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전통적인 색채인식에는 二元的 견해가 있다. 白色이나 素色과 같은 무채색과 五方色에서 드러나는 화려한 유채색이다. 이러한 경향은 수묵과 채색이라는 회화의 양식적 특징에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색채인식에는 二元的 견해가 있다. 白色이나 素色과 같은 무채색과 五方色에서 드러나는 화려한 유채색이다. 이러한 경향은 수묵과 채색이라는 회화의 양식적 특징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본 논문은 회화에 있어서 수묵을 통한 무채색 인식태도의 형성과 채색을 통한 유채색 인식태도의 형성이 어떠한 관계를 갖고 전개되어 왔는지, 근대로의 이행기인 조선후기를 주목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의 격변기에서 사회구조와 색채인식의 관계를 찾고, 회화에 표현된 색채의 특징을 통해 조선후기 회화에 나타난 색채인식의 의미를 고찰하는 것이다.
연구의 진행은 먼저 색채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조선후기 사회의 특징과 종교와 사상에 의한 색채를 파악하고 당시 새롭게 대두된 풍속화와 급속히 확산되었던 민화의 색채를 분석함으로써 조선후기의 색채인식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민화의 색채분석은 직접 유물 열람을 통한 육안분석을 하였으며, 풍속화의 경우는 유물 열람에 제한점이 많아, 박물관이 제공하는 디지털 이미지와 도록을 활용하였다.
전통적으로 색채인식에 영향을 미친 종교와 사상으로는 무채색 인식 형성에 儒敎의 ‘素’, 禪宗의 ‘空’, 道敎의 ‘玄’이 水墨畵에 영향을 끼쳤다. 유채색 인식형성으로는 佛敎의 五色(五方色), 無敎의 三才色(五色), 陰陽五行思想의 五方色이 彩色畵에 영향을 주었다. 이 가운데 조선조 성리학 체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유교의 색채인식으로, 회화에 반영되는 색채는 도덕사회를 지향하는 心性論의 관점에서 색을 배제하는 水墨이 주로 문인들의 인격도야를 위한 修己의 차원에서 사용되었다. 무채색은 성리학이 추구하는 이상세계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다만 신분사회를 유지하고자 했던 名分論의 관점은 화원들로 하여금 오방색 체계를 통한 彩色으로써 유교적 이념의 교화용 회화를 제작하게 하였다.
이러한 색채인식의 태도에 변화가 보이는 것은 조선후기이다. 18, 19세기 조선후기는 성리학 사상체계와 사회구조가 변모하면서 기존의 성리학 체계가 갖는 관념성을 탈피하는 실학의 시대이다. 여기에 회화 수요층의 확대, 서양문물의 유입과 함께 들어온 視學의 영향과 사실주의 회화관, 채색재료의 확대와 서화시장의 발달 등 채색 발달의 지적·물적 토대도 마련되면서 풍속화와 민화에서 보여지 듯 색채 표현이 넓어졌다.
조선 후기 풍속화에서는 특히 단원 김홍도의 경우 전반적으로 윤곽선과 채색면이 일치하지 않는 빠르고 자유로운 채색방식을 사용하였으며, 전반적으로 線을 통한 평면성과 淡彩 형식이 유지되나 顔面의 처리에 있어서는 서양화법을 부분 수용하여 실제감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에서는 기본적인 배경은 淡彩로, 주요 인물의 의복 표현은 짙은 重·濃彩로 표현하였다. 유채색은 청색·적색·황색·녹색의 4가지 색이 기본이 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주로 靑色과 赤色을 통한 색의 배치와 농담의 변화는 시각적 고조를 끌어내는 미적 표현을 거두고 있었다. 색의 사용은 여러 번의 붓질을 중복하여 덧칠을 하면서 형상의 부피감을 만드는 정교한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조선후기 풍속화는 ‘관념’이 아닌 ‘사실’로서 단순히 객관적이고 도식적이며 기록적 성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미의식에 의해 표현이 다양해지는 색채표현을 볼 수 있었다.
조선후기 민화의 색채는 관념적 색채사용이 일정한 전형으로 지속되었으나, 고식적인 표현방식을 벗어나는 것들도 있었다. 陰陽五行思想을 바탕으로 하는 오방색체계를 통해 볼 때, 주로 사용되는 색채는 赤色과 綠色(靑色)으로, 특히 花鳥圖의 경우 ‘木生火’의 相生 배색이라는 색의 상징성이 추구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책가도, 문방도 등에서는 황색이나 청색, 흰색 등 五色이 모두 강조된다. 적색과 녹색을 활용한 반대색조의 변화만이 아니라 적색계의 유사색조를 사용하는 花鳥畵도 제작되었으며, 수묵표현과 비슷하게 채색으로 山水를 그리기도 하였다. 민화는 대체로 眞彩 형식의 채색방식을 사용하였으나 재료수급에 대한 경제적인 이유가 점차 全面彩色이 아닌 部分彩色을 채택하게 하고, 값싼 유기안료의 유사색으로 대체되면서 색채사용이 넓어지게 되었다. 서로 다른 색들을 한 면에 사용하면서 陰影이 아닌 色相으로 변화를 만들기도 하였다. 대개의 민화가 일정한 도상과 색채와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형식에 매이지 않는 보다 다채로운 표현 방식의 전개를 암시해주었다. 민화는 그간 궁중을 중심으로 지배층의 장식과 세시풍속과의 관련을 넘어서 조선후기 民家의 생활 장식화로 확대되었고, 유채색 인식형성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친다.
조선후기 색채인식에는 이처럼 그간의 성리학 체계에서 실학의 실천적 사상으로의 전환과 더불어 채색발달이 가능하게 되는 사회 여건의 변화가 있었으며, 서민문화의 일면인 풍속화와 민화로 그간 색의 표출을 억제하는 ‘禁慾’ 추구의 사회에서 ‘無彩’가 아닌 ‘有彩’로서 색채의 외연이 넓어지게 됨을 알 수 있었다. 다만 19세기 후반 화단은 무채색이 중심이 되는 남종문인화풍에 편중됨으로써, 색채 표현의 다양한 전개가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곧 水墨을 통한 무채색의 인식이 신분사회의 ‘理想’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 풍속화나 민화에서 보여 주는 색채는 종전의 무채색 인식태도의 중심을 벗어나 사실성에 대한 見地, 미적 표현, 장식적 욕구 등에 의해 다양한 유채색의 사용과 감상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이 근대로의 이행기였던 조선후기 역동적 사회의 변화를 담고 현실에 다가서려했던 색채인식의 특징을 주목하였다. 또한 사회구조와 연동된 조선후기 彩色의 발전 경로를 주시함으로써, 색채인식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실체적 변화를 담아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가 한국화를 통한 색채문화를 조명하고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전통색채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