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할 무렵에 한국의 상황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유교의 몰락과 정치권의 기강문란, 동학농민혁명의 쇠퇴, 청일전쟁의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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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04
학위논문(석사) --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 목회학과 , 2004. 2
2004
한국어
광주
i, 52 p. ; 26cm
지도교수 :차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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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할 무렵에 한국의 상황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유교의 몰락과 정치권의 기강문란, 동학농민혁명의 쇠퇴, 청일전쟁의 발발, 콜레라의 발생, 을미사변 등으로 백성들은 너무나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특히 고려왕조와 조선왕조를 거치는 1,000여년 동안에 정치적으로 가장 소외되었던 호남지방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더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그러한 결과로 선교사들의 복음전도를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받아들였으며 오늘날에는 한국사회에서 25%의 기독교인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신앙과 생활을 양분시키지 않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은 즉시 생활의 변혁을 가져오게 하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삶의 변화는 사회와 민족의 변화를 가져오게 함으로써 민족과 더불어 고난의 과정을 경과하였고, 개화의 대열에 앞장 설 수 있었다. 한국의 선교가 의료와 교육에서 출발하였다면 이는 곧 개인생활의 변혁, 민족의 개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 구원의 축에서 신앙이 정착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가 처음부터 내세 지향적 개인구원에만 치중했다면 개화와 민족운동을 지향했던 사람들의 입교는 처음부터 부진했을 것이다. 따라서 초기 선교사들은 문맹퇴치를 위해 학교를 세우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세우는 등 한국인들의 생활개혁에 힘썼던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로 인하여 우리가 받았던 그 영향력을 국가와 국민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며, 젊은이들에게는 올바른 가치관과 시대적 사명을 자각케 하고, 그리스도 문화 속에 깊이 뿌리박아 그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일 것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중요하고 귀한 연구를 시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오래된 역사이기에 역사적인 자료나 기타 과정들을 정리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나 목회자의 입장에서 호남지역 선교역사를 통하여 선교의 열정이 새롭게 일어나 초기 선교사들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을 발견하고 이 지역의 복음 전파를 위해, 그리고 그들의 삶의 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함을 귀중한 성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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