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엽에 이르는 시기는 우리나라 역사상 外勢의 波高가 가장 높았던 때이다. 이 시기에 밀려드는 외세의 물결에 맞서 정국은 鎖國과 開化로 나뉘어졌지만 결국 외국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엽에 이르는 시기는 우리나라 역사상 外勢의 波高가 가장 높았던 때이다. 이 시기에 밀려드는 외세의 물결에 맞서 정국은 鎖國과 開化로 나뉘어졌지만 결국 외국에 문호를 점차 개방하게 되었고, 사회적 변화의 측면에서도 전통에서 근대로의 이행이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였으며, 또한 국권상실이라는 파국을 맞이하였던 시기였다.
이처럼 여러 가지가 급변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적 분위기만큼이나 각종의 主義와 主張들도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斥邪衛正論과 開化論이 이 시대의 주요한 사상이자 정국 운영의 이론으로 자리 잡아, 이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사상가와 정치이론가를 낳았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주의에서 벗어나 각자의 立脚點에서 해법을 찾고 대응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처럼 각자의 처지에 맞추어 그 시기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고자 했던 다양한 인물군에 대한 조명이 아직은 미흡하여 이 시기를 입체적으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修堂 李南珪(1855-1907)도 척사위정론과 개화론 가운데 어느 것을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입지에 맞추어 당시 조선의 위기를 구하고자 애썼던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수당에 대한 연구는 근대 전환기 역사를 담당했던 많은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측면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매우 필요한 것이다.
수당은 그의 주장과 행동이 시대의 두 조류인 척사와 개화론에서는 비켜섰지만, 전환기 역사적 국면을 한 번도 벗어난 적 없었던 인물이었다. 수당이 주장한 것은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것을 배제하고,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심성을 닦음으로서 義를 분간하고 禮에 맞게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당시의 시국에 맞추어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던 사상가들에 비한다면 소박할 뿐만 아니라 구태의연하기까지 한 이론이었다.
국운이 풍전의 등화와 같았던 요동치는 시대에 이와 같은 원론적인 주장을 펼친 것은, 다소 시대변화에 둔감하고 무기력하며 독특한 색깔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수당은 心性修養과 克己復禮 정신의 실체를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心得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보여준 현실대응은 여느 政論家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수당의 行誼와 죽음은 국가의 위난을 맞아 자기 확신에 찬 학문과 양심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간 수당에 관한 연구는 상당히 集積이 되었으나, 수당을 척사위정론을 주장하고 항일정신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위주가 되고 있다. 그러나 수당에게는 기존의 척사위정론자들과 동일하게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근거들이 있다. 예컨대, 척사위정론자들과의 師承 관계나 행동을 같이 한 자취가 보이지 않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道統優越意識에 의한 전체주의적인 시각도 나타나지 않는다. 수당의 사상과 학문에 대한 온당한 평가를 위해서는 그를 척사위정론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연구의 시각과 지평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수당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의 사상이 전승되어 올 수 있었던 점은 무엇이며, 그 자취를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지를 검토하여 수당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향후 수당 사상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고, 그의 사상과 학문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수당에 대한 학문과 문학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또한 수당은 詞章으로 發身했으며, 寧齋 李建昌(1852-1898) · 滄江 金澤榮(1850-1927) 등과 나란히 이름이 불릴 정도로 古文을 잘 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문학은 산문 못지않게 시에 長處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당은 스스로 長老들에게 시를 잘 짓는다는 잘못된 칭찬을 받았다고 자책을 했지만, 이는 謙讓에서 나온 말이라 할 것이다.
수당의 한시는 형이상학적인 이치와 도를 추구하는 시풍과는 달리 당시의 시대에 士人으로서의 책무를 절감한 현실인식과 대응을 바탕으로 한 실천윤리적인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실천적 수양론을 사상의 기저로 하는 그의 한시는 救世精神을 형상화하여 구현하였고, 이 점은 당시 다른 시인들과 크게 다른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수당의 한시는 수당 사상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삶의 궤적, 그리고 그의 사상을 확인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정신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당 문학 특히 한시에 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미흡한 점이 많다. 본고에서는 이 두 가지 범주의 상호 관련을 통하여 수당 시세계의 문학사적 의의를 규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