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미군정기 한국의 교육정책은 미국의 한반도 점령정책의 기본 목표와 분리하여 이해될 수 없다. 제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대소방파제 구축이라는 점령목표...
해방 후 미군정기 한국의 교육정책은 미국의 한반도 점령정책의 기본 목표와 분리하여 이해될 수 없다. 제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대소방파제 구축이라는 점령목표의 테두리 안에서 38도선 이남의 남한지역에서 교육정책을 시행하였다.
미군정은 자국의 점령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교육재건정책을 실시하였고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서의 교육기구의 주도세력을 적극적 선택(the positive selection)정책에 의해 친일배경을 갖는 이승만-한민당계 인물들로 충원하였다. 교육주도세력은 식민지하의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미군정의 정책지향인 체제 유지적 보수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공유했다.
미군정의 이러한 정책에 의해 충원된 해방 후 교육주도세력의 성격은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군정 당시 한국의 주도적 교육엘리트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해방이전 식민지 치하에서 교육계에 종사했던 식민지 교육 관료들이었다. 그들은 해방이전 특히 일제말기에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저항했다기보다는 대부분 투항했거나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들이었다. 미군정에 의한 부일․친일 교육자들의 재등장은 한국교육사에서 민족교육의 정통성을 확립하기보다는 교육영역에서 일제 잔재의 청산을 어렵게 만들었다. 일제 식민지 지배에 협력했던 식민지 교육엘리트들은 해방이후 그들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들의 과거 행적을 감추기 위해 반공데올로기를 옹호하였으며 미군정의 현상유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교육주도세력의 이러한 특성은 해방 후 한국교육을 과도하게 정치화하고 이념화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둘째, 미군정기 한국의 주도적 교육엘리트들은 중산층이상의 출신배경을 가진 고학력소지자들로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사회 계층적 출신배경은 교육주도세력으로 하여금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와 친화력을 갖게 하였다.
셋째, 교육주도 엘리트 중 다수는 기독교계통의 교육엘리트들로써 일제 식민지 하 에서 기독교를 신봉하였거나, 일제하에서 기독교계통의 학교를 졸업 또는 관계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미군정의 기독교인에 대한 주도적 역할 부여는 한국에 있어서 미국적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와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화라는 미군정의 정책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미군정에 의해 충원된 한국의 주도적 교육엘리트들은 대체로 일제강점기에 교직에 관계했던 사람들로써 일제에 대하여 소극적 저항 노선을 취했던 사람들이며, 고학력을 소지하고 어느 정도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주로 기독교계통의 인물들로 특정 지워진다고 할 수 있다. 일제에 협력했던 교육계 인물들이 해방 후 미군 정기에 한국교육의 주도세력이 됨으로써 인적 측면에서 한국교육계의 친일 청산은 어렵게 되었다. 미군정은 교육재건 과정에서 혁명적 변화를 추구했던 좌익계 엘리트들뿐만 아니라 민족주의계 엘리트들을 배제함으로써 교육계 내에서의 사상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교육의 과도한 이념화와 정치화를 초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