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충남지역에서 조성된 17세기 목조불상에 대하여 전반적인 실태와 불상양식을 살펴보았다. 조선 후기의 불상은 현재 사찰 전각에 남아 있는 불상들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
본 논문에서는 충남지역에서 조성된 17세기 목조불상에 대하여 전반적인 실태와 불상양식을 살펴보았다. 조선 후기의 불상은 현재 사찰 전각에 남아 있는 불상들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충남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충남의 주요사찰 전각의 불상의 대부분이 17세기에 조성된 것이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정책이라는 정치ㆍ사회적인 분위기에서도 호불 왕들의 불사 등 왕실에서 주관하는 불사와 민간의 신앙 활동 등으로 불교는 꾸준히 명맥을 이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전반의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위축된 불교와 함께 승려의 지위 또한 천민과 다름없을 정도로 하락 하였다.
하지만 임진·병자 양란 기간 중에 보여준 의승군의 활약은 승려들과 불교에 대한 가치를 대해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의 종전과 함께 의승군은 사회전반의 복구와 산성축조 등 국가적인 역사에 동원되었다. 이와 함께 임진왜란 기간 중에 파괴된 사원의 재건을 추진하며 전각의 건립과 불상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사원재건 자금의 조성과 사찰 운영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공양자들의 시주에만 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승려들이 직접 경제활동에 참여를 하고 사찰계를 조직하는 등 조선 불교 및 사찰 유지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불교와 승려에 대한 정치와 사회적인 인식변화와 지위 향상 내면에는 불교교단의 자구책이 보인다. 이는 성리학의 불교에 대한 도입으로 나타나고 이는 오랜 전쟁에서 오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정신적인 위안을 주고 일반인은 재건된 사원에서 제를 거행하며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것은 곧 시주자가 일반인들까지 확대를 가져왔고 적은 비용으로도 조성이 가능한 소조나 목조불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여건의 조성은 임진왜란 이후 사찰의 재건과 불상의 제작으로 나타났고, 이 시기 집중적으로 조성된 불상은 조선시대후기 불상의 양식이 정립되게 되었다. 충남지역에서도 17세기에는 임진왜란 이후 파괴된 사찰의 재건과 함께 조성된 불상의 재질은 소조불과 목조불이 주를 이루는 시대적 배경이 되었다. 또한 17세기 불상의 양식적인 면에서는 사찰의 주전각이 복원되면서 조성된 삼세불과 삼존불 양식이 많음을 볼 수 있다.
삼세불은 공주 갑사 대웅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청양 정혜사 대웅전, 공주 동학사 대웅전,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 논산 쌍계사 대웅전, 공주 마곡사 대웅전에서 조성되었다. 아미타삼존불은 서천 봉서사 극락전, 부여 무량사 극락전, 공주 갑사 대적전, 예산 향천사 극락전, 홍성 용봉사 대웅전에 조성 되었다. 또한 금산 보석사 대웅전과 온양 봉곡사 대웅전에는 석가삼존불이 조성되었다. 독존상은 대전 심광사 석가여래좌상, 공주 갑사 보장각 석가여래좌상, 대전 비래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좌상이 그리고 공주 갑사 대성암 보살좌상, 부여 대조사 원통보전 관음보살좌상, 공주 마곡사 명부전 지장보살좌상, 보령 백운사 제화갈라보살좌상이 조성되었다.
17세기 충남의 불상들은 조성비용이 적게 드는 소조불 일부에 목조불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좌우 대칭형 구도인 삼세불과 삼존불이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이와 동시에 무량사 극락전 소조 아미타불좌상은 521cm, 갑사 대웅전 소조석가여래좌상은 255cm, 쌍계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마곡사 대웅보전 석가여래좌상은 190cm, 수덕사 대웅전 석가여래좌상은 150cm, 그리고 나머지 삼세불과 삼존불은 1m 내외의 중·대형 불상이 함께 조성됨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충남의 17세기 불상은 전체적인 불상조성 양식의 흐름에 벗어나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조금씩 불상 양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것은 17세기 다양한 조각승 유파의 형성과도 무관치 않다. 충남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조각승의 유파는 수연계, 현진계, 무염계, 희장계, 법령계 등 5개의 계열로 파악 할 수 있다. 이들 유파의 큰 특징은 하반신 대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충남에서 가장 많은 불상 조성하며 영향을 끼진 유파와 조각승은 법령계와 법령의 제자 희장 임을 알 수 있었다. 희장은 충청도 전체에서 많은 불보살상을 조각하였음을 볼 수 있다.
충남의 17세기 불상은 전체적인 공통점인 상호가 방형에 신체에 비해 큰 얼굴, 반달형 눈썹에 살짝 뜨며 치켜 올라간 눈, 두꺼워 지며 커지는 귓불을 들 수 있다. 또한 상체가 하체에 비해 크며 대의의 표현에서 어깨의 계단식표현, 왼편 어깨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2~3개의 직선 주름과 U자형 마무리, 그리고 어깨에 덧댄 대의 끝 주름의 물결무늬 처리 등이다.
충남의 석가여래좌상의 경우 대부분이 변형우견편단을 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이는 덧댄 우측 어깨선 물결무늬의 단순화와 후기에 갈수록 단순화되고 그리고 아랫배 U자선의 오른쪽 겨드랑이로의 상승은 주목 될 만하다.
충남지역 17세기불상은 전체적으로 17세기 불상 양식을 따라 근엄하며 은은한 미소, 단정한 모습에 절제된 미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양식은 조각승들에 의해 18세기 불상 조성에도 그대로 전해 졌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