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居正은 조선전기 명문거족인 安東權氏 외가의 문풍을 이어받아 世宗 연간에 集賢殿 博士로 처음 출사한 이래, 癸酉靖亂이라는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 世祖의 등극 이후 두각을 드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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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居正은 조선전기 명문거족인 安東權氏 외가의 문풍을 이어받아 世宗 연간에 集賢殿 博士로 처음 출사한 이래, 癸酉靖亂이라는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 世祖의 등극 이후 두각을 드러내기...
徐居正은 조선전기 명문거족인 安東權氏 외가의 문풍을 이어받아 世宗 연간에 集賢殿 博士로 처음 출사한 이래, 癸酉靖亂이라는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 世祖의 등극 이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467년(세조 13) 藝文館大提學에 임명되고 1471년(성종 3) 佐理功臣 3등에 책훈되고 1478년(성종 9) 弘文館大提學에 겸임되면서 사망할 때까지 文衡과 權勢를 거머쥐었던 그는 명실 공히 勳舊派 館閣文人이었다.
필자는 그가 君主ㆍ勳舊大臣ㆍ新進士類ㆍ山林處士ㆍ僧侶 등 다양한 인물군을 상대하면서 남긴 산문작품들이 각기 상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에 착안하여, 그 다양한 무늬와 미세한 주름들을 살피는 과정을 통해서 그의 산문세계에 다각도로 접근하고자 했다. 이러한 작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작품의 창작 의식에 내재된 정치적 목적성이라는 기준을 적용하여 산문작품들을 다시 문인관료로서의 면모와 개인으로서의 면모로 묶었다.
문인관료로서의 면모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세를 개략적으로나마 이해하여 그의 산문작품과 정치적 행로의 조응을 시도했다. 이는 그 대상 인물에 따라 다시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군주에게 헌정하거나 군신 관계를 논한 산문이다. 당대를 긍정하고 군주를 찬양하는 서거정의 신념은, 군주에게 올리는 문장 속에 美刺의 스펙트럼을 다채롭게 변주하기 보다는 미화하고 칭송하는 계열에 치우친 면이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위계적 군주 질서에 대한 강조로 발현되기도 했다. 둘째, 훈구대신들을 대상으로 한 산문이다. 서거정은 각종 주연에 참석하여 詩作을 하고 序를 붙였는데, 그 안에서 정치적 동지인 훈구대신들과 문학을 雅遊의 도구로 즐기면서 풍류와 부귀를 구가하였다. 셋째, 신진사류를 대상으로 한 산문이다. 서거정은 자신의 집단과 정치적 노선을 달리한 이들을 철저히 견제하였으며, 이를 위해 우회적 표현이나 함축적 경고를 사용했다. 그는 자신이 속한 훈구파를 옹호하고 보수하는 동시에 그 반대집단을 배제하고 억제하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서술 태도를 보였다.
한편, 政權의 자기장 밖에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산문작품에서 서거정은 정치적 긴장으로부터 다소 이완된 모습으로 자신의 抒情과 志趣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는 다시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산림처사와의 관계를 담은 산문이다. 사실 이때의 산림처사는 대부분 관직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정원이나 별장을 꾸며 전원적 소망을 만끽했다는 점에서 ‘지향적 산림처사’ 또는 ‘假산림처사’라고 할 수 있다. 서거정 자신도 귀거래의 염원을 실천하지 못했으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산문작품 속에 자신을 투사하여 주로 出處觀을 드러냈다. 둘째, 승려와의 교유에서 싹튼 산문이다. 서거정은 어려서부터 줄곧 절에서 학업을 닦으며 자연스레 승려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승려들과의 교제는 평생에 걸쳐 지속되었다. 이들과 적극적으로 교유하면서도 자신이 유자임을 망각하지 않고 포섭과 경계의 논리를 펼쳤다.
서거정은 조선 전기 세조~성종 연간에 22년 동안 대제학으로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문장과 사유는 15세기 중ㆍ후반 관각문인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훈구파의 입장을 반영한다. 그는 관각문학의 장엄하고 화려함을 산품작품으로 시범해보이며 왕조 사업을 아로새겼다. 또한 자신의 문장력을 통해서 훈구대신들과는 돈독한 유대를 형성한 반면 신진사류에게는 이로써 치열하게 응수했다. 한편, 그는 대제학이 갖는 문단의 장악권을 이용해서 자신의 글을 전범으로 창출하고 운용하고자 노력했지만, 이는 후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제시에 그쳤다. 서거정 이전 세대의 관각문인들의 기상과 성취는 그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지만, 그의 사후에 조선전기 관각문학의 전성기가 막을 내리고 사림의 시대가 열리면서 서거정은 그의 업적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본 논문은 조선전기 훈구파 관각문인인 서거정 산문세계의 전면적인 성격과 의의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인물군을 대상으로 할 때마다 달라지는 서술 태도의 차이에 주목했다. 따라서 산문작품의 서술 의도와 전략을 살피는 데에 치중하여 산문 형식의 미학을 구체적으로 감상ㆍ분석하지는 못하였다. 한편, 『四佳集』「文集」이 과반수 이상 실전되었으므로, 현전하는 산문작품만을 통해서는 전면을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고자 『사가집』외의 다른 문헌에서 발견되는 산문작품들을 조사했으며, 이러한 작업은 앞으로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의 문학에 있어 중심은 역시 시문학이므로 이에 대한 연구를 병행해야 전일한 문학 세계를 구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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