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문 초 록 본고는 유배가사의 갈등 양상과 그로부터 비롯된 해결 모색의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산출한 배경으로 작자의 의식작용을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유배가사가 외지로 추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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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서울시립대학교, 2010
학위논문(석사) --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 2010. 2
2010
한국어
810 판사항(4)
서울
i, 104 p. ; 26 cm.
지도교수:조세형
참고문헌 : p.9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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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문 초 록
본고는 유배가사의 갈등 양상과 그로부터 비롯된 해결 모색의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산출한 배경으로 작자의 의식작용을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유배가사가 외지로 추방을 당한 유배자의 소회를 담은 작품임을 감안할 때, 작품의 심화된 이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품에 나타난 당면한 현실에 대한 작자의 결핍과 충족의 과정, 즉 갈등 양상과 해결 모색의 과정을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품별 갈등 양상의 동질성 및 이질성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는 작자의 의식작용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본고에서 주목한 점은 사대부의 유배가사의 경우, 그 의식작용이 ‘분화와 경쟁’이라는 조선조의 일련의 정치사적 흐름과 일정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분화와 경쟁’의 지속 및 고착화는 하나의 정치세력이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의식구조를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능케 하였다. 패배한 당파의 구성원들이 억울함, 분노, 비애, 체념, 정계복귀의 염원 등과 같은 정서를 공유한다고 볼 때, 유배가사에 형상화된 작자의식은 그와 함께 고락을 겪은 동료들의 집단의식과 전체적인 맥락에서 상통할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작품의 창작에 있어 개별 작자를 넘어 그가 속한 특정 집단의 세계관 및 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하였다.
먼저 논의를 위한 예비적 고찰로 유배가사 일반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창작 배경을 갈등 인식과 해결 모색의 과정을 통해 검토해 보았다. 이와 함께 각각의 정치사의 국면에서 발생한 사대부의 분화 및 경쟁의 양상을 살펴보며, 이를 추동한 배경담론을 상정하여 양자 간의 관련성을 타진해 보았다. 유배가사는 세계에의 굴절된 인식(갈등)과 성리학적 이념(해결)을 배경으로 창작되었고, 당대 조선정계의 사대부 간 분화 및 경쟁의 본질은 각 세력 간 군자 선점의 과정에서 찾을 수 있었다. 유배가사의 갈등 해결 모색이 군자‧소인 담론의 흐름 속에서 형상화되었음을 전제할 때, 양측의 상호작용과 그에 의한 변화양상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다.
<만분가>와 <북관곡>은 각각 사림‧훈구, 서인‧동인의 당대 정치현실을 군자·소인의 이원적인 구도로 상정하여 이를 바탕으로 상대에 대한 강한 배척의식을 표출하였다. 상대가 소인으로 부정될 경우, 상대의 손을 들어준 임금 역시 실망 또는 회의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에 임금과의 온전한 합일을 바라는 충신연주의 표출로 현실극복의 의지를 다짐하기보다, 자신을 알아줄 이를 찾아 떠돌겠다는 체념이나 자신을 추종하는 가문 및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반면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은 동류 사림의 분화에 의한 서인‧동인의 붕당정치 초기를 올바른 군자 찾기, 즉 군자‧군자의 경쟁 구도로 상정하여 상대에 대한 공박보다 자신의 잘못에 집중하게 되었다. 방축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지 않은 것은 상대를 이전처럼 섣불리 소인으로 공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상대를 공박하기에 앞서, 일차적으로 자신의 군자됨의 점검을 행하게 되었다. 또한 임금과의 재회를 향한 강한 의지는 임금이 소인과 함께한 불의의 존재가 아닌, 올바른 군자 찾기의 중재자임을 의식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별사미인곡>과 <속사미인곡> 역시 군자‧군자의 경쟁 구도를 배경으로 하였다. 하지만 화합과 분화의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며 혼란스러웠던 초기 서인‧동인의 구도 이후, 분화와 경쟁의 연속으로 붕당이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정치체제로 고착화하면서 자파의 강한 귀속성에 기인한 군자‧소인의 분열과 대립이 감지되기도 하였다. 이에 작품 속 ‘인연 없는 이별’, ‘실제 유배체험’ 등 자신과 관련한 특정 상황의 현실문제에 대한 집중은 군자‧군자 담론의 큰 틀을 공유하면서도 한편으로 자파의 집단의식을 기반으로 한 개인적 자각이 심화되었음을 의미하였다.
<북천가>는 상대를 소인으로 명명하여 갈등과 배척의식을 드러내는 것에서 군자‧소인의 구도로 볼 수도 있지만, 지금껏 지속되었던 사림정치가 무너지고 소수의 외척가문이 권력을 농단한 기형적인 현실은 군자 붕괴의 시대로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작자의 성리학적 이념 수호의 의지는 ‘소인들이 횡행하는 요요한 이 세상’의 ‘군자 붕괴’ 시대에 퇴계의 학풍을 이은 영남의 ‘마지막 군자’로서 현실에의 올곧은 대응을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배가사는 집단의식의 반영과 구조적 동질성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었다. 집단의식과의 관련성에 대한 고찰은 기존의 전기‧후기의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유배 가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선조 가사를 비롯한 시가문학 일반의 이해에 있어서도 새로운 접근의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한편 유배가사는 내면의식과 외부현실, 개인적 면모와 사회적 입장이 공존하면서 조선 시가문학 중 사회와의 접점을 최대화한 문학 장르였다. 작자의 ‘태생적으로 지배계층이면서 현실은 피지배계층’의 모순된 입장이 재도론으로 무장한 조선전기 사대부들의 문학과 달리 비극적 정서의 진솔한 표출, 연모(현실회복)와 원망(현실회의)의 현실에 대한 이중적 시각의 노출 등, 조선후기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던 시가문학의 일면을 앞당겨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유배자가 집중한 사안이 당면한 현실의 표피적인 차원에 머물러 지금 당장의 거취에만 집중하였다는 점은 유배가사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주제어: 유배가사, 갈등 양상, 분화와 경쟁, 충신연주, 집단의식, 군자‧소인 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