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로 향하는 도상에서 어떻게 하면 군부를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군부 권위주의정권의 해체 및 민주화 이행의 과정에서 등장한 제3세계의 문민정부들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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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8
2008
한국어
서울
iv, 111 p. : 삽도 ; 26 cm.
지도교수: 임혁백
부록수록
참고문헌 : p. 97-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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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로 향하는 도상에서 어떻게 하면 군부를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군부 권위주의정권의 해체 및 민주화 이행의 과정에서 등장한 제3세계의 문민정부들에 있어 첫 번째 화두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로의 전환 이후 민주정부의 일차적인 과제가 민주화의 도상에 산재한 과거 권위주의 세력인 군부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 때, 가장 어려운 작업은 이들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병영으로의 복귀(return to barracks) 시키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민주화 이후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 연구로 먼저 군부 권위주의정권 하에서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중심으로 두 나라의 군부의 개입의 역사와 문민통제 과정을 살펴보았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군부는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침체, 사회적 혼란 등의 외생적 요인(exogeneous)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와 같은 내생적 요인(endogeneous factor)이 문민정부의 무능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만이 국가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논리를 내세워 정치에 개입한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상반된 문민통제의 과정과 성과를 얻게 된다.
한국의 노태우 정부는 군의 위상 재정립이라는 명분 아래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부분적으로 추진하였고 보안사가 기무사로 개편되면서 기구 및 인원을 축소하는 제도를 개선하였다. 민·군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로 사관학교 출신자에게 부여되던 특채 사무관 제도를 폐지했고 각 군 본부 및 보안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등 국민의 대의 기관인 의회에 의한 군 통제를 시작하였다. 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시키고 5공 청문회를 통해 제5공화국과는 확실한 차별화를 시도한다. “무결정의 결정”(decision of non-decision)이라는 노태우 대통령의 독특한 수동적 리더십과 타협 전략 또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구 권위주의 체제의 계승자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고, 노태우 대통령 자신이 5․18 군부쿠데타의 주역이었기 때문에 군의 탈정치화는 한계가 있었다.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면서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는 강화되었고 하나회가 전격적으로 해체되고 안기부의 통제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었다. 특히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처벌하였고, 이는 군의 탈정치화를 실질적으로 마무리 짓고자 하는 역사적 결단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군부는 문민 대통령에 대해 불만이 적었고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가 공고화 단계에 이르렀다.
반면, 아르헨티나 알폰신 정부는 군정 관련자의 사법처리, 군의 정치개입 능력 제거, 군 직업의식 강화 등 과감한 개혁정책을 내놓았다. 군부정권과 관련된 장군을 숙청하고, 군의 계급을 하향 조정하는 등 군정청산에 노력하였지만 그의 급작스런 개혁에 불만을 가진 군부들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알폰신 대통령은 그들과 타협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의 뒤를 이은 메넴 정부 역시 알폰신 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한 군정청산 문제가 과제로 주어졌고, 군의 재직업화와 인권회복에 힘을 쓴다. 그는 군의 치안담당 역할의 회복과 국가정보기관의 예산을 증액시키는 등 군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포고령에 의존한 메넴 대통령의 개혁은 군부 쿠데타로 이어지고 만다. 아르헨티나는 1976~1983년 군정의 악몽에 비하면 군부독재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나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 과정에서 쿠데타와 반란이 잦으면서 민간 정치엘리트의 군부 장악 능력이 약해진다. 군부는 유약한 문민정부 속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후견적 권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권력을 보장받았고 유보된 영역을 확보하였다.
민주화 이행 초기,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민간 정치엘리트는 민․군 간 타협이라는 유사한 전략으로 군부를 장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군부의 탈정치화 과정에서 한국은 제재(sanctioning)와 감시(mornitoring)의 전략을 써서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에 성공하였으나 반면, 아르헨티나는 제재(sanctioning) 전략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채 유화(appeasement)전략으로 표피적으로만 문민통제가 가능한 상태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같은 오랜 군부의 정치개입과 군부독재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던 한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상반된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 과정을 겪게 된 것은 민간 정치엘리트의 군부 장악 능력, 특히 문민통제 실천 전략에 달려있다.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 된 한국에서 군부에 대한 강고한 문민통제가 성립한 것은 군부의 자율성, 전문성 및 명예를 존중하며 군부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기 보다는 법적․제도적 개혁을 통해 동반자로 포용하면서 그것의 전문성을 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응징하는 제재(sanctioning)와 감시(mornitoring)의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 실천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군부의 전문성을 강조하고 병력을 감축하는 정책을 펴 군부의 정치개입을 줄이고 군부청산에 힘썼지만 결국 군부 쿠데타로 이어진 태국과 군부 후견주의로의 퇴행을 보여 준 필리핀 등 여전히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나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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