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필자는 칼빈에게서 출발하여 청교도들, 독일 경건주의자들, 미국대각성운동기의 설교자들, 그리고 한국교회에 이르기까지 “경건”이 어떤 모습으로 당대 속에 나타났는지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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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總神大學校 大學院, 2007
학위논문(석사) -- 총신대학교 대학원 , 신학과 역사신학전공 , 2007. 2
2007
한국어
231.09 판사항(4)
서울
149p. ; 26cm
참고문헌: p. 147-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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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지금까지 필자는 칼빈에게서 출발하여 청교도들, 독일 경건주의자들, 미국대각성운동기의 설교자들, 그리고 한국교회에 이르기까지 “경건”이 어떤 모습으로 당대 속에 나타났는지를 살...
지금까지 필자는 칼빈에게서 출발하여 청교도들, 독일 경건주의자들, 미국대각성운동기의 설교자들, 그리고 한국교회에 이르기까지 “경건”이 어떤 모습으로 당대 속에 나타났는지를 살펴보았다. 신앙함에 있어 “경건”이라는 말은 신앙생활을 대변해 주는 본질적인 말이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경건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게 된다.
칼빈은 경건을 단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갖는 영적 태도로 보지 않는다. 악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까 염려해서가 아니라 형벌을 받지 않고자 함일 뿐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그렇게 겁내는 것은 어느 때든 그것이 자기들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임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들의 경우는 하나님의 징벌보다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 자체를 두려워하는데 동시에 징벌을 받을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훨씬 더 조심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가 경건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이러한 열심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자 한다. 이런 칼빈의 정신은 전시대를 통해 경건을 열망하는 모든 신학자,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들의 신앙과 인격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으며 저들의 경건한 영적태도는 소멸해 가는 불씨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불씨가 다시 소생하는 것처럼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불타오르게 했다.
칼빈의 경건사상은 영국 종교개혁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고, 후에는 청교도운동에 영향을 준 주요 동력이 되었다. 칼빈은 개인적으로 영국을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대륙에 살고 있던 많은 칼빈주의자들이 영국으로 돌아옴으로써 영국교회와 대학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칼빈이 죽은 후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도 영국에서 칼빈의 영향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후계자인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에 의해 계속되었다. 청교도들에 의해 계승된 칼빈의 경건사상은 영국교회를 개혁하고 정화하는 방편이 되었다.
청교도들은 경건을 실천하여 영국을 영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죄를 억제하고 자기의 가정을 다스리고 성경을 부지런히 묵상하여 통달하고 열심히 일하고 정기적이며 끊임없는 기도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하고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신앙에 대한 교훈을 부지런히 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받으며 영적으로 재충전되는 일에 힘을 다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중심은 경건이었다. 그들의 경건 속에는 성경에서 발견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삶을 바꾸어 가려는 영적개방성이 있었으며 위대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려는 겸손함이 있었다. 또 연단을 통해 바르게 만들어져가려는 태도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요구하는 도덕적 수준에 이르고자 하는 거룩한 열심이 있었다,
흔히들 독일 경건주의는 루터교회 속에서 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나 본 연구에서는 영국 청교도들이 상당수 독일 경건주의에 영향을 주었음을 밝히고 있다.
청교도주의는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경건주의는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두 운동은 교회사적으로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하였다. 그러나 많은 개혁교회 경건주의자들이 영국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경건주의가 청교도주의의 강력한 뒷받침 속에서 꽃핀 것임을 살펴보았다.
17세기 초반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다시 등장함으로써 루터교는 교리의 경색화의 길을 가게 되었다. 정통주의자들은 루터교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보존하면서 진리를 용인된 문구로 전달하려 했지만 용인된 어법에서 조금만 이탈해도 이단이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고 성경 자체의 권위보다는 성경에 대한 정통적인 관점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성화를 위한 일체의 노력도 인간 편에서의 자기 공로로 여긴 나머지 경건을 향한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17세기의 루터교 내에서는 자기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경건주의 운동의 흥기는 바로 이런 배경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독일의 경건주의는 특히 모라비안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었으며 영국의 웨슬리에게도 깊은 감명을 줌으로써 독일교회의 영적부흥과 더불어 영국교회의 영적갱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여기에서 시작된 영적부흥은 19세기 미국 대각성운동으로 연결되어 한 세기 이상 미국교회에 경건한 열풍을 선물로 주었다. 특히 독일경건주의가 가지고 있는 성경공부 모임과 기도모임은 미국교회에 경건의 씨앗을 심어주었고, 그 바탕 위에서 다수의 신학자와 설교가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19세기 말 무디를 통하여 영적운동은 미국 젊은이들에게 선교의식을 고취하였고, 수많은 청년들이 세계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다.
한국교회 초기에는 바로 칼빈에게서 비롯되는 경건한 사상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한국의 신앙부흥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인 네비우스 방법을 통해 이미 초기부터 성경공부반과 새벽기도회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교회적인사경회 등을 통해 경건사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한국교회의 경건사상은 20세기 후반 제자훈련을 통하여 지속되고 있다. 제자훈련은 사랑의교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선교단체를 통해 교회에 소개되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다가 사랑의교회 제자훈련의 결과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교회에 유입되게 되었다. 제자훈련은 한국교회 초창기부터 이미 선교사들이 하던 경건한 성경공부반과 새벽기도회 등에서 일관되게 전수되어진 것이며 경건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경건한 사상과 삶, 그리고 칼빈주의적 가르침을 통해 한국교회에 알려졌지만, 교회역사 속에서 신자들의 삶에 성숙의 열매가 더디 맺힘으로 사회에 빛의 역할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사랑의교회가 보여준 열매들로 인해 더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매우 위태로운 길을 가고 있다. 최근의 정부통계에서 기독교인의 숫자가 상당수 줄어들었다. 그 만큼 전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동시에 교회에서 이탈하는 사람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사회적 현상에서 찾아 출산율의 저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교회가 대사회적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로 볼 필요가 있다. 교회의 대형화가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나 대형화를 추구하려는 그릇된 열망 등이 교회 내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유입하였고 물량주의적이고 세속화된 방법들이 부흥을 위한 거룩한 방편인양 소개되기도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교회 전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망에 사로잡혀 경건한 신앙과 삶을 이상적으로 바라보며 나아가는 교회가 다수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세속적인 소망이 교회의 경건에 상당한 위해요소가 되고 있음은 심히 걱정되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선교사들로부터 경건한 칼빈주의적 신학을 받아들인 경건의 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그런 소망들이 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음은 매우 감사한 일이라 하겠다. 이제라도 한국교회가 신앙의 유산인 경건을 회복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바른 신앙을 회복시켜 주길 바라며 사회적 영향력을 높여 복음의 전진기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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