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12월 22일, 하와이로 향하는 121명의 한국인들은 ‘켄카이마루’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떠났다. 이 땅의 반 만 년 역사에서 첫 공식적 이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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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08
학위논문(석사) --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 교회사 한국교회사 , 2008. 2
2008
한국어
하와이 ; 이민 ; 사탕수수 농장주 ; 알렌(Horace. N. Allen) ; 데쉴러(David. W. Deshler) ; 존스(George. H. Jones) ; 제물포 ; 디아스포라 ; 송뢰금 ; 한국교회의 어려움 ; 고종황제 ; 유민원(綏民院) ; 인삼상인 ; 이민자 ; 용동교회(現 내리교회) ; 대한제국 ; 한국 서지방
서울
109 p. ; 26cm
지도교수 :이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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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2월 22일, 하와이로 향하는 121명의 한국인들은 ‘켄카이마루’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떠났다. 이 땅의 반 만 년 역사에서 첫 공식적 이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하와이 이민은 1905년 8월 8일, 이민이 금지되기까지 7,291명의 이민자들을 배출하였다.
개항 후 끊임없는 개화와 보수의 갈등 속에서, 그리고 그런 준비되지 않은 우리민족을 약탈하기 위해 달려드는 서구 열강들과 일제의 야욕 속에서 정치는 부패와 혼란으로 내달았으며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 하에서 진행된 하와이 이민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사람들이었고, 그것을 치욕과 불효로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한국인들에게 걸어서라도 갈 수 있는 만주나 연해주가 아닌 바다 건너 들어보지도 못한 하와이로의 이민은 ‘다시 돌아오지 못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여행’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초기 이민자 모집은 고종황제로부터 이민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진행되었다. 근대화의 길에 들어섰지만 아직 근대적 사고가 널리 퍼지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어렵기만 한 하와이 이민자 모집을 가능하게 한 이들은 존스(George H. Jones)를 중심으로 한 감리교인들이었다. 선교사들과 교회를 통해 근대화에 앞장 서 있던 이들은 더 나은 생활과 미래, 그리고 선교 정신을 갖고 하와이행 배에 올라탔다. 존스는 안정수, 현순, 홍승하 등 믿음직한 한국인 기독교 지도자들을 하와이로 향하게 했으며 이들을 통해 하와이 이민자들은 통역과 같은 일상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신앙 안에서의 심리적 안정과 예배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기독교는 하와이 이민에 있어 정치 · 경제 · 사회적인 현상 이외에 선교의 확장이라고 하는 다른 이유를 가질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모인 하와이 이민자들은 한국적 디아스포라 신학을 탄생시켰다. 일제의 침략 하에서 하와이의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하나님 앞에 민족적 회개를 촉구하였고 하나님 중심의 역사 신학적 해석으로 자신들의 시대를 재평가하였으며, 비 기독교인들을 향한 선교의 확장을 도모하였다.
하와이 이민을 위와 같은 주제들로 연구하기 위해 교회사학계는 더 많은 하와이 이민자들의 활동 기록들과 그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한 역사 신학적 해석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 그간 이뤄진 일반사학계의 정치 · 경제 · 사회적 현상으로 치중되었던 이민연구들이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고 기독교 사상이 중심이 된 연구로 올바르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모쪼록 본 논문을 비롯한 또 다른 교회사학계의 논문들이 한 곳으로 치우쳐진 하와이 이민의 의의를 바르게 자리 잡도록 해 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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