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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後期 黃公望式 山水畵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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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0953948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 2007

    • 학위논문사항
    • 발행연도

      2007

    • 작성언어

      한국어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vi, 183 p. : 삽도 ; 26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변영섭
      부록수록
      참고문헌 : p. 120-134

    • 소장기관
      •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고려대학교 세종학술정보원 소장기관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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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元末四大家의 한 사람인 黃公望(1269-1354)은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화단에서 文人山水畵의 모범을 제시하고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다. 황공망이 활동했던 元代는 이민족인 蒙古族의 통치하에 수치와 불행을 당한 漢族 지식인들이 漢民族의 古典으로 돌아감으로써 中華文化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아울러 심리적으로나마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復古主義가 팽배하였다.
    元初에 宋 종실 출신의 趙孟頫(1254-1322)가 復古의 기치를 들고 다양한 고대의 전통을 부활시킴으로써 원대 회화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혁의 반향을 제시하였다면, 黃公望을 비롯한 元末四大家는 조맹부의 문인산수화 양식을 이어 독자적인 화풍을 수립함으로써 강남산수를 文人畵의 이상적인 경지로 발전시켰다.
    특히 원말사대가 중에서도 黃公望은 가장 연장자로서 산수화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인물로, 그 영향력 또한 가장 심대했다. 황공망의 저작으로 현전하는「寫山水訣」은 체계적인 이론서는 아니나 산수화 그리는 법과 문인화 이론을 피력함으로써 北宋代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문인화 이론을 계승하면서도 明代 본격적인 양식론이 대두되기 이전의 시원적인 형태의 글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또한 그의 산수화는 「사산수결」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들의 이론과 양식의 統合 · 具現의 일면을 보여준다. 황공망 산수화는 소재면에서 주로 그가 은거했던 강남지방 그 중에서도 虞山과 富春山 부근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事實性과 寫意性의 조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산수화의 요소들이 전개되는데, 산형, 준법, 수지법, 옥우의 표현에서 하나의 양식적 특징을 이루었다.
    이러한 황공망의 정신성과 산수화풍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물론 淸代 수많은 화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하였다. 특히 明末 董其昌(1555-1636)은 남종화론과 문인화이론을 정립시키면서 황공망을 비롯한 ‘元末四大家’를 唐代 王維(699-759)로부터 시작하는 문인산수화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매김하였고, 사대가 중에서도 黃公望과 倪瓚을 부각시켰다. 이후 동기창의 화론과 화풍을 계승한 淸代 화가들은 황공망과 예찬의 화풍을 창작의 주요 원천으로 받아들였으며, 특히 청대 正統派 화가들은 황공망을 최고의 전범으로 삼았다.
    조선에서 황공망 산수화풍의 유입은 17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황공망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李好閔(1553-1634)의 글에서 확인되며, 이호민은 1608년 明에 사행 갔을 때 우리나라 사신들이 머물던 玉河館에서 『顧氏畵譜』와 함께 황공망의 「사산수결」을 보고 譯官 李彦華(1556-1629)에게 별책에 옮기게 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最古의 황공망식 산수화는 李英胤(1561-1611)의 <倣黃公望山水圖>이다. 이 작품은 17세기의 유일한 황공망식 산수화로, 선구적인 화가들에 의해서 황공망 산수화풍이 소극적으로 수용되던 정황을 추측케 한다.
    조선후기에는 明末의 남종화론과 화풍이 본격적으로 수용되는 가운데, 황공망 산수화풍이 적극적이고 인식되고 제작되었다. 특히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들은 황공망 산수화를 적극적으로 인식하여 자신의 繪畵觀 또는 文藝觀에 접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양상의 황공망식 산수화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 화가들은 이미 元代 황공망 산수화는 접하기 어려웠으므로, 明 · 淸代 제작된 주요 畵譜와 倣古繪畵類를 통해 그 원형에 다가가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이해방식의 흐름은 크게 18세기와 19세기 전반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8세기 화가들은 남종화의 주요 화풍들에 대한 이해 속에서 황공망 산수화를 문인산수화의 이상적인 경지로 인식했으며, 특히 황공망 산수화의 ‘자아 표현의 발현’이라는 목적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明末淸初 황공망식 산수화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沈師正(1707-1769), 姜世晃(1713-1791), 鄭遂榮(1743-1831) 등을 중심으로 명말청초 그 중에서도 明末 松江派와 安徽派의 화풍을 공유한 황공망식 산수화가 다수 제작되었으며, 이 시기 황공망식 산수화풍은 각각의 개인 양식과 혼용되어 새로운 조선문인산수화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19세기 전반에는 淸 문화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인식과 수용을 가능하도록 토대를 마련한 北學派 문사들을 중심으로 淸代 畵籍이 다수 유입되었으며, 그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申緯(1769-1847), 金正喜(1786-1856) 등에 의해 화단에 있어서 청대 산수화 이론과 화풍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대학자이자 藝檀의 총수였던 김정희는 1809년 연행을 통해 연경화가들과 墨緣을 맺고 돈독한 우정을 나누면서 그들의 문예경향과 문인화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18세기에 축척된 황공망 산수화에 대한 이해에 청대 화단의 경향을 접합시켜 황공망 산수화에 새로운 의미와 조형관을 부여하였다.
    김정희는 18세기에서와 같이 황공망 산수화를 문인화의 이상적인 경지로 이해하는 가운데 회화세계에서 따라야할 典範으로 그 인식을 심화 · 확대시켰다. 특히 그는 ‘文字香’과 ‘書卷氣’라는 언술을 통해 寫意性 강한 문인화를 강조하면서, 산수화에서 황공망과 더불어 예찬의 회화세계를 전범으로 제시하였고, 청대 정통파 화가들의 산수화를 그 과정으로 삼았다. 김정희의 산수화이론은 그가 중국과 조선의 전통을 통합하고 발전시킨 學問觀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學藝一致’의 경지를 보여주며, 실제 창작활동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그의 황공망식 산수화는 독자적인 ‘倪黃의 法’을 구사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김정희의 산수화이론과 화풍은 여러 계층으로 이루어진 그의 문인들에게 전해져 황공망식 산수화가 확산되고 저변화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더욱이 이 시기에 황공망의 대표작인 <天池石壁圖>와 <富春山居圖>의 畵題를 취한 그림들이 다작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19세기 중 · 후반에 이르러 황공망식 산수화는 창조적인 면모보다는 청대 화단과 더 긴밀한 연관성을 보이면서 근대화단으로의 이행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許鍊(1808-1893),田琦(1825-1854), 李漢喆(1812-1893이후) 등에 의해 그려진, 황공망과 예찬의 화풍이 한 화폭에 나타나는 이른바 ‘倪黃式 山水畵’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그림들은 우선 종축으로 길어진 형식적인 면에서 청대 화단의 경향을 보여주며, 복잡한 구성과 수지법, 옥우의 표현 등에서 청대 四王畵派의 특징이 간취된다.
    본 논문은 문인산수화의 모범을 보여주었던 황공망 산수화가 조선후기 화단에서 어떠한 이해 속에서 수용되어 변화되고 전개해갔는가 살펴보고자 시도되었다. 조선후기의 주요 문인화가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조형관을 통해 황공망 산수화의 정신성과 화풍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섭렵함으로써 새로운 회화세계를 창출해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이러한 양상을 고찰함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문인화가들이 추구하고자 한 보편적 가치를 살필 수 있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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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元末四大家의 한 사람인 黃公望(1269-1354)은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화단에서 文人山水畵의 모범을 제시하고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다. 황공망이 활동했던 元代는 이민족인 蒙古族...

    元末四大家의 한 사람인 黃公望(1269-1354)은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화단에서 文人山水畵의 모범을 제시하고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다. 황공망이 활동했던 元代는 이민족인 蒙古族의 통치하에 수치와 불행을 당한 漢族 지식인들이 漢民族의 古典으로 돌아감으로써 中華文化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아울러 심리적으로나마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復古主義가 팽배하였다.
    元初에 宋 종실 출신의 趙孟&#38955;(1254-1322)가 復古의 기치를 들고 다양한 고대의 전통을 부활시킴으로써 원대 회화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혁의 반향을 제시하였다면, 黃公望을 비롯한 元末四大家는 조맹부의 문인산수화 양식을 이어 독자적인 화풍을 수립함으로써 강남산수를 文人畵의 이상적인 경지로 발전시켰다.
    특히 원말사대가 중에서도 黃公望은 가장 연장자로서 산수화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인물로, 그 영향력 또한 가장 심대했다. 황공망의 저작으로 현전하는「寫山水訣」은 체계적인 이론서는 아니나 산수화 그리는 법과 문인화 이론을 피력함으로써 北宋代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문인화 이론을 계승하면서도 明代 본격적인 양식론이 대두되기 이전의 시원적인 형태의 글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또한 그의 산수화는 「사산수결」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들의 이론과 양식의 統合 · 具現의 일면을 보여준다. 황공망 산수화는 소재면에서 주로 그가 은거했던 강남지방 그 중에서도 虞山과 富春山 부근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事實性과 寫意性의 조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산수화의 요소들이 전개되는데, 산형, 준법, 수지법, 옥우의 표현에서 하나의 양식적 특징을 이루었다.
    이러한 황공망의 정신성과 산수화풍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물론 淸代 수많은 화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하였다. 특히 明末 董其昌(1555-1636)은 남종화론과 문인화이론을 정립시키면서 황공망을 비롯한 ‘元末四大家’를 唐代 王維(699-759)로부터 시작하는 문인산수화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매김하였고, 사대가 중에서도 黃公望과 倪瓚을 부각시켰다. 이후 동기창의 화론과 화풍을 계승한 淸代 화가들은 황공망과 예찬의 화풍을 창작의 주요 원천으로 받아들였으며, 특히 청대 正統派 화가들은 황공망을 최고의 전범으로 삼았다.
    조선에서 황공망 산수화풍의 유입은 17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황공망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李好閔(1553-1634)의 글에서 확인되며, 이호민은 1608년 明에 사행 갔을 때 우리나라 사신들이 머물던 玉河館에서 『顧氏畵譜』와 함께 황공망의 「사산수결」을 보고 譯官 李彦華(1556-1629)에게 별책에 옮기게 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最古의 황공망식 산수화는 李英胤(1561-1611)의 <倣黃公望山水圖>이다. 이 작품은 17세기의 유일한 황공망식 산수화로, 선구적인 화가들에 의해서 황공망 산수화풍이 소극적으로 수용되던 정황을 추측케 한다.
    조선후기에는 明末의 남종화론과 화풍이 본격적으로 수용되는 가운데, 황공망 산수화풍이 적극적이고 인식되고 제작되었다. 특히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들은 황공망 산수화를 적극적으로 인식하여 자신의 繪畵觀 또는 文藝觀에 접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양상의 황공망식 산수화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 화가들은 이미 元代 황공망 산수화는 접하기 어려웠으므로, 明 · 淸代 제작된 주요 畵譜와 倣古繪畵類를 통해 그 원형에 다가가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이해방식의 흐름은 크게 18세기와 19세기 전반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8세기 화가들은 남종화의 주요 화풍들에 대한 이해 속에서 황공망 산수화를 문인산수화의 이상적인 경지로 인식했으며, 특히 황공망 산수화의 ‘자아 표현의 발현’이라는 목적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明末淸初 황공망식 산수화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沈師正(1707-1769), 姜世晃(1713-1791), 鄭遂榮(1743-1831) 등을 중심으로 명말청초 그 중에서도 明末 松江派와 安徽派의 화풍을 공유한 황공망식 산수화가 다수 제작되었으며, 이 시기 황공망식 산수화풍은 각각의 개인 양식과 혼용되어 새로운 조선문인산수화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19세기 전반에는 淸 문화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인식과 수용을 가능하도록 토대를 마련한 北學派 문사들을 중심으로 淸代 畵籍이 다수 유입되었으며, 그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申緯(1769-1847), 金正喜(1786-1856) 등에 의해 화단에 있어서 청대 산수화 이론과 화풍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대학자이자 藝檀의 총수였던 김정희는 1809년 연행을 통해 연경화가들과 墨緣을 맺고 돈독한 우정을 나누면서 그들의 문예경향과 문인화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18세기에 축척된 황공망 산수화에 대한 이해에 청대 화단의 경향을 접합시켜 황공망 산수화에 새로운 의미와 조형관을 부여하였다.
    김정희는 18세기에서와 같이 황공망 산수화를 문인화의 이상적인 경지로 이해하는 가운데 회화세계에서 따라야할 典範으로 그 인식을 심화 · 확대시켰다. 특히 그는 ‘文字香’과 ‘書卷氣’라는 언술을 통해 寫意性 강한 문인화를 강조하면서, 산수화에서 황공망과 더불어 예찬의 회화세계를 전범으로 제시하였고, 청대 정통파 화가들의 산수화를 그 과정으로 삼았다. 김정희의 산수화이론은 그가 중국과 조선의 전통을 통합하고 발전시킨 學問觀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學藝一致’의 경지를 보여주며, 실제 창작활동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그의 황공망식 산수화는 독자적인 ‘倪黃의 法’을 구사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김정희의 산수화이론과 화풍은 여러 계층으로 이루어진 그의 문인들에게 전해져 황공망식 산수화가 확산되고 저변화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더욱이 이 시기에 황공망의 대표작인 <天池石壁圖>와 <富春山居圖>의 畵題를 취한 그림들이 다작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19세기 중 · 후반에 이르러 황공망식 산수화는 창조적인 면모보다는 청대 화단과 더 긴밀한 연관성을 보이면서 근대화단으로의 이행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許鍊(1808-1893),田琦(1825-1854), 李漢喆(1812-1893이후) 등에 의해 그려진, 황공망과 예찬의 화풍이 한 화폭에 나타나는 이른바 ‘倪黃式 山水畵’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그림들은 우선 종축으로 길어진 형식적인 면에서 청대 화단의 경향을 보여주며, 복잡한 구성과 수지법, 옥우의 표현 등에서 청대 四王畵派의 특징이 간취된다.
    본 논문은 문인산수화의 모범을 보여주었던 황공망 산수화가 조선후기 화단에서 어떠한 이해 속에서 수용되어 변화되고 전개해갔는가 살펴보고자 시도되었다. 조선후기의 주요 문인화가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조형관을 통해 황공망 산수화의 정신성과 화풍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섭렵함으로써 새로운 회화세계를 창출해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이러한 양상을 고찰함으로써 시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문인화가들이 추구하고자 한 보편적 가치를 살필 수 있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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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目 次 -
    • Ⅰ.머리말
    • Ⅱ.黃公望 山水畵의 특징과 그 전개양상
    • 1. 黃公望의 『寫山水訣』과 산수화의 양식적 특징
    • 2. 明 淸代 黃公望 繪畵에 대한 평가와 黃公望式 山水畵
    • -目 次 -
    • Ⅰ.머리말
    • Ⅱ.黃公望 山水畵의 특징과 그 전개양상
    • 1. 黃公望의 『寫山水訣』과 산수화의 양식적 특징
    • 2. 明 淸代 黃公望 繪畵에 대한 평가와 黃公望式 山水畵
    • Ⅲ.朝鮮時代 黃公望 畵風의 유입과 수용
    • 1. 黃公望 畵風의 유입시기
    • 2. 李英胤 <倣黃公望山水圖>의 화풍과 제작시기
    • Ⅳ.18세기 黃公望式 山水畵의 확산
    • 1. 黃公望 畵風의 유입과 인식
    • 2. 明末淸初 黃公望式 山水畵의 수용과 제 양상
    • Ⅴ.19세기 전반 黃公望式 山水畵의 새로운 인식과 성행
    • 1. 文人畵의 典範으로 인식된 黃公望 山水畵
    • 2. 淸代 黃公望式 山水畵의 수용과 확산
    • Ⅵ.맺음말
    • ◎ 參考文獻
    • ◎ 圖版目錄
    • ◎ 圖版
    • ◎ 附錄(表 1-5)
    • ◎ Abstract
    • ※ 表目次
    • 表 1. 黃公望의 『寫山水訣』 전문
    • 表 2. 黃公望 山水畵 작품 목록
    • 表 3. 黃公望 山水畵의 양식적 특징
    • 表 4. 朝鮮의 黃公望式 山水畵 작품 목록
    • 表 5. 19世紀 朝鮮의 山水畵 작품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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