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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景福宮 勤政殿 月臺 欄干石柱像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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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0952154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 2007

    • 학위논문사항
    • 발행연도

      2007

    • 작성언어

      한국어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v, 184 p. : 삽도 ; 26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방병선
      부록수록
      참고문헌 : p. 131-138

    • 소장기관
      •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 고려대학교 세종학술정보원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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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경복궁은 조선시대 法宮으로서 최고의 궁궐이었으며, 근정전은 正殿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인데, 신하들의 朝賀를 받거나 政令을 반포하고,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던 곳이다. 근정전의 기단부 역할을 하는 月臺는 2단의 석축 방형기단으로 외곽에 欄干石을 두르고 있으며, 난간석 위에는 여러 가지 動物像이 조각되어 있다. 경복궁은 壬辰倭亂으로 소실된 후 270여 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高宗代에 이르러 재건되었다. 하지만 月臺는 재료의 특성상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 월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基壇은 秦漢時代에 이미 나타났으며, 唐代 이후에는 3단의 석축기단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전 월대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고려시대 이후에는 각 궁궐의 정전 앞에 월대가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근정전 月臺는 2단의 석축 방형기단으로 외곽에는 欄干石이 둘러져 있으며, 난간석 위에는 四神, 十二支와 관련된 동물, 獬豸, 瑞獸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四神과 十二支는 각각 배속 방향이 있지만, 월대에는 일정한 방향에 맞춰 배치되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근정전 월대 欄干石柱像의 배치원리를 성리학에서 찾아보았다. 朝鮮은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통치 규범 및 사상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이것은 경복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각 전각의 배치나 명칭이 성리학적인 원리로 명명되었다. 특히 성리학에서 파생된 陰陽五行思想은 경복궁 건설에 중요한 원리였고, 월대 난간석주상도 이 원리에 의해 배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월대 난간석주상의 배치는 陰陽五行思想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데, 경복궁 風水의 단점을 상징적인 의미에서 난간석주상에 조각된 동물로 裨補하여 明堂으로 만들려는 의도에 의해 五行裨補의 원리를 적용하여 난간석주상이 이동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陰陽五行思想을 적용하면 난간석 위에 조각된 동물의 의미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四神은 하늘, 瑞獸는 陰陽, 十二支와 관련된 동물은 五行으로 해석되어 완벽하게 陰陽五行을 구현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난간석주상은 형태에 따라 四神像類, 動物像類, 獬豸像類, 瑞獸像類로 구분할 수 있다. 이 像들은 神格化나 抽象化되지 않고 일반적인 동물의 모습으로 온 몸을 각진 면 없이 곡면화하여 표현하였다. 또한 각 동물의 특징적인 부분은 부각시키고, 장식적 요소는 최소화하여 소박하면서 정겨운 한국적인 美感을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난간석주상은 여러 가지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데, 이러한 양식들을 크게 3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양식구분은 근정전이 보수되거나 재건되는 시점과 각 像들에 표현된 신체비례, 양감, 다리 근육, 자세, 얼굴 형태 등을 종합하여 구분하였다. Ⅰ양식은 경복궁이 건설되는 太祖부터 開京에서 還都하여 경복궁을 수리하고 경회루를 중건하는 太宗代까지로 신체비례는 1 : 2 ~ 3, 양감 및 다리 근육이 풍부하고 탄력감 있게 조각되었으며, 역동적인 자세와 돌출형의 얼굴로 표현되었다. Ⅱ양식은 法宮體制가 완성되는 世宗代인데, 전체적으로 Ⅰ양식과 흡사하지만, 양감 및 다리 근육에서 보이던 탄력감이 감소되었고, 장식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Ⅲ양식은 경복궁이 재건되는 高宗代로 신체비례가 1 : 3 ~ 4 정도로 몸통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였고, 양감 및 다리 근육 표현은 사라졌으며, 자세는 경직되었고, 부분 돌출형 · 평면형 얼굴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월대를 제외한 조선시대 動物像 및 石燈에 부분적으로 표현된 동물과 월대 난간석주상을 비교하여 조선시대 동물상의 양식편년을 고찰해 보았다. 태조에서 태종연간의 작품(Ⅰ양식)으로는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 靑龍寺 獅子石燈(1394), 會巖寺 雙獅子石燈(1409), 會巖寺出土 獅子像, 慶會樓 欄干石柱像 등이 있었다. 세종연간의 작품(Ⅱ양식)으로는 永濟橋 欄干石柱像, 舊 英陵 石虎(1450), 상월대 北向 白虎, 하월대 東向 寅, 하월대 南階 獬豸 등이 있었다. 端宗부터 景宗年間까지는 왕릉을 제외한 곳에서 동물상을 찾아보기 힘든데, 世祖年間 이후 왕릉 석물의 간소화 경향과 壬辰倭亂과 丙子胡亂과 같은 戰亂은 왕릉 이외의 石物 제작 축소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나라가 안정을 되찾는 영조연간에야 비로소 동물상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영조에서 정조연간의 작품은 淸溪川 廣通橋 欄干石柱像, 北水門 石物(1796)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고종연간의 작품(Ⅲ양식)으로 월대 南面 모서리 雙獬豸, 하월대 北向 酉, 光化門 앞 獬豸(1867), 皇穹宇 石物(1899), 高宗卽位四十週年稱慶紀念碑殿 石物(1902) 등이 있다.
    난간석주상은 왕실에서 제작한 중앙양식의 작품으로 기존의 왕릉 석물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像을 창조하였고, 石柱 위에 동물상을 조각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왕실에서 제작된 석물은 왕릉 및 왕실발원 사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石虎 · 石羊 등 단독상으로 제작된 王陵石物과 석등과 탑에 부분적으로 동물상이 차용되어 등장한다. 난간석주상은 조선시대 동물상 제작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빼어난 기량의 중앙양식은 후대에 전수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 왕릉에서 월대 난간석주상의 기법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수준이 월대 난간석주상에 비하여 떨어지기 때문이다. 난간석주상은 왕실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배치원리의 독창성, 기법이나 작품 자체의 의미에 나타난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인상은 한국적인 美感을 충실하게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과 편년이 있는 조선시대 동물상의 고찰을 통해 난간석주상과 동물상의 양식편년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월대 난간석주상 배치의 사상적 배경을 경복궁 전체의 건축 원리인 성리학에서 찾아보았는데, 성리학적 원리가 미술작품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에 대한 用例의 제시를 본 연구에 의의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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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은 조선시대 法宮으로서 최고의 궁궐이었으며, 근정전은 正殿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인데, 신하들의 朝賀를 받거나 政令을 반포하고,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

    경복궁은 조선시대 法宮으로서 최고의 궁궐이었으며, 근정전은 正殿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인데, 신하들의 朝賀를 받거나 政令을 반포하고,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던 곳이다. 근정전의 기단부 역할을 하는 月臺는 2단의 석축 방형기단으로 외곽에 欄干石을 두르고 있으며, 난간석 위에는 여러 가지 動物像이 조각되어 있다. 경복궁은 壬辰倭亂으로 소실된 후 270여 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高宗代에 이르러 재건되었다. 하지만 月臺는 재료의 특성상 소실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 월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基壇은 秦漢時代에 이미 나타났으며, 唐代 이후에는 3단의 석축기단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전 월대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고려시대 이후에는 각 궁궐의 정전 앞에 월대가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근정전 月臺는 2단의 석축 방형기단으로 외곽에는 欄干石이 둘러져 있으며, 난간석 위에는 四神, 十二支와 관련된 동물, 獬豸, 瑞獸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四神과 十二支는 각각 배속 방향이 있지만, 월대에는 일정한 방향에 맞춰 배치되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근정전 월대 欄干石柱像의 배치원리를 성리학에서 찾아보았다. 朝鮮은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통치 규범 및 사상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이것은 경복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각 전각의 배치나 명칭이 성리학적인 원리로 명명되었다. 특히 성리학에서 파생된 陰陽五行思想은 경복궁 건설에 중요한 원리였고, 월대 난간석주상도 이 원리에 의해 배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월대 난간석주상의 배치는 陰陽五行思想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데, 경복궁 風水의 단점을 상징적인 의미에서 난간석주상에 조각된 동물로 裨補하여 明堂으로 만들려는 의도에 의해 五行裨補의 원리를 적용하여 난간석주상이 이동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陰陽五行思想을 적용하면 난간석 위에 조각된 동물의 의미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四神은 하늘, 瑞獸는 陰陽, 十二支와 관련된 동물은 五行으로 해석되어 완벽하게 陰陽五行을 구현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난간석주상은 형태에 따라 四神像類, 動物像類, 獬豸像類, 瑞獸像類로 구분할 수 있다. 이 像들은 神格化나 抽象化되지 않고 일반적인 동물의 모습으로 온 몸을 각진 면 없이 곡면화하여 표현하였다. 또한 각 동물의 특징적인 부분은 부각시키고, 장식적 요소는 최소화하여 소박하면서 정겨운 한국적인 美感을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난간석주상은 여러 가지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데, 이러한 양식들을 크게 3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양식구분은 근정전이 보수되거나 재건되는 시점과 각 像들에 표현된 신체비례, 양감, 다리 근육, 자세, 얼굴 형태 등을 종합하여 구분하였다. Ⅰ양식은 경복궁이 건설되는 太祖부터 開京에서 還都하여 경복궁을 수리하고 경회루를 중건하는 太宗代까지로 신체비례는 1 : 2 ~ 3, 양감 및 다리 근육이 풍부하고 탄력감 있게 조각되었으며, 역동적인 자세와 돌출형의 얼굴로 표현되었다. Ⅱ양식은 法宮體制가 완성되는 世宗代인데, 전체적으로 Ⅰ양식과 흡사하지만, 양감 및 다리 근육에서 보이던 탄력감이 감소되었고, 장식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Ⅲ양식은 경복궁이 재건되는 高宗代로 신체비례가 1 : 3 ~ 4 정도로 몸통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였고, 양감 및 다리 근육 표현은 사라졌으며, 자세는 경직되었고, 부분 돌출형 · 평면형 얼굴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월대를 제외한 조선시대 動物像 및 石燈에 부분적으로 표현된 동물과 월대 난간석주상을 비교하여 조선시대 동물상의 양식편년을 고찰해 보았다. 태조에서 태종연간의 작품(Ⅰ양식)으로는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 靑龍寺 獅子石燈(1394), 會巖寺 雙獅子石燈(1409), 會巖寺出土 獅子像, 慶會樓 欄干石柱像 등이 있었다. 세종연간의 작품(Ⅱ양식)으로는 永濟橋 欄干石柱像, 舊 英陵 石虎(1450), 상월대 北向 白虎, 하월대 東向 寅, 하월대 南階 獬豸 등이 있었다. 端宗부터 景宗年間까지는 왕릉을 제외한 곳에서 동물상을 찾아보기 힘든데, 世祖年間 이후 왕릉 석물의 간소화 경향과 壬辰倭亂과 丙子胡亂과 같은 戰亂은 왕릉 이외의 石物 제작 축소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나라가 안정을 되찾는 영조연간에야 비로소 동물상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영조에서 정조연간의 작품은 淸溪川 廣通橋 欄干石柱像, 北水門 石物(1796)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고종연간의 작품(Ⅲ양식)으로 월대 南面 모서리 雙獬豸, 하월대 北向 酉, 光化門 앞 獬豸(1867), 皇穹宇 石物(1899), 高宗卽位四十週年稱慶紀念碑殿 石物(1902) 등이 있다.
    난간석주상은 왕실에서 제작한 중앙양식의 작품으로 기존의 왕릉 석물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像을 창조하였고, 石柱 위에 동물상을 조각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왕실에서 제작된 석물은 왕릉 및 왕실발원 사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石虎 · 石羊 등 단독상으로 제작된 王陵石物과 석등과 탑에 부분적으로 동물상이 차용되어 등장한다. 난간석주상은 조선시대 동물상 제작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빼어난 기량의 중앙양식은 후대에 전수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 왕릉에서 월대 난간석주상의 기법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수준이 월대 난간석주상에 비하여 떨어지기 때문이다. 난간석주상은 왕실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배치원리의 독창성, 기법이나 작품 자체의 의미에 나타난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인상은 한국적인 美感을 충실하게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과 편년이 있는 조선시대 동물상의 고찰을 통해 난간석주상과 동물상의 양식편년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월대 난간석주상 배치의 사상적 배경을 경복궁 전체의 건축 원리인 성리학에서 찾아보았는데, 성리학적 원리가 미술작품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에 대한 用例의 제시를 본 연구에 의의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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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目 次
    • Ⅰ. 序論
    • Ⅱ. 勤政殿 月臺의 造成背景
    • 1. 月臺의 起源
    • 2. 月臺의 構造와 技能
    • 目 次
    • Ⅰ. 序論
    • Ⅱ. 勤政殿 月臺의 造成背景
    • 1. 月臺의 起源
    • 2. 月臺의 構造와 技能
    • 3. 製作技法
    • Ⅲ. 勤政殿 月臺의 配置原理와 形式
    • 1. 配置原理
    • 2. 配置形式
    • Ⅳ. 勤政殿 月臺 欄干石柱像 圖像的 特徵
    • 1. 四神像類
    • 2. 動物像類
    • 3. 해치像類
    • 4. 瑞獸像類
    • Ⅴ. 勤政殿 月臺 欄干石柱像 樣式의 變遷
    • 1. 太祖 ~ 太宗年間 (제 Ⅰ양식)
    • 2. 世宗年間 (제 Ⅱ양식)
    • 3. 高宗年間 (제 Ⅲ양식)
    • Ⅵ. 美術史的 意義
    • Ⅶ. 結論
    • 附錄
    • 參考文獻
    • 圖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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