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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경기지역의 朝鮮時代 士大夫 墓制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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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0953201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高麗大學校 大學院, 2007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 高麗大學校 大學院 , 文化財學協同科程 , 2007.2

      • 발행연도

        2007

      • 작성언어

        한국어

      • KDC

        384.6 판사항(5)

      • 발행국(도시)

        서울

      • 기타서명

        Research on the tomb culture of the gentry in Seoul and the Gyeonggi province during the Joseon Dynasty

      • 형태사항

        xiii, 261 p. : 삽화 ; 26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최광식
        참고문헌: p. 189-196

      • 소장기관
        •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고려대학교 세종학술정보원 소장기관정보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학술정보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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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 연구는 조선시대 墓制에 관한 전반적인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묘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墓制, 즉 墳墓制度 또는 墓葬制度는 死者의 陰宅으로서의 무덤에 관한 제반 法制的 制度 및 樣式에 대한 문제이다. 즉, 신분에 따른 무덤의 명칭ㆍ규모ㆍ조성방법, 墓域에 조성되는 각종 石物類의 제한규정ㆍ배치방법 및 명칭ㆍ형태ㆍ수량 등 무덤의 외형적 요소뿐만 아니라 喪葬禮의 결과로 나타난 무덤 속의 구조에 대한 制度 및 樣式에 관한 문제이다.
      이 연구를 전개함에 있어서 묘역의 대상을 한정시켜 분석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묘역의 대상은 士大夫 墓域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서울ㆍ경기지역의 묘역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다만 시기적으로는 조선시대 전 기간을 대상으로 하여 서울ㆍ경기지역의 사대부 묘역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방법은 먼저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구성하여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특히 朝鮮時代 墓制에 나타난 각종 석물 및 구조에 숨어있는 민속학적 象徵體系의 의미를 밝혀내어 조선시대 묘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이후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에 배치된 각종 석물에 대한 법제적 문제, 제한규정, 배치방법, 명칭 및 묘역에서의 석물이 차지하는 의미 등 개개의 석물에 내재되어 있는 각종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조선시대 묘역에 배치된 석물들은 조선시대 전기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외형적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이에 관한 미술사적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아울러 각종 석물의 양식 및 도상의 변화과정에 담긴 시대적 의미와 사상적 변화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상장례의 결과로 나타난 무덤속의 구조에 대해 먼저 사료적 검토를 하였다. 조선왕조는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灰隔墓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타난 당시의 석실묘와 회격묘의 장ㆍ단점에 관한 논의를 통해 두 묘제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축조 방법에 따른 石室墓와 石槨墓, 그리고 灰隔墓와 灰槨墓에 관한 차이점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명칭 문제를 다루었다. 이후 각종 축조 방법이 드러난 여러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정리하고, 당시대에 나타난 실제적 현상들을 검토하였다. 끝으로 조선시대 士大夫家의 미라 및 服飾이 出土되는 분묘 연구를 통해 미라 및 복식이 출토되는 과학적 메커니즘을 정리하였다.
      위와 같은 조선시대 묘제 연구에 대한 범위와 방법론을 통해 분석할 수 있었던 다양한 결과물 중 중요한 것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은 階砌石을 중심으로 상단의 階節과 하단의 拜階節로 구분된다. 階節은 亡子를 위한 공간으로서 망자에 대한 봉분과 석물이 배치되고, 拜階節에는 生者의 활동 공간으로서 생자에 대한 석물이 배치된다. 또한 방위개념은 陰陽論에 의거하여 망자의 공간인 계절에서는 서쪽과 오른쪽을 중시하여 남편이 오른쪽에 묻히고 부인을 祔左하게 된다. 반면 생자의 공간인 배계절에서는 동쪽과 왼쪽을 陽의 개념으로 해석하여 석물이 배치되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묘역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神道碑 및 墓碑의 건립 목적은 후세에 師表가 될 만한 기록을 남겨 조상의 德을 밝히고 顯揚하는 것이며, 동시에 性理學에서 제시한 朱子家禮에 의한 禮의 실행이었다. 특히 神道碑는 現職과 贈職을 포함하여 官職과 品階가 從二品 이상만 세울 수 있도록 法制化 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시대를 통하여 일관되게 유지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法制는 또한 品階에 따라 묘역의 규모에 차등을 두고, 庶人의 墓碑 규모를 2尺으로 제한하는 등의 法制와 함께 조선시대의 墓制에 있어서도 사회적ㆍ신분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法制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들은 石碑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묘역에 배치된 각종 석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朝鮮時代의 墓制에는 性理學, 風水地理說, 佛敎 및 陰陽論 등 다양한 文化要素가 融合되어 墓制에 나타나는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묘제는 전 시대를 통해 다양한 사상적 요소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ㆍ수용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石碑의 양식 변천 과정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이전까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 屋蓋石 형식의 비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다량 건립되고 있으며, 그 형태에 있어서도 八作屋蓋石을 비롯 사모옥개석ㆍ平屋蓋石ㆍ螭龍屋蓋石 등 다양한 양식으로 건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 시기부터 옥개석 양식은 조선시대 석비의 전형적인 양식이 되었다. 이러한 옥개석 양식은 비의 개념, 즉 神을 인도하고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개념에 충분히 어울리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양식은 이전의 비의 형태보다 경제적 측면과 비신의 碑文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적 역할이 고려된 실용적 사고의 결과라 하겠다. 이것은 조선시대 묘역에서만 나타나는 독창적인 양식으로 발전되어 나갔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통으로 남게 되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은 처음에 石室墓와 石槨墓를 사용하다가 석실ㆍ석곽묘에 대한 각종 금지 정책과 灰隔墓 사용 권장 정책으로 『國朝五禮儀』가 제시하고 있는 회격묘로 정착되어 간다. 그리고 회격묘는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주자의 『家禮』가 제시하고 있는 灰槨墓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이후로는 완벽하게 회곽묘로 대체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천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개념은 이중관 구조에 대한 개념이다. 조선시대에 있어서 石槨墓는 石槨에 木棺이 안치된 二重棺 구조이고, 灰隔墓에서의 木槨은 木槨에 木棺이 안치된 이중관 구조이다. 그리고 灰槨墓에서는 灰槨에 木棺이 안치된 이중관 구조이다. 이처럼 이중관 구조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石室墓에서는 石槨, 灰隔墓에서는 木槨, 灰槨墓에서는 灰槨으로 변화되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에서는 다양한 사상적 文化要素가 融合되어 墓制에 반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비신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 구조인 옥개석 구조의 개발, 정치적ㆍ경제적ㆍ기술적 관점에서의 석실ㆍ석곽묘에서 회격묘로의 전환, 그리고 다시 회격묘에서 회곽묘로의 변천 과정에 따르는 많은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ㆍ경기지역의 朝鮮時代 士大夫 墓制 硏究

      提 出 者 : 金 右 臨
      指導敎授 : 崔 光 植

      이 연구는 조선시대 墓制에 관한 전반적인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묘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墓制, 즉 墳墓制度 또는 墓葬制度는 死者의 陰宅으로서의 무덤에 관한 제반 法制的 制度 및 樣式에 대한 문제이다. 즉, 신분에 따른 무덤의 명칭ㆍ규모ㆍ조성방법, 墓域에 조성되는 각종 石物類의 제한규정ㆍ배치방법 및 명칭ㆍ형태ㆍ수량 등 무덤의 외형적 요소뿐만 아니라 喪葬禮의 결과로 나타난 무덤 속의 구조에 대한 制度 및 樣式에 관한 문제이다.
      이 연구를 전개함에 있어서 묘역의 대상을 한정시켜 분석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묘역의 대상은 士大夫 墓域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서울ㆍ경기지역의 묘역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다만 시기적으로는 조선시대 전 기간을 대상으로 하여 서울ㆍ경기지역의 사대부 묘역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방법은 먼저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구성하여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특히 朝鮮時代 墓制에 나타난 각종 석물 및 구조에 숨어있는 민속학적 象徵體系의 의미를 밝혀내어 조선시대 묘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이후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에 배치된 각종 석물에 대한 법제적 문제, 제한규정, 배치방법, 명칭 및 묘역에서의 석물이 차지하는 의미 등 개개의 석물에 내재되어 있는 각종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조선시대 묘역에 배치된 석물들은 조선시대 전기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외형적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이에 관한 미술사적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아울러 각종 석물의 양식 및 도상의 변화과정에 담긴 시대적 의미와 사상적 변화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상장례의 결과로 나타난 무덤속의 구조에 대해 먼저 사료적 검토를 하였다. 조선왕조는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灰隔墓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타난 당시의 석실묘와 회격묘의 장ㆍ단점에 관한 논의를 통해 두 묘제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축조 방법에 따른 石室墓와 石槨墓, 그리고 灰隔墓와 灰槨墓에 관한 차이점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명칭 문제를 다루었다. 이후 각종 축조 방법이 드러난 여러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정리하고, 당시대에 나타난 실제적 현상들을 검토하였다. 끝으로 조선시대 士大夫家의 미라 및 服飾이 出土되는 분묘 연구를 통해 미라 및 복식이 출토되는 과학적 메커니즘을 정리하였다.
      위와 같은 조선시대 묘제 연구에 대한 범위와 방법론을 통해 분석할 수 있었던 다양한 결과물 중 중요한 것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은 階砌石을 중심으로 상단의 階節과 하단의 拜階節로 구분된다. 階節은 亡子를 위한 공간으로서 망자에 대한 봉분과 석물이 배치되고, 拜階節에는 生者의 활동 공간으로서 에 대한 석물이 배치된다. 또한 방위개념은 陰陽論에 의거하여 망자의 공간인 계절에서는 서쪽과 오른쪽을 중시하여 남편이 오른쪽에 묻히고 부인을 祔左하게 된다. 반면 생자의 공간인 배계절에서는 동쪽과 왼쪽을 陽의 개념으로 해석하여 석물이 배치되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묘역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神道碑 및 墓碑의 건립 목적은 후세에 師表가 될 만한 기록을 남겨 조상의 德을 밝히고 顯揚하는 것이며, 동시에 性理學에서 제시한 朱子家禮에 의한 禮의 실행이었다. 특히 神道碑는 現職과 贈職을 포함하여 官職과 品階가 從二品 이상만 세울 수 있도록 法制化 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시대를 통하여 일관되게 유지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法制는 또한 品階에 따라 묘역의 규모에 차등을 두고, 庶人의 墓碑 규모를 2尺으로 제한하는 등의 法制와 함께 조선시대의 墓制에 있어서도 사회적ㆍ신분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法制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들은 石碑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묘역에 배치된 각종 석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朝鮮時代의 墓制에는 性理學, 風水地理說, 佛敎 및 陰陽論 등 다양한 文化要素가 融合되어 墓制에 나타나는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묘제는 전 시대를 통해 다양한 사상적 요소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ㆍ수용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石碑의 양식 변천 과정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이전까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 屋蓋石 형식의 비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다량 건립되고 있으며, 그 형태에 있어서도 八作屋蓋石을 비롯 사모옥개석ㆍ平屋蓋石ㆍ螭龍屋蓋石 등 다양한 양식으로 건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 시기부터 옥개석 양식은 조선시대 석비의 전형적인 양식이 되었다. 이러한 옥개석 양식은 비의 개념, 즉 神을 인도하고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개념에 충분히 어울리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양식은 이전의 비의 형태보다 경제적 측면과 비신의 碑文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적 역할이 고려된 실용적 사고의 결과라 하겠다. 이것은 조선시대 묘역에서만 나타나는 독창적인 양식으로 발전되어 나갔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통으로 남게 되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은 처음에 石室墓와 石槨墓를 사용하다가 석실ㆍ석곽묘에 대한 각종 금지 정책과 灰隔墓 사용 권장 정책으로 『國朝五禮儀』가 제시하고 있는 회격묘로 정착되어 간다. 그리고 회격묘는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주자의 『家禮』가 제시하고 있는 灰槨墓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이후로는 완벽하게 회곽묘로 대체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천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개념은 이중관 구조에 대한 개념이다. 조선시대에 있어서 石槨墓는 石槨에 木棺이 안치된 二重棺 구조이고, 灰隔墓에서의 木槨은 木槨에 木棺이 안치된 이중관 구조이다. 그리고 灰槨墓에서는 灰槨에 木棺이 안치된 이중관 구조이다. 이처럼 이중관 구조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石室墓에서는 石槨, 灰隔墓에서는 木槨, 灰槨墓에서는 灰槨으로 변화되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에서는 다양한 사상적 文化要素가 融合되어 墓制에 반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비신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 구조인 옥개석 구조의 개발, 정치적ㆍ경제적ㆍ기술적 관점에서의 석실ㆍ석곽묘에서 회격묘로의 전환, 그리고 다시 회격묘에서 회곽묘로의 변천 과정에 따르는 많은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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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조선시대 墓制에 관한 전반적인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묘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墓制, 즉 墳墓制度 또는 墓葬制度...

      이 연구는 조선시대 墓制에 관한 전반적인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묘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墓制, 즉 墳墓制度 또는 墓葬制度는 死者의 陰宅으로서의 무덤에 관한 제반 法制的 制度 및 樣式에 대한 문제이다. 즉, 신분에 따른 무덤의 명칭ㆍ규모ㆍ조성방법, 墓域에 조성되는 각종 石物類의 제한규정ㆍ배치방법 및 명칭ㆍ형태ㆍ수량 등 무덤의 외형적 요소뿐만 아니라 喪葬禮의 결과로 나타난 무덤 속의 구조에 대한 制度 및 樣式에 관한 문제이다.
      이 연구를 전개함에 있어서 묘역의 대상을 한정시켜 분석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묘역의 대상은 士大夫 墓域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서울ㆍ경기지역의 묘역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다만 시기적으로는 조선시대 전 기간을 대상으로 하여 서울ㆍ경기지역의 사대부 묘역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방법은 먼저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구성하여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특히 朝鮮時代 墓制에 나타난 각종 석물 및 구조에 숨어있는 민속학적 象徵體系의 의미를 밝혀내어 조선시대 묘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이후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에 배치된 각종 석물에 대한 법제적 문제, 제한규정, 배치방법, 명칭 및 묘역에서의 석물이 차지하는 의미 등 개개의 석물에 내재되어 있는 각종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조선시대 묘역에 배치된 석물들은 조선시대 전기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외형적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이에 관한 미술사적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아울러 각종 석물의 양식 및 도상의 변화과정에 담긴 시대적 의미와 사상적 변화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상장례의 결과로 나타난 무덤속의 구조에 대해 먼저 사료적 검토를 하였다. 조선왕조는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灰隔墓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타난 당시의 석실묘와 회격묘의 장ㆍ단점에 관한 논의를 통해 두 묘제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축조 방법에 따른 石室墓와 石槨墓, 그리고 灰隔墓와 灰槨墓에 관한 차이점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명칭 문제를 다루었다. 이후 각종 축조 방법이 드러난 여러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정리하고, 당시대에 나타난 실제적 현상들을 검토하였다. 끝으로 조선시대 士大夫家의 미라 및 服飾이 出土되는 분묘 연구를 통해 미라 및 복식이 출토되는 과학적 메커니즘을 정리하였다.
      위와 같은 조선시대 묘제 연구에 대한 범위와 방법론을 통해 분석할 수 있었던 다양한 결과물 중 중요한 것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은 階砌石을 중심으로 상단의 階節과 하단의 拜階節로 구분된다. 階節은 亡子를 위한 공간으로서 망자에 대한 봉분과 석물이 배치되고, 拜階節에는 生者의 활동 공간으로서 생자에 대한 석물이 배치된다. 또한 방위개념은 陰陽論에 의거하여 망자의 공간인 계절에서는 서쪽과 오른쪽을 중시하여 남편이 오른쪽에 묻히고 부인을 祔左하게 된다. 반면 생자의 공간인 배계절에서는 동쪽과 왼쪽을 陽의 개념으로 해석하여 석물이 배치되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묘역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神道碑 및 墓碑의 건립 목적은 후세에 師表가 될 만한 기록을 남겨 조상의 德을 밝히고 顯揚하는 것이며, 동시에 性理學에서 제시한 朱子家禮에 의한 禮의 실행이었다. 특히 神道碑는 現職과 贈職을 포함하여 官職과 品階가 從二品 이상만 세울 수 있도록 法制化 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시대를 통하여 일관되게 유지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法制는 또한 品階에 따라 묘역의 규모에 차등을 두고, 庶人의 墓碑 규모를 2尺으로 제한하는 등의 法制와 함께 조선시대의 墓制에 있어서도 사회적ㆍ신분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法制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들은 石碑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묘역에 배치된 각종 석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朝鮮時代의 墓制에는 性理學, 風水地理說, 佛敎 및 陰陽論 등 다양한 文化要素가 融合되어 墓制에 나타나는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묘제는 전 시대를 통해 다양한 사상적 요소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ㆍ수용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石碑의 양식 변천 과정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이전까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 屋蓋石 형식의 비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다량 건립되고 있으며, 그 형태에 있어서도 八作屋蓋石을 비롯 사모옥개석ㆍ平屋蓋石ㆍ螭龍屋蓋石 등 다양한 양식으로 건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 시기부터 옥개석 양식은 조선시대 석비의 전형적인 양식이 되었다. 이러한 옥개석 양식은 비의 개념, 즉 神을 인도하고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개념에 충분히 어울리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양식은 이전의 비의 형태보다 경제적 측면과 비신의 碑文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적 역할이 고려된 실용적 사고의 결과라 하겠다. 이것은 조선시대 묘역에서만 나타나는 독창적인 양식으로 발전되어 나갔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통으로 남게 되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은 처음에 石室墓와 石槨墓를 사용하다가 석실ㆍ석곽묘에 대한 각종 금지 정책과 灰隔墓 사용 권장 정책으로 『國朝五禮儀』가 제시하고 있는 회격묘로 정착되어 간다. 그리고 회격묘는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주자의 『家禮』가 제시하고 있는 灰槨墓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이후로는 완벽하게 회곽묘로 대체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천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개념은 이중관 구조에 대한 개념이다. 조선시대에 있어서 石槨墓는 石槨에 木棺이 안치된 二重棺 구조이고, 灰隔墓에서의 木槨은 木槨에 木棺이 안치된 이중관 구조이다. 그리고 灰槨墓에서는 灰槨에 木棺이 안치된 이중관 구조이다. 이처럼 이중관 구조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石室墓에서는 石槨, 灰隔墓에서는 木槨, 灰槨墓에서는 灰槨으로 변화되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에서는 다양한 사상적 文化要素가 融合되어 墓制에 반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비신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 구조인 옥개석 구조의 개발, 정치적ㆍ경제적ㆍ기술적 관점에서의 석실ㆍ석곽묘에서 회격묘로의 전환, 그리고 다시 회격묘에서 회곽묘로의 변천 과정에 따르는 많은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ㆍ경기지역의 朝鮮時代 士大夫 墓制 硏究

      提 出 者 : 金 右 臨
      指導敎授 : 崔 光 植

      이 연구는 조선시대 墓制에 관한 전반적인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묘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墓制, 즉 墳墓制度 또는 墓葬制度는 死者의 陰宅으로서의 무덤에 관한 제반 法制的 制度 및 樣式에 대한 문제이다. 즉, 신분에 따른 무덤의 명칭ㆍ규모ㆍ조성방법, 墓域에 조성되는 각종 石物類의 제한규정ㆍ배치방법 및 명칭ㆍ형태ㆍ수량 등 무덤의 외형적 요소뿐만 아니라 喪葬禮의 결과로 나타난 무덤 속의 구조에 대한 制度 및 樣式에 관한 문제이다.
      이 연구를 전개함에 있어서 묘역의 대상을 한정시켜 분석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묘역의 대상은 士大夫 墓域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서울ㆍ경기지역의 묘역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다만 시기적으로는 조선시대 전 기간을 대상으로 하여 서울ㆍ경기지역의 사대부 묘역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방법은 먼저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구성하여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특히 朝鮮時代 墓制에 나타난 각종 석물 및 구조에 숨어있는 민속학적 象徵體系의 의미를 밝혀내어 조선시대 묘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이후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에 배치된 각종 석물에 대한 법제적 문제, 제한규정, 배치방법, 명칭 및 묘역에서의 석물이 차지하는 의미 등 개개의 석물에 내재되어 있는 각종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조선시대 묘역에 배치된 석물들은 조선시대 전기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외형적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이에 관한 미술사적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아울러 각종 석물의 양식 및 도상의 변화과정에 담긴 시대적 의미와 사상적 변화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상장례의 결과로 나타난 무덤속의 구조에 대해 먼저 사료적 검토를 하였다. 조선왕조는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灰隔墓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밟아 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타난 당시의 석실묘와 회격묘의 장ㆍ단점에 관한 논의를 통해 두 묘제에 대한 당시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축조 방법에 따른 石室墓와 石槨墓, 그리고 灰隔墓와 灰槨墓에 관한 차이점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명칭 문제를 다루었다. 이후 각종 축조 방법이 드러난 여러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정리하고, 당시대에 나타난 실제적 현상들을 검토하였다. 끝으로 조선시대 士大夫家의 미라 및 服飾이 出土되는 분묘 연구를 통해 미라 및 복식이 출토되는 과학적 메커니즘을 정리하였다.
      위와 같은 조선시대 묘제 연구에 대한 범위와 방법론을 통해 분석할 수 있었던 다양한 결과물 중 중요한 것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은 階砌石을 중심으로 상단의 階節과 하단의 拜階節로 구분된다. 階節은 亡子를 위한 공간으로서 망자에 대한 봉분과 석물이 배치되고, 拜階節에는 生者의 활동 공간으로서 에 대한 석물이 배치된다. 또한 방위개념은 陰陽論에 의거하여 망자의 공간인 계절에서는 서쪽과 오른쪽을 중시하여 남편이 오른쪽에 묻히고 부인을 祔左하게 된다. 반면 생자의 공간인 배계절에서는 동쪽과 왼쪽을 陽의 개념으로 해석하여 석물이 배치되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묘역을 이해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神道碑 및 墓碑의 건립 목적은 후세에 師表가 될 만한 기록을 남겨 조상의 德을 밝히고 顯揚하는 것이며, 동시에 性理學에서 제시한 朱子家禮에 의한 禮의 실행이었다. 특히 神道碑는 現職과 贈職을 포함하여 官職과 品階가 從二品 이상만 세울 수 있도록 法制化 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시대를 통하여 일관되게 유지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法制는 또한 品階에 따라 묘역의 규모에 차등을 두고, 庶人의 墓碑 규모를 2尺으로 제한하는 등의 法制와 함께 조선시대의 墓制에 있어서도 사회적ㆍ신분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法制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들은 石碑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묘역에 배치된 각종 석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朝鮮時代의 墓制에는 性理學, 風水地理說, 佛敎 및 陰陽論 등 다양한 文化要素가 融合되어 墓制에 나타나는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묘제는 전 시대를 통해 다양한 사상적 요소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ㆍ수용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石碑의 양식 변천 과정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이전까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 屋蓋石 형식의 비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다량 건립되고 있으며, 그 형태에 있어서도 八作屋蓋石을 비롯 사모옥개석ㆍ平屋蓋石ㆍ螭龍屋蓋石 등 다양한 양식으로 건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위 시기부터 옥개석 양식은 조선시대 석비의 전형적인 양식이 되었다. 이러한 옥개석 양식은 비의 개념, 즉 神을 인도하고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개념에 충분히 어울리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양식은 이전의 비의 형태보다 경제적 측면과 비신의 碑文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적 역할이 고려된 실용적 사고의 결과라 하겠다. 이것은 조선시대 묘역에서만 나타나는 독창적인 양식으로 발전되어 나갔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통으로 남게 되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은 처음에 石室墓와 石槨墓를 사용하다가 석실ㆍ석곽묘에 대한 각종 금지 정책과 灰隔墓 사용 권장 정책으로 『國朝五禮儀』가 제시하고 있는 회격묘로 정착되어 간다. 그리고 회격묘는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부터 주자의 『家禮』가 제시하고 있는 灰槨墓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이후로는 완벽하게 회곽묘로 대체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변천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개념은 이중관 구조에 대한 개념이다. 조선시대에 있어서 石槨墓는 石槨에 木棺이 안치된 二重棺 구조이고, 灰隔墓에서의 木槨은 木槨에 木棺이 안치된 이중관 구조이다. 그리고 灰槨墓에서는 灰槨에 木棺이 안치된 이중관 구조이다. 이처럼 이중관 구조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石室墓에서는 石槨, 灰隔墓에서는 木槨, 灰槨墓에서는 灰槨으로 변화되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묘역에서는 다양한 사상적 文化要素가 融合되어 墓制에 반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비신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 구조인 옥개석 구조의 개발, 정치적ㆍ경제적ㆍ기술적 관점에서의 석실ㆍ석곽묘에서 회격묘로의 전환, 그리고 다시 회격묘에서 회곽묘로의 변천 과정에 따르는 많은 요소가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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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목 차
      • Ⅰ.序 論
      • 1.문제 제기
      • 2.朝鮮時代 墓制의 연구 동향
      • 1)풍수사상 관점의 묘제 연구
      • 목 차
      • Ⅰ.序 論
      • 1.문제 제기
      • 2.朝鮮時代 墓制의 연구 동향
      • 1)풍수사상 관점의 묘제 연구
      • 2)미술사 관점의 묘제 연구
      • 3)복식사 관점의 묘제 연구
      • 4)종합적 관점의 묘제 연구
      • 3.연구의 범위와 방법
      • Ⅱ.士大夫 墓制의 성격과 묘역의 구조
      • 1.士大夫 墓制의 法規
      • 2.士大夫 墓制의 思想的 背景
      • 3.士大夫 墓域의 상부구조와 의미
      • 4.士大夫 墓域의 하부구조
      • 1)士大夫 墓域의 三月葬 制度
      • 2)士大夫 墓域의 副葬品
      • Ⅲ.士大夫 墓域 石物의 특징과 양식의 변천
      • 1.神道碑의 특징과 내용
      • 1)神道碑의 建立 目的과 機能
      • 2)神道碑의 建立 制限
      • 3)神道碑文의 內容
      • 4)撰書篆者
      • 5)神道碑의 建立 時期
      • 2.墓碑에 나타난 諸 問題
      • 1)墓碑의 名稱 問題
      • 2)墓碑의 建立 目的과 機能
      • 3)墓碑文을 통해서 본 合葬 問題
      • 4)墓碑에 나타난 方位 問題
      • 3.神道碑墓碑의 양식 및 변천과정
      • 1)碑의 建立에 관한 法規
      • 2)碑의 構成 및 名稱
      • 3)碑의 양식 및 변천과정
      • 4.기타 석물
      • 1)長明燈의 특징과 양식의 변천
      • 2)文人石의 특징과 양식의 변천
      • 3)童子石의 특징
      • Ⅳ.조선시대 무덤양식의 변천과정
      • 1.조선시대 무덤양식의 변천과정
      • 1)王陵의 변천과정
      • 2)士大夫 무덤양식의 변천과정
      • 2.灰隔墓와 灰槨墓
      • 1)회격묘의 조성방법에 대한 검토
      • 2)灰隔墓와 灰槨墓의 명칭 문제
      • 3)고고학적 발굴성과 검토
      • 3.미라 출토 조선시대 분묘 연구
      • 1)미라 출토 분묘의 일반적 조건
      • 2)미라 출토 분묘의 연구성과 검토
      • 3)미라 및 出土服飾 생성의 메커니즘
      • Ⅴ.結 論
      • 參 考 文 獻
      • 부 록
      • ABSTRACT
      • 사진 목차
      • 사진1?〉월산대군 이정(1454~1489)묘역
      • 〈사진2?〉신흠(1566~1628)묘역
      • 〈사진3?〉신흠 묘역 묘비 및 혼유석
      • 〈사진4?〉신흠 묘역 상석 및 향로석
      • 〈사진5?〉신빈김씨(1406~1464)묘역
      • 〈사진6?〉윤행엄(1728~1775)묘역 상석 및 고석
      • 〈사진7?〉심종침(1553~1614)묘역 고석(정면)
      • 〈사진8?〉심종침 묘역 고석(측면)
      • 〈사진9?〉풍창부부인 조씨(1659~1741)묘역 고석
      • 〈사진1?0〉박세영(1480~1522)묘역
      • 〈사진11〉박세무(1487~1554)묘역
      • 〈사진1?2〉박세영 묘역 좌측 문인석
      • 〈사진1?3〉박세영 묘역 우측 무인석
      • 〈사진1?4〉박세무 묘역 좌측 문인석
      • 〈사진1?5〉박세무 묘역 우측 무인석
      • 〈사진1?6〉최명창(1466~1536)묘역
      • 〈사진1?7〉최명창 묘비 이수(후면)
      • 〈사진1?8〉최명창 부인 묘비 이수(후면)
      • 〈사진1?9〉최명창 묘역 동자석(좌)
      • 〈사진20〉최명창 묘역 동자석(우)
      • 〈사진2?1〉남일성(1611~1665)묘역 망주석(좌)
      • 〈사진2?2〉남일성 묘역 망주석(우)
      • 〈사진2?3〉남구만(1629~1711)묘역 망주석(좌)
      • 〈사진2?4〉남구만 묘역 망주석(우)
      • 〈사진2?5〉풍창부부인 조씨(1659~1741)묘역 망주석(좌)
      • 〈사진2?6〉풍창부부인 조씨 묘역 망주석(우)
      • 〈사진27〉최근 망주석(좌)
      • 〈사진28〉최근 망주석(우)
      • 〈사진29〉해인사 석등 쥐모양(좌)
      • 〈사진30〉해인사 석등 쥐모양(우)
      • 〈사진31〉직지사 석등
      • 〈사진32〉직지사 석등 주신 부분의 쥐모양
      • 〈사진33〉은해사 기둥 흰쥐(좌)
      • 〈사진34〉은해사 기둥 검은 쥐(우)
      • 〈사진35〉도동서원 강당
      • 〈사진36〉강당 기단 우측 쥐모양
      • 〈사진37〉강당 기단 좌측 쥐모양
      • 〈사진38〉사당입구 계단 卍字紋
      • 〈사진39〉남구만 묘비 옥개석 해태(측면)
      • 〈사진40〉남구만 묘비 옥개석 해태(정면)
      • 〈사진41〉이보혁 청화백자 지석 출토 현황
      • 〈사진42〉이보혁 회지석
      • 〈사진43〉이보혁 화강암 지석
      • 〈사진44〉인천이씨 지석 석함
      • 〈사진45〉석함 내부
      • 〈사진46〉이기조 묘역 발굴 현장
      • 〈사진47〉지석 출토 현황
      • 〈사진48〉최운익 합장묘 회지석 출토 현황
      • 〈사진49〉이보혁 합장묘 회지석 출토 현황
      • 〈사진50〉현부인 안산김씨 묘역 광중
      • 〈사진51〉지석 출토 현황
      • 〈사진52〉태안군 이팽수 묘역 편방
      • 〈사진53〉현부인 안산김씨 묘역 편방
      • 〈사진54〉변수 묘 목각인형 출토 현황
      • 〈사진55〉목각인형-주악상
      • 〈사진56〉송라리 2호분 광중
      • 〈사진57〉송라리 2호분 편방
      • 〈사진58〉구포리 2-6호 무덤
      • 〈사진59〉구포리 2-7호 무덤
      • 〈사진60〉오태주 묘갈
      • 〈사진61〉태종무열왕릉비(1920년대 촬영)
      • 〈사진62〉윤보(?~1494)묘비
      • 〈사진63〉한계희 신도비(1483년)화관석
      • 〈사진64〉한계희 신도비(1483년)비대
      • 〈사진65〉상감청자 선덕십년명 지석(1435년)
      • 〈사진66〉백자상감 진양군영인정씨 지석(1466년)
      • 〈사진67〉분청사기 성화칠년명 지석(1471년)
      • 〈사진68〉은해사 대웅전 주련
      • 〈사진69〉윤사흔 신도비(1486년)
      • 〈사진70〉윤사흔 신도비 화관석
      • 〈사진71〉윤사흔 신도비(측면)
      • 〈사진72〉정몽주 묘비(1517년)
      • 〈사진73〉한사개 묘갈(1521년)
      • 〈사진74〉박운 묘비 관석(전면)
      • 〈사진75〉박운 묘비 관석(후면)
      • 〈사진76〉변안열 묘표(전면)
      • 〈사진77〉변안열 묘표(후면)
      • 〈사진78〉안경공 묘비(1435년)
      • 〈사진79〉안맹담 묘비(1477년)
      • 〈사진80〉윤삼산 신도비(1486년)
      • 〈사진81〉윤계겸 신도비(1489년)
      • 〈사진82〉윤계겸 신도비 운수
      • 〈사진83〉조광조 묘표(1585년)
      • 〈사진84〉인천이씨 묘비(1456년)
      • 〈사진85〉대보광선사비(1281년)
      • 〈사진86〉최재 묘지석(1151년)
      • 〈사진87〉신흠 신도비 이수
      • 〈사진88〉신흠 신도비(1699년)
      • 〈사진89〉김식 신도비(1520년)
      • 〈사진90〉연일정씨 묘갈(1521년)
      • 〈사진91〉박세영 신도비(1582년)이수
      • 〈사진92〉이순 묘표(1529년)이수
      • 〈사진93〉김육 신도비(1664년)
      • 〈사진94〉김육 신도비 방부 기린문
      • 〈사진95〉윤지임 묘비 이수(전면)
      • 〈사진96〉윤지임 묘비 이수(후면)
      • 〈사진97〉민유중 신도비(1687년)
      • 〈사진98〉이훤 신도비(1720년)
      • 〈사진99〉이염 신도비(1747년)
      • 〈사진100〉유성증 묘비(1654년)
      • 〈사진101〉유무증 묘비(1655년)
      • 〈사진102〉이부 신도비(1574년)
      • 〈사진103〉임광 신도비(1663년)
      • 〈사진104〉창빈안씨 신도비(1683년)
      • 〈사진105〉이유 신도비(1753년)
      • 〈사진106〉김구 신도비(1734년)
      • 〈사진107〉김중행 묘역 장명등
      • 〈사진108〉연안부부인 전씨 묘역 문인석
      • 〈사진109〉풍창부부인 조씨 묘역 문인석
      • 〈사진110〉함부림 석곽묘
      • 〈사진111〉허흠고성이씨 석곽(정면)
      • 〈사진112〉고성이씨 석곽(측면)
      • 〈사진113〉허흠 석곽묘
      • 〈사진114〉석곽묘 내부
      • 〈사진115〉목관 출토상황
      • 〈사진116〉고성이씨 석곽묘
      • 〈사진117〉목관 출토상황
      • 〈사진118〉목관 내부
      • 〈사진119〉송라리 1호분 회격 출토상황
      • 〈사진120〉동경 및 빗 출토상황
      • 〈사진121〉태안군 이팽수 회격묘 노출
      • 〈사진122〉회격 제거과정
      • 〈사진123〉목곽 천판 노출
      • 〈사진124〉목곽 천판 제거작업
      • 〈사진125〉목관 천판 제거작업
      • 〈사진126〉목관 내부 노출 상태
      • 〈사진127〉이기조 합장묘 회곽 천판 제거과정
      • 〈사진128〉회곽 천판 제거 후 상태
      • 〈사진129〉목관 노출 상태
      • 〈사진130〉목관 천판 제거 후 상태
      • 〈사진131〉홍석묘 회곽묘 천회 제거 후 상태
      • 〈사진132〉목관 제거 후 회곽 내부 상태
      • 〈사진133〉송라리 3호분 회곽 천회 제거과정
      • 〈사진134〉부식된 목관 제거 후 유골 상태
      • 〈사진135〉중앙 회곽벽 연도
      • 〈사진136〉정온 회격묘 목관 나비장
      • 〈사진137〉목관 내부 모서리 상태
      • 〈사진138〉목관 칠성판 밑의 숯
      • 〈사진139〉목관 내부 배접 상태(장벽)
      • 〈사진140〉단웅 미라 복식 해체 진행 중 상태
      • 〈사진141〉단웅 미라 복식 해체 후 상태
      • 〈사진142〉목곽 천판 제거 후 목관 노출 상태
      • 〈사진143〉목곽에서 목관 분리작업
      • 〈사진144〉목관 분리 후 물 고임 상태
      • 〈사진145〉파평윤씨 모자미라
      • 〈사진146〉부검 후 태아 노출 상태
      • 〈사진147〉칠성판 및 숯
      • 〈사진148〉숯과 송진
      • 〈사진149〉회격묘의 재발굴
      • 〈사진150〉목곽
      • 그 림 목 차
      • 〈그림1〉『상례비요』圖14
      • 〈그림2〉파주 서곡리 고려벽화묘 문인석
      • 〈그림3〉김흠조 묘역 발굴 유구 실측도
      • 〈그림4〉이팽수 묘역 발굴 유구 실측도
      • 〈그림5〉이기조 묘역 발굴 유구 평면도
      • 표 목 차
      • 〈表1〉 墓碑名 分類
      • 〈表2〉 墓碑名 分類 그래프
      • 〈表3〉 碑의 각 부분 명칭
      • 〈表4〉 神道碑의 樣式 分類
      • 〈表5〉 神道碑의 樣式 分類 그래프
      • 〈表6〉 墓碑의 樣式 分類
      • 〈表7〉 墓碑의 樣式 分類 그래프
      • 〈表8〉 日月紋이 있는 雲首方趺
      • 〈表9〉 장명등 양식의 변천 과정
      • 〈表10〉 문인석 시대별 양식 분포
      • 〈表?11〉? ?문인석 시대별 양식 분석 그래프
      • 〈表12〉? 문인석 양식의 변천 과정
      • 〈表13〉? 동자석 양식의 변천 과정
      • 〈表14〉? 조선시대 무덤의 발굴성과
      • 〈表15〉 미?라 출토 조선시대 분묘
      • 부 록 목 차
      • 〈부록表1〉神道碑
      • 〈부록表2〉墓碑
      • 〈부록表3〉長明燈
      • 〈부록表4〉文人石
      • 〈부록表5〉童子石
      • 〈表〉일러두기
      • 〈表11〉의 출처 :보고서 및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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