 성격에 대하여 초보적으로 규명함으로써 문학으로서의 필담 연구의 가능성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Ⅲ장에서는 필담 텍스트의 형식적 특징에 초점을 맞추어 인물별로 그 형식적 변모를 추적해 보았다. 홍대용의 「乾淨衕筆談」은 일기체 작품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담 기록과 편지를 삽입하는 날짜를 아주 적합하게 설정하고 있었다. 또한 교유인물의 이름으로 표제를 설정한 「燕記」의 경우, 전통 일기체사행문학 형식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관심대상의 전변이라는 의미에서 아주 혁신적인 의의를 갖게 된다. 박지원의 熱河日記는 기존 연행록에 비해 필담이 존재하는 양식, 소통하는 방식 및 전달하려는 메시지 등 총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는 미리 일기 부분에서 청나라 지식인들과 만나는 인연, 장소, 시간, 그리고 상대의 인적사항을 모두 제시하고 중요한 화제를 담은 필담은 따로 독립적인 장을 설치하여 순수한 필담 중심의 문학을 창작하려고 시도하였다. 연암 필담의 가장 큰 형식적 전환은 詩와 필담의 분리 즉, 순수한 필담 텍스트의 완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득공과 박제가의 연행록은 일정의 예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동시에, 필담의 내용보다 교유대상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Ⅳ장에서는 한중 두 나라 문사들이 나눈 다양한 화제 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담론, 즉 華夷論的 世界觀의 문제, 正學異端論, 청조현실의 동향과 민심의 향배를 중심으로 두 나라 지식인의 학문관, 인식론을 비교 검토해 보았다. 북학파 문인들은 필담이라는 방식으로 화이론적 세계관의 극복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인식의 변화는 의복제도, 천문학지식, 주변국과의 대화의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화이론의 폐해를 인식하고 필담을 통해 화이론적 문제에 대하여서도 다양하게 논의하고 있지만 결코 문화론적으로는 근본적인 화이관 극복에 이르지 못한다. 홍대용의 필담은 정학 이단론에 대한 견해의 변모과정을 살피기에 가장 적합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홍대용은 필담초기에 이단을 비판하면서 중국지식인의 주자공박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었지만 필담차수가 늘면서 점차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으며 필담을 마무리하면서 교조적인 주자학존숭을 맹렬히 비판하였다. 박지원에게 있어 주자에 대한 절대적인 고수와 극찬은 주자를 높이려는 목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중국지식인들의 본심을 떠보기 위한 의도적 장치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득공은 정주학술을 뒷전으로 하는 청조학술의 현황을 아주 근심스럽게 생각하면서 정주학이 쇠퇴한 중국의 학술경향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박제가의 필담에는 중국인에 대한 경계가 상당히 약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중국지식인과의 논쟁과 교섭 중에서 점차 사상의 전환을 이루게 되었으며 기존의 절대화된 주자학과 주자주의를 비판하고 더욱 자유로운 학문적 풍토를 선망하였다. 북학파문인들이 가장 주목을 하고 있는 현실문제는 청 조정의 위기, 즉 長久性에 있다고 보인다. 이 문제를 가장 극명적으로 보여준 필담의 화제는 바로 民心, 즉 내란의 문제였다. 현실인식에 관한 필담화제는 주로 청왕조의 위기를 겨냥한 정치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초래 원인으로 기타 이민족의 내란을 꼽고 있다. 연암의 시선에 포착된 청조 지식인의 형상으로부터 우리는 청조 지식인들에 대한 연암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연암이 청조 지식인들에게 제기하는 짓궂은 질문공세는 청나라가 안고 있던 갈등과 당시 정세에 관한 것이 많았고, 연암은 질문에 대한 중국지식인들의 대처방식을 빠짐없이 묘사함으로써 시대의 아픔을 겪고 있는 지식인의 형상을 생동하게 부각하였다.
다음으로 필담의 표현수법을 세 가지, 즉 유도와 우회, 비교와 재확인, 복선과 암시로 분류하여 자세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독립적 문학텍스트를 구성한 홍대용과 박지원의 필담을 보면, 화제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誘導, 칭찬, 농담, 복선, 암시 등 수많은 장치를 도입하였다. 독립적 텍스트로서의 필담체에는 이러한 화제방식도 일종 표현수법을 넘어서서 작품의 구성을 이루는 핵심적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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